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요 (욘1:11-16)
본문
여리고성 무너짐-내가 안했어요 어느 주일학교 공과시간에 주일학교 선생님 한 분이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린 이 사건을 주제로 성경을 가르쳤답니다. 그리고 다 가르치고난 다음에 아이들에게 복습을 위해서 질문을 하기를 ‘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더니 어린아이들이 질겁을 하면서 ‘선생님 제가 무너뜨리지 않았어요’라고 하더란다. 이 일로 교회의 교육위원회가 모여 의논을 했답니다. 주일학교에서 지금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추궁을 하고 있는데 이것 누가 무너뜨렸는지 무너뜨린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구요. 누가 누너지게 했느냐고 물으니 거기에 참여한 대부분 사람들도 기겁을 하면서 자기가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더란다. 우리가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들에게서 찾아 볼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문제를 만나든, 어려움을 만날 때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내 탓이요가 아니라, 너 때문이라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해결이 되기는커녕 더 어려워지고, 힘만들어집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 해주고자 하는 것일까요
1.내 탓이다. 4절-말씀을 보면 요나가 타고 가는 배가 큰 풍랑을 만나 뒤집어 질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5절-그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각자 자기 신을 부르며, 또 살려고 배위에 있는 버릴만한 것은 다 버립니다. 왜 이런 난리들을 치고 있는가하면 4절-처음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대풍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대풍을 내린 하나님앞에 사람들은 별의별 방법으로 다 해보지만 상황은 여전했습니다. 그럼에도 되지 않으니까 7절-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그런지 보자고 제비를 뽑습니다. 뽑았더니, 요나가 걸렸습니다. 왜 요나가 걸리게 되었습니까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가서 외치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지 않고 도망가던 길이 바로 다시스에서 탄 풍랑을 만난 배입니다. 누구 때문에 이 배가 대풍을 만나게 되었는가요 요나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런 어려움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도 무엇이라 말합니까 (12절)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 아노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 어려운, 힘든, 아픈, 속상한, 괴로운, 손해되는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밖으로 우리나라를 보면 오늘 우리 나라는 총체적 위기를 만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떻습니까 6.25이후 최대 난국이라는 경제위기 구제금융으로 인한 경제적 환난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난 이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다 ‘너 때문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떻습니까 국회의원은 있는데 국회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개원이 되어 민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데는 뒷전이고, 어떻게하면 자기 당 세력을 불리느냐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장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질책이 심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한결같이 ‘다 너 때문에’라고 하면서 자기의 이익만 따지려 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어떻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이라는 것을 빌미를 삼아, 구조조정을 한다느니,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런데 한결같습니다.-다 너탓이다(노동자는 사용자, 사용자는 노동자) 다 남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다 보니 일이 더 꼬여 갑니다. 전직대통령 비판 저는 지금도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나, 그들이 행한것에 대해 메스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때가 제일 화가 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전직대통령을 향해 죽일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욕하고, 돌맹이질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뽑은 것이 누구입니까 회개해야 할 사람들은 노태우를, 김영삼에게 투표권을 행사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우매했습니까 경상도 사람들은 경상도 찍자고 몰려가고,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찍자고 몰려가고 그런 우매한 백성이 무매한 짓을 하고난 다음에 지금에 와서 그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회개 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기도하지 않고 우리의 소견대로 투표한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의 기도 제목중에 그런 것이 있다고 합니다. “워싱톤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게 하시거나 아니면 워싱톤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국민적인 자질을 주십시오.” 그게 미국 사람의 기도라고 합니다. 워싱톤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만 행여 그것이 어렵다면 그런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영적인 눈이라고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투표하면서 기도를 언제 해봤습니까 이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지 생각이나 하며 투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새벽에 느헤미야서를 강해하면서 느헤미야의 위대함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자기의 죄로 돌리고 하나님앞에 기도해 나갑니다. 좁게 우리 가정과 자신은 어떻습니까 가정의 문제가 생기면-남편 탓, 아내 탓, 부모탓, 자녀탓 다 남 탓으로 돌립니다(이웃교회-성경학교 하는중 어린이 추락사-개구장이, 병원에서 목사 잡아 죽인다고난리. 물론 전적인 책임은 목사가 져야 하지만, 그 부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개구쟁이들인데 말도 듣지 않고 지맘대로 하도록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도 여러문제있습니다.-
