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전13:1-13)
본문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끔 이런 인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젊어보입니다"고 하는 인사입니다. 특히 이런 인사를 나이드신 분들께 드리노라면 그렇게도 기뻐하시는 목소리로 "정말 내가 젊어 보이느냐"고 오히려 반문할 정도로 흐뭇해 하고 고맙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 인사말처럼 기만적으로 속이고 우롱하는 헛된 말이 어디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젊어보인다고 건넨 인사말 한마디에 나이가 한 살 줄어지는 것도 아니며 실지로 젊어진 것이 아니라 늙어진 것은그대로 늙어진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인데도 사람들은 좋아하기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상한 거짓말에 불과한데도 사람들은 좋아한다는말입니다. 우리는 이 인사말을 통해서 자기 얼굴에 세월의 흐름이 나타나지 않기를은근히 바라고 있으며 세월의 무상함을 애써 느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이 벌써 92년하고도 2개월이 지난 3월 2일입니다. 그리고 3일만 지나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튀쳐나온다는 경칩이 다가옵니다. 성도 여러분당신 얼굴을 보고 젊어 보인다는 말에 세월이 많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망각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새벽에 나와 여호와 하나님께 외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데 어찌 자신의 얼굴이 늙어가지 않고 젊어지겠습니까
그런데 이 새벽에는 세월이 이처럼 빠르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는 92년 들어서 믿음만을 키우려고 몸부림쳤지 우리의 가슴을활짝 열고 사랑을 키우려고 몸부림치며 부르짖는 시간은 너무 적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고요한 새벽에 우리의 가슴을 열고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나 자신의사랑의 성장은 어느 정도인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먼저,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뼈아픈 감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아무리 큰 일을 지금까지 해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자신이 예언하는 능력이 있을지라도,모든 신비에 쌓인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세상적인 모든 학문에 통달해 있을지라도,그리고 기독교인에게 가장 생명이 되고 가장 귀하게 여김받는 믿음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으로 충만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큰 일을 해내도 사랑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2)한 여인이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한 남자가 결혼하여 한 여인과 함께50년을 넘게 살았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욕심 사납지 않을 정도의 유익을 구하고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성도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볼 때에 구제도 잘하고 자기를 내어주어 불사를 정도의 충성을 잘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랑이 없는 사람은 타인을 향해서 나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뜻이요 사랑이 없는 자신은 자기를 향해서도 아무 유익이 없는 무익한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은 사랑이란 언어의 문제로 생각해야 할 내용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사랑했기 때문에 태어나서 사랑으로 함께 살다가 사랑이신 하나님의 품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됨됨이는 사랑이라는 한 단면으로도 그 인격의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귀중한 사랑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작용이라는사실입니다. 기독교가 외치는 사랑은 우리의 입술로 친구여,왜 그리 춥게입었는가.따뜻하게 입으시오.라고 헐벗은 자를 향해 말로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겨서 자기의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것을 요구합니다. 심지어는 억지로 5리를 동행하자 하여도 10리까지 동행해주며 속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줄 수 있는 아량있는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주님은 말씀하였습니다.(마5:38-42) 이러한 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문난 교회였습니다.(살전1:6-8)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을 가져도 역사하는 믿음을 가졌고,소망을 가져도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까지 인내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으며,사랑을 가지되 말로만 하는 쉬운 사랑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수고를 드어내는 사랑의 수고를 가지고 있어서 소문난 교회가 되었다고 바울은칭찬하고 있습니다.(살전1:2-4) 우리가 기르는 짐승 중에서 사람을 가장 잘 따르는 짐승이 개인데 이 개를 향해서 "너를 미워한다"고 하면서 쓰다듬으면 반갑다고 꼬리를 치지만큰 소리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쓰다듬으면 그 개는 주인도 물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인 것 같지만 웃고 넘기지 못할 교훈입니다.이처럼 사랑은 언어의 표현으로만 생각할 문제는 절대로 아니며 마음의 문제로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진정으로 주님과 이 교회를 사랑하십니까여러분은 진정으로 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주의 종을 사랑하고 있습니가여러분은 진정으로 조와 구역을 사랑한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여러분은 진정으로 아내를 남편을 그리고 자녀를 더 나아가서는 부모와가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주일 하루만이라도 주의 전에서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인색하여 시간과 정열과 마음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만을 키우기 위해 새벽 공기를 갈라놓을 만큼 큰소리만치며 기도했던우리 자신을 회개합시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이 없는 일에는 그 자체 안에서 심판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어도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았어도 사랑을 잃어버린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 삶에 있어서 이미 실패자입니다. 