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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여름 성경학교 (잠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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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몇일 있어면 방학이 시작되고 각 교회들 마다 여름 성경 학교를 시작하게 되는 여름 성경학교의 계절이다. 여름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의 들뜬 기분과 이기간을 집중적인 교회교육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는 교회 의 입장과 그리고 방학을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쉬는 기간으로 생각하는 어린이들과 그 어린이들을 방학동안 가르쳐 보겠다는 학원들과 그 학원에 보내려는 부모들 사이에서 그 어린이들을 어떻게 모으느냐가 관 심의 대상이다. 하여튼 그동안에는 학교라는 기관에서 교육의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방학동안에는 누가 그 열쇠를 쥐게 되느냐 하는데에 여름 교육의 성패가 달려 있다. 우리는 학교라고 하면 "무작정 공부만 시키는 곳" 이라는 인상이 우리 모두의 인상이다. 학교는 영어로 "School" 독일어로는 "슐러"이다. 라전 어의 "스콜" 에서 온것으로 한거(閒居)가 원뜻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가하게 지내는 곳이 학교니까그동안 공부에만 내몰리던 학생들에 게 한가하게 지낼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한다고 하는 사명감을 가 지고 여름 성경 학교를 계획하자.
그러므로 교회는 여름 방학동안에 다 양하고도 집중적인 교육을 통하여 교육의 이니시아티브를 쥐자. 교회마 다 여름 방학이 되면 학교 공부에서 해방된 어린이들에게 여름성경학교 라는 제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하는 일은 퍽 의미있는 일 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 여름 성경학교가 교회의 중요한 프로그램으 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름 방학을 맞아 길거리를 방황하며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성경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가르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여름성경학교는 1866년 여름, 미국 보스턴제일교회에서 여름 방학을 맞 아 길거리를 방황하며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성경 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가르치는 일에서 시작한 [매일 휴가학교]를 열 었던 것이 그 기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21년 평북 신천북장로교회에서 제인 사무엘(Jane Samuel)여선교사가 한달동안 5명의 교사와 함께 1백여명의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운동이 1917 년에는 국제적인 것이 되었고 1922 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1932 년 제 11 회 세계 주일학교 대회의 여름 성경학교 성적은 우리나라가 세계 제 1 위로 올랐다. 앞으로의 한국교회의 앞날은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 달려 있다. 오늘 과 같은 한국교회의 무한한 성장과 발전은 그 시기를 지금부터 4-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답이 나온다. 그때는 주일학생들이 장년교인 의 숫자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 주일학교를 거쳐온 세대들이 지금 한국 교회의 중진들이 되어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2세들의 교육을 소홀히 한다면, 조만간 교회는 수많은 서구의 교회와 같이 텅비고 노인들만 남 게 될 것이다. 복음을 수호하고 신약 교회의 진리들을 수호해야 하는 절 대 절명의 사명이 있는 우리가 2세들에게 분명한 복음과 진리로 양육을 하지 않는다면 장차 우리 모임이 일반 교회로 타락해 버릴 것이다. 오늘 날 사회는 급변해 가고 있으며 어린이들은 비기독교적인 문화, 다시 말 하면 사단의 문화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교육적 대 처는 너무나 허술하다. 사단은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발전된 문화로 공격하지만 우리는 구태의연한 주먹구구 식 교육으로 사단을 대처하고 있으니 이는 종이 방패로 총알을 막는 격 일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일반 교육의 전문적 발전이 현저한 반면, 기독교 교 육은 100년 전에 비해 크게 발전된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초기의 뜨 거운 헌신과 열정을 잃어 버리고 안일과 타성에 젖어 퇴보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러한 교회 교육이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780 년 영국의 산업 혁명 과정에서 소외된 어린이들에게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주일학교가 시작 되었다. 1780 년초 영국의 로버트 레익스 (Robert Raikes ) 가 글라우체스터 시외에 용무가 있어서 가게 되었었다. 그때는 영국의 산업 혁명 과정이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거리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이 대부분 욕설과 난폭한 행동으로 처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로버트 레익스는 이러한 처참과 부도덕을 예 방하기 위하여 주일날 그들을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어느 교회에 장소를 요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두가지 이유에서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첫째 이유는 이런 무식한 노동자의 어린이들이 배우게 되면 사회에 혁 명이 일어나기 때문에 않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일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주일을 범하는 죄를 짓는 것 이기 때문에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로버트 레익스는 글라 우체스타에 있는 한여인의 부엌을 빌려 처음으로 주일학교 교육을 시작 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주일학교의 시초가 교회안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주의깊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1.