그런데 ‘다 너 탓이다.’ 어쩌면 한결같이 우리들은 ‘내 탓이요’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다 ‘너 때문에’라고 해버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 마귀 사탄의 사주를 받은 마귀의 역사이더군요. 창세기 3장을 보면,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동일하게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와 탓, 하와는 뱀을 탓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이 ‘내 탓으로’돌리지 않고 남 탓을 돌리는 것을 문제로 삼아, 기를 죽이고, 왜 그러느냐고 책망하고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내 탓으로가 아닌, 너 때문에라는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하고 살아 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해결이 되기는커녕 더 어려워지고,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너 때문이야 하고 하는데는 성령님이 역사할리 만무하고, 마귀의 역사만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아픔을 격어 왔고, 손해를 보고, 발전은 없었습니다. 하므로 이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사랑안에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서로 세워주고,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고, 디딤돌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살기 좋은 우리나라, 부흥하는 우리 교회 행복한 우리 가정, 확장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되어지려면, 이제 우리는 바꾸어야 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을 바꾸어야 합니까 ‘너 때문에’가 아니라 ‘나 때문에’, ‘너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겨야 여기에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럴 때 복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행복이 넘치는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시집을 온 며느리가 일하는 것이 서투러서 인지 밥상을 방으로 들고 들어오다가 그만 놓여진 책에 걸려 밥상이 엉망이 되었답니다. 아마 독한 시어머니를 만났더라면, ‘밥상도 제대로 들고 오지 못한다’고 야단을 맞을 법 한데, 이 시어머니가 오히려 더 당황을 하면서 며느리를 위로를 했답니다. ‘예야, 내가 같이 들어주어야 하는데 너 혼자 무거운 것을 들고 오게 해서 그렇구나, 미안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시아버지도 거들고 나섭니다. ‘아니야, 내가 책을 보고 빨리 치웠어야 했는데 치운다고 생각만 하고 치우지를 못했구나, 미안하다’ 얼마나 행복한 가정입니까 여기에 무슨 악한 영이 역사를 하며,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겠습니까 여러분!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겨 보십시오.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 티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 눈에는 들보가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니까 얼마나 은혜가 되든지 저는 우리 행복한교회 성도들 가정 가정,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서 참 가슴 아파했습니다. 물질로 어려움을 당한 가정, 건강으로 고생하는 가정 여러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가정, 좋은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 때가 되었은데도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든 문제가 바로 그 영혼들을 책임지고 있는 내 탓이구나, 내가 더 기도하고, 축복하고, 믿음의 역사를 이루도록 했어야 하는데 더 기도하지 못한 내 문제구나. 내 잘못이구나. 지난주간에 이렇게 생각하며 아픈 가슴을 안고 기도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기도가 얼마나 간절히 나오든지. 뿐만 아니라 교회의 여러 힘들고 어려움 문제들도 그렇게 보니 은혜가 되더군요. 솔직히 물질적으로 좀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 매어야 할 때입니다. 아낄 것을 아껴야 할 때입니다. 물가는 올라갔죠, 은행이자는 늘어났죠. 교회 성도들의 생활은 뻔하죠. 다들 힘들게 생활하다보니 주님앞에 드리고 싶어도 많이 드리지 못하는 성도들의 마음 오죽 하겠습니까 지난 주간에 성경학교가 열렸는데 참 은혜가운데 끝이 났습니다. 다들 기도해 주시고, 물질로도 참여해 주시고,
그런데 예상외에 더 많은 물질이 소비되고, 하기는 해야 하는데 없어서, 모자라서 고민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의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풍성하게 지원을 해 주도 부족한데 없다고 아우성인데고 해주지 못하는 마음 오죽 했겠습니까 아픈 가슴을 안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 어려운 때에도 도우시고, 채우신 하나님, 지금의 환난이 나로 인하여, 목사인 나 때문입니다.” 하고 말입니다. 목사인 나로 더 많은 기도를 하게 하시려고, 더 하나님을 붙들어라고 하나님이 사인으로 주신줄 알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성도들간에 서로 갈등이 있고, 시험에 들어 아파하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 내가 부덕해서, 내 기도가 부족해서, 내가 더 영적으로 지도를 하지 못해서 그렇구나, 앞으로 잘 하도록 해야지 이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와의 관계든, 어디서든, 무엇 때문이든 ‘너 때문이야’,‘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다 나 때문이야’, ‘내 탓’으로 돌립시다. 