내조자의 사명 (왕상21:1-16)
본문
본문에서 저주받은 여인 이세벨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병이든 남편을 위한다는 구실로, 그녀는 남편의 교만과 정욕을 만족시켜 그의 타락에 부채질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비통함을 알게 되었고, 그 원인을 캐냈습니다. 부부가 서로 간에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그들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자들은 부부간의 사랑과 의무마저 망각한 것입니다. 아합은 아내에게 나봇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원인을 말해 줍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아내로서 이런 일을 바로 잘 처리해야 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7절에 “왕이 어찌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사람이 왜 이런 작은 일로 근심하십니까? 하는 뜻으로써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라는 암시를 준 것입니다. 그의 이 말은 아합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격려하는 아내는 그 남편을 멸망으로 빠뜨리는 악처입니다. 이제 이세벨의 말을 들은 아합은 악을 가차 없이 행하여도 내 욕망을 채워야겠다고 용기가 솟아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말하는 의도는 악의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세벨의 말은 “대왕께서 미천한 농부에게 청원하고 애원을 하였다니 말도 안 됩니다. 왕의 대권을 발동하시어 정당하게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강제로 얻으십시요. 모욕에 대해 분개하지 말고 몰수를 하십시요. 왕이 위신을 지키실 줄 모른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왕의 이름만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시면 곧 나봇의 포도원을 왕에게 드리겠습니다. 잘했건 못했건 포도원은 왕의 것이 됩니다”라는 것입니다. 주변에 폭군의 행동을 하도록 자극시키며 권력의 남용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 왕들은 바로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세벨은 왕을 기쁘게 하려고, 아합 왕에게 준 모욕을 보상시키도록 함에 있어서 나봇의 피만큼은 흘리게 해야겠고 더욱이 나봇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율법을 고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알을 섬기는 이세벨로서 그녀의 심중에 복수심은 더 커졌을 것입니다.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장관들에게 보낸 명령은 이 때까지 왕이 발송한 어떤 명령보다도 더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옥새를 빌렸지만 왕은 그녀가 그 옥새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그 전에도 선지자를 살해하는 영장에 옥새를 찍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녀는 왕의 이름으로 나봇을 죽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녀는 법관들로 하여금 증인들, 곧 벨리알의 아들들을 찾아오게 했고, 증인들을 매수했으며, 그리고는 그 거짓 증언에 따라 재판케 했습니다. 이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뻔뻔스런 신성 모독이요, 정의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그녀가 이 명령이 분명 지켜질 것으로 알았다는 것은 그녀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야말로 정직하고 명예로운 모든 일에는 완전히 거리가 먼 자들로 간주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뱀의 교활한 계략으로 그 장로들을 조롱하려 했습니다.
(1) 종교의 이름으로 이 일을 진행케 했습니다.
(2) 이 사학한 계획은 법적 절차의 형식을 밟아 정의의 이름으로 진행 되었던 것입니다. 나봇에게 부관된 죄목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것, 즉 중대한 불경건의 죄였습니다. 물론 그녀는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한 자체가 불경스러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봇이 그의 포도원을 아합 왕에게 주기를 거부한 것은 왕에게 불손한 것이요, 그 이유로 하나님의 율법을 들먹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경이라고 억지로 꾸미는 것입니다. 나봇이 하나님께 불경했다는 이유로 포도원도, 목숨도 빼앗기고 반역죄로 기소되어 전 재산을 몰수한 것입니다. 나봇을 죽인 아합의 악행은 내조자 이세벨의 계략이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고이래로 위대한 인물들의 배후에는 반드시 좋은 내조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면에 악하고 불행한 인물 배후에는 반드시 좋지 못한 내조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든지 주관자와 내조자 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들을 분석해 본다면 대체로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본문에서 자기 남편만을 생각하고 기쁘게 해 주는 내조자입니다 바로 이세벨입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 아합 왕이 자기 백성 중 나봇이라는 농부가 소유한 포도원을 가지고자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봇의 이 밭은 우리 조상 때부터 전해 오는 것이므로 내어 줄 수 없다고 하자 아합 왕은 실망하여 식음을 폐하고 침상에 눕게 되니 왕비 이세벨은 왕을 위하여 행해서는 안 될 일을 무소불위하였던 것입니다. 이세벨은 한 가정의 아내요, 한 나라 임금의 왕비였습니다. 어느모로 보든지 막중한 책임을 진 내조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은 백성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자기 남편만을 위하여 즉시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왕의 인을 쳐서 나봇이 사는 성의 장로와 귀인에게 보내어 금식령을 내려 나봇을 백성 위에 높이 앉혀놓고 비류 두 사람을 마주 앉혀 위증케 하여 “나봇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하여 그를 성밖에 끌어다가 내어놓고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봇을 죽이고 이세벨은 남편 아합에게 가서 “나봇이 죽었으니 일어나서 포도원을 취하라” 고 말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적은 무명 농부의 포도원을 처하기 위한 간악한 수단을 내조자 이세벨이 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잔인하고 악한 행위 였습니다. 이 때 엘리야가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쓰러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메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이히야의 아들 바아사처럼 되게 하리라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 곧 네 몸의 피를 핥으리라”고 했습니다. 내조자의 잘못이 가문을 망치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2. 내조자가 아무 비판 없이 주관자 의견에 맹종하는 자입니다 남편의 말, 상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자입니다. 창 12장에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의 행적을 볼 수 있습니다. 기근으로 애굽에 피난 가는 길이었습니다. 부인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워 아브라함은 자기 신변에 어려움이 생길까봐 내외간을 남매간이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사라는 순순히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바로 왕은 사라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바로를 저주했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아브라함의 처임을 바로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사라를 찾아왔으나 이것이 아브라함의 일생의 오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잘못된 생각을 가질 때 부인이 바로잡아 주었던들 그 오점은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의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있습니다. 전답을 팔아 일부를 숨기고 하나님 앞에 헌금하면서 이 금액은 전부입니다. 하고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이 일 때문에 아나니아도 죽고 삽비라도 죽었습니다. 비록 남편이 잘못된 생각을 하였다고 해도 부인이 바로 잡아주었던들 둘 다 죽음을 면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무조건 맹종하는 자들의 말로인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가정에 제일 많은 것이 이러한 이유의 내조자들이라고 봅니다.
