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너희를,너희와 (창32:1-2)
본문
산과들에 많은 동물들이 해가 서산에 넘어갈 즈음 자신들의 일을 마치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들짐승과 새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밝 은 낮은 일을위한 부름이지만, 해가지는 저녁은 가정으로의 안식의 부름이 있습니다. 동물의 보금자리, 둥지, 가정은 한낮의 피곤을 삭혀주고 새날의 힘을 보충해주는 에너지 공급의 역활과 삭막하였던 하루의 분위기를 바꾸어주는 신선함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보호와 그로인한 안식이 있는 곳이죠. 그러기에 가정이 없이, 집이 없이, 보호자가 없이 나그네가 된다는 것은 동물세계에 서는 죽음을 의미하고, 인간사회에 있어서도 비참하고, 처절한 의미를 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야곱이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여년간 지 내다가 고향을 찾아가는 동안 그에게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체험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 군대를 마하나임이라 말합니다. 야곱에게는 정을 줄만한,안식을 얻을 만한 보호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고향에서 형 에서로부터의 죽임의 공포를 피 하여 사랑하는 부모를 떠난 고아 아닌 고아 였습니다. 아무리 외삼촌 라반의 보호가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친부모의 사랑만큼 위안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라 반은 야곱을 속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실날같은 희망마저 무너지게하는 결과를 가져 왔으며, 오히려 그의 외로움을 더 깊게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야곱은 많은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외로움 대신 희망을 가지고 살 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안식과 비젼을 가 지고 밧단아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앞날의 희망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과 그에게 굽힐줄 모르는 인내가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는 보이지 아니하는 보호자가 있었고, 보이지 아니하는 군대의 돌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 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호자인 마하나임의 하나님은 야 곱의 일생을 통하여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에게 확신을 주며, 희망을 주셨습니다. 외로울 때 그의 친구가 되어 그의 외로움을 기쁨으로 대체 시켰으며, 낙담하였을 때, 용기를 불어 넣어 장래의 소망을 바라게 하셨습니다. 지금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고향을 야곱은 바라봅니다. 그러나 고향을 향하고 고향 에서의 위로를 꿈꾸던 야곱에게 한 가지의 어려운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형 에서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20여년전 형 에서의 장자권과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은 야곱이기에 그 댓가에 대한 두려움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을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제 형 에서가 나타나 자기를 비롯하여 처와 자식 그리고 자신의 소유를 다 멸할지 모르는 위기에 그는 봉착해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야곱 에게 하나님은 사자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야곱은 지난날 하나님이 자신에게, 자신 을, 자신과 함께하였던 것을 상기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밧단아람으로 가는 도중 벧엘에서 나타나 야곱에게 함께 하셨 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그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라반의 온갖 모략에서 야곱을 지켜 주었듯이, 에서의 손에서도 무사히 지켜주실 것 이라는 확신을 마하나임을 통하여, 하나님의 군대를 통하여 야곱아 내가 너를, 너를 지켜 주겠다 고 확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야곱과 그 어려움속에서 도 자신이 허락한 것을 이루기 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군대를 통하여 그의 두려움을 제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같이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 을 체험하는 야곱은 어 디서부터 이러한 체험을 준비하고 예고하였을까요 다시말하여 무엇이 야곱으로 하 여금 하나님의 막강한 군대의 지원과 보호를 이끌어내었단 말입니까
1.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하나님 중심의 생활만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허락된 축복만이 생명있는 축복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차남의 약속을 뛰어넘어 온 인류의 축복과 연결되게 하였 습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할때, 성도는 죽음도 초월한 신앙의 소유로 말미암아 고귀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며, 아름다운 세상의 환희를 만끽하여 하나님 백성의 특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들의 악한 행위와 생각을 선호하고, 거기서 생기는 추악 하고 합당치 못한 결과에 기뻐 날뛰는 것을 볼 때가 자주있습니다. 그리고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방법과 행위를 의외로 많은 기독인들도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악한 계획과 행위들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솔로몬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하나님 중심이 아닌 다른 인간들의 망상과 그릇된 형태들을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 을 사모하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변화되는 인생의 참가치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야곱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기에 마하나임의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으 면서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갈망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처절한 모습 의 야곱에게서 하나님을 철저히 바라보는 혼신의 기도로 영육간의 어려움을 극복하 려는 야곱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련과 유혹의 문제 그리고 그러한 문제에서 나약해 지려는 육신을 다스리는 것은 기도의 힘으로 가능 한 것입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다가오는 시련을 대비하여 무엇을 하였습니까 영육간의 심각한 문제에 예수님이 하신것은 기도였습니다. 그것을 누가기자는 다음 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22장44절에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 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련과 유혹을 극복하며, 자아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 야곱은 오랜세월이지만 소망의 땅을 믿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을 잊어버린 민족과 개인에게는 작은 소망마저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소망을 갖 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에게는 그 소망은 현실의 기쁨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야곱은 20여년간의 기나긴 세월을 낮선곳에서 온갖 서러움과 문제에 직면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소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 을 준비하고 살아갈 때,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방황하지 않 고 기쁨으로 소망을 가지고 약속된 땅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안식은 누릴지 모르나, 마음의 안식을 잃고 어느푯대 를 향하여 나갈지 방황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이 인간에게 부를 주고, 그것을 바탕 으로 안식을 줄것이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왔지만, 실로 우리의 물질적 풍요는 인간의 안식을 더욱더 어렵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환각의 상태를 통하여 물질문명을 통한 소외와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실정 입니다. 마하나임 ! 하나님의 군대! 