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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게 장가들어 (호2:14-23)

본문

몇 년 전 미국에서 이혼식이 유행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보도에 의하면 결혼할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혼식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혼을 하는 두 사람은 검은 상복을 입고 이혼의 검은 케이크를 자른다고 합니다. 이 이혼식의 절정은 이들 두 사람이 결혼식을 하던 비디오 필름을 거꾸로 돌려서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졌음을 선언하고 해어진다고 합니다. 50% 가까운 이혼율을 보이는 미국에서나 있음직한 일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우리 나라도 점점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이혼식이 생겨나서 제가 이런 이혼식의 주례자로 초대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 됩니다. 우리가 요즘 살펴 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혼은 이렇게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음행한 연고로 내어 쫓김을 당하는 이스라엘 여인들의 입장에서 이런 미국의 이혼식을 본다면 대단히 낭만적인 이혼식이 될 것입니다. 음 행한 연고로 이혼을 당해야 하는 여인에게 있어서 이혼은 대단히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 을 다 돌려주어야 합니다. 아니 돌려준다는 것보다는 빼앗긴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곡식, 포도주, 기름 은 물론이고 금과 은이며 모든 의복들도 돌려주어야 합니다. 비극은 이렇게 돌려주는 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벌거 벗긴 채로 내어 쫓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돌에 맞아 죽는 일도 있었습니다. 음행한 여 인들은 이렇게 비극적인 일들을 맞이하면서 대부분이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남편하고 살던 때를 회상하고 그리워하 게 됩니다. 어리석은 후회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말씀은 바로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 들을 버려진 갓난아이에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탯줄도 자르지 못한 채로 피투성이가 된 체로 버려진 갓난아이였습니다. 이 아이에 대해서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모른 채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버려진 갓난아이와 같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씻겨주시고 키워주셨습니다. 저가 자라자 멋진 옷을 해 입히고 드디어는 자신의 아내로 맞이해 들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최고의 찬사를 듣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 게 사랑을 받던 이스라엘이 어떠했습니까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따릅니까 아니였습니다. 자신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쏟아 부으셨던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을 섬기기 시작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었던 모든 것들로 이방신을 섬기며 음행을 하는 일에 사용을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을 한 것이 아니라 이방신을 섬기며 우상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사용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간증이요, 하나님이 나의 찬송이 아 니였습니다. 세상이 나의 찬송이요 세상이 나의 간증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하나님은 저들을 징계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저들에게 주었던 모든 것들을 다 빼앗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벌거벗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저들로 어리석은 후회를 하게 하시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후회를 하면서 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다.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왜 이들이 이런 후회를 하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의 길을 막아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서시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옳은 줄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성공을 한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길을 막아서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 한 자가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요즘 여러분들의 삶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께서 막아서실 만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도 어리석은 후회를 하도록 다 빼앗아 가실 만 하지 않습니까 사랑 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막아서시기 전에 돌이키십시오.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 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그러므로 라는 말은 앞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부연해서 설 명을 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그러므로 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일까 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호세아 2장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이 어떻게 사용이 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세아 2장을 살피다 보면 이
그러므로 라는 말이 대단히 무서운 말이 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 6절에 있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길을 막아서시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왜요 그렇습니다. 저들이 음행을 한 연고입니다. 또, 9절에 있는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다음에 어떤 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로 찾고 빼앗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왜 도로 찾고 빼앗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로 이방신을 섬기며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그러므로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저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그러므로 내가 이 런 징계를 내리겠다는 용법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기록되고 있는
그러므로 라는 의 미도 같은 의미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그러므로 라는 말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 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첫 번째
그러므로 하시고난 다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예, 가 시로 네 길을 막겠다. 담을 쌓아 네 길을 막겠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러므로 하신 다음에는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찾겠다 빼앗아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벌거벗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제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벌거벗을 정도로 다 가져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다시
그러므로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다가지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더 이상 드릴 것도 없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제 생명밖에는 없습니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그러므로를 듣는 이스 라엘 백성들의 입장은 상당히 심각한 것입니다. 왜요
그러므로 다음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어떤 것 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쩌면 이제 드디어 우리들의 생명을 달라고 하시는 구나 하고 생각을 했을 법 합니다. 거친 들로 자
그렇다면 이제 이
그러므로 뒤에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를 한 번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을 개유하 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여기 개유 한다는 말은 꼬인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꾀여 내어 거친들로 가겠 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상당히 절망적입니다. 야 이제 드디어 죽었구나 우리들을 죽이려고 들 로 데리고 가는 구나, 마치 간음한 여인을 돌로 때려죽이는 것처럼 우리들도 영적으로 간음을 했으니 죽이려 하는구 나 하는 생각을 할 법합니다.
