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지키리라 (사41:8-16)
본문
인간은 여러 고비를 넘습니다. 때로는 장미 빛 들판을 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험산 준령을 넘기도 합니다. 때로는 꽂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가파른 바위 절벽을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 오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두려움과 절망에 휩싸입니다. 나 를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고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인도와 보호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나를 지켜줄 것입니까 누가 보장해 줍니까 누가 든든한 백이 되겠습니까 누가 우리 의 후견인이 될 수 있습니까 저는 지난주 성공시대라는 텔레비젼 프로를 감동 있게 봤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독일 본 대학의 이종수 박사입니다. 이종수 박사는 간이식 수술 세계 최초 시술자입니다. 이 공로로 독일인 도 되기 힘든 본 대학의 종신교수로 제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간증을 들어보니 드라마틱했습니다. 동양인의 차별과 수 모를 무릎 쓰고 이민 몇 년만에 드디어 인간의 간이식을 시술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물론 그전에 비밀리에 동 물 실험은 마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간이식 수술은 세계 최초로 하는 겁니다. 이 수술이 잘못되면 본 대학에서 쫓겨 나야 할 형편입니다. 드디어 수술실에서 간이식 수술을 마치고 환자가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피를 말리던 순간이었던지, 이종수 박사는 그 때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한 번만 저와 함께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 환 자를 제발 살려 주시면 다시는 의사로서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종수 박사는 연구 욕심에 인간 보다 연구 성과에 더 집착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고 서원까지 한 것 입니다.
그런데 간이식을 받은 환자가 오랜 시간끝에 드디어 손 발이 움직이더니 깨어 난 것입니다. 수술실에 있던 몰려 있던 간 이식 팀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이 사실은 전 세계로 긴급 타전되 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종수 박사가 있은 것입니다. 과학적 엄밀성을 치열하게 추구해야하는 의사로서, 최종 순간에는 전능자 하나님을 피 말리게 간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과학의 지대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 께 하시느냐 이게 포인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인 이스라엘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선 택된 백성이면 뭐합니까 언약의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뭐 합니 까 지금은 바벨론으로 끌려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고통스러운데요. 포로생활의 기간은 긴데요. 마음껏 예배조 차 드릴 수 없는데요. 그래서 모두가 지쳐 있습니다. 하나님은 떠났고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어 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힘찬 위로의 멧세지가 들려 온 것입니다. 이사야 41장은 포로생활에 처한 이스라엘에게 주는 위로의 멧세 지입니다. 동방에서 한 구원자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 고 말합니다. 페르시아의 제왕 고레스 왕입니다. 실제로 이 고레 스왕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포로생활에서 해방 시켜 줍니다. 그러나 이것을 신약시대로 확대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당하고 있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 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 택한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씨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 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9절) 바벨론 포로로 완전히 쳐 박혀 버린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선택된 백성, 야훼의 선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전염병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퍼져 갔습니다. 이런 극도의 절망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나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기대 를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잘못한다고 영영 버 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징계를 내릴지언정 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녀를 징계하기는 하지만 버리지는 안듯이 말입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큰 위로와 함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고독에 빠집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서는 원망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제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어린아이가 하나님께 한 장의 편지를 썼습니다. "친애하는 하나님, 오는 금요일에 우리는 두 주간의 휴가를 떠납니다. 그래서 교회를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교회에 잘 계시기 바랍니다. 참! 하나님은 언제 휴가 가시지요" 이 어린아이의 생각처럼, 우리가 휴가를 떠나면 하나님은 따라 오지 않습니까 휴가를 떠나든, 고통 중에 있든, 먼 먼 방황의 땅이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디서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포로생활 깊은 고통 중에도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 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위대한 보호의 선언은 바벨론 포로 생활 깊은 시기에 터져 나왔습니다. 포로생활, 극도의 고통이 깊어진 그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버린 것이 아니야!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어! 너는 나의 종이야, 나는 너의 하나님이야!" 아주 분명한 어조로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눈물 나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는 고통 끝입니다. 이제는 절망 끝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개 입하시면 달라집니다. 이제는 정말 주님이 개입하실 때입니다. 