야곱에게 나타나 새로운 희망과 인생의 문제를 완전히 풀어주었던 그 하나님의 군 대, 마하나임 그것이 우리의 시대 지금 이곳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초조하고, 불안하고, 불확실한 인생관 속에 하나님의 군대는 야곱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확 신을 주었듯이 여러분이 자신의 인생을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의 말씀 아래서 살아갈때, 실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이룩 할 것입니다. 만일 야곱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었다면, 그는 고향을 잃어버린 방랑자가 되었을 것이며, 인생에 있어 참 승리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하나님이 야곱을,하나님이 야곱과 있었 다는 것을 상기하게 했던 그 마하나임, 그 마하나임이 어려운 이때에 여러분에게 , 여러분을, 여러분과 같이 하기를 바라며, 그것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인생의 새로운 힘을 얻고, 세상속에서 실날같은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안식과 비젼을 가 지고 밧단아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앞날의 희망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과 그에게 굽힐줄 모르는 인내가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는 보이지 아니하는 보호자가 있었고, 보이지 아니하는 군대의 돌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 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호자인 마하나임의 하나님은 야 곱의 일생을 통하여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에게 확신을 주며, 희망을 주셨습니다. 외로울 때 그의 친구가 되어 그의 외로움을 기쁨으로 대체 시켰으며, 낙담하였을 때, 용기를 불어 넣어 장래의 소망을 바라게 하셨습니다. 지금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고향을 야곱은 바라봅니다. 그러나 고향을 향하고 고향 에서의 위로를 꿈꾸던 야곱에게 한 가지의 어려운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형 에서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20여년전 형 에서의 장자권과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은 야곱이기에 그 댓가에 대한 두려움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을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제 형 에서가 나타나 자기를 비롯하여 처와 자식 그리고 자신의 소유를 다 멸할지 모르는 위기에 그는 봉착해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야곱 에게 하나님은 사자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야곱은 지난날 하나님이 자신에게, 자신 을, 자신과 함께하였던 것을 상기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밧단아람으로 가는 도중 벧엘에서 나타나 야곱에게 함께 하셨 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그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라반의 온갖 모략에서 야곱을 지켜 주었듯이, 에서의 손에서도 무사히 지켜주실 것 이라는 확신을 마하나임을 통하여, 하나님의 군대를 통하여 야곱아 내가 너를, 너를 지켜 주겠다 고 확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야곱과 그 어려움속에서 도 자신이 허락한 것을 이루기 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군대를 통하여 그의 두려움을 제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같이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 을 체험하는 야곱은 어 디서부터 이러한 체험을 준비하고 예고하였을까요 다시말하여 무엇이 야곱으로 하 여금 하나님의 막강한 군대의 지원과 보호를 이끌어내었단 말입니까
1.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하나님 중심의 생활만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허락된 축복만이 생명있는 축복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차남의 약속을 뛰어넘어 온 인류의 축복과 연결되게 하였 습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할때, 성도는 죽음도 초월한 신앙의 소유로 말미암아 고귀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며, 아름다운 세상의 환희를 만끽하여 하나님 백성의 특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들의 악한 행위와 생각을 선호하고, 거기서 생기는 추악 하고 합당치 못한 결과에 기뻐 날뛰는 것을 볼 때가 자주있습니다. 그리고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방법과 행위를 의외로 많은 기독인들도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악한 계획과 행위들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솔로몬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하나님 중심이 아닌 다른 인간들의 망상과 그릇된 형태들을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 을 사모하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변화되는 인생의 참가치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야곱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기에 마하나임의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으 면서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갈망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처절한 모습 의 야곱에게서 하나님을 철저히 바라보는 혼신의 기도로 영육간의 어려움을 극복하 려는 야곱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련과 유혹의 문제 그리고 그러한 문제에서 나약해 지려는 육신을 다스리는 것은 기도의 힘으로 가능 한 것입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다가오는 시련을 대비하여 무엇을 하였습니까 영육간의 심각한 문제에 예수님이 하신것은 기도였습니다. 그것을 누가기자는 다음 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22장44절에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 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련과 유혹을 극복하며, 자아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 야곱은 오랜세월이지만 소망의 땅을 믿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을 잊어버린 민족과 개인에게는 작은 소망마저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소망을 갖 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에게는 그 소망은 현실의 기쁨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야곱은 20여년간의 기나긴 세월을 낮선곳에서 온갖 서러움과 문제에 직면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소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 을 준비하고 살아갈 때,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방황하지 않 고 기쁨으로 소망을 가지고 약속된 땅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안식은 누릴지 모르나, 마음의 안식을 잃고 어느푯대 를 향하여 나갈지 방황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이 인간에게 부를 주고, 그것을 바탕 으로 안식을 줄것이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왔지만, 실로 우리의 물질적 풍요는 인간의 안식을 더욱더 어렵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환각의 상태를 통하여 물질문명을 통한 소외와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실정 입니다. 마하나임 ! 하나님의 군대! 야곱에게 나타나 새로운 희망과 인생의 문제를 완전히 풀어주었던 그 하나님의 군 대, 마하나임 그것이 우리의 시대 지금 이곳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초조하고, 불안하고, 불확실한 인생관 속에 하나님의 군대는 야곱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확 신을 주었듯이 여러분이 자신의 인생을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의 말씀 아래서 살아갈때, 실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이룩 할 것입니다. 만일 야곱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었다면, 그는 고향을 잃어버린 방랑자가 되었을 것이며, 인생에 있어 참 승리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하나님이 야곱을,하나님이 야곱과 있었 다는 것을 상기하게 했던 그 마하나임, 그 마하나임이 어려운 이때에 여러분에게 , 여러분을, 여러분과 같이 하기를 바라며, 그것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인생의 새로운 힘을 얻고, 세상속에서 실날같은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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