사랑없는 출세는 고독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기도없이 받은 축복이 있다고 하면 그 축복은 이미 축복이 아니라는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기도없는 축복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교회에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선한 행위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수고와 환난과 핍박속에서 인내하던 일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과 거짓 사도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위선자이며 그리고 거짓 사도인 것을 알게하는데 큰 공헌을 남겼던 성도들이었으며 주님 이름때문에 받는 핍박을 잘 견디어 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믿음들을 가지고 있어서 흠 잡을 데가 없는데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처음 사랑이 식어지고만 까닭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속히 회개하고 처음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사랑이 처음 믿을 때보다 식어졌습니까 언제 어디서 무엇때문에 사랑이 식어졌는지 생각하여 보고 그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마치열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어느 여인처럼 온 방을 불을 켜고 쓸면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찾을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을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고 싶을만큼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눅15:8-10)왜 이 시대가 살기좋은 과학문명 시대인데도 어지럽고 복잡하고 쉬 피곤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리 삶의 윤활유와 같은 사랑이 식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세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한가지 사실이 사랑이 식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마24:12)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사람 대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모릅니다. 3자 침대라도 부부가 사랑이 있으면 함께 잘 수있지만 30자 침대라도 사랑이 없으면 침대가 좁아서 부부가 함께 잘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모두 믿음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그 믿음은 덕이 없는 믿음일 뿐이요 믿음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기독교인들처럼 이기적인 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예화를 하나 말씀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위대한 연구라는 뜻을 지닌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3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라도못보면 견딜 수 없을만큼 친한 친구 한명과 어디서 만날지라도 그저 덤덤한친구 한 명과 오히려 만나도 반갑지도 달갑지도 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임금님이 궁궐에 입궐하라는 분부가 그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는 두려워졌습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임금님이 자신을 부를 까닭은없는 것 같아 괜히 자신이 살아온 생활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두려워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친구를 찾아가서 동행해 줄것을 요청했습니다. 둘도 없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찾아가서 동행하여 줄 것과 혹시 죄에 대하여 물으면 지금까지 죄는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대변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두번째로 친한 친구를찾아갔습니다. 이 친구는 궁궐 대문까지는 동행해 줄 수는 있지만 궁궐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하는 수 없이 달갑지 않은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별 볼일 없는 친구이기에 아예 기대는 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자기가 가주겠다며 기꺼이 승낙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결백도 서슴치 않고 대변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달갑지 않은 친구와 함께 궁궐로 들어가 임금님을 담대하게 알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다시 해석함으로 서 끝을 맺고 있는데 하루도 못보면 안되는 친구는 돈이라는 친구로서 필요할 때는 정말 필요하지만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면 절대로 나와 함께 해줄 수 없다는 것이요, 그저 덤덤하다는 친구는 가족이나 친척들로서그들도 내가 죽으면 무덤까지는 따라와 울어 주기까진 하지만 더 이상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교훈이며 마지막으로 달갑지 않은 친구는 세상 살아가는동안 어떤 때는 귀찮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달갑지도 않은 사랑이라는 친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이라는 친구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도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지만 그중에 사랑이 제일인것입니다.