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요16:7-11)
본문
I.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금방 이하기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계와 우리 인간의 세계에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이 옳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해가 잘 안가는 예수님의 말씀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는 말씀입니다. 전적으로 예수님만 의지하고 있던 제자들, 스스로 설 수 있는 준비가 전 혀 되어 있지 않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그들을 버려두고 떠나간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획 없이, 생각 없이 행동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 태어 나서 죽을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다 정해 놓으신 방법대로 행동을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계획되고 준비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두고 떠나 가신다는 것도,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라, 이미 태초 부터 준비되고 계획된 행동이셨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 한 행동이십니다. 그 일이 제자들에 유익이 될까 안될까를 충분하게 검토 하고 결정한 행동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떠나 가 시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시공의 제약을 받습니다. 우리 인간과 똑같은 육신을 입고, 시공을 초월한 행동을 하시면, 그것은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공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셔야 할 일은 시공을 초월한 일인데, 시공의 제약을 받는 육 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때문에 하나님의 더 큰 역사가 방해를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을 떠나십니다. 육신을 입은 예수라는 굴레속에 하나님의 시공을 초월한 역사가 제약을 받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꺼이 이 세상을 떠 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읍니다. 그 이유를 몰라서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예수님이 가시면 보혜 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성령님이 오시지 못하는데,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무슨 일을 하시기에 우리에게 유 익이 될까요 이 시간에는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을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성령님은 책망하는 일을 하십니다.(요16:8-11) 예수님은 성령님은 오시면 이 세상을 3가지로 책망을 하신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1)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을 합니다. 이 죄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의 죄를 책망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시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 은 것은 "죄"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죄인라고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예수님은 전혀 죄 가 없었고,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이 잘 못 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 유대인들은 드러난 진리에 대한 불신과 맹목, 그리고 영적인 교만과 편견 때문에 그들이 오랜 동안 고대하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읍니다. 성령님은 오셔서 이 죄를 책망하십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오시면, 우리의 이 죄악들을 책망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누구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이 분명한 진리를 불신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하시는데, 이 진리를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 이 바로 죄입니다. 인간의 가장큰죄,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다는 이 진리를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박 혀 돌아가게 하심으로, 그 피값으로 만든 이 귀한 진리를 의심하는 죄는 영 원히 용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영적 교만과 편견이 죄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택함 받은 자들이 라는 선민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영적 교만으 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 보고 죄인이들아 회개하라고 하실때, 그들은 마음의 문 을 닫고 오히려 예수님을 적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 영적인 교만이 죄입니다. 오늘날도 온통 죄가운데 살면서도, 영적 교만에 빠져서 자기에게는 죄가 없는 척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남의 잘 못을 보면 강하게 정죄를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 의 죄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장 무섭고 더러운 죄가 자기는 죄가 없다 고 하면서 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죄가 드러날까 바 빛가운데로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3:19-20)을 보면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의 영적 교만을 책망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받은 자들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들은 주 앞에 겸손해집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을 보면 이해하고 용 서하고 덮어 줍니다. 이것이 귀한 일입니다. 우리의 이 영적인 교만을 깨뜨려 주시고, 우리 에게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 해 주시는 이 일이 귀합니다. 이 영적 교만이 깨지고, 우리의 죄를 인정해야만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 의 향기가 나고,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유익이 됩니다.
