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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시23:1-6)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다윗의 시이다.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자신을 푸른 목장, 시원한 물가로 노니는 양 떼로 표현하여, 하나님의 인도 아래에서 누리는 평화와 행복을 노래한 시이다. 오늘 우리는 이 다윗의 시에서. 다윗이 지난날 힘들고 어려웠던 고난의 나날들을 회고하며, 그날의 절 망적 상황 속에서 낙심치 않고, 목자 되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소망하며. 기쁨을 노래하는 다윗의 믿음을 본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된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다윗이 회고하는 이 고난의 나날들. 바로 오늘 우리 성도들이 처한 경제위기 시대의 경제적 고통을 연상케 하는 나날들이다. 삼상18:7절/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만만이로다 한지라/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하여 집도 없이, 거처할 곳도 없이. 정처 없 이 도망자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스라엘 여인들의 노래에 있었다. 다윗이 만든 것도, 시킨 것도 아닌 이스라엘 여인들의 노래 때 문이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다윗은 이러한 고난의 길을 가야 할 잘못된 일을 한적 없다. 오히려 사 울 왕과 그의 나라 이스라엘을 위하여 전쟁터의 선봉장에 서는 충성을 했고, 그 결과 승리에 승리를 거둔 것이다. 주인을 위한 충성, 임금을 위한 충성, 나라를 위한 충성이 문제가 되 어.산과 들, 토굴로 정처 없이 도망자의 길을 가야 했다. 얼마나 억울 한 고난인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이라면 그래도 억울함은 없으련만 자신의 충성이 가져다 준 고난 앞에서 그의 억울한 눈물을 어찌 말로다 할 수 있겠는가. 바로 경제위기 시대에오늘의 우리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당하는 경제 적 고통과도 같다. 근로자들이 게으름을 피워서 당하는 고난인가 근로 자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당하는 고난인가 근로자들이 소위 말하는땡 땡이를 쳐서 당하는 경제위기 시대인가 그들은 진실했고, 그들은 성실히 일 했고, 그들은 시키는 대로 순종했 고, 그들은 부푼 꿈을 안고서 최선을 다해 하노라고 했다.
그런데, 어 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어야 했고, 경제위기 시대의 어려운 고통을 짊어 져야 했다. 참으로 이들에게는 묵묵히 일한 것 밖에는 없다. 시키는 대로 충실히 일해 온 것 밖에는 없다. 정책을 잘못 세웠어도 나라에서 잘못 세웠고, 빈 껍데기 회사를 방만하게 세웠어도 사주들이 세웠다. 왜 이 억울한 책임을 이들이 져야 하는가 마치 전쟁에서 승리의 기쁜 소식을 안고 돌아올 때, 이스라엘 여인들이 창화하는 노래로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승리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영광을 돌린 것인데. 다윗은 나라를 탐하는 자로 몰려 사울 왕의 오해를 받고, 그의 칼날을 피하여. 광야로, 산으로, 들로, 이방 나라로 정처 없는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러나, 그 억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고 주 여호와를 바 라보았다. 유라굴로호 태풍에 휘말려 구원의 여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나의 섬기는 하나님을 믿노라 외치는 사도 바울처럼 소망 중에 목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다윗이 낙심치 않고, 그 고난을 헤쳐 나간 삶을 바라보며. 우리 앞에 닥친 경제위기 시대의 고통을 믿음 안에서 헤쳐 나갑시다.
1.부족함이 없다. 본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비록 다윗은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하여. 집도 없이, 거처도 없이, 광야와 산과 토굴로, 정처도 없이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걷고 있지만, 부 족함이 없다고 노래한다. 1여호와가 내 목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기에 내게는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한다. 이런 믿음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다. 이런 노래가 고난을 즐거움 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나는 그의 양이니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염려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목자가 양 떼의 필요를 걱정하고, 준비하고, 마련하지 양 떼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걱정하는 것이 아니 라고 노래한다. 거기에 부족함이 없고, 걱정이 없고,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2.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본문 2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되시고, 나는 그의 양 떼이니. 목자 되신 그가 나를 위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가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한다. 그렇다. 우리 성도들이 주를 의지하노라고 고백하면서도 온전히 주께 다 맡기지 못하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가 많다. 온전히 맡기자. 양 떼는 자신의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걱정하지 않는 법이다. 목자의 인도만 따르기만 하면. 곁길로 가지만 않고, 제대로 따르기만 하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쓸 것도 다시 말해서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는. 있는 것이다. 목자의 인도를 따를 때.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있음에. 부족 함이 없다.를 노래하게 된다.
3.의의 길 본문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참 좋으신 목자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 바로 그가 승리를 주시는 자이시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힘들 고, 어렵더라도 통과하면. 승리가 기다린다. 그 길이 의의 길이기에. 내 가는 길이 평탄하고, 형통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넓은 길이고,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의의 길이 되지 못한다면. 그 길의 끝은 멸망이 되고 만다. 경제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고국 동포에게.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 가서 미국 하원 의원에 진출한 김 창준씨가 들려 준 말이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죽지는 마세요. 살아 남아야 성공이 있습니다." 그렇다, 죽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 되고 만다. 고난을 통과하지 못 하고, 고난 앞에서 죽어 버린 자에게는 성공이 올래야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참 목자 되신 여호와가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것도 "자기 이름을 위하여." 다시 말해서, 목자라는 이름을 걸고, 명예를 걸고, 양 떼 를 인도해 가신다는 말씀이다. 양 떼를 끝까지 잘 인도해 가지 못하 면 목자의 이름이 더렵혀진다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해 가시는 여호와 나의 목자가 계시 니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는 노래이다.
