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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행18:5-10)

본문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도가 된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자는 저주받는 것으로 여긴 유대인들은 바울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메시야라고 주장하며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보고 바울이 가는 곳마다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윤리적으로 부도덕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있던 고린도 지방에서도 바울의 전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사역에 반대하는 도전과 박해는 이 지역에서도 뒤따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복음 전도자가 된 바울이었지만, 그도 역시 인간 이었기에 박해로 인하여 약해지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3에서 그는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사도행전18장 9절부터 10절에 보면 바울선생이 고통 중에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찾아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위로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올바르게 살려고 할 때 주위에서 오는 시험과 핍박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절망의 깊은 심연에 빠질 때, 바울을 위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며 위로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때때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오더라도 결코 좌절하고 포기하거나 넘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심을 굳게 믿고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서 마침내 승리를 이루시기를 축원 합니다. 엘리야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당대의 권력자인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 앞에 나가서 담대히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였고, 한 번의 기도로 3년 6개월 동안 비를 그치게 하였으며,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홀로 싸워서 하나님만이 모든 자연을 지배하시는 참 신이심을 보인 능력있는 선지자 였었습니다. 그러나 아합 왕의 부인인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할 때,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그의 호소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나를 살리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오히려 지금 죽는 것이 낫사오니 나의 생명을 취하소서”(왕상19:5)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 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 19:10). 엘리야는 당대에 능력잇는 선지자 였었지만 그도 인간 이었기에 절망에 빠져 하나님께 울부짖는 나약한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좌절과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엘리야를 호렙 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이적을 통하여 그의 큰 뜻을 보여 주시고, 믿음 있는 신실한 자 7,000명을 통해서 그의 왕국을 보존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이렇게 위로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면 쉽게 성공하고, 출세하고, 신앙 생활을 잘 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고통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찾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통해서만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네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의 인생 여로에는 십자가를 지고 통과해야 할 고통의 문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통과 좌절의 순간이 전혀 없는 삶과 신앙은 우리를 깊고 의미있는 삶과 신앙의 차원으로 이끌지 못하고 쉽게 쓰러지게 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지금 고통과 자포자기의 신앙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굳세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 안에 있는 주의 백성에게 그것은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위한 일시적인 고통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더 깊은 신앙의 경지로 이끌어 가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359장의 작사작곡자 찰스 프레드릭 웨이글(Weigele)은 음악을 전공하고 목사가 되어, 강단 목회보다 순회 전도사 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순회 전도자 로서의 사역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결국 그는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이혼한 웨이글은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제 아내도 떠났으니 무슨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겠는가 절망과 좌절에 빠진 그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가 높은 절벽에서 아래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 하셨습니다. 그리고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웨이글, 너를 지금까지 돌본 내가 너를 돌보지 않겠느냐 언제나 너와 함께 있었는데 왜 이러한 초라한 모습을 보이느냐 네가 받은 사명을 어찌할 것이냐” 그는 이러한 음성을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극적인 체험을 한 후 남은 생애를 더 열심히 복음 전도 사역을 위해 바쳤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강력히 느끼고, 특히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나서 지은 찬송가가 바로 359장입니다. 이 찬송의 원문은 이렇게 고백 하므로 시작합니다. “오 주님이시여! 주님은 지금까지 저를 주님의 품 속에 품어 주셨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 생명 다하는 날까지 주님과 함께 어디든지 갈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사는 삶의 그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담대하게 승리하며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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