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린이 심령은 아무것도 그리지 아니한 백지장과 같다고 하며 또 아무것도 만들지 아니한 찰흙과 같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번 여름 성경학교를 통하여 백지에다 좋은 그림을 그리자.백지장같은 어린 심령에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 넣어야 하는 중차대한 사명이 이번 여름 성경학교에 있다. 20 세기의 태양이라고 불리우는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가 시카고를 방문한일이 있었다. 시장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슈바이쳐 박사를 환영하기 위하여 열차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던 기차가 도착하고 슈바이쳐 박사가 기차에 내려 시장에게로 오 다가 한 할머니께서 힘겹게 가방 두개를 들고 기차안으로 들어가는 것 을 보았다. 그때 슈바이쳐 박사는 그쪽으로 뚜어가 할머니의 가방을 들고 기차안으 로 들어가 할머니의 짐을 적당한곳에 올려놓고 좌석번호를 찾아 앉혀 드린후에 내려와서 시장앞으로 갔다. 그리고 "시장님 미안합니다. 평소의 버릇때문에 실수 했다." 라고 하였다. 그후 모든 신문들은 노파의 가방을 들고 가는 슈바이쳐의 사진과 함께 그의 섬김의 자세를 자세하게 보도했다. 그러면 여름 성경학교를 가지는 의의를 생각해보자 수없이 방치된 어린이들을 누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것인가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마 굿간에 탄생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기뻐 받으시며 인류를 구속하신 그리스도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승천 하시므로 우리에게 영생과 복 락을 선물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이 어린 이들을 인도할 수가 없다. 누가 뭐래도 할 수 없다.
다만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한 그래서 그분으로 부터부름 받은 교사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교회에서의 교육은 불신자가 기독교를 믿게 하는 것도 교육에 의하여 시작하고,신자의 신앙을 돈독케 하는 것도 교육으로 말미암는다. 이런 까닭에 교회에서 교육의 제외되고는 신앙생활에 들어갈 수도 없고 신앙 생활이 깊어질 수도 없다.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은 예배다운 참된 예배를 드리며, 성겨을 잘 배우고 그리고 신자로서의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뜻 한다. 기독교 교육이란 신앙생활을 보다 훌륭하게 하는데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주일학교는 교회가 경시할 수 없는 중요한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이 주일학교를 통한 교육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때문에 주일학교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예배 (그것도 성인을 위한 예배)와 "케리그마 "에 치중하 여 중요한 교육 영역인 주일학교 교육에 대해 소홀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주일학교에 대한 문제점과 그 해결을 감당해야할 교회의 역할 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교회 교육은 기독교 교육이다. 기독교의 사명은 " 복음 선포 " 이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복음을전달하고 수용하는 기독교 교육의 포괄적 인 행위중에 하나님과 동시에 교회라는 유기적인 공동체를 현장으로 하 여 시행하는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기독교 교육 행위이다. 교육이란 채워주는 과정으로서의 사상의 계발, 이념의 형성을 꾀하는 것이다. 또한 이끌어내는 과정으로서의 피 교육자의 선천적인 재질과 흥미를 발 견하여 활동, 유희, 실험을 통하여 창조적 독자적 생활 방식을 수립하는 것이다. 주일학교의 교육은 "복음" 을 살아있는 영적 교훈으로 하여 어린이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인격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학교 교육은 기독교의 신앙진리와 생활 방식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증거할 수 있도록 추구하는 것이며 그대로 실천하는 신자로서의 생활을 기대케 하는 것이다. 또한 주일학교의 관심은 피교육자로 하여금 인간이 조물주 에 의해서 창조됨과 동시에 그 창조된 높은 문명 속에 돌아가 하나님의 형상인 자신을 완성시켜 가도록 하기 위하여 어린이를 하나님의 사람으 로 기르는 것이다. 일본의 어느학교 정문에 " 하나님을 모르는 교육은 고상한 악마를 성 장시키는 것이다. " 라고 씌여 있다고 한다. 사실상 인간의 창조와 섭리와 인간의 목적을 모르는 자의 교육은 정상 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한 인간을 형성할 것인가 많은 학자들은 인간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어떤 인간을 형성할 것인가 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쥴리언 헉슬리는 진화속의 인간을 칼 마르크스는 경제적인 인간을 지그운드 프로이드는 심리학적 인간을 피렌 키엘케골은 실존적 인간을 마르틴 부버는 대화 속의 인간을 라인 홀드니버는 죄인으로서의 인간을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는 삶 그 자체이다. 기독교 교육은 도덕적인 원칙보다 삶의 방법 을 제시하며 새로운 삶의 힘을 준다.신앙은 체험이다. 주교교육은 머리 로 전달되는 지식의 교육이 아니고 가슴으로 전달되는 영적교육이다.