2)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의에 대하여 증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오 시면 예수님이 참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대적 원수들은 예수님을 극악한 죄인들을 사형 집행하는 십자가의 형틀에 달아 죽였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죄인 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을때 사람 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오셔서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며, 의로운 자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셔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신다고 하셨읍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님은 그 하늘 나라에서 의로우신 재판장되신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맞아서 그를 거룩한 자와 의로운 자로 삼았으신 것을 보 시고는 그것을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증 거하십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의인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모든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고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진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으로 역사를 이르키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을 때 그 말씀은 역사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진리로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 받으면 말씀의 믿음의 역사가 일어 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의롭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3)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이 성령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세상의 통치자들의 심판에 대하 여 책망을 하십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아무 죄가 없는 영광의 주님을 죄인으로 몰아서 억울 하게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심판이 얼마나 잘못된 심판이였습니까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의 심판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심판이 잘 못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판단에 따라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판단에 따라 살다가는, 의로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강도 요 살인자를 살려주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이 땅에 이런 오류를 범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 잘못된 심판은 그들을 영원한 불행으로 몰아 넣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이런 잘못된 심판을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2.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도 인도하십니다.(요16:13) 우리 인간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3:23)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인이기 때문에 죄 가운데서 살아 갑니다. 죄의 일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인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싶 어서 짓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짓습니다. 예수님은 (요8:44)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저희 욕 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의 아비에게서서 죄의 피를 받아 태어 났기 때문에 저절로 죄 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죄의 일을 하면서 삽니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오리 알을 닭걀을 품고 있는 암탉에게 넣어 주었다. 오리 가 부화한 후에 오리는 암닭을 따라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천둥번개가 치면서 큰 비가 내렸다. 닭들은 속히 비를 피하여 닭장 속으로 들어 갔다. 그러나 오리는 뒤에 남아서 비를 맞으 며,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즐겁게 놀았다. 그러나 닭들은 비를 싫어한다. 그래서 닭들은 물을 좋아하는 오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오리는 물을 좋아하는데 닭은 싫어할까요
왜냐하면 오리는 오리 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닭은 닭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죄인으로 태어난 죄인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죄를 좋 하고, 죄 속에 묻혀서, 죄를 지면서 삽니다. 이 죄인의 불행은 빛가운데로, 즉 진리 가운데로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은 죄 때문에 빛 가운데로 가지 못합니다. 진리 가운데로 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면 경찰 앞에 가기 싫어하고, 경찰서 근처만 지나가도 두려워집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 빛 가운데로 가지 못 합니다. 이것을 (요3:19-2)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 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이렇게 우리는 빛 가운데로 가고 싶고, 진리 가운데로 가고는 싶어도 갈 수 없는 그런 불행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로 가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서 계속 살면 우리는 어둠 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둠의 열매는 음행입니다. 온갖 더러운 것입니다. 탐욕입니다. 누추함입니다. 어리석운 말입니다. 희 롱의 말입니다.(엡5:1-14) 우리는 어둠 가운데서 이렇게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였읍니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계속 살다가 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합니다.(엡5:5)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본능적으로 진리 가운데 갈 수 없었던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본능적으로 빛 가운데 갈 수 없었던 우리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의 영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빛 가운데 로 인도해 들어 가십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 가십니다. 아라비아 사막에 살고 있는 안내원 중에 한번도 사막에서 길을 잃어 버 리지 않은 자가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에 실을 묶은 전서구(傳書鳩)(homing pigeon)(집으로 돌 아가는 본능이 있는 비둘기)를 데리고 다녔다. 길을 가다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잘 모를 때는 그는 비둘기를 하늘로 날렸다. 그러면 비둘기는 즉시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나라갔기 때문에 줄 이 집쪽으로 팽팽하게 당겨 졌다. 그러면 그 방향으로 가면 정확하게 집 으로 가게 되었다. 이 독특한 방법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비둘기 사람"(The dove man)이라 고 불렀다. 하늘의 비둘기인 하나님의 성령님도 똑같다. 이 성령님도 우리를 풍성 한 삶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본성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종하고 따라가기만 하면 이 실수하지 않는 감독관이 되시는 하늘의 비둘기는 우리 를 하늘 나라로 정확하게 인도해 준다. 이렇게 성령님은 이 세상에서 갈바를 몰라 방황하는 우리들을 언제나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성령님 받아야 예수님께 갈 수 있다. 성령님을 받지 않고는 참으로 예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나와도 주님 앞에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님충만 받은 자들만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나 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의 영이 오시는 것이 유익입니다. 비록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해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악을 다 드러내 주어서 부끄럽 긴 하지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기 때문에 보 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겐 유익입니다.
