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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성루에 서리라 (합2:1-4)

본문

주전 6세기 남조 유다는 그 종말기적 현상이 드러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요시야왕이 전사한 후, 그 뒤를 이어 여호아하스왕은 등극한지 3개월만에 애굽왕 바로느고에게 폐위되고 말았습니다(왕하23:32). 그 뒤를 이은 여호야김은 애굽에 호의를 얻으려고 많은 은과 금을 백성들에게 늑봉하여 정치적 사대주의를 꾀하며 백성을 괴롭게 하였던 임금이었습니다(왕하23:34-37). 그러면서 그는 사치한 마음으로 궁전을 크게 짓고, 백성들의 고역을 동원하고 압제하며, 무죄한자의 피를 많이 흘리게 하였습니다(22:13-19, 왕하24:4). 그후에 일어난 시드기야왕은 전혀 신앙이 없었습니다. 이 시대의 국제적인 정세는 앗수르가 점점 약해지면서 갈대아, 곧 바벨론 세력이 활발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속에서 ‘포옹하다’ 곧 ‘안으리라’(embrace)는 이름의 뜻을 가진 하박국이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포옹하셨고 하박국은 자기 조국과 백성을 포옹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호흡하고 있는 그 시대가 간악과, 패역의 시대, 겁탈과 강포의 시대 변론과 분쟁이 쉬지 않는 시대,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시대라고 하였습니다(합1:3-4). 다수의 악인들이 소수의 의인들을 에워싸므로, 숨막히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나님께 항변을 토로하였습니다(합1:4). 말하자면 왜 의인이 악인들에게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하는 항변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대답하여 주기를 새로운 세계의 신흥제국 갈대아를 일으켜서 너의 조국 유다를 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갈대아 곧 바벨론은 1 사납고 급한 백성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합1:6).
2 저들은 침략주의자라고 하였습니다(합1:6). 3 저들은 자기의 힘만 믿는 무소불위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합1:8).
4 야수성을 띄고 있는 정복주의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합1:8). 5 저들은 잔학한 살상을 서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합1:9)6 천하를 멸시하는 자만주의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합1:10). 7 저들은 자기힘을 신격화하는 극에 달한 인본주의적 자율주의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1:11). 이러한 바벨론의 침략을 받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선지자 하박국은 크게 놀라고 당황하면서 항변 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전 부터 계시기로 우리가 사망에 이를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결코 우리가 침략자 바벨론에 의해서, 마치 낚시와 그물에 잡혀가는 고기떼처럼 잡혀가서 망할 수가 없다고 항변하였습니다(합1:12-17).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피를 받은 선민 유다가 어찌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는 내용의 뜨거운 항변입니다. 그후에 선지자 하박국은 내가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고 마음을 먹고, 거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기로 하는 내용의 배경입니다. 우리 함께 ‘내가 나의 성루에 서리라’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을 찾아가 보기를 원합니다.
내가 나의 성루에 서리라! 이말은 I선지자의 본무(本務)로 되돌아감을 뜻합니다 본문 2장 1절 중에 내가 파수하는 곳에서며, 성루에 서리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 ‘파수하는 곳’(=미쉬메레드=my watch)은 ‘지키다’‘망을 보다’등의 뜻을 가진 동사 쇠마르에서 유래 된 단어로 경계, 감시, 망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본문의 경우는 파수대(Watch tower)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루’(=마초르)는 ‘가두다’‘에워싸다’는 동사 ‘추르’에서 나온 말로 ‘높은 성벽’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높는 성벽 위에 세워진 파수대’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이 실제적으로 높은 성벽위에 세워 놓은 파수대를 가리키는 말인가 아닙니다. 지금 선자자 하박국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파숫군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군무에 종사하는 군인이라고 하면 성벽 위의 파숫대에 올라감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칼을 잡은 군인이 아니라 영의 파수꾼인 선지자입니다.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선지자를 파수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군인, 영적 전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내가 나의 성루 파수대 위에 서리라 함은 상징적 표현입니다. 선지자를 파수꾼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상징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선지자의 파수대’를 뜻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곧 영의 망대를 뜻합니다. ‘선지자의 파수대’란 어떤 곳인가 그곳은 높은 곳을 의미합니다. 성을 지키기 위하여, 적황(敵況)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높은 곳의 산성을 의미합니다. 거기에 올라가 ‘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선다’는 말은 ‘내 자신을 서게 하리라’라는 말로 고요하고 건장미 있는 자기 정립의 각성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선지자의 파수대란 지형적으로 따로 높은 성벽이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영적으로 높은 곳입니다. 심령의 망대를 뜻합니다. 그 영적 파수대 곧 영적 망대가 어떤 곳 일까 그것은1 겟세마네 곧 십자가의 구속에 감격하는 신앙입니다. 갈보리를 찾아가는 밀실입니다. 십자가의 사랑만큼 높고, 깊은 성루는 없습니다.