2. 여름성경학교의 필요성 주일학교부흥의 절호의 기회다. 주일학교 교육 전문가들은 성경학교의 효과에 대해, 최근 제기되고 있는 [성경학교 무용론]에도 불구하고 얻는 수확이 대단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먼저 1주일간의 성경학교는 어린들에게 집중적인 성경교육을 실시할 수 있으며 방학을 성경적인 신앙생활로 이끌어준다. 또 믿지않는 어린이를 전도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다양한 전도행사는 주일학교 부흥과 성장에 큰 기여를 한다. 특히 하루의 많은 시간을 어린이들과 만날 수 있게 됨 으로 아동이해의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여름성경학교는 집중적인 성경교육을 통해 어린이들의 신앙성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는 것으로 준비에 만전을 기할수록 그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1). 집중적인 성경 교육의 기회로 삼자. 교회가 성경을 누구에게나 가르쳐야할 일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마 28:19-20) 주님의 지상 명령인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서 가르쳐 라고 하는 것은 현재 명령이다. 즉 끊임없는 교육을 의미한다.그러니 주일학교 교육만으로는 결코 만족 할 수 없는 교육이다. 잠언 22:6 에서의 가르치다는 아이들에게 요리를 잘하여 "먹여준다"는 양육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여름 성경학교는 인기위주의 교육이나 흥미 본위의 교육이 아 니라 오로지 한가지 주제라도 성경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야할 것이다.그래서 여름성경학교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자. 오늘날과 같은 사회 현상속에서는 흔들리고 있는 사회적 가치관에 맞서 성경이라고 하는 절대 진리속에서 바른 가치관을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헌신의 기회로 삼자. 여기서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헌신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이말은 한나가 사무엘이 태어나기전에 그를 하나님께 드릴때 사용한 말이다. 즉 교사는 어린아이로 하여금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마음문을 열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게하는 헌신을 하게 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름 성경학교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고요한 만남이 이루어지 도록 해야한다. 교회교육의 의미를 "학생들로 하여금 참된 하나님의사람으로 자라게끔 돕는 일이다." 이번 여름 성경학교를 통하여 여름 성경학교 교재에 있는 지식을 주입 시키는데 있지 아니하고 그 의미를 인식시키고 이해시켜 학생들로 하여 금 인격의 변화를 가지게 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주일학교는 교회가 경시할 수 없는 중요한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이 주일학교를 통한 교육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때문에 주일학교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예배 (그것도 성인을 위한 예배 ) 와 "케리그마" 에,치중하여 중요한 교육 영역인 주일학교 교육에 대해 소홀하게 된 것 이 사실이다. 이제 주일학교에 대한 문제점과 그 해결을 감당해야할 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3. 주일학교의 문제와 교회의 책임 오늘날 한국교회와 주일학교는 그 수에 있어서 다른 어떤 나라의 주 일학교보다 월등하다. 그러나 그질에 있어서는 낙후되어있다. 교육재료는 많이 늘었지만 그 교육재료를 현장과 복음에 관련시켜 사용하는데 무지하다.
(1) 위기의 원인
(1) 인식의 부족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쁘게 뛰어가는 어린이들, 학원 가방을 메고 이 곳 저곳을 순회하는 아이들. 이것이 요즈음의 우리 주변의 풍속도다. '교 육 제일 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태 속에서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조차도 이에 질세라 갖가지 교육을 위탁 기관을 빌 어 자녀를 가르치고 있다. 마치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것이 믿음 생활 을 잘한 결과임을 내세우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자기의 자녀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 안 에 있는 신실한 자들로 자라나는것을 도우는 것에는 주저하고 있다. 오 히려 주일학교나 학생부에 나오는 것이 입시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시간 이 아깝다고) 생각하여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일도 있다. 아침에 모세오경을 읽게 하고 기도시간과 말씀읽기 시간을 오전 수업 으로 보내는 유태인의 교육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자녀 교육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를 뿐 아니라 자녀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인 식하지 못했던 것에서 기인한다. 또한 세상 잘못된 사상들을 무조건 받 아들임으로서 자녀를 사단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또한 주일 학교 교사들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어린 영혼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습관적으로 어린이들을 대하고 지식 전달에만 머무르 고 있다. 또한 가장 귀한 하나님 말씀을 어린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자매들이나 해야 한다는 주요하지 않다는 의식을 갖고 있으며 나그네처럼 잠시 들렸다 가는 기관으로 여기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 再)하다.