하나님이 나 설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의하여 살펴볼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라는 구절입니다. 보세요.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 며(9절) 내가 너를 택하고(9절)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10절)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10절) 내가 너를 도우리라(13절)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15절)" 주제는 "내가 너를"입니다. '내가'라는 말은 어법 상으로는 일인칭 강조사('아니')를 썼습니다. 말하자면 그냥 무의식적으로 쓴 말이 아니라, '나'를 강조하 면서 힘주어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의 가장 핵심 단 어는 '내가'라는 말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겁니다. 장관의 말의 무게가 다르고 청와대 비서관의 말의 무게가 다릅니다. 그래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담화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자신의 의지를 강조할 때 '본인은' 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문제는 풀리게 됩니다. 한 작은 나라의 대통령의 말의 무게가 이러한데, 하물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말씀의 무게는 얼마나 큰 것일까요 이 하나님 께서 직접 "내가"라는 말을 힘주어서 말합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10절)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벌써 여기에서 게임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사탄 의 공격은 원천 봉쇄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와중에서 공포와 번민에 시달 렸습니다. 무엇인가의 힘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순 간이었습니다. 그때 루터는 기운 없이 멍청하게 앉아 테이블 위 에 손가락으로 '비비트,비비트'라고 수없이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비비트'라는 말은 "그는 살아 계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이 사실만이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는 말은 10-13절 사 이에 무려 4번이나 나옵니다. '붙들리라, 도우리라, 굳세게 하리 라' 이런 말씀도 수차 반복됩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인도와 도움에 관한 구절이 365번 나온다고 합니다. 즉 하루하루 매일 주님의 도우심을 먹고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에 하루하루 의지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루에 한 번식 주님의 인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번 씩 이사야 41:10절이라도 복용한다면 우리의 절망은 단번에 극복 이 될 것입니다. "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0절) 전도자 요한 웨슬레가 말했습니다.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라고. 무엇이 든든하게 합니까 무엇이 최선입니까 돈이 아 닙니다. 당장의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희망의 해결책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10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약 속이 천근의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 라' '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의 신앙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전도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킴 윅스라는 맹인 여성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 원에서 자랐는데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해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런 간 증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건너뜁니다.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 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발을 올려놓습니다.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다가 보면, 가고자하는 목 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기구한 운명에 장님이 저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았습니다." 참 멋있는 간증입니다. '내가 너와 지금 함께 하고 있잖니 자, 내가 너를 지금 굳세게 붙들고 있어! 두려워 말고 옮겨봐.' 이런 하나님의 인도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의지한 것입니다. 신세를 한 탄하지 않고 한발 걸음 한 발걸음 주님과 함께 걷다보니 빛나는 삶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를 굳게 믿은 사람이 누린 기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있는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 하신 말씀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입니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의 맨 마지막 구절입니다. 주 님의 이 마지막 말씀의 무게가 우주를 덮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 우리가 목 숨 다하는 날 까지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고수해야 합니다. 매일 이 말씀으로 샤워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과 절망이 물러가고 매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힘찬 삶이 되실 것입니다. 이런 기쁨이 한 주간의 삶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분의 간증을 들어보니 드라마틱했습니다. 동양인의 차별과 수 모를 무릎 쓰고 이민 몇 년만에 드디어 인간의 간이식을 시술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물론 그전에 비밀리에 동 물 실험은 마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간이식 수술은 세계 최초로 하는 겁니다. 이 수술이 잘못되면 본 대학에서 쫓겨 나야 할 형편입니다. 드디어 수술실에서 간이식 수술을 마치고 환자가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피를 말리던 순간이었던지, 이종수 박사는 그 때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한 번만 저와 함께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 환 자를 제발 살려 주시면 다시는 의사로서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종수 박사는 연구 욕심에 인간 보다 연구 성과에 더 집착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고 서원까지 한 것 입니다.