2 기도하는 밀실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높은 곳에 따로 올라가는 사람입니다. 3 회개 자복하는 밀실입니다. 회개 자복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보고 만나는 사람입니다.
4 겸손하는 밀실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5 독경하는 밀실입니다. 성경을 믿고, 사랑하고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언제나 영안이 밝아 영지작용이 활발하기 때문입니다. 6 감사 찬송하는 밀실입니다. 감사 찬송의 생활에는 언제나 눈물이 있고,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7 자기의 임지일 수도 있습니다. 곧 자기가 섬기는 주님의 몸된 교회 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바로 선지자의 파수대입니다. 참으로 높은 성벽위에 세워진 선지자의 파수대입니다. 선지자외에는 아무도 가거나 올라갈 수 없는 높고 높은 망대입니다. 바로 여기를 올라감이 곧 선지자의 본무입니다. 군인의 본무는 성벽위의 파수대를 올라가야 합니다. 그는 거기에서 적군의 내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그의 본무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나의 성루에 서리라’는 하박국의 마음은 내가 나의 본무로 나의 본래 위치로 돌아가리라는 뜻입니다.
II.하나님의 묵시를 기다리고 받기 위한 목적입니다. 본문 2장 1절에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런지, 기다리고, 바라 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런지 보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에 그가 내게 . 하는 말은 그가 내 속에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묵시를 어떤 외적인 시각이나, 감각 작용이나, 청각작용으로 받으려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심령의 소리’로 듣고자 한 것입니다. 또 본문에 .기다리고 바라보며. 라는 말은 ‘애써 기다림’‘간절한 기다림’‘학수고대’‘초조한 기다림’‘목마른 기다림’을 뜻합니다. 낙심치 않고, 의심치 않고, 방관하지 않고, 완전한 기대와 확실한 소망 가운데서 살펴보면서 기다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런지’를 기다리고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곧 선민이 그 죄 때문에 결코 바벨론의 침략에 망할 수가 없다는 자신의 항변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림을 뜻합니다. 바로 이것이 선지자의 활로(活路)입니다. 파수꾼의 망대, 심령의 망대는 하나님을 보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멋진 기다림이요, 의미 있는 기다림이요, 필연적인 기다림이 아닌가 참으로 선지자의 망대는 하나님의 말씀, 곧 묵시를 기다리고 받기 위하여 올라가는 곳입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선지자 된 특권이요, 자랑이요, 명예요, 의무요 권리요 사명입니다. 아니 선지자의 선지자 된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묵시, 곧 하나님의 대답이 선지자에게 있어야 자신도 살고, 가정도 살고, 나라도 살고 세계도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선지자의 망대는 세계의 소망이 아닌가
III.이신득의의 복음을 받았습니다. 본문 2장 4절은 하나님이 성루에 올라가서 기다리는 하박국에게 들려 준 대답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주시는 묵시(말씀)을 1 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하였습니다(합2:2). 이 말은 두가지 의미가 다 가능합니다. 하나는 우리 말의 번역처럼 판에 기록된 말씀의 내용을 바빠서 빨리 달려가는 사람도 볼 수 있도록 명백히 크게 새기라는 뜻이고, 또 하나의 뜻은 그 판에 새긴 글의 내용을 읽은 자가, 그것을 전하기 위하여 달려갈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달려간다’는 말은 전파하라(prophesy)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렘23:21).
