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관대 (행11:1-30)
본문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전도를 했다는 사실이 예 루살렘 교회에 알려지자 할례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 일로 인하여 베드로 를 힐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인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사실은 배 타적인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로서는 매우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 습니다. 그럴것이 그당시에는 이방인들을 '지옥의 땔감'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 다고 여겼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지냈다고 하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였습니다. 이는 유대인이 라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수준이 아직도 유대주의 적이요, 옛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내가 누구관대-하나님이 깨끗하다 하신 것을 속되다 하겠느냐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에 대한 순종이였을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행 11:5-9) 이 때의 베드로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행11:4).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 앞에 서서 그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그에게서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치던 옛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일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돌아온 피곤한 그에게 예루살렘 교회는 마땅히 환영과 찬사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비난과 야유섞인 조롱으로 맞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분이 오르고 화가나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사람의 환영과 비난보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자신으로 조금 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 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을진데 사람의 환대나 야유 앞에서 춤을 추는 광대가 아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분이 나를 아십니다. 나의 앉고 일어 섬을 아십니다. 나의 사랑을 아십니다. 내가 어떻게 주를 섬긴 것과 복음을 위하여 당한 수모와 고통을 아십니다. 그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날에 정녕 갚아주리라! 복음은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것입니다. 복음은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 영적으로 어려서 이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넘어서야 할 이 편견의 장벽은 열띤 논쟁이나 사도적인 권위로 누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실을 사실대로 설명함으로서 성도 들을 납득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 오해를 풀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최상의 해결책인 것입니다. 대부분 거짓되고 과장 된 말과 잘못된 선입관 때문에 맞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스스로가 넘 겨 짚어서 오해하고, 우리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 내가 누구관대-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둘째로 이 사건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이요, 자신은 이에 대한 증인일 뿐이다는 것입니다. "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님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11:15-17)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성령님의 사역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 속에 자기들은 고아와 같이 버려짐을 당하게 되 었다고 슬퍼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이 오히려 너희들에게는 복이 된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을 왜 보내셨을까요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을까요 주님께서는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권능은 어디에 쓰라고 주셨을까요 이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을 삼도록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으면 여러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인격과 생활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나아가 신령한 은사 를 받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성령님의 사 역은 결국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도록 우리를 세워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이라고 못박아 두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님들은 예루살렘을 넘어서서 온 유대로, 그리고 사 마리아로, 땅 끝으로 가야한다는 말씀 앞에 세워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만일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 매일 파벌과 분쟁을 일삼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교회로 전락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령님의 역 사라고 하면 모두 잠잠하여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알았습니다. 비록 자신들에게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고, 분하고 억울하다고 느낄지라도 그들은 내가 누구관데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는 순종하는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결과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의 교회인 안디옥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 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충성된 일군인 바나바를 기쁨으로 파송해 주었던 것 입니다. 그리하여 안디옥교회는 날로 큰 부흥을 이루어 가게 되었습니다.
3. 내가 누구관데-이 일에 나를 불러 쓰시는가
1). 내가 누구관대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시는가 "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11:22-24) 교회의 부흥은 소문이 좋게 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에 대 하여 어떤 소문을 내고 있습니까 ! 또 우리를 지켜보는 이웃사람들은 우리 교회 에 대하여 어떤 소문을 듣고 있습니까 !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할 때 옵니다. 나아가 모든 성도님 들이 굳은 마음으로 주 예수의 복음에 뿌리를 내릴 때 옵니다. 그 누구가 흔들 어도 어떤 환경의 바람이 불어도 '내 가는 길을 우리 주님만은 아신다.' 고 우뚝 서서 흔들리지 않을 때 교회는 힘있게 부흥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성도들의 변화된 생활이 능력이 되어 증거될 때 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 착한 사람들이다하고, 이웃의 믿는 사람들이 저들은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다하고 인정할 때 옵니다.
2).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시는가 이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의 고백입니다. 바나바는 유대인으로 서 유대 민족을 사랑한 사람이지만 민족주의를 극복합니다. 그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그 어떤 편견과 고집을 내버리고 순 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확실히 그는 열린 마음과 넓은 사랑과 높고 깊 은 생각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극적으로 회심한 사울 즉 바울은 그 회심만큼이나 그의 신학적인 입장은 개혁 적인 것이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갖고 있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신학적인 입장에서는 받아 들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를 고향인 다소 로 내려 보냈고 사울은 그후 10여년을 고향에 묻혀살게 됩니다. 아무리 기가막 힌 진리를 알고 진리를 전하겠다는 사명에 불타도 선포할 자리가 없고, 들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릴 수도 있었던 사울, 즉 바울은 열린 마음의 사람 바나바의 손길에 이끌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결국 바울은 위대한 사도로서 기념비적인 인물로 세워지고 오히려 바나바는 그의 그늘에 묻혀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격함으로 외칩니다. " 주님! 제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십니까!"
3).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교회를 돕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시는가 안디옥 교회의 성도님들은 예루살렘에 크게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때가 로마의 네번째 황제인 글라우디오 시대입니다.