3. 모든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요14:26) 인간은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그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선택을 잘하면 그로 인하 여 크게 성공을 합니다. 그러나 선택을 잘못하면 영원히 후회를 하게 됩니다. 선택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선택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선택에 자신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때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를 만 난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은행장이 은퇴를 하면서 한 젊은 은행원이 그의 대를 이어서 은행장이 되었다. 그는 어느날 선임 은행장을 찾아 갔다. 그리고는 "아시다시피 제가 은행장님의 대를 이어서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은행장님이 가지고 계신 좋은 말씀을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은행장은 "여기 앉으세요. 나는 당신에 두마디, 단 두마디만 하겠습니다. 바른 결정(right decisions)"이요 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씀이 참으로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전임 운행장은 "한 마디면 되네. 경험(experience) 입니다"하 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신인 은행장은 "그 말씀도 참으로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경험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자 전인 은행장은 "두 마디면 되네. 잘못된 결정(wrong decisions)입니다"하고 대답을 했다. 잘못된 결정을 해서 실패를 한 것 이 경험이 되어 후에 바른 결정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실패해야 깨닫게 되는 것을 미리 그것을 경험한 자로 부터 도움을 받아서 그 실패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가셔서 우리에게 보내실 성령님이 바로 우리의 이 상담자 입니다. 우리의 갈길을 먼저 오셔서 그 길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갈길을 가르 쳐 주시는 우리의 참된 상담자 이십니다. 보혜사를 영어 성경은 counselor라고 합니다. 즉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의 인생의 상담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성령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가야할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갈때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이런 일을 우리에게 하십니다. 하루는 비행기가 몹씨 흔들리며, 난폭하게 비행을 했다.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한 숙녀가 매우 심하게 비행기 멀미를 하게 되었다. 그 숙녀는 양 어깨를 축늘어뜨렸고, 그녀의 머리를 앞으로 뚝 떨구었다. 그녀는 완 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러자 스튜어디스가 그녀를 돕기 위하여 그녀 옆으로 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양 팔을 그녀의 양팔 밑으로 넣어서 그녀를 그녀의 자리에 똑바로 세워 앉히면서, "자 용기를 내세요" 하고 격려하면서, 껌을 주어 씹게하고, 물을 조금 주어 마시게 하였다. 스튜어디스의 도움으로 처음 멀미할 때 보다 훨씬 났게 그녀의 비행기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것과 같다. 성령님은 우리가 절 망적인 패배를 당할 때우리를 돕기 위하여 우리에게 찾아 오신다. 성령님 님은 우리를 훈계하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의 삶에 희망과 믿음을 다시 회복한다. 그리고 그 어려운 때를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지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길에 이 보혜사 성령님을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고 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4. 우리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요14:26)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일하셨던 예수님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나 하 늘 나라로 가십니다. 그러면 예수님 대신 성령님이 오셔서 제자들과 같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해 나갑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건설에 필요한 수 많은 것들을 말씀하 셨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 건설에 꼭 필요한 말씀들입니다. 성령님 은 이 말씀들이 우리 마음속에 생각나게 하십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들었어도 오직 마음에 생각나는 말씀만이 우리에게 능력이 됩니다. 알 고 있어도 생각나지 않으면 그 앎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들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게 우리에게 생각이 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령님이 오시면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 속에 생각나고 살아서 역사를 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잃어 버렸던 것이 생각 나게 합니다. 우리 인간은 망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망각의 요소 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잊어 먹습니다. 죤스 홉킨스 대학의 연구원인 카렌 볼라(Karen Bolla)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자주 망각을 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잘 잊어 버리는 것이 다음과 같다. 이름들 83 %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60 % 전화번호 57 % 단어들 53 % 들은 이야기 49 % 얼굴들 42 %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건설에 꼭 필 요해서 하신 진리의 말씀까지도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가 잊어 버린 것 까지도 기억이 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오늘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석하여 말씀을 전할 때 그때 그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 질때 오늘 여기서 있는 말씀이 아니라,
