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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왔나이다 (시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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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에 비해 성숙도나 지능도가 높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빨리 알 고 이해합니다만 제가 자랄 때만 해도 국민학 교 3-4학년이 되어서도 영어 알파벳을 단 몇 글자 도 모르는 채 자랐읍니다. 국민학교 l학년에 입학을 하고 나서야 글씨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름 을 쓰기 시작했고 수자 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드려놓고 한 가지 한 가지 신 비의 베일을 벗겨나 가는 것이 학문의 세계인 것입니다.
I학년이 2학년이 되고 2학년이 3학년이 될수록 아는 것이 넓어지고 접촉하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2학년 1학기 때 학급에서 9 . 9단을 외우게 된 일이 있었읍니다. 아무리 외워도 7단과 9단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 외워야 집엘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오후 늦게까지 수학적 두뇌가 덜 발달된 20여 명 의 동지들과 함께 교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7 단과 9단올 외우던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교회에 발을 드려놓고 출석하는 분들 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분도 있 고 혹은 친구나 친지나 이웃의 권유로 기독교 신앙 을 갖기로 작정하 고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생소합니다. 사용하는 용어도 생소합니다. 은혜니, 감사 니. 구원이니, 층만이니, 은총이니 하는 등의 사회생활에서는 별로 듣 지도 쓰지도 않던 용어들이 교회 안에서는 거침없이 오고 갑니다. 분 위기도 생소합니다. 찬송가도 잘 모르겠고 우기 성경책은 어디가 어딘지 하루종 일 뒤적거려도 그날 읽은 곳을 쉽게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함께 암송하는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이니 하는 것도_ 언제 저 토록 총명하게 암송했다 싶을만큼 따라 외우기가 어렵습니다. 더주나 성경
I 얘기를 들을 때는 이해되는 부분보다는 이해되지 않노 부분이 더 많고. 납득되는 부분보다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학교로 말하면 이제 입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아무리 사회적인 명성이나 학문에 있어서는 훌륭하다고 하 더라도 신앙에 있어서는 이 제 입학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9. 9단을 외우듯이 한 걸음 한 걸음 구도자의 길을 걸어 가느라면 진리가 통하 고 은혜의 단맛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 생활을 통하여 그 신앙이 자라기를 원 하는 여러분들 에게 그 방법을 제시해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겸손해야 합니다. 저는 국민학교 l학년에 처음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이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꼬든 것을 다 아는 만물박사고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그야말로 전능한 그런 분이라고 어린 소견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처럼 표이 우러러 보고 존경을 하면서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 의 교육 현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협 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중에 하나가 스승이 제자 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숭이 제자가 휘두르는 각목 에 얻어 맞고 피를 홀려야 하고 제자가 던진 맥주병에 이마가 깨져서 선혈로 얼룩지는 교육현실, 이젓은 누가 둬래도 한국 교육의 적신호 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과 존경이라는 교량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 놓이지 않는 한 아 마도 한국 교육은 그저 이런대로 타락하고 말게 될 것입니다. 무슨 얘겁니까 예수믿는 사람, 일단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교회문을 들어 선 사람 은 주님을 존경해야 합니다. 주님을 높척야 합니다. 이말을 다른말로 표현하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합니다. 대통령이라도. 박사 석사라도, 총장이라도, 사장이라도 일단 주님 앞에서는 높으신 주님 ! 크 신 주님 ! 위대하신 주님 !이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겸손하게 마음문을 열어야 주님의 은총이 그 심령에 임하고 주의 은총이 임해야 그의 영흔 이 자라고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신앙 이 자라려면 우선 먼저 아니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둘는 출석을 잘해야 합니다. 교회출석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뭐가 꿩지도 모르는 국민학 교 1학년 아이들이지만 열심히 결석하지 않고 출석하노라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자기 성숙을 이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교회출석을 잘 해야 합니다, 스승의 의무는 잘 가르치는 것이고 학생의 의무는 출석 잘하면 잘 배우는 것과 마찬 가지로 교인은 출석을 잘 해야 하고 목회자는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지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학교에 세출해야 되는 교회 출석 카드에 도장을 찍어 달라고 찾아 온 일이 있었습니다. 