(고전13:13)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랑을 가슴 안에 키워 나가므로 상대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지 말고또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아무런 유익이 없이무익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정말 가치있고 의미있고 뜻있는 삶, 자신이나 어느 누구에게라도 유익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복된 92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젊어보인다고 건넨 인사말 한마디에 나이가 한 살 줄어지는 것도 아니며 실지로 젊어진 것이 아니라 늙어진 것은그대로 늙어진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인데도 사람들은 좋아하기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상한 거짓말에 불과한데도 사람들은 좋아한다는말입니다. 우리는 이 인사말을 통해서 자기 얼굴에 세월의 흐름이 나타나지 않기를은근히 바라고 있으며 세월의 무상함을 애써 느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이 벌써 92년하고도 2개월이 지난 3월 2일입니다. 그리고 3일만 지나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튀쳐나온다는 경칩이 다가옵니다. 성도 여러분당신 얼굴을 보고 젊어 보인다는 말에 세월이 많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망각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새벽에 나와 여호와 하나님께 외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데 어찌 자신의 얼굴이 늙어가지 않고 젊어지겠습니까
그런데 이 새벽에는 세월이 이처럼 빠르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는 92년 들어서 믿음만을 키우려고 몸부림쳤지 우리의 가슴을활짝 열고 사랑을 키우려고 몸부림치며 부르짖는 시간은 너무 적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고요한 새벽에 우리의 가슴을 열고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나 자신의사랑의 성장은 어느 정도인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먼저,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뼈아픈 감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아무리 큰 일을 지금까지 해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자신이 예언하는 능력이 있을지라도,모든 신비에 쌓인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세상적인 모든 학문에 통달해 있을지라도,그리고 기독교인에게 가장 생명이 되고 가장 귀하게 여김받는 믿음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으로 충만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큰 일을 해내도 사랑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2)한 여인이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한 남자가 결혼하여 한 여인과 함께50년을 넘게 살았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욕심 사납지 않을 정도의 유익을 구하고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성도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볼 때에 구제도 잘하고 자기를 내어주어 불사를 정도의 충성을 잘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랑이 없는 사람은 타인을 향해서 나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뜻이요 사랑이 없는 자신은 자기를 향해서도 아무 유익이 없는 무익한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은 사랑이란 언어의 문제로 생각해야 할 내용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사랑했기 때문에 태어나서 사랑으로 함께 살다가 사랑이신 하나님의 품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됨됨이는 사랑이라는 한 단면으로도 그 인격의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귀중한 사랑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작용이라는사실입니다. 기독교가 외치는 사랑은 우리의 입술로 친구여,왜 그리 춥게입었는가.따뜻하게 입으시오.라고 헐벗은 자를 향해 말로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겨서 자기의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것을 요구합니다. 심지어는 억지로 5리를 동행하자 하여도 10리까지 동행해주며 속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줄 수 있는 아량있는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주님은 말씀하였습니다.(마5:38-42) 이러한 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문난 교회였습니다.(살전1:6-8)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을 가져도 역사하는 믿음을 가졌고,소망을 가져도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까지 인내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으며,사랑을 가지되 말로만 하는 쉬운 사랑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수고를 드어내는 사랑의 수고를 가지고 있어서 소문난 교회가 되었다고 바울은칭찬하고 있습니다.(살전1:2-4) 우리가 기르는 짐승 중에서 사람을 가장 잘 따르는 짐승이 개인데 이 개를 향해서 "너를 미워한다"고 하면서 쓰다듬으면 반갑다고 꼬리를 치지만큰 소리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쓰다듬으면 그 개는 주인도 물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인 것 같지만 웃고 넘기지 못할 교훈입니다.이처럼 사랑은 언어의 표현으로만 생각할 문제는 절대로 아니며 마음의 문제로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진정으로 주님과 이 교회를 사랑하십니까여러분은 진정으로 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주의 종을 사랑하고 있습니가여러분은 진정으로 조와 구역을 사랑한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여러분은 진정으로 아내를 남편을 그리고 자녀를 더 나아가서는 부모와가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주일 하루만이라도 주의 전에서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인색하여 시간과 정열과 마음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만을 키우기 위해 새벽 공기를 갈라놓을 만큼 큰소리만치며 기도했던우리 자신을 회개합시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이 없는 일에는 그 자체 안에서 심판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어도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았어도 사랑을 잃어버린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 삶에 있어서 이미 실패자입니다. 