2,000년에 예수님께서 하신 그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에 다가오게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보내신 성령님을 받아,성령님 의 정죄함을 받아 모든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이 가르침을 받아 순종하여 풍성한 삶으로 인도함을 받고, 성령님이 기억나게 하신 말씀을 아멘으로 받 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속에서 역사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획 없이, 생각 없이 행동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 태어 나서 죽을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다 정해 놓으신 방법대로 행동을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계획되고 준비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두고 떠나 가신다는 것도,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라, 이미 태초 부터 준비되고 계획된 행동이셨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 한 행동이십니다. 그 일이 제자들에 유익이 될까 안될까를 충분하게 검토 하고 결정한 행동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떠나 가 시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시공의 제약을 받습니다. 우리 인간과 똑같은 육신을 입고, 시공을 초월한 행동을 하시면, 그것은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공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셔야 할 일은 시공을 초월한 일인데, 시공의 제약을 받는 육 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때문에 하나님의 더 큰 역사가 방해를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을 떠나십니다. 육신을 입은 예수라는 굴레속에 하나님의 시공을 초월한 역사가 제약을 받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꺼이 이 세상을 떠 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읍니다. 그 이유를 몰라서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예수님이 가시면 보혜 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성령님이 오시지 못하는데,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무슨 일을 하시기에 우리에게 유 익이 될까요 이 시간에는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을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성령님은 책망하는 일을 하십니다.(요16:8-11) 예수님은 성령님은 오시면 이 세상을 3가지로 책망을 하신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1)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을 합니다. 이 죄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의 죄를 책망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시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 은 것은 "죄"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죄인라고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예수님은 전혀 죄 가 없었고,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이 잘 못 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 유대인들은 드러난 진리에 대한 불신과 맹목, 그리고 영적인 교만과 편견 때문에 그들이 오랜 동안 고대하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읍니다. 성령님은 오셔서 이 죄를 책망하십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오시면, 우리의 이 죄악들을 책망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누구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이 분명한 진리를 불신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하시는데, 이 진리를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 이 바로 죄입니다. 인간의 가장큰죄,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다는 이 진리를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박 혀 돌아가게 하심으로, 그 피값으로 만든 이 귀한 진리를 의심하는 죄는 영 원히 용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영적 교만과 편견이 죄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택함 받은 자들이 라는 선민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영적 교만으 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 보고 죄인이들아 회개하라고 하실때, 그들은 마음의 문 을 닫고 오히려 예수님을 적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 영적인 교만이 죄입니다. 오늘날도 온통 죄가운데 살면서도, 영적 교만에 빠져서 자기에게는 죄가 없는 척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남의 잘 못을 보면 강하게 정죄를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 의 죄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장 무섭고 더러운 죄가 자기는 죄가 없다 고 하면서 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죄가 드러날까 바 빛가운데로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3:19-20)을 보면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의 영적 교만을 책망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받은 자들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들은 주 앞에 겸손해집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을 보면 이해하고 용 서하고 덮어 줍니다. 이것이 귀한 일입니다. 우리의 이 영적인 교만을 깨뜨려 주시고, 우리 에게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 해 주시는 이 일이 귀합니다. 이 영적 교만이 깨지고, 우리의 죄를 인정해야만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 의 향기가 나고,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유익이 됩니다.