그런데 좀 더 읽어내려 가 보십시다.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예, 말로 위로하고 라고 말합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뀝니다. 지금까지
그러므로 다음은 어떤 말이 나왔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절망적인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본문은 어떠합니까 그렇습니다. 위로의 음성입니다. 소망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이렇게 위로와 소망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거친 들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이것은 절망적인 일들이었습니다. 말이 쉽지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른 곳에 그것도 포로로 끌려가서 거기서 적응을 한다는 것은 사실 무서운 형벌이었 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위로의 말을 하신다니요 잘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들의 인생이 무서운 형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형벌을 받아 포로로 잡혀 와 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저들을 잊지 않으시고 저들을 위로해 주시며 저들을 살 펴 주실 것입니다. 따뜻하게 품어주실 것입니다. 예전의 그 사랑으로 저들을 안아 주실 것입니다. 저들이 포로 생활 을 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칠 때 하나님은 저들을 포근히 안아 주시면서 격려하실 것입니다. 말로 위로하리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어떤 말로 위로를 하게 될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말로 위로한다는 의미를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 말로 위로한다는 말은 마음에 말한다는 의미가 담겨진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의미는 무엇 일까요 여러분 귀에 말하는 것과 마음에 말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귀에 말하는 것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말하는 것은 쉽게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오래오래 간직될 뿐만 아니라 그 말들 이 자신의 생활에 배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말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저들의 삶에 살아서 그대로 역사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돌판에 자신 의 말씀을 적어 저들에게 교훈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저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시겠다는 것입니다. [고후 3:3]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돌판에 말씀을 새기시는 것 이 아니라 마음의 비석에 말씀을 새기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들의 마음에 말씀을 하십니까 겔 36:25-26을 보겠습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 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말씀하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을 우리들의 마음에 두어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 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령님 께서 우리들에게 오심으로 이 일이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에 성령님을 두셔서 이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성령님을 보내셔서 저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끄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15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포도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포도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황무하게 변했습니다.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포 도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5절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원을 다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가 변해 또 계속해서 15절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예, 아골 골짜기가 변해서 소망의 문이 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 라엘 백성들은 아골 골짜기 하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 인줄 아십니까 여호수아 7장에 있는 아 간의 사건입니다.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여호수아는 아간이 훔쳤던 전리품을 찾아내어 아골 골짜기로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간을 심판하고는 그곳에 큰 돌무더기를 쌓고 괴로움의 골짜기로 이름을 짖습니다. 이 때의 장면을 [수 7:24-26]은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 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 라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그렇다면 여러분 아골골짜기는 무엇의 상징이였습니까 그렇습니다. 괴로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골짜기를 어떻게 변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소망의 문으로 바꾸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것은 괴로움이었습니다. 낙망하게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괴로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망의 문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로 인도함을 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거친 광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징계가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절망의 자리였습니다. 낙망의 자리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벌거숭이가 된 채 끌려온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보 십시오. 이 곳이 어떻게 바뀝니까 예, 위로가 있고 소망이 있는 곳으로 바뀌게 됩니다. 은혜의 자리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며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징계가 오히려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이며 사랑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다 국민학교 때 한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선생님은 굉장히 엄한 선생님이 셨습니다. 잘 못한 일에 대해서는 늘 철저하게 벌하셨습니다. 이 선생님이 이렇게 철저한 것이 전부였다면 제가 지금 까지 그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선생님은 엄하신 만큼 또한 인자하신 분이셨습니다. 어쩌다 학 생들에게 회초리라도 대신 날이면 아이들을 남게 해서 일일이 자국난 종아리를 만져 주시면서 따뜻한 말씀을 주고 받 으셨습니다. 그럴 때면 종아리가 시뻘겋게 부어오르던 그 매도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그저 선생님의 사랑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징계로 끝을 내지 않으시고 항상 따뜻 한 위로로 일들을 마무리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들입니다. 우리들도 종종 거친 광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잘못 해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두실 수도 있고 우리들이 잘못한 것이 없지만 우리들을 훈련하시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두실 수 도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거친 광야를 생각해 보십시 오. 70년의 세월 동안 먼 타국 땅에서 해매여야 했던 그런 광야였습니다. 이 70년이 당시 저들에게는 쓰디쓴 세월이 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하는 그런 자리였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만나는 광야 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쓰디쓴 맛을 봐야 하는 거친 들일 수 있습니다. 찬바람을 맨몸으로 맞이하여야 하는 그런 거친 들일 수 있습니다. 누구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오는 사람 없는 그런 광야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잘못을 가슴 깊이 새기는 그런 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들의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들의 삶이 끝장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 친 들이 변해서 소망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응대하리라 이렇게 거친 들이 변해서 소망의 자리로 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계속해서 15절을 읽습니다. 거기서 응대하기를 여기 응대한다는 말은 화답한다 노래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높이는 일 을 말합니다. 어떻게요 예, 어렸을 때와 애굽에서 올라오던 때와 같이 할 것이라 말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이 애굽에서 올라오던 때 어떻게 찬양을 했는지 아십니까 [출 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 다 [출 15:20-21]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 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 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라 말하고 있습니다. 