A. D.44년에서 47년에 걸쳐 흉년이 들었으니 가 히 그 정도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각각 그 힘대로 부조(扶助)를 했던 것 입니다. 종족과 나라와 지경을 넘어선 이 형제애! 그들의 부조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였습니다. 자신들의 교회에도 할 일이 많고 그만큼 돈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님 들 중에는 생활이 어려워 오히려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 가야할 분들도 계셨을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가 닥친 기근을 자신들의 일로 여기 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모두 각각 힘대로 이 일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고백합니다. " 주님! 제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교회를 돕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십니까! "
1. 내가 누구관대-하나님이 깨끗하다 하신 것을 속되다 하겠느냐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에 대한 순종이였을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행 11:5-9) 이 때의 베드로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행11:4).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 앞에 서서 그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그에게서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치던 옛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일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돌아온 피곤한 그에게 예루살렘 교회는 마땅히 환영과 찬사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비난과 야유섞인 조롱으로 맞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분이 오르고 화가나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사람의 환영과 비난보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자신으로 조금 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 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을진데 사람의 환대나 야유 앞에서 춤을 추는 광대가 아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분이 나를 아십니다. 나의 앉고 일어 섬을 아십니다. 나의 사랑을 아십니다. 내가 어떻게 주를 섬긴 것과 복음을 위하여 당한 수모와 고통을 아십니다. 그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날에 정녕 갚아주리라! 복음은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것입니다. 복음은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 영적으로 어려서 이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넘어서야 할 이 편견의 장벽은 열띤 논쟁이나 사도적인 권위로 누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실을 사실대로 설명함으로서 성도 들을 납득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 오해를 풀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최상의 해결책인 것입니다. 대부분 거짓되고 과장 된 말과 잘못된 선입관 때문에 맞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스스로가 넘 겨 짚어서 오해하고, 우리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 내가 누구관대-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둘째로 이 사건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이요, 자신은 이에 대한 증인일 뿐이다는 것입니다. "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님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11:15-17)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성령님의 사역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 속에 자기들은 고아와 같이 버려짐을 당하게 되 었다고 슬퍼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이 오히려 너희들에게는 복이 된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을 왜 보내셨을까요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을까요 주님께서는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권능은 어디에 쓰라고 주셨을까요 이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을 삼도록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으면 여러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인격과 생활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나아가 신령한 은사 를 받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성령님의 사 역은 결국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도록 우리를 세워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이라고 못박아 두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님들은 예루살렘을 넘어서서 온 유대로, 그리고 사 마리아로, 땅 끝으로 가야한다는 말씀 앞에 세워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만일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 매일 파벌과 분쟁을 일삼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교회로 전락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령님의 역 사라고 하면 모두 잠잠하여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알았습니다. 비록 자신들에게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고, 분하고 억울하다고 느낄지라도 그들은 내가 누구관데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는 순종하는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결과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의 교회인 안디옥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 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충성된 일군인 바나바를 기쁨으로 파송해 주었던 것 입니다. 그리하여 안디옥교회는 날로 큰 부흥을 이루어 가게 되었습니다.
3. 내가 누구관데-이 일에 나를 불러 쓰시는가
1). 내가 누구관대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시는가 "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11:22-24) 교회의 부흥은 소문이 좋게 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에 대 하여 어떤 소문을 내고 있습니까 ! 또 우리를 지켜보는 이웃사람들은 우리 교회 에 대하여 어떤 소문을 듣고 있습니까 !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할 때 옵니다. 나아가 모든 성도님 들이 굳은 마음으로 주 예수의 복음에 뿌리를 내릴 때 옵니다. 그 누구가 흔들 어도 어떤 환경의 바람이 불어도 '내 가는 길을 우리 주님만은 아신다.' 고 우뚝 서서 흔들리지 않을 때 교회는 힘있게 부흥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성도들의 변화된 생활이 능력이 되어 증거될 때 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 착한 사람들이다하고, 이웃의 믿는 사람들이 저들은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다하고 인정할 때 옵니다.
2).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시는가 이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의 고백입니다. 바나바는 유대인으로 서 유대 민족을 사랑한 사람이지만 민족주의를 극복합니다. 그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그 어떤 편견과 고집을 내버리고 순 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확실히 그는 열린 마음과 넓은 사랑과 높고 깊 은 생각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극적으로 회심한 사울 즉 바울은 그 회심만큼이나 그의 신학적인 입장은 개혁 적인 것이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갖고 있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신학적인 입장에서는 받아 들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를 고향인 다소 로 내려 보냈고 사울은 그후 10여년을 고향에 묻혀살게 됩니다. 아무리 기가막 힌 진리를 알고 진리를 전하겠다는 사명에 불타도 선포할 자리가 없고, 들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릴 수도 있었던 사울, 즉 바울은 열린 마음의 사람 바나바의 손길에 이끌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결국 바울은 위대한 사도로서 기념비적인 인물로 세워지고 오히려 바나바는 그의 그늘에 묻혀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격함으로 외칩니다. " 주님! 제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십니까!"
3).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교회를 돕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시는가 안디옥 교회의 성도님들은 예루살렘에 크게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때가 로마의 네번째 황제인 글라우디오 시대입니다.
A. D.44년에서 47년에 걸쳐 흉년이 들었으니 가 히 그 정도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각각 그 힘대로 부조(扶助)를 했던 것 입니다. 종족과 나라와 지경을 넘어선 이 형제애! 그들의 부조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였습니다. 자신들의 교회에도 할 일이 많고 그만큼 돈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님 들 중에는 생활이 어려워 오히려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 가야할 분들도 계셨을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가 닥친 기근을 자신들의 일로 여기 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모두 각각 힘대로 이 일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고백합니다. " 주님! 제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교회를 돕는 일에 나를 불러 쓰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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