그런데 간이식을 받은 환자가 오랜 시간끝에 드디어 손 발이 움직이더니 깨어 난 것입니다. 수술실에 있던 몰려 있던 간 이식 팀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이 사실은 전 세계로 긴급 타전되 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종수 박사가 있은 것입니다. 과학적 엄밀성을 치열하게 추구해야하는 의사로서, 최종 순간에는 전능자 하나님을 피 말리게 간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과학의 지대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 께 하시느냐 이게 포인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인 이스라엘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선 택된 백성이면 뭐합니까 언약의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뭐 합니 까 지금은 바벨론으로 끌려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고통스러운데요. 포로생활의 기간은 긴데요. 마음껏 예배조 차 드릴 수 없는데요. 그래서 모두가 지쳐 있습니다. 하나님은 떠났고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어 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힘찬 위로의 멧세지가 들려 온 것입니다. 이사야 41장은 포로생활에 처한 이스라엘에게 주는 위로의 멧세 지입니다. 동방에서 한 구원자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 고 말합니다. 페르시아의 제왕 고레스 왕입니다. 실제로 이 고레 스왕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포로생활에서 해방 시켜 줍니다. 그러나 이것을 신약시대로 확대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당하고 있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 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 택한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씨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 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9절) 바벨론 포로로 완전히 쳐 박혀 버린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선택된 백성, 야훼의 선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전염병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퍼져 갔습니다. 이런 극도의 절망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나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기대 를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잘못한다고 영영 버 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징계를 내릴지언정 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녀를 징계하기는 하지만 버리지는 안듯이 말입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큰 위로와 함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고독에 빠집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서는 원망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제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어린아이가 하나님께 한 장의 편지를 썼습니다. "친애하는 하나님, 오는 금요일에 우리는 두 주간의 휴가를 떠납니다. 그래서 교회를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교회에 잘 계시기 바랍니다. 참! 하나님은 언제 휴가 가시지요" 이 어린아이의 생각처럼, 우리가 휴가를 떠나면 하나님은 따라 오지 않습니까 휴가를 떠나든, 고통 중에 있든, 먼 먼 방황의 땅이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디서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포로생활 깊은 고통 중에도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 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위대한 보호의 선언은 바벨론 포로 생활 깊은 시기에 터져 나왔습니다. 포로생활, 극도의 고통이 깊어진 그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버린 것이 아니야!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어! 너는 나의 종이야, 나는 너의 하나님이야!" 아주 분명한 어조로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눈물 나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는 고통 끝입니다. 이제는 절망 끝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개 입하시면 달라집니다. 이제는 정말 주님이 개입하실 때입니다. 하나님이 나 설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의하여 살펴볼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라는 구절입니다. 보세요.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 며(9절) 내가 너를 택하고(9절)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10절)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10절) 내가 너를 도우리라(13절)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15절)" 주제는 "내가 너를"입니다. '내가'라는 말은 어법 상으로는 일인칭 강조사('아니')를 썼습니다. 말하자면 그냥 무의식적으로 쓴 말이 아니라, '나'를 강조하 면서 힘주어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의 가장 핵심 단 어는 '내가'라는 말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겁니다. 장관의 말의 무게가 다르고 청와대 비서관의 말의 무게가 다릅니다. 그래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담화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자신의 의지를 강조할 때 '본인은' 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문제는 풀리게 됩니다. 한 작은 나라의 대통령의 말의 무게가 이러한데, 하물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말씀의 무게는 얼마나 큰 것일까요 이 하나님 께서 직접 "내가"라는 말을 힘주어서 말합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10절)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벌써 여기에서 게임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사탄 의 공격은 원천 봉쇄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와중에서 공포와 번민에 시달 렸습니다. 무엇인가의 힘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순 간이었습니다. 그때 루터는 기운 없이 멍청하게 앉아 테이블 위 에 손가락으로 '비비트,비비트'라고 수없이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비비트'라는 말은 "그는 살아 계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이 사실만이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는 말은 10-13절 사 이에 무려 4번이나 나옵니다. '붙들리라, 도우리라, 굳세게 하리 라' 이런 말씀도 수차 반복됩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인도와 도움에 관한 구절이 365번 나온다고 합니다. 즉 하루하루 매일 주님의 도우심을 먹고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에 하루하루 의지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루에 한 번식 주님의 인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번 씩 이사야 41:10절이라도 복용한다면 우리의 절망은 단번에 극복 이 될 것입니다. "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0절) 전도자 요한 웨슬레가 말했습니다.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라고. 무엇이 든든하게 합니까 무엇이 최선입니까 돈이 아 닙니다. 당장의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희망의 해결책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10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약 속이 천근의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 라' '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의 신앙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전도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킴 윅스라는 맹인 여성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 원에서 자랐는데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해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런 간 증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건너뜁니다.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 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발을 올려놓습니다.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다가 보면, 가고자하는 목 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기구한 운명에 장님이 저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았습니다." 참 멋있는 간증입니다. '내가 너와 지금 함께 하고 있잖니 자, 내가 너를 지금 굳세게 붙들고 있어! 두려워 말고 옮겨봐.' 이런 하나님의 인도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의지한 것입니다. 신세를 한 탄하지 않고 한발 걸음 한 발걸음 주님과 함께 걷다보니 빛나는 삶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를 굳게 믿은 사람이 누린 기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있는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 하신 말씀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입니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의 맨 마지막 구절입니다. 주 님의 이 마지막 말씀의 무게가 우주를 덮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 우리가 목 숨 다하는 날 까지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고수해야 합니다. 매일 이 말씀으로 샤워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과 절망이 물러가고 매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힘찬 삶이 되실 것입니다. 이런 기쁨이 한 주간의 삶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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