3. 참된 내조자는 자기가 받드는 사람이 잘못이 있을 때는 귀한 마음으로 잘못을 알려주고 시정하도록 하는 자입니다 섬기는 이의 잘못을 시정하여 옳게 보필하는 내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내조자의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에 나타나는 위대한 인물들의 배후에는 이와 같은 내조자가 많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마 27:19에 나오는 빌라도 ·부인입니다. 빌라도는 마음이 약하여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줄 알면서도 민란이 두려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 부인은 예수의 재판 전 날에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소서”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참으로 위대한 내조자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남편이요, 총독이지만 환경의 위압을 받아 판단이 흐려지게 될 때 그 여인은 올바르게 자기 남편을 내조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내조자라 하겠습니다. 삼상 25장에 보면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을 볼 수 있습니다. 나발은 물질적인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목장을 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자가 된 것은 다윗 왕의 군대가 그 지역에 야영하고 있었으므로 도적이나 맹수가 침범하지 못할 환경을 조성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나발은 그 은혜를 모르고 다윗이 피난생활에 곤핍하므로 다소의 식량 원조를 요구했을 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대노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때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이 물질을 준비하여 다윗 왕에게 가서 나발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받아 자기 남편의 죽음을 면하게 했습니다. 그 얼마나 그 남편에게 내조를 바로 한 부인입니까? 이러한 현명하고 비판력 있고 내조를 바로 할 수 있는 여인들 같은 내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섬기며, 아내 된 모든 분들은 이렇게 바로 내조 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말하는 의도는 악의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세벨의 말은 “대왕께서 미천한 농부에게 청원하고 애원을 하였다니 말도 안 됩니다. 왕의 대권을 발동하시어 정당하게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강제로 얻으십시요. 모욕에 대해 분개하지 말고 몰수를 하십시요. 왕이 위신을 지키실 줄 모른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왕의 이름만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시면 곧 나봇의 포도원을 왕에게 드리겠습니다. 잘했건 못했건 포도원은 왕의 것이 됩니다”라는 것입니다. 주변에 폭군의 행동을 하도록 자극시키며 권력의 남용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 왕들은 바로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세벨은 왕을 기쁘게 하려고, 아합 왕에게 준 모욕을 보상시키도록 함에 있어서 나봇의 피만큼은 흘리게 해야겠고 더욱이 나봇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율법을 고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알을 섬기는 이세벨로서 그녀의 심중에 복수심은 더 커졌을 것입니다.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장관들에게 보낸 명령은 이 때까지 왕이 발송한 어떤 명령보다도 더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옥새를 빌렸지만 왕은 그녀가 그 옥새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그 전에도 선지자를 살해하는 영장에 옥새를 찍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녀는 왕의 이름으로 나봇을 죽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녀는 법관들로 하여금 증인들, 곧 벨리알의 아들들을 찾아오게 했고, 증인들을 매수했으며, 그리고는 그 거짓 증언에 따라 재판케 했습니다. 이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뻔뻔스런 신성 모독이요, 정의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그녀가 이 명령이 분명 지켜질 것으로 알았다는 것은 그녀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야말로 정직하고 명예로운 모든 일에는 완전히 거리가 먼 자들로 간주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뱀의 교활한 계략으로 그 장로들을 조롱하려 했습니다.
(1) 종교의 이름으로 이 일을 진행케 했습니다.
