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왔나이다 (시40:1-7)
본문
일반적으로 성경은 돌아오는 것을 회개 행위로 설명하는가 하면 떠나는 것을 배신이나 배교행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 걸핏하면 세상이나 우상숭배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예언자들은 그런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돌아올 것을 호소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둘째 아들의 경우 역시 아버지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한 인간이 굴러 떨어질 수 있는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습니다. 아버지를 떠났던둘째 아들은 경제적으로 거지가 되었고 정신적으로는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처참한 것은 그의 영혼의 전락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각성을 잃지 않으면 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상태가 무너지면 경제도, 건강한 삶의 의지도 함께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것을 가리켜 전인적 전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모두가 성공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업도 성공해야 하 고, 기업도 성공해야 하고, 정치도 성공해야 하고, 목회도 성공해야 된다는 일념 때문에 온갖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일부러 성공을 마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성공만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인생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올라가는 것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려가는 것은 실패요 패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미국 L. A.를 가려면 열두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안전벨트를 맨채 좌석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이륙이 시작되면 비행기는 하늘로 치솟아 오릅니다. 대개 1200피트 상공까지 올라간 뒤 고도를 유지한 채 열두시간 정도를 비행합니다. 점보 747정도라면 그 이상 더 올라가면 안됩니다. 점보 747기를 타고 달이나 금성이나 목성까지 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열두시간 정도가 되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활주로에 착륙해야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높낮이가 있는 법입니다.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달 청와대에서 상도동으로 나온 분이 있는가하면 동교동에서 청와대로 들어간 분이 있습니다. 들어갈 때가 있고 나올 때가 있는 것 그게 인생입니다. 전도서에 얘기대로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것, 그게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만큼 마냥 올라가려다가 타락한 천사가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줄곧 내리막 길만을 치닫는다면 그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시편 40편은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는 다윗의 기도시입니다. 우리는 본문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시인의 태도와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기다렸습니다. 1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라고 했습니다.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윗이 쓴 시편 가운데 대부분은 그의 고백과 기도로 되어 있습니다. 우린 흔히 기도라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이나 간구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시인은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순서를 발견해야 합니다. 기도의 순서는 먼저 우리의 사정과 삶의 정황를 말씀드려야 합니다. 고상한 것만 골라서 말씀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유치하다고 망서릴 필요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4:13-14절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했고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나의 기쁨, 슬픔, 불행, 행복은 물론 나의 죄 까지도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고 듣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에겐 도무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 혼자만 떠들어 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대화 상대가 못됩니다. 기도생활에서 “믿습니다”도 좋고 “주시옵소서”도 좋습니다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구한 다음엔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기다리고 또 기다리노라면 초조하고 답답하기 이를데 없을 것입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신경질이 치솟을 것입니다. 집에 갑자기 불이 나서 화염이 치솟고 있을 때 구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시다. 그때 그 사람더러 기다리고 또 기다리라고 한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당장 회사 운영이 어렵고 부도가 날 형편인데 기다리고 기다리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기도하겠노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래도 기다려야 합니다. 예루살렘 근교 베다니 마을에 살고 있던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누이였던 마르다와 마리아가 즉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비보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1:6을 보면 비보를 들으신 후에 이틀을 계시던 곳에 유하셨다고 했습니다. 유대지방은 열대성 기후이기 때문에 대부분 당일로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요한복음 11:17을 보면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나사로의 장례가 끝나기를 기다린 것이고, 그의 시체가 부패하기를 기다린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누이들과 이웃들이 슬픔에 지치기를 기다린 셈이 됩니다. 나사로가 죽자마자 바로 살리시지 않으시고 썩어 냄새가 나는 나흘 후에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기독교는 기다리는 종교입니다. 기도했으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소서”라고 기도했던 주님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시는 기도였습니다. 기다려야 응답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4절을 보면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삶은 한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자신을 의지하고 거짓된 자는 거짓을 일삼고 살아갑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대상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진실을 깨닫고 확인하게 됩니다. 저는 어느날 30년을 형제처럼 사귀던 친구에게 두가지 큰 배신과 상처를 받고 몸부림치는 한 중년 남자를 만난일이 있습니다. 그가 해외에 나가 있는 얼마동안 형제처럼 믿었던 친구라는 사람이 그에게서 아내와 회사를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는 증오와 분노로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가 수백번 되풀이한 독백은 “이럴수가 있습니까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이 없습니다. 기어이 복수를 하고 말것입니다”라는 말들이었습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주를 의지하였노라”고 찬송작가 존 하트 스톡튼(John H.Stockton)은 “의지하세 의지하세 주 의지하세 구하시네 구하시네 곧 구하시네”라고 노래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시편 46:2-3을 보면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산성이신 하나님, 반석이신 하나님, 바위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신앙인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 인생을 성공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3.하나님께로 왔습니다. 7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귀에 들려 주신 말씀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도, 예물도 그리고 번제와 속죄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윗 자신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믿기 전에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책상위에 놓여있는 친구 핸드백 속에서 100만원을 훔쳤습니다. 돈을 훔친 사람은 가난했기 때문에, 부자 가방속에서 100만원 정도 훔쳐 쓰는 것은 정당하다는 생각으로 18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믿고 회개를 하면서 18년전 100만원 사건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체면이나 여건 때문에 그 사건을 얘기할 형편이 못됐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어느날 익명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편지속에 300만원을 함께 넣어 등기로 부쳤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은 18년전에 훔친 돈을 변상하는 것보다 먼저 그 친구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직접 찾아가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죄는 우물우물 용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속죄 방법은 짐승이 피로 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속죄공로를 믿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7절 하반절을 보면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한 모든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인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허물과 죄의 말소를 위하여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로 나왔노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라”는 명령보다는 “오라”는 명령이 더 많습니다. 가라는 것은 복음을 들고 전하러 가라는 경우이고, 오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면을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1:18을 보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했고, 마태복음 11:28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6:1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호세아 14:1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돌아와서 이렇게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라고. “내가 왔나이다”라는 고백은 하나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내가 다가서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곁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곁에 있습니다”라는 속삭임인 것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보고인 것입니다. 주님 곁에 있는 사람,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강한 사람인 것입니다.