설사 상대방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 났다고 할지라고 그것을 내 탓으로 여기고 내 문제로 끌어 안고 나갈 때에 복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왜 내탓입니까 내가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볼때마다 그것이 그 일을 행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돌리지 말고, 그 일이 내가 온전히 서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왜 나를 하나님은 빛으로, 소금으로 세웠는데 이 일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문제로 여기도 그 문제를 끌어 안고 나아가면 축복된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문제들이 해결되는 일들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복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은혜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서로 세워가는 일들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나를 바다에 던지라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대풍이 일어난 바다, 대풍으로 큰 위기가운데 빠져있던 배와 사람들이 위기가운데서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언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그 일이 나로 인하여, 나 때문에 일어난 일로 여기고 나를 그 대풍이 일고 있는 그 바다에 던지면 해결이 되어집니다. 욥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12절에-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그리하면 잔잔하리라 그래서 15절에-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욥이 자기 문제로 알고 자기를 바다에 던졌더니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문제 해결은 네 탓으로 여기고 내가 던져지면 된다. 나를 바다에 던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욕하면 욕을 먹습니다. 때리면 맞습니다. 내것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드려짐을 말합니다. 내가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든지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자고 할 때에 같이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더를 보십시오. 포로로 잡혀가 있는 그의 동족이 하만이라는 악한 사람의 모함에 다 죽게 되었을 절대절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의 삼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사람을 보내어 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고자 할 때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사흘을 금식하며 왕앞에 나아가 그 어려운 문제의 해결이 있도록 자신을 드려 쓰임을 받았습니다. 내가 던져저서 살리기만 한다면 기꺼이 나를 던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살아나는 역사, 일으킴을 받는 역사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와 집사람도 이런 심정 가지고 지금껏 주님의 일을 해 왔습니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중에 일부분을 목사의 생활을 위하여 사례로 지급이 되어 집니다.
목자는 양이 내는 젖을 먹고 살아야 하기에 그럴수밖에 없어서 주면 주는대로, 안주면 안주는대로 삽니다.
그런데 제작년 교회 경매로 인하여 물질의 어려움을 격고난후 작년부터 재정적타격이 있고 해서 집사람과 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분간 교회서 지불되는 사례금을 하나님께 드려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쓰임을 받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한해와 그리고 올해 역시 지금까지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금 전부를 받아서 그대로 다시 하나님앞에 드려 교회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어디 돈을 버는데가 있어서, 아니면 돈이 필요 없으니까, 받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으니까 사례금을 하나님께 드려 교회에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저에게 이런 감동이 와서 사모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름대로 갈등도 하고, 고민을 하다가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히 받아 주어서 드려 쓰임을 받으니 감사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하고 생활을 하다 보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였습니다. 먹는 것 그냥 있는대로 먹고, 입는 것 누가 사주는 옷 입고, 그냥 그냥 살자해서 지금 여기까지 살아 옵니다만은, 참 가슴 아팠던 일은 부모야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만,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뭐 좀 사먹자고 해도 다음에 사먹자고 달래고, 돈 몇백원을 달라하면 다음에 준다고 하면서 거절하고 주지 못할 때 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거기다가 집사람은 어떻게 하다가 돈이 조금 생기면 그것 하나님앞에 헌금으로 드리는데 빠르니 넉넉하게 남들만큼은 안되지만 웬만큼 이라도 먹이고, 입히지 못할때가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애들이 피아노 다니고, 학원도 다니는데 피아노는 다른 교회 집사님이라 목사 자녀라고 몇 년째 그냥 가르쳐주고 있고, 교회일을 한다고 애들 가르칠 시간이 없으니 학원을 보내야 하겠는데, 방법이 없고 해서 속셈학원을 찾아가 남들 주는만큼 주지 못하지만 조금밖에 줄수 없지만 아이들을 좀 가르켜 달라고 해서 남들 절반 수준의 돈을 받고 가르쳐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힘들지 않고, 어렵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은 목사의 생활을 보자면 어떤 때는 답답함이 참 많습니다.