사랑없는 출세는 고독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기도없이 받은 축복이 있다고 하면 그 축복은 이미 축복이 아니라는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기도없는 축복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교회에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선한 행위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수고와 환난과 핍박속에서 인내하던 일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과 거짓 사도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위선자이며 그리고 거짓 사도인 것을 알게하는데 큰 공헌을 남겼던 성도들이었으며 주님 이름때문에 받는 핍박을 잘 견디어 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믿음들을 가지고 있어서 흠 잡을 데가 없는데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처음 사랑이 식어지고만 까닭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속히 회개하고 처음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사랑이 처음 믿을 때보다 식어졌습니까 언제 어디서 무엇때문에 사랑이 식어졌는지 생각하여 보고 그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마치열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어느 여인처럼 온 방을 불을 켜고 쓸면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찾을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을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고 싶을만큼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눅15:8-10)왜 이 시대가 살기좋은 과학문명 시대인데도 어지럽고 복잡하고 쉬 피곤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리 삶의 윤활유와 같은 사랑이 식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세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한가지 사실이 사랑이 식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마24:12)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사람 대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모릅니다. 3자 침대라도 부부가 사랑이 있으면 함께 잘 수있지만 30자 침대라도 사랑이 없으면 침대가 좁아서 부부가 함께 잘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모두 믿음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그 믿음은 덕이 없는 믿음일 뿐이요 믿음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기독교인들처럼 이기적인 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예화를 하나 말씀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위대한 연구라는 뜻을 지닌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3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라도못보면 견딜 수 없을만큼 친한 친구 한명과 어디서 만날지라도 그저 덤덤한친구 한 명과 오히려 만나도 반갑지도 달갑지도 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임금님이 궁궐에 입궐하라는 분부가 그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는 두려워졌습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임금님이 자신을 부를 까닭은없는 것 같아 괜히 자신이 살아온 생활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두려워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친구를 찾아가서 동행해 줄것을 요청했습니다. 둘도 없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찾아가서 동행하여 줄 것과 혹시 죄에 대하여 물으면 지금까지 죄는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대변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두번째로 친한 친구를찾아갔습니다. 이 친구는 궁궐 대문까지는 동행해 줄 수는 있지만 궁궐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하는 수 없이 달갑지 않은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별 볼일 없는 친구이기에 아예 기대는 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자기가 가주겠다며 기꺼이 승낙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결백도 서슴치 않고 대변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달갑지 않은 친구와 함께 궁궐로 들어가 임금님을 담대하게 알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다시 해석함으로 서 끝을 맺고 있는데 하루도 못보면 안되는 친구는 돈이라는 친구로서 필요할 때는 정말 필요하지만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면 절대로 나와 함께 해줄 수 없다는 것이요, 그저 덤덤하다는 친구는 가족이나 친척들로서그들도 내가 죽으면 무덤까지는 따라와 울어 주기까진 하지만 더 이상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교훈이며 마지막으로 달갑지 않은 친구는 세상 살아가는동안 어떤 때는 귀찮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달갑지도 않은 사랑이라는 친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이라는 친구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도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지만 그중에 사랑이 제일인것입니다.(고전13:13)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랑을 가슴 안에 키워 나가므로 상대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지 말고또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아무런 유익이 없이무익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정말 가치있고 의미있고 뜻있는 삶, 자신이나 어느 누구에게라도 유익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복된 92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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