미국 L. A.를 가려면 열두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안전벨트를 맨채 좌석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이륙이 시작되면 비행기는 하늘로 치솟아 오릅니다. 대개 1200피트 상공까지 올라간 뒤 고도를 유지한 채 열두시간 정도를 비행합니다. 점보 747정도라면 그 이상 더 올라가면 안됩니다. 점보 747기를 타고 달이나 금성이나 목성까지 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열두시간 정도가 되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활주로에 착륙해야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높낮이가 있는 법입니다.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달 청와대에서 상도동으로 나온 분이 있는가하면 동교동에서 청와대로 들어간 분이 있습니다. 들어갈 때가 있고 나올 때가 있는 것 그게 인생입니다. 전도서에 얘기대로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것, 그게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만큼 마냥 올라가려다가 타락한 천사가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줄곧 내리막 길만을 치닫는다면 그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시편 40편은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는 다윗의 기도시입니다. 우리는 본문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시인의 태도와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기다렸습니다. 1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라고 했습니다.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윗이 쓴 시편 가운데 대부분은 그의 고백과 기도로 되어 있습니다. 우린 흔히 기도라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이나 간구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시인은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순서를 발견해야 합니다. 기도의 순서는 먼저 우리의 사정과 삶의 정황를 말씀드려야 합니다. 고상한 것만 골라서 말씀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유치하다고 망서릴 필요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4:13-14절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했고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나의 기쁨, 슬픔, 불행, 행복은 물론 나의 죄 까지도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고 듣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에겐 도무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 혼자만 떠들어 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대화 상대가 못됩니다. 기도생활에서 “믿습니다”도 좋고 “주시옵소서”도 좋습니다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구한 다음엔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기다리고 또 기다리노라면 초조하고 답답하기 이를데 없을 것입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신경질이 치솟을 것입니다. 집에 갑자기 불이 나서 화염이 치솟고 있을 때 구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시다. 그때 그 사람더러 기다리고 또 기다리라고 한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당장 회사 운영이 어렵고 부도가 날 형편인데 기다리고 기다리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기도하겠노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래도 기다려야 합니다. 예루살렘 근교 베다니 마을에 살고 있던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누이였던 마르다와 마리아가 즉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비보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1:6을 보면 비보를 들으신 후에 이틀을 계시던 곳에 유하셨다고 했습니다. 유대지방은 열대성 기후이기 때문에 대부분 당일로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요한복음 11:17을 보면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나사로의 장례가 끝나기를 기다린 것이고, 그의 시체가 부패하기를 기다린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누이들과 이웃들이 슬픔에 지치기를 기다린 셈이 됩니다. 나사로가 죽자마자 바로 살리시지 않으시고 썩어 냄새가 나는 나흘 후에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기독교는 기다리는 종교입니다. 기도했으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소서”라고 기도했던 주님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시는 기도였습니다. 기다려야 응답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4절을 보면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삶은 한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자신을 의지하고 거짓된 자는 거짓을 일삼고 살아갑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대상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진실을 깨닫고 확인하게 됩니다. 저는 어느날 30년을 형제처럼 사귀던 친구에게 두가지 큰 배신과 상처를 받고 몸부림치는 한 중년 남자를 만난일이 있습니다. 그가 해외에 나가 있는 얼마동안 형제처럼 믿었던 친구라는 사람이 그에게서 아내와 회사를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는 증오와 분노로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가 수백번 되풀이한 독백은 “이럴수가 있습니까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이 없습니다. 기어이 복수를 하고 말것입니다”라는 말들이었습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주를 의지하였노라”고 찬송작가 존 하트 스톡튼(John H.Stockton)은 “의지하세 의지하세 주 의지하세 구하시네 구하시네 곧 구하시네”라고 노래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시편 46:2-3을 보면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산성이신 하나님, 반석이신 하나님, 바위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신앙인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 인생을 성공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3.하나님께로 왔습니다. 7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귀에 들려 주신 말씀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도, 예물도 그리고 번제와 속죄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윗 자신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믿기 전에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책상위에 놓여있는 친구 핸드백 속에서 100만원을 훔쳤습니다. 돈을 훔친 사람은 가난했기 때문에, 부자 가방속에서 100만원 정도 훔쳐 쓰는 것은 정당하다는 생각으로 18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믿고 회개를 하면서 18년전 100만원 사건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체면이나 여건 때문에 그 사건을 얘기할 형편이 못됐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어느날 익명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편지속에 300만원을 함께 넣어 등기로 부쳤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은 18년전에 훔친 돈을 변상하는 것보다 먼저 그 친구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직접 찾아가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죄는 우물우물 용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속죄 방법은 짐승이 피로 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속죄공로를 믿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7절 하반절을 보면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한 모든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인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허물과 죄의 말소를 위하여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로 나왔노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라”는 명령보다는 “오라”는 명령이 더 많습니다. 가라는 것은 복음을 들고 전하러 가라는 경우이고, 오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면을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1:18을 보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했고, 마태복음 11:28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6:1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호세아 14:1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돌아와서 이렇게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라고. “내가 왔나이다”라는 고백은 하나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내가 다가서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곁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곁에 있습니다”라는 속삭임인 것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보고인 것입니다. 주님 곁에 있는 사람,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강한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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