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찌 모르나 (눅1:39-45)
본문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외부의 침입과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견디어낼 수 있었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서 정작 주님이 오시던 때에는 모두들 한결같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줄은 거의 모두가 잊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19세기 설교자였던 브룩스는 그가 성탄절에 베들레헴을 방문한 경험을 지초로 “오 작은 성 베들레헴”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 / 별들만 놀이 빛나고 잠잠히 있느니 / 저 놀라운 빛 지금 캄캄한 이 밤에 / 온 하늘 두루 비친 줄 너 어찌 모르나. 오 놀라우신 여호와 하나님 큰 선물 주시니 / 주 믿는 사람 마음에 큰 은혜 주셨네 / 이 죄악 세상 사람 주 오심 모르나 / 주 영접하는 사람들 그 맘에 오시네.”(120장 찬송)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베들레헴, 이것은 오늘도 여전히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던 그때에도 소수의 사람들은 놀랍게도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았고, 뜨겁게 영접하였습니다.
1. 믿음의 눈으로 주님의 오심을 볼 수 있었던 엘리사벳이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서 수태 고지를 전해 들은 그 감격과 두려움을 어찌할 수 없어서 마리아는 자기와 동일한 기적을 허락받은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게 됩니다. 방문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친척인 엘리사벳도 오랫동안 불임 상태에 있었는데 하나님의 전격적인 방법으로 임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엄청난 사실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누어지기도 전에 엘리사벳은 몸에 아기를 수태한 마리아가 그 집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즉각적으로 태중에 있는 주님의 방문을 알아보았습니다. 아직 출생하지도 않았고 몇 주 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그녀는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축복하며 그 놀라운 사실을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2. 성령님이 충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의 말들은 가브리엘의 수태 고지를 더욱 확실하게 해 줍니다.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했다는 사실(41절)은 그가 신실한 증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는 엘리사벳의 외침은 가브리엘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인사를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주어진 이 두 인사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일하고 계심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의 깊은 밤에 엘리사벳은 주님이 오시는 놀라운 사건을 정확하게 알아보았습니다. 아직 온전히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나타난 것도 아니었지만,. 주님은 아직 태중에 있었으므로 그녀는 성육신의 엄청난 비밀도, 그 놀라운 축복의 의미도, 그분이 오심으로 이루어질 엄청난 일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잘 알지 못하는 이 비밀을, 하나님의 깊은 경륜을 마리아가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아직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엘리사벳이 이 놀라운 사실을 감지하게 된 것은 그의 깊은 영성 때문도 아니요, 지혜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성령님에 충만함을 입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라도 모두 깨달아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과 계획을 잘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성탄이 온 인류의 축제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탄의 비극은 이 깊은 성탄의 의미와 축복을 잘 모르고 그것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비극은 성탄의 프로그렘이 없어서가 아니고 화려한 파티와 카드와 성탄 상품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탄에 대한 무지”에 있습니다. 이것은 첫 번 성탄 때부터 오늘날까지 반복되는 일입니다. 예수님 오시던 때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무지 가운데 있었습니다.
3. 태중에 있는 생명까지도 뛰노는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 들어섰을 때, 엘리사벳이 성령님에 충만하여 기뻐하였는데, 그의 태중에 있던 어린 생명도 뛰어 놀았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부모가 성령님에 충만하여 오시는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였을 때, 그의 자녀까지도 함께 주님을 기뻐 영접하고 있었습니다. 산타크로스와 성탄 선물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우리의 어린아이들에게, 오시는 예수님께 마음을 두도록 하는 일은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성탄의 축복을 알고 뛰어 노는 모습, 이것이 성탄을 맞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오심은 축복을 가져오는 엄청난 하늘의 사건이기에 이 축복을 아는 사람은 어른이나 어린아리을 막론하고 기뻐 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믿는 여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무엇이 진정으로 복된지를 정확하게 간파하며, 너무 엄청난 소식으로 인해 충격 가운데 있는 마리아를 격려하여 견고히 세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태중의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와 그를 만나고 그의 소리를 들은 자신이 복이 있다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의 축복은 진실하고 순수하며 기쁨에 넘쳐 비는 축복입니다. 성탄은 나를 주님 앞에 세우는 절기요, 이웃을 주님 앞에 세우는 절기입니다. 성탄은 또한 주님을 가슴에 품는 절기이며 내 속에 계신 주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인지를 발견하는 절기입니다. 엘리사벳은 “내 주의 모친”이 왜 이처럼 친히 방문하셔야 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녀는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약속을 다시 기억나게 합니다. 엘리사벳은 가브리엘이 사용했던 메시아를 묘사하는 용어로 칭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그 아기가 어떤 역할을 하실지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나의 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최초로 영접한자가 되었습니다. 고백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메시야로 오시는 주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십니다. 엘리사벳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여인에게 복이 있을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마리아가 38절에서 가브리엘에게 던졌던 고백을 보강해 주고 재해석해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임에 대한 강한 확신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을 통해서 전해진 믿어지기 어려운 말씀이 여기에서 믿어지게 되며, 나이 많은 불임 부부였던 엘리사벳이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졌으며, 이러한 사실은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그대로 성취될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합니다. 