2.두려움이 없다. 본문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 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아무 두려움이 없다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오, 나는 그의 양이니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1.주가 함께 하시니 나의 목자 되신 여호와,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 주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시오, 산과 들, 바다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역사의 주인이시오, 없는 것 을 있는 것 같이 불러 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주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움이 없다.
2.주의 지팡이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그 목자 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는 "주의 지팡이"가 있다. 그 지팡이는 갈 길을 인도해 가리켜 주시는 지팡이이다. 아니 길이 없는 홍해 바다를 가리켜 길을 내게 하신 능력의 지팡이 이다. 이런 주의 지팡이가 목자의 손에 있으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어 나 두려움이 없다고 노래한다.
3.주의 막대기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그 목자 되신 하나님의 손에 "주의 막대기" 가 있다. 그 막대기는 이리와 사자 등 사나운 짐승을 물리치시는 막대 기이다. 홍해 바다를 향하여 드사 애굽을 치신 막대기이다(사10:26) 공 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며, 악 인을 죽이고, 세상을 다스리는 막대기이다(사11:4) 이런 주의 막대기가 목자의 손에 있으니 이리나 사자, 사나운 짐 승이 몰려와도 나 두려움이 없다고 노래한다.
3.내 잔이 넘치나이다. 본문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여호와 나의 목자 되신 주, 그가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나를 영접해 주 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노래하는 다윗이다.
1.내게 상을 베푸시고 여호와 나의 목자 되신 주, 내게 부족함 없게 채워 주신 주, 나를 소 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사 끝내 승리를 주신 주, 그 주님이 원수 의 목전에서 나를 영접하시고, 상을 베푸셨다. 그 융숭한 대접 내 잔 이 넘치나이다.
2.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고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의의 길로 인도하사 마침내 승리의 기쁨을 주신 주,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사 존귀케 하셨도다.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사 단정케 하셨도다. 사 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나를 몰아치던 원수 앞에서.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사 존귀케 하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3.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니 본문 6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거하리다 다윗이 여호와의 집으로 자신의 거처를 삼겠다는 신앙고백 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헤매이며 산과 들, 광야와 토굴로, 이방 나라로. 집도 없이, 거처도 없이, 정 처 없이 도망자의 길을 걷던 다윗이.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자신의 거처를 삼고 영원히 거하리라는 신앙고백을 노래하고 있다. 집도, 거처도 없이 도망자의 길을 걷던 자에게. 여호와의 집으로 거 처를 삼게 하시니. 그것도 자신의 영원한 거처를 삼게 하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가 누릴 분복이 차고 넘치나이다. 내 잔이 차고 넘치나이다.를 노래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국가가 경제 주권을 잃어버린, 경제위기 시대의 경제적 고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근면과 성실로 일해 온 나의 일터가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린 아픔도 있고, 그 일터에서 쫓겨나 버린 아픔도 있습니다. 가장이 실직을 당하여 고개를 떨구고 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에 가지 못하고, 서울역, 지하철 에서 노숙하는 홈리스트들이(집을 잃은 자) 있습니다. 자기 집이 없어서 홈리스트가 아닙니다. 집이 있어도 찾아 갈 수없 어서 못 가는 자들입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빈손 들 고 가족들 앞에 나설 수 없어서, 자기 집에도 못 가는 홈리스트들입니다. 왕상19:4-5절/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 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 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이세벨의 칼을 피하여 도망자의 길을 가는 엘리야의 독백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당한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죽기를 원하는 모습입니다. 오늘의 어려운 현실을 참아 내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을 포 기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엘리야의 경우에도 도망자의 길에 지쳐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라고 죽기를 자청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때 천사가 와서 먹이고 마시워 힘을 얻게 한 후 새로 운 길,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거기에 새로운 삶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도망자의 길을 걸어 야 했던 이유를 알게 됩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 이상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두렵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사 마침 내 승리의 노래를 주십니다. 본문 6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닙니다.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 에서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입니다. 다윗은 이 믿음의 눈을 가졌습니다. 자신을 따르고 있는 주의 인자하 심과 선하심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나의 평생"에 따를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입니다. 정녕 자신을 따를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다윗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신앙고백을 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신앙고백은 자신의 소망을 다짐하는 고백이요, 자신의 삶에 결단을 다짐하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가는 길이 멀고, 힘든 가요 내가 처한 어려운 환경이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인가요 나는 하노라고 했는데. 오히려 그 고통이 억울하게 내게로 와버렸나요 참으로 유라굴로호 태풍 속의 사도 바울 일행처럼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져 버렸나요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처럼,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인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을 보세요. 실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 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 있느냐 정령 나를 따르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볼 수 있느냐 이런 영안이 열려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런 눈을 가지고. 나의 목자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게 되면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게는 부족함이 없네! 내게는 두려움이 없네! 오히려 내 잔이 넘치나 이다! 다윗처럼 기쁨의 노래, 즐거움의 노래, 소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 게 됩니다. 우리 모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실망과 좌 절, 탄식과 한숨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지 맙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 기 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보고.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게 부족함이 없네. 내게 두려움이 없네. 오히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를 노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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