첫사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처음 불렀던 그 구원의 노래를 부르 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사역을 보며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 세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노래가 변질이 되었습니다. 재물을 바라보며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하였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바라보며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거친 들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깊이 저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신 다음 하나님은 저들을 위로 하시고 다시 회복하십니다. 그랬더니다시 하나님을 향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고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시고 계십니까 재물을 향해, 명예를 향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저 거친 들녘으로 내 모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그래도 그냥 그대로 두시겠지 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친 들판으로 여러분들을 내몰아서 여러분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혹 여러분들이 거친 들로 내던져 지지는 않았습니까 그래서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깊이 회계하십시오. 가슴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가슴으로 하나님께 회계하십시오. 그리고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하나님의 위로 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하실 것입니다. 장가들어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9절에 있는 말씀을 보십시다.  이 구절이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가들겠 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장가라는 말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처음 하는 혼인을 결혼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는 혼인을 재혼이라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 하는 결혼과 두 번째 하는 혼인을 구분해서 사용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장가들어라는 말은 처음 하는 혼인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 니면 재혼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처음 하는 혼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스 라엘 백성들이 진정으로 처음 하는 혼인입니까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과 혼인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이 혼 인을 잘 지켜 나갔습니까 그렇습니다.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음행 하였습니다. 혼인을 깨뜨리고 다른 사람에게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진노하셨죠.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신 세였습니다. 차라리 창녀라고 일컫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들과 혼인을 하 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저들과 혼인을 하시면서도 마치 처음 하는 결혼처럼 저들을 그렇게 대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세상을 사랑하여 만신창이가 된 창기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마치 처음 결혼을 하는 것처럼 저들을 사랑으로 맞이하시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저들에게만 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도 만신창이가 된 이 스라엘 백성들과 다를바 없는 그런 사람들이였습니다. 마치 고멜과 같이 세상과 더불어 간음을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끊임없이 세상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때묻지 않는 여인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맞이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처음 하는 혼인과 재혼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하는 혼인은 신랑이 지참금 을 가지고 오지만 재혼은 지참금이 없습니다. 왜 신랑이 지참금을 가지고 옵니까 그만큼 신부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지참금을 지불하실 정도로 귀하단 말입니까 저들이 그렇게 멋지고 아릅답습니까 아닙니다. 지참금을 지불 할 정도로 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은 저들에게 지참금을 지불하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들을 그만큼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가지고 오시는 지참금은 어떤 것입니까 19,20절을 보면 의, 공변, 은총, 긍휼, 진실함이 지참금이라 말씀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오셔서 저들을 의롭게 하시고 진실하게 하십니다. 긍휼로 여 기십니다. 그래서 저들을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사실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사랑하여 만신창이가 된 우리들과 혼인 하시기 위해서 지참금을 가지고 다가오십시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들과 혼인하기 위해서 가지고 오신 지참금은 어떤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의 생명이었습니다. 이 생명을 내어놓으심으로 우리들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공변되 게 하셨습니다. 진실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랑한 단말입니까 과연 우리들이 이렇게 혼인을 할만한 사람들입니까 응하고 응하리라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21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보십니다.  어떤 말인지 쉽게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저 응하고 응한다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먼저 응한다는 말을 이해하십시다. 응한다 무슨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응한다는 것은 응답한다는 말입니다. 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십시다. 22절 제일 마지막의 것이 무엇입니까 예, 이스르엘입니다. 자 여기에 무엇이 응답합니까 그렇습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응답을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필요로 했기 때문입 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르엘이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도주와 기름과 곡식들이 응답을 합니다. 그러면 이 를 위해서 누가 응답을 합니까 예, 땅이 응답을 합니다. 그리고는요 예, 하늘이 응답을 합니다. 그리고는요 예, 하나님이 응답을 합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이스르엘 백성들이 필요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하여 응답하시겠다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 사실은 아무것도 위대한 것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응답하겠다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운명을 뒤바꿔 놓습니다. 여러분 혹 이스르엘이라는 말의 뜻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예, 그 뜻은 흩을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또 로루하마라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예, 그 뜻은 어떤 뜻이었습니까 긍휼을 얻 지 못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또 로암미라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어떤 뜻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이름들은 누구의 이름이었습니까 예, 고멜의 음란한 자녀들의 이름들이었으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 들의 운명을 나타내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3절을 보십시다. . 어떻게 됩니까 저주받은 이름들이 바뀌게 됩니다. 축복의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운명이 바 뀐 것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이들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저들의 운 명을 바꾸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운명을 바꾸 게 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들을 살게 했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들을 지금도 살립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나의 간증 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노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우리 다같이 이 노래를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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