(2) 투자의 부족 교회 재정 규모에 비해 교육 기관에 투자되는 비율은 상당히 빈약하다. 그것도 대부분 성경 학교나 수련회등 단회적인 행사에 일년 예산중의 대부분이 쓰여진다. 그리고 몇번 시상과, 생일 파티, 달란트 시장을 하면 일년 예산은 다 쓰여지게 된다. 물질이 많이 투자되어야 교육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 영혼이 곧 '선교지(宣敎地)'라는 생각을 한다면 어린 영혼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 영혼을 얻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의 복음이다. 다른 것은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도구가 효과적으로 쓰여지려면 합당한 물품이 필요할 것이고 그 에 상응하는 재정이 뒷받 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헌신의 부족
(4) 훈련의 부족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간이나 훈련을 시키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비로소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맡기신 지상 명령인 전도와 선교, 그리고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쓰게 되었다.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그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 훌륭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 말씀하신 대위 명령인 마태복음 28장 19120절을 읽어본다면 우리가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일에 얼마나 소홀히 했었는지 를 알 수 있을 것이다.
(2) 위기를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 인식의 고취 교회의 교육적 사명과 책임에 대해 철저한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온 성도가 교육적 인식을 갖고, 교육에 대한 사명 의 식과 열의에 불타야 할 것이다. 유년 주일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2) 교육에의 투자 장기적 안목을 갖고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교회 교육 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교육 환경을 형성하고, 교육 시설을 갖추는 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영적 충만을 기반으로 풍성한 헌금생활이 이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각 교회의 중진들이 주일학 교를 위하여 투자를 아끼지 말자.
3) 교육의 전문성 확보 주일학교 교육은 비전문가들에 의해, 남는 시간에 어설프게 이뤄져도 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교육의 전문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주일학교의 전문가들을 양성하고,이들이 지속적으로 최선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원래 방학은 무더위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가정에서 무더위 를 피하면서 공부하라고 학교가 쉬는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들은 이 무더운 시간에 학생들을 모아 여름 성경학교를 개최 하는데 이 여름 성경학교는 그동안 주일날 여러 여건 때문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성경과목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가지는 특별학교인데 우리는 이 성경학교를 연례적이고 형식적인 형태로 계획하며 마치 새노래 율동, 시청 각, 레크레이션, 캠핑 학교와 같은 냄새를 풍기며 이끌어 갈때가 그의 태반이다. 이와같이 그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프로그램과 연례행사 정도 로 마치기에 여름성경학교를 마치고 나면 마치 운동회 끝마친 다음처럼 허전 하기만 하고 법썩만 떨다가 마치고 보니 성경학교가 끝나면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 끝난것처럼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보다 크고 깊은 관심과 성의를 다하여 치밀한 계획과 운영에 따르는 충실한 준비와 철두철미한 실천이 큰 성과의 열쇠가 될 것이다.
3-4 일 혹은 1 주일 동안 어린이들을 모우고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귀한 기회다. 이 기회는 일년간 주일 학교 교육의 3 분 의 1 이상의 귀한 시간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에 성경과 찬송 그리고 기타 과목으로 기독교 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할 수 있 게 되었으니 매우 유익한 기회이다. 짧은 며칠이지만 이 기간 동안에 어 린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신앙의 깊은 자리에 들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다. 여름 성경 학교는 연례적 행사나 전시 효과적 교회의 장식품이 아니다. 그러기에
2,3일간의 축제적 행사로 끝나서는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다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 학교가 끝이나고도 계속적인 프로그램의 개발과 활동이 있어야 한다. 계속 연구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므로 깜짝쑈  가 되지 않게하자. 우리들 모두가 이번 여름 성격학교를 통하여 교회를 위한 헌신의 시간을 가지자. 그리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 게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자. 그들은 오늘 앞으로 선교 2 세기에 한국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일꾼들을 가르치고 있다. 일반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눈치 보기 때문에 촌지 문제도 나오지 않았는가 과연 우리 한국교회의 주일학교에서는 얼마만큼의 관심을 나타 내 주고 있는가 생각해 보고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면 앞으로 이나라가 이 교회가 부흥된다. 이제 그들에게 가르치는 교사를 사랑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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