2 또 묵시는 정한 때가 있는데, 반드시 성취되고 말 종말적이요, 필연적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합2:3). 이 종말은 유다의 잠정적 종말 바벨론의 종말, 세계의 우주적 종말까지를 다 포함하는 구속사적 예언의 의미도 됩니다.
3 뿐 아니라 더딜지라도 기다려야 할 인내와 소망의 계시라고 하였습니다(합2:3).
4 그 묵시의 내용은 바벨론은 망하고 유다는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이었습니다. 2장 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대표인 바벨론의 종말을 예고하는 말이고, 또한 불신앙의 우주적 종말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교만과 부정직이란 불신앙의 내용을 말하는 뜻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의 직접적 의미는 선택받은 선민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믿음으로 바벨론의 침략에서 망하지 않고 살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사람 자신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구속사적 의미는, 1 의인이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된다는 뜻입니다.
2 그 믿음은 인간 자신들의 산물이 아니고 완전히 하나님 자신의 은혜의 산물이라는 사실입니다(엡2:8). 3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금세의 구원과 영원한 내세의 구원까지를 포함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죄인에게 복음이 아닌가 바울은 이 하박국의 예언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주제로 삼았습니다(롬1:17, 갈3:11).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실을 인용하여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히10:38). 오직 죄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신분갱신)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오직 믿음으로 영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판에 명백히 새겨 모든 사람에게 알리도록 하라고 한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서는 1장이 죄인이고 2장이 믿음이고 3장은 믿음의 결과로 오는 구원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박국 선지자는 그의 성루에서 이신득구의 복음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학우 여러분! 하나님이 전개 하시는 전 구속사 과정에는 당신께서 구속사 성취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은 피조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 손의 하신 일을 나타내었습니다. 날은 날에게 말을 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는데 동원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건 모든 인류들과 그 업적과 문화들은 구속운동의 수단으로, 다시 말하면 선교적 수단으로 사용하십니다. 그중에도 구약에 이스라엘 선민이나, 그 선민을 위하여 세워주신 선지자들은 직접으로 구속사 운동이 기용하였습니다.
신약의 사도들과,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과 그리고 모든 전도자들은 당신의 복음운동에 직접 기용하여 사용하십니다. 하박국도, 그리고 오늘 여기에 앉아있는 저와 여러분도 동일한 축복의 사명에로 기용되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파숫꾼으로서 자기의 성루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던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하여 내가 나의 성루에 올라가 서겠다 고 결심하였습니다. 남의 성루가 아닌 나의 성루, 내가 파수하는 곳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기의 본무(本務)에로 돌아감을 뜻합니다. 자기가 받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감을 뜻합니다. 싸우는 병사에게 파수대가 없다면 자신과 백성이 함께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려신학교는 저와 여러분이 올라가서 서야 할 오늘의 한국과 세계의 성루요, 파수대입니다. 심령의 망대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섬기는 주님의 교회는 우리의 파수대요, 성루요, 진지요, 방패입니다. 이 망루에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계시의 음성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이 망루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바라보고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박국은 말합니다. .그리하였더니. (합2:1).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였다 (합2:2)고 하였습니다. 하박국의 기다림은 헛될 수가 없었습니다. 확실하고 확실한 대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언약의 하나님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답은 바로 ‘복음’ 곧 기쁜 소식이었습니다.곧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는 이신득구의 복음이었습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복음이요 (속히 이를 복음), 종말론적인 복음이요, 계획된 복음이요(정한 때의 복음), 정녕 이루어지고 말 , 성취되고 말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박국은 그 복음을 명백히 판에 새기고 백성의 가슴속을 달려갈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신득구 복음을 목판이 아닌, 금판이 아닌, ‘책에 기록된 복음’‘완성된 복음’ 우리 심령비에 새겨진 복음을 가지고 달려가고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1994년 제 2학기에도 하나님이 세워주신 고려신학교의 성루, 곧 나의 성루, 여러분의 성루에 올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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