카드를 드려다 보았더니 출석란의 절반이 빈칸이였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사정이 있어서 반 절 가량은 교회를 빠졌는데 목사님이 양해 하시고 전부 출석한 것으로 서명날인을 해 달라는 것 이였습니다. 하지 않은 출석을 했다고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지 않은 학교를 다녔 다고 할 수 없듯이, 만나지 않은 사람을 만났노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다니지 않은 교회를 다녔노라 고 서명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훌쩍거리면서 성경 점수가 빵점이 된다고 사정했지만 도장을 네줄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교 목에게 정상을 참작하여 달라고 부탁을 해 볼 수 있지만 아닌 것을 사실로 인정해 줄 수는 없었 습니다. 교회 출석이 게으르면 그 신앙이 자라지 못합니다. 자라지 않아도 나는 이대로 좋다고 생각 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만 육체가 자라지 못하면 불구가 되는 것처럼 신앙이 자라지 못하면 영흔이 블구가 되 고 맙니다. 육체의 불구는 일시적이고 지상에서의 사건에 불과합니다만 영흔의 불구는 그야말로 영원한 불구이기 때운에 큰 블행이 아닐 수 없읍니다. 조건 따지지 말고 이유를 붙이지 말고 교회출석, 예배출석을 열심 으로 해야 합니다. 그때 그 때 교회에 나가 말을 받아먹지 아니하면 영흔이 배가 고픕니다. 나는 나 혼자 성경을 읽고 칼로리를 취한다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만 그것은 쌀로 밥 을 지어먹지 않고 쌀도 씹지 않고 삼키고 날생선을 그냥 썸어 삼키는 것과 마찬가지 딥니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결석을 했는가. 왜 했는가, 꼭 빠졌어야 했던가를 겸손하게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매일 읽기표를 따라 성경을 읽고 스티커를 붙여 나가시기 바랍니디. 그리고 구역예배는 다음주 부터 성경통신과의 책을 가자고 읽고 공부 해 나가도록 방법을 바꾸겠 습니다. 모르는 곳, 이해 안 되는 곳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면서 씨름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읽어 나가 시길 바랍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이해가 안되었지만 다음에 읽을 때는 이해가 되고 은혜가 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리고 다음 5월
IO일부터는 주부들을 위한 성서대학이 다시 문을 열게 됩니다. 매 새벽마다, 주일 저녁마다, 수요일 저녁마다 성경을 별도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기 않는 신앙은 자라지 못합니다. 자란다고 해도 기 형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정 상적으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배워야 게 자라게 됩니다. 저는 오늘 시편 시편 1-l0절까지 말씀을 읽어 드렸습니다. 두 차례에 나누어 이 말씀을 해석하 고 합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시편 40편은 이스라엘의 제 2대 왕이었던 다윗왕이 쓴 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흘륭한 시인이었고 음악가였고 정치가 였고 군인이었고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난과 시련이 앞을 가로 막을 때마다 하나님께 진실로 기도 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불러 아뢰고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응 답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소월의 싯구에서 처럼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르면 응답하시는 살아 계시는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시편 66편I8-I9절 말씀을 보면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 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소 리에 주의 하셨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소식이 없다면 그건 하나님이 안 계심 때문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L떵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은 정말로 들으시고 기도 소리를 경청하시고 주목 하신다는 것이 시인의 고백인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나의 기도,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기도하면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신 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반신반의 하는 태도입니까 아니면 전적으 로 부정하는 태도입니까 믿으십시요 t 사람을 믿어 서 때로 손해 보는 분들은 있습니다만 주님을 믿어서 오늘까지 손해 본 분들은 없읍니다. 저도 인생을 그다지 오래 살진 않았습니다만 제 어머니 태증에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리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목소리 로 기도하길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확신은 내가 주님 앞에 <바로섰을 그때>부터 였읍니다. 