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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57:1-11)

본문

바울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 5:8)고 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기도에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기도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사무엘 차드 윅은 “악마의 한가지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악마는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교회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을 결코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악마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떤다”고 했습니다. 본 시편은 다윗의 믹담(Michtam)시입니다(시편 56-60편). 믹담이란 “덮다, 속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다윗은 입에서 원수를 향해 원망과 저주의 말이 나오기 전에 입술을 덮어 닫아 버렸습니다. 이 시는 알 다스헷(Al-taschith)에 맞춘 노래입니다. 이는 “멸하지 않는 것”이란 말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한 자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울의 손에 붙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연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십대에 몸으로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을 정복하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노래했습니다(사무엘상 18:7). 이것이 사울과 그 부하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그는 왕궁을 빠져 나와 사무엘이 있는 라마나욧으로 피신해 있다가 놉 땅에 거하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로 갔다가 에돔 사람 도엑의 고발로 블레셋 지역 가드로 잠시 피신 했다가 다시 아둘람으로 와서 한 굴에 피신해 있을 때 아비의 집에서 소문을 듣고 많은 자들이 문안을 왔습니다(사무엘상 22:1-2). 다윗은 이러한 어려움 위기에서 다음과 같이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 57:7-8)고 했습니다. 다윗은 어떠한 마음으로 이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기로 결단했으며, 그는 어떠한 삶을 살기 위해서 새벽을 깨우는 자가 될 것을 말씀하셨는가 오늘은 본문의 내용을 강해하기 보다는 본문이 주어진 배경을 찾아서 이 사건 직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사무엘상 22-24장).
첫째:새벽의 사람은 어두움의 권세를 이깁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피신해 있다가 선지자 갓의 권유로 유다로 돌아와 헤렛 수풀에 있었습니다. 이때 사울이 소문을 듣고 다윗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사울이 기브아 에셀나무 아래서 이와같은 강연을 했습니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사무엘상 22:8)고 했습니다. 그때 에돔 사람 도액이 나와서 말하기를 다윗이 놉 땅에 와서 제사장 아히멜렉의 집에 거하면서 환대를 받은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도엑을 통하여 제사장 아히도벨과 놉 땅에 거하는 제사장 가족과 가축들을 다 죽이게 했습니다. “왕이 도액에게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액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사무엘상 22:18-19) 그때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이 도피하여 다윗에게로 왔습니다(사무엘상 22:20). 그때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사무엘상 22:22)고 했습니다. 제사장 85인과 그 가족들과 가축들이 일시에 죽임을 당한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딸 미갈을 통해서 죽이려 했으나 오히려 안전한 곳으로 도피시킵니다. 아들 요나단은 자신의 왕위를 다윗에게 물러 주기로 하고 다윗을 자기의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오시는 메시야의 구원역사를 이루기 위해 제사장 85인을 희생시키시면서 다윗의 생명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당신도 하나님편에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을 어두움의 권세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십니다. “다윗이 황무지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도 유하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신지라”(사무엘상 23:14)고 했습니다.
둘째:새벽의 사람은 위기에서도 피할길을 주십니다. 다윗이 십 황무지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십 사람들이 다윗을 고발했습니다.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가로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편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 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사무엘상 23:19-20)고 했습니다. 이제 다윗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사울이 군대를 동원하여 완전히 그를 포위했습니다.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사무엘상 23:26)고 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 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사무엘상 23:27-28)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도 오묘합니다. 하나님은 극한 위기에 처하여 있을 때는 피할 길을 주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당할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고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 편에서 결단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시면 순간 순간 어려운 위기를 당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십니다. 아람왕이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밤중에 도단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열왕기하 6:18)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절대로 불의한 이방의 손에 맡기지 않습니다.
셋째:새벽의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십 황무지 양의 우리에 숨었습니다. 다윗은 십 땅에서 나와서 황무지로 가서 길가 양 우리인 굴 깊은 곳에 숨었습니다. 사울이 전투에서 돌아와서 삼천 군대를 거느리고 수색해 왔습니다. 마치 다윗이 있는 그 굴로 들어왔습니다. “길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사무엘상 24:3-4)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굴에서 사자같은 원수와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피할 길을 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수를 그 발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하들로 하여금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했습니다(사무엘상 24:7). 이제 명암이 교차되었습니다. 다윗과 그 무리들이 죽은 줄로 알았는데 하나님은 사울과 그 무리들을 그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신 것입니다. 이제 다윗과 그 무리들이 칼을 휘두를 차례입니다. 그때 다윗의 부하들이 말하기를 “이것이 그날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칼을 두번 찌를 필요도 없는 너무도 안전하게 승리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그것이 기쁨이 아니라 최악의 고통의 순간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미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습니다. 나는 불의하고 비굴한 방법으로 승리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불의한 방법으로 나를 해하려고 하는 무리들 앞에서 나를 붙들어 주심을 아십니다. 저는 진리로 불의를 이기는 이 일에 새벽을 깨우는 자가 되겠습니다. 다윗은 선으로 악을 이긴자 입니다. 다윗은 아둘람 굴에서 이미 그 마음에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를 도전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깨우치는 새벽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바울의 고백처럼 악으로 악을 값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긴 승리자가 되었습니다(로마서 12:14-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기도의 사람이요, 감사의 사람이요, 찬양의 사람이요, 새벽의 사람입니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 57:8)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기도의 사람들이 믿음의 역사를 일어킵니다.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함으로 역사를 일어킨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새벽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새벽을 깨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새벽이 밝아지기를 기다리는 자가 될 것이 아니라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을 깨우시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자가 앞서가는 자이며, 승리자입니다. 당신은 금번에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요 새벽에 하나님이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편 46:5)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가정과 산업과 제단에 거하실 때 당신은 요동치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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