2)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의에 대하여 증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오 시면 예수님이 참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대적 원수들은 예수님을 극악한 죄인들을 사형 집행하는 십자가의 형틀에 달아 죽였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죄인 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을때 사람 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오셔서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며, 의로운 자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셔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신다고 하셨읍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님은 그 하늘 나라에서 의로우신 재판장되신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맞아서 그를 거룩한 자와 의로운 자로 삼았으신 것을 보 시고는 그것을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증 거하십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의인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모든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고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진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으로 역사를 이르키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을 때 그 말씀은 역사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진리로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 받으면 말씀의 믿음의 역사가 일어 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의롭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3)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이 성령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세상의 통치자들의 심판에 대하 여 책망을 하십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아무 죄가 없는 영광의 주님을 죄인으로 몰아서 억울 하게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심판이 얼마나 잘못된 심판이였습니까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의 심판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심판이 잘 못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판단에 따라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판단에 따라 살다가는, 의로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강도 요 살인자를 살려주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이 땅에 이런 오류를 범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 잘못된 심판은 그들을 영원한 불행으로 몰아 넣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이런 잘못된 심판을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2.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도 인도하십니다.(요16:13) 우리 인간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3:23)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인이기 때문에 죄 가운데서 살아 갑니다. 죄의 일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인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싶 어서 짓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짓습니다. 예수님은 (요8:44)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저희 욕 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의 아비에게서서 죄의 피를 받아 태어 났기 때문에 저절로 죄 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죄의 일을 하면서 삽니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오리 알을 닭걀을 품고 있는 암탉에게 넣어 주었다. 오리 가 부화한 후에 오리는 암닭을 따라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천둥번개가 치면서 큰 비가 내렸다. 닭들은 속히 비를 피하여 닭장 속으로 들어 갔다. 그러나 오리는 뒤에 남아서 비를 맞으 며,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즐겁게 놀았다. 그러나 닭들은 비를 싫어한다. 그래서 닭들은 물을 좋아하는 오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오리는 물을 좋아하는데 닭은 싫어할까요
왜냐하면 오리는 오리 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닭은 닭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죄인으로 태어난 죄인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죄를 좋 하고, 죄 속에 묻혀서, 죄를 지면서 삽니다. 이 죄인의 불행은 빛가운데로, 즉 진리 가운데로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은 죄 때문에 빛 가운데로 가지 못합니다. 진리 가운데로 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면 경찰 앞에 가기 싫어하고, 경찰서 근처만 지나가도 두려워집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 빛 가운데로 가지 못 합니다. 이것을 (요3:19-2)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 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이렇게 우리는 빛 가운데로 가고 싶고, 진리 가운데로 가고는 싶어도 갈 수 없는 그런 불행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로 가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서 계속 살면 우리는 어둠 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둠의 열매는 음행입니다. 온갖 더러운 것입니다. 탐욕입니다. 누추함입니다. 어리석운 말입니다. 희 롱의 말입니다.(엡5:1-14) 우리는 어둠 가운데서 이렇게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였읍니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계속 살다가 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합니다.(엡5:5)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본능적으로 진리 가운데 갈 수 없었던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본능적으로 빛 가운데 갈 수 없었던 우리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의 영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빛 가운데 로 인도해 들어 가십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 가십니다. 아라비아 사막에 살고 있는 안내원 중에 한번도 사막에서 길을 잃어 버 리지 않은 자가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에 실을 묶은 전서구(傳書鳩)(homing pigeon)(집으로 돌 아가는 본능이 있는 비둘기)를 데리고 다녔다. 길을 가다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잘 모를 때는 그는 비둘기를 하늘로 날렸다. 그러면 비둘기는 즉시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나라갔기 때문에 줄 이 집쪽으로 팽팽하게 당겨 졌다. 그러면 그 방향으로 가면 정확하게 집 으로 가게 되었다. 이 독특한 방법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비둘기 사람"(The dove man)이라 고 불렀다. 하늘의 비둘기인 하나님의 성령님도 똑같다. 이 성령님도 우리를 풍성 한 삶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본성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종하고 따라가기만 하면 이 실수하지 않는 감독관이 되시는 하늘의 비둘기는 우리 를 하늘 나라로 정확하게 인도해 준다. 이렇게 성령님은 이 세상에서 갈바를 몰라 방황하는 우리들을 언제나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성령님 받아야 예수님께 갈 수 있다. 성령님을 받지 않고는 참으로 예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나와도 주님 앞에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님충만 받은 자들만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나 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의 영이 오시는 것이 유익입니다. 비록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해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악을 다 드러내 주어서 부끄럽 긴 하지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기 때문에 보 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겐 유익입니다.