구하는 것은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이루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께서 나의 기도 를 들으셨다'는 시인 의 고백을 저의 고백으로 받아 드리고 있습니다. 주께서 어떻게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습니까 본문에서 다윗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1.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려 주셨다고 노래하였습니다(2 절). 기가 막힐 응덩이는 말 못할 절망. 좌절을 의미합니다. <수렁>은 발 붙일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 누가 나를 기가 막힐 응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을려줄 수 있습니까 오히려 응덩이 속으로 몰아 넣고 수렁에서 허우적거커는 모습을 바 라보면서 손뼉치고 쾌재 를 부르는 것이 이 세상이 아닙니까 그러나 단 한분 ! 조건없이 이유없이 나를 건져주시는 분 이 있습니다. 그분 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7장 21-25절을 보면 .오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 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 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n라고 바울사도가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건져내 주시는 분입니다. 구원이란 말을 다른 말로 하 면 '죄에 서 건져냈다. 끌어냈다H는 뜻입니다. 나를 건져내시는 분, 나를 절망과 좌절과 실패의 심연으로부터 끌 어내 주신 주님을 찬양하십 시다. 지난 4월 2l일에 오후 3시 50분 경 도봉구 공릉동에서 두 살난 어린 이가 4.5t 트럭에 치어 숨 진 사고가 있었습니다. 공릉동에 있는 어느 블럭 공장에서 화물 트럭이 뒤로 물러나면서 차 뒤쪽에서 놀고 있던 두 살난 어린이 김동진 군을 친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김군이 뒷바퀴에 치이는 것을 보면서 정지하라고 외치자 운전사가 당황. 브레 이크 대신 악씰레이더를 밟는 바람에 사고 가 일어났습니다.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김군의 어머니가 이 광경 을 보자 차 뒤쪽으로 뛰어들어 아들을 밀어 내던지고 자신은 피하지 못한 채 차 에 깔려 숨졌습니다. 다행히 김군은 어머니의 희생으로 두 손바닥에 약간의 긁힌 상처만 입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동아 80. 4.22일자) 아무도 그 아기의 위기를 보면서도 위험하다고 소리만 쳤을 뿐 달 려들어 끌어 내주진 않았읍 녀다. 그러나 어머니는 소리치고 발을 구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자기 몸을 던져 아들을 끌어내고 자신은 대형트 럭 뒷바퀴에 깔린 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건져내 준 어머니, 두 살된 아들의 생명을 끌어내 준 어머니그분은 주님의 작은 그림 자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2. 나의 걸음을 견고케 해 주셨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2절). 생각해 보십시요. 응덩이와 수렁에서 헤어나면 두 다리가 긴장과 흥분으로 후들거리고 떨리게 됩니다. 더우기 자기 힘으로 헤어나 보 겠다고 발버등치고 몸부림을 쳤다면 걷기는 커녕 기진맥 진하여 일어 서지도 못하고 쓰러져 버릴 것입니다. 바로 그때 건져주시고 끌어내 주신 주님께서 두 발을 견고하게 해 주시고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원해 주신 것으로 끝 나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붙들어 주 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42장 3절 말씀을 보면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 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것이며'라고 주님 이 하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걸음이 실족 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주님 ! 그분을 찬송하십시다. 그 은혜를 감사하십시다. 그 인 자와 사랑을 소리높여 찬 양하십시다.
3.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이 많다고 5절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주님은 나를 생각하신다는 뜻입니다. 마치 여인을 생각하 듯이주님은 나를 잊지 않으시고 생각해 주신다는 노래입니다. 구약성경 아가서 5장 8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3대 왕이었던 솔로몬이 자기의 사랑하는 여인 술람미를 그리워하고 생각하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라고 흔한 말 로 상사병이 날 만큼 나는 너를 사랑하고 생각한 다는 그런 노래인 것 입니다. 나는 주님을 얼마나 생각하고 살아갑니까 주님은 나를 그토록 생각해 주시는데 나는 주님 을 얼마나 생각해 줍니까 구약성경 잠언 23장 26절을 보면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을 준다는 것은 생각하고 생각을 준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생각하십시다. 즐거울 때 주를 생각하고 괴로울 때 주를 생각하고 답답할 때, 즐거 울 때, 성공했을 때, 실패 했을 때, 길이 막혔을 때, 절망 앞에 섰을 때 도 주님을 생각합시다. 나를 생각하시는 그 주님을 생각합시다. 85장 찬송으로 결론을 삼으십시다.
1.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딸마나 좋으랴.
4.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5.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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