수태 고지에서 주어진 말씀이 극적으로 성취될 것임을 그녀는 확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확인은 마리아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견고하게 믿게 해 주었고,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될 것임을 확신있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최초로 영접해 드린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로 연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복이 있음을 오늘의 말씀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믿음의 눈으로 주님의 오심을 볼 수 있었던 엘리사벳이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서 수태 고지를 전해 들은 그 감격과 두려움을 어찌할 수 없어서 마리아는 자기와 동일한 기적을 허락받은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게 됩니다. 방문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친척인 엘리사벳도 오랫동안 불임 상태에 있었는데 하나님의 전격적인 방법으로 임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엄청난 사실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누어지기도 전에 엘리사벳은 몸에 아기를 수태한 마리아가 그 집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즉각적으로 태중에 있는 주님의 방문을 알아보았습니다. 아직 출생하지도 않았고 몇 주 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그녀는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축복하며 그 놀라운 사실을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2. 성령님이 충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의 말들은 가브리엘의 수태 고지를 더욱 확실하게 해 줍니다.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했다는 사실(41절)은 그가 신실한 증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는 엘리사벳의 외침은 가브리엘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인사를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주어진 이 두 인사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일하고 계심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의 깊은 밤에 엘리사벳은 주님이 오시는 놀라운 사건을 정확하게 알아보았습니다. 아직 온전히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나타난 것도 아니었지만,. 주님은 아직 태중에 있었으므로 그녀는 성육신의 엄청난 비밀도, 그 놀라운 축복의 의미도, 그분이 오심으로 이루어질 엄청난 일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잘 알지 못하는 이 비밀을, 하나님의 깊은 경륜을 마리아가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아직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엘리사벳이 이 놀라운 사실을 감지하게 된 것은 그의 깊은 영성 때문도 아니요, 지혜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성령님에 충만함을 입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라도 모두 깨달아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과 계획을 잘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성탄이 온 인류의 축제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탄의 비극은 이 깊은 성탄의 의미와 축복을 잘 모르고 그것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비극은 성탄의 프로그렘이 없어서가 아니고 화려한 파티와 카드와 성탄 상품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탄에 대한 무지”에 있습니다. 이것은 첫 번 성탄 때부터 오늘날까지 반복되는 일입니다. 예수님 오시던 때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무지 가운데 있었습니다.
3. 태중에 있는 생명까지도 뛰노는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 들어섰을 때, 엘리사벳이 성령님에 충만하여 기뻐하였는데, 그의 태중에 있던 어린 생명도 뛰어 놀았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부모가 성령님에 충만하여 오시는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였을 때, 그의 자녀까지도 함께 주님을 기뻐 영접하고 있었습니다. 산타크로스와 성탄 선물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우리의 어린아이들에게, 오시는 예수님께 마음을 두도록 하는 일은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성탄의 축복을 알고 뛰어 노는 모습, 이것이 성탄을 맞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오심은 축복을 가져오는 엄청난 하늘의 사건이기에 이 축복을 아는 사람은 어른이나 어린아리을 막론하고 기뻐 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믿는 여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무엇이 진정으로 복된지를 정확하게 간파하며, 너무 엄청난 소식으로 인해 충격 가운데 있는 마리아를 격려하여 견고히 세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태중의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와 그를 만나고 그의 소리를 들은 자신이 복이 있다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의 축복은 진실하고 순수하며 기쁨에 넘쳐 비는 축복입니다. 성탄은 나를 주님 앞에 세우는 절기요, 이웃을 주님 앞에 세우는 절기입니다. 성탄은 또한 주님을 가슴에 품는 절기이며 내 속에 계신 주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인지를 발견하는 절기입니다. 엘리사벳은 “내 주의 모친”이 왜 이처럼 친히 방문하셔야 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녀는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약속을 다시 기억나게 합니다. 엘리사벳은 가브리엘이 사용했던 메시아를 묘사하는 용어로 칭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그 아기가 어떤 역할을 하실지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나의 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최초로 영접한자가 되었습니다. 고백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메시야로 오시는 주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십니다. 엘리사벳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여인에게 복이 있을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마리아가 38절에서 가브리엘에게 던졌던 고백을 보강해 주고 재해석해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임에 대한 강한 확신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을 통해서 전해진 믿어지기 어려운 말씀이 여기에서 믿어지게 되며, 나이 많은 불임 부부였던 엘리사벳이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졌으며, 이러한 사실은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그대로 성취될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합니다. 수태 고지에서 주어진 말씀이 극적으로 성취될 것임을 그녀는 확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확인은 마리아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견고하게 믿게 해 주었고,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될 것임을 확신있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최초로 영접해 드린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로 연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복이 있음을 오늘의 말씀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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