3. 모든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요14:26) 인간은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그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선택을 잘하면 그로 인하 여 크게 성공을 합니다. 그러나 선택을 잘못하면 영원히 후회를 하게 됩니다. 선택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선택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선택에 자신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때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를 만 난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은행장이 은퇴를 하면서 한 젊은 은행원이 그의 대를 이어서 은행장이 되었다. 그는 어느날 선임 은행장을 찾아 갔다. 그리고는 "아시다시피 제가 은행장님의 대를 이어서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은행장님이 가지고 계신 좋은 말씀을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은행장은 "여기 앉으세요. 나는 당신에 두마디, 단 두마디만 하겠습니다. 바른 결정(right decisions)"이요 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씀이 참으로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전임 운행장은 "한 마디면 되네. 경험(experience) 입니다"하 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신인 은행장은 "그 말씀도 참으로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경험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자 전인 은행장은 "두 마디면 되네. 잘못된 결정(wrong decisions)입니다"하고 대답을 했다. 잘못된 결정을 해서 실패를 한 것 이 경험이 되어 후에 바른 결정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실패해야 깨닫게 되는 것을 미리 그것을 경험한 자로 부터 도움을 받아서 그 실패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가셔서 우리에게 보내실 성령님이 바로 우리의 이 상담자 입니다. 우리의 갈길을 먼저 오셔서 그 길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갈길을 가르 쳐 주시는 우리의 참된 상담자 이십니다. 보혜사를 영어 성경은 counselor라고 합니다. 즉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의 인생의 상담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성령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가야할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갈때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이런 일을 우리에게 하십니다. 하루는 비행기가 몹씨 흔들리며, 난폭하게 비행을 했다.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한 숙녀가 매우 심하게 비행기 멀미를 하게 되었다. 그 숙녀는 양 어깨를 축늘어뜨렸고, 그녀의 머리를 앞으로 뚝 떨구었다. 그녀는 완 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러자 스튜어디스가 그녀를 돕기 위하여 그녀 옆으로 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양 팔을 그녀의 양팔 밑으로 넣어서 그녀를 그녀의 자리에 똑바로 세워 앉히면서, "자 용기를 내세요" 하고 격려하면서, 껌을 주어 씹게하고, 물을 조금 주어 마시게 하였다. 스튜어디스의 도움으로 처음 멀미할 때 보다 훨씬 났게 그녀의 비행기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것과 같다. 성령님은 우리가 절 망적인 패배를 당할 때우리를 돕기 위하여 우리에게 찾아 오신다. 성령님 님은 우리를 훈계하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의 삶에 희망과 믿음을 다시 회복한다. 그리고 그 어려운 때를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지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길에 이 보혜사 성령님을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고 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4. 우리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요14:26)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일하셨던 예수님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나 하 늘 나라로 가십니다. 그러면 예수님 대신 성령님이 오셔서 제자들과 같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해 나갑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건설에 필요한 수 많은 것들을 말씀하 셨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 건설에 꼭 필요한 말씀들입니다. 성령님 은 이 말씀들이 우리 마음속에 생각나게 하십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들었어도 오직 마음에 생각나는 말씀만이 우리에게 능력이 됩니다. 알 고 있어도 생각나지 않으면 그 앎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들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게 우리에게 생각이 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령님이 오시면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 속에 생각나고 살아서 역사를 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잃어 버렸던 것이 생각 나게 합니다. 우리 인간은 망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망각의 요소 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잊어 먹습니다. 죤스 홉킨스 대학의 연구원인 카렌 볼라(Karen Bolla)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자주 망각을 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잘 잊어 버리는 것이 다음과 같다. 이름들 83 %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60 % 전화번호 57 % 단어들 53 % 들은 이야기 49 % 얼굴들 42 %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건설에 꼭 필 요해서 하신 진리의 말씀까지도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가 잊어 버린 것 까지도 기억이 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오늘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석하여 말씀을 전할 때 그때 그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 질때 오늘 여기서 있는 말씀이 아니라,
2,000년에 예수님께서 하신 그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에 다가오게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보내신 성령님을 받아,성령님 의 정죄함을 받아 모든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이 가르침을 받아 순종하여 풍성한 삶으로 인도함을 받고, 성령님이 기억나게 하신 말씀을 아멘으로 받 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속에서 역사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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