(2) 이 사학한 계획은 법적 절차의 형식을 밟아 정의의 이름으로 진행 되었던 것입니다. 나봇에게 부관된 죄목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것, 즉 중대한 불경건의 죄였습니다. 물론 그녀는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한 자체가 불경스러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봇이 그의 포도원을 아합 왕에게 주기를 거부한 것은 왕에게 불손한 것이요, 그 이유로 하나님의 율법을 들먹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경이라고 억지로 꾸미는 것입니다. 나봇이 하나님께 불경했다는 이유로 포도원도, 목숨도 빼앗기고 반역죄로 기소되어 전 재산을 몰수한 것입니다. 나봇을 죽인 아합의 악행은 내조자 이세벨의 계략이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고이래로 위대한 인물들의 배후에는 반드시 좋은 내조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면에 악하고 불행한 인물 배후에는 반드시 좋지 못한 내조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든지 주관자와 내조자 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들을 분석해 본다면 대체로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본문에서 자기 남편만을 생각하고 기쁘게 해 주는 내조자입니다 바로 이세벨입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 아합 왕이 자기 백성 중 나봇이라는 농부가 소유한 포도원을 가지고자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봇의 이 밭은 우리 조상 때부터 전해 오는 것이므로 내어 줄 수 없다고 하자 아합 왕은 실망하여 식음을 폐하고 침상에 눕게 되니 왕비 이세벨은 왕을 위하여 행해서는 안 될 일을 무소불위하였던 것입니다. 이세벨은 한 가정의 아내요, 한 나라 임금의 왕비였습니다. 어느모로 보든지 막중한 책임을 진 내조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은 백성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자기 남편만을 위하여 즉시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왕의 인을 쳐서 나봇이 사는 성의 장로와 귀인에게 보내어 금식령을 내려 나봇을 백성 위에 높이 앉혀놓고 비류 두 사람을 마주 앉혀 위증케 하여 “나봇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하여 그를 성밖에 끌어다가 내어놓고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봇을 죽이고 이세벨은 남편 아합에게 가서 “나봇이 죽었으니 일어나서 포도원을 취하라” 고 말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적은 무명 농부의 포도원을 처하기 위한 간악한 수단을 내조자 이세벨이 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잔인하고 악한 행위 였습니다. 이 때 엘리야가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쓰러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메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이히야의 아들 바아사처럼 되게 하리라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 곧 네 몸의 피를 핥으리라”고 했습니다. 내조자의 잘못이 가문을 망치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2. 내조자가 아무 비판 없이 주관자 의견에 맹종하는 자입니다 남편의 말, 상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자입니다. 창 12장에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의 행적을 볼 수 있습니다. 기근으로 애굽에 피난 가는 길이었습니다. 부인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워 아브라함은 자기 신변에 어려움이 생길까봐 내외간을 남매간이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사라는 순순히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바로 왕은 사라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바로를 저주했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아브라함의 처임을 바로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사라를 찾아왔으나 이것이 아브라함의 일생의 오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잘못된 생각을 가질 때 부인이 바로잡아 주었던들 그 오점은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의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있습니다. 전답을 팔아 일부를 숨기고 하나님 앞에 헌금하면서 이 금액은 전부입니다. 하고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이 일 때문에 아나니아도 죽고 삽비라도 죽었습니다. 비록 남편이 잘못된 생각을 하였다고 해도 부인이 바로 잡아주었던들 둘 다 죽음을 면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무조건 맹종하는 자들의 말로인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가정에 제일 많은 것이 이러한 이유의 내조자들이라고 봅니다.
3. 참된 내조자는 자기가 받드는 사람이 잘못이 있을 때는 귀한 마음으로 잘못을 알려주고 시정하도록 하는 자입니다 섬기는 이의 잘못을 시정하여 옳게 보필하는 내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내조자의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에 나타나는 위대한 인물들의 배후에는 이와 같은 내조자가 많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마 27:19에 나오는 빌라도 ·부인입니다. 빌라도는 마음이 약하여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줄 알면서도 민란이 두려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 부인은 예수의 재판 전 날에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소서”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참으로 위대한 내조자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남편이요, 총독이지만 환경의 위압을 받아 판단이 흐려지게 될 때 그 여인은 올바르게 자기 남편을 내조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내조자라 하겠습니다. 삼상 25장에 보면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을 볼 수 있습니다. 나발은 물질적인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목장을 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자가 된 것은 다윗 왕의 군대가 그 지역에 야영하고 있었으므로 도적이나 맹수가 침범하지 못할 환경을 조성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나발은 그 은혜를 모르고 다윗이 피난생활에 곤핍하므로 다소의 식량 원조를 요구했을 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대노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때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이 물질을 준비하여 다윗 왕에게 가서 나발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받아 자기 남편의 죽음을 면하게 했습니다. 그 얼마나 그 남편에게 내조를 바로 한 부인입니까? 이러한 현명하고 비판력 있고 내조를 바로 할 수 있는 여인들 같은 내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섬기며, 아내 된 모든 분들은 이렇게 바로 내조 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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