어디 직장을 구해서 돈을 벌겠습니까 장사를해서 돈을 모으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 주신 은헤가 있기에, 그 은혜를 나타내도록 사명을 주셨기에 감당케 되었고, 지금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사는 것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한몸을 드려서라도, 내 생명을 드려서라도 바다의 파도가 잠잠해 진다면 기꺼이 던지고 싶습니다. 내 한몸 던져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된다면 기꺼이 드려 쓰임을 받고자 합니다. 내 한몸 드려 교회가 일어서는데,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기꺼이 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그럽니다. 목사님, 왜 그 고생을 하십니까 왜 그렇게 어렵게 하시느냐고 말합니다만은 누구는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것이 뭐가 잘 난 일이라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풍랑이 일고 있기에 나를 바다에 던져서 그 풍랑을 잠잠케 할수만 있다면 기꺼이 던지겠다는 심정으로 합니다. 내 한 사람 욕먹고 다른 사람이 속이 후련만 한다면 얼마든지 욕을 먹을 자신이 있습니다. 왜그렇습니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속받은 하나님의 축복의 주인공이 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따지자면 우리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가 죄가 있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신 죽어 주셨기에 우리가 살아남이 있게된 것입니다. 그가 죄있는 우리 탓으로 돌렸다면 우리들은 지옥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탓으로 여기고 자기를 십자가에 기꺼이 내어 놓았기에 구원의 일들이 일어 난것입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항해하는 바다에 어떤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가정이라는 바다에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누구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기고, 나를 거기에 던지십시오. 우리 교회의 여러 풍랑이 일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일고 있는 풍랑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내가 열심을 내지 못해서,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 풍랑이 일고 있다고 여기고 나를 바다에 던져 보세요. 분명 풍랑이 잠잠할 것입니다.
1.내 탓이다. 4절-말씀을 보면 요나가 타고 가는 배가 큰 풍랑을 만나 뒤집어 질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5절-그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각자 자기 신을 부르며, 또 살려고 배위에 있는 버릴만한 것은 다 버립니다. 왜 이런 난리들을 치고 있는가하면 4절-처음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대풍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대풍을 내린 하나님앞에 사람들은 별의별 방법으로 다 해보지만 상황은 여전했습니다. 그럼에도 되지 않으니까 7절-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그런지 보자고 제비를 뽑습니다. 뽑았더니, 요나가 걸렸습니다. 왜 요나가 걸리게 되었습니까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가서 외치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지 않고 도망가던 길이 바로 다시스에서 탄 풍랑을 만난 배입니다. 누구 때문에 이 배가 대풍을 만나게 되었는가요 요나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런 어려움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도 무엇이라 말합니까 (12절)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 아노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 어려운, 힘든, 아픈, 속상한, 괴로운, 손해되는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밖으로 우리나라를 보면 오늘 우리 나라는 총체적 위기를 만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떻습니까 6.25이후 최대 난국이라는 경제위기 구제금융으로 인한 경제적 환난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난 이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다 ‘너 때문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떻습니까 국회의원은 있는데 국회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개원이 되어 민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데는 뒷전이고, 어떻게하면 자기 당 세력을 불리느냐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장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질책이 심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한결같이 ‘다 너 때문에’라고 하면서 자기의 이익만 따지려 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어떻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이라는 것을 빌미를 삼아, 구조조정을 한다느니,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런데 한결같습니다.-다 너탓이다(노동자는 사용자, 사용자는 노동자) 다 남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다 보니 일이 더 꼬여 갑니다. 전직대통령 비판 저는 지금도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나, 그들이 행한것에 대해 메스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때가 제일 화가 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전직대통령을 향해 죽일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욕하고, 돌맹이질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뽑은 것이 누구입니까 회개해야 할 사람들은 노태우를, 김영삼에게 투표권을 행사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우매했습니까 경상도 사람들은 경상도 찍자고 몰려가고,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찍자고 몰려가고 그런 우매한 백성이 무매한 짓을 하고난 다음에 지금에 와서 그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회개 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기도하지 않고 우리의 소견대로 투표한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의 기도 제목중에 그런 것이 있다고 합니다. “워싱톤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게 하시거나 아니면 워싱톤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국민적인 자질을 주십시오.” 그게 미국 사람의 기도라고 합니다. 워싱톤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만 행여 그것이 어렵다면 그런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영적인 눈이라고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투표하면서 기도를 언제 해봤습니까 이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지 생각이나 하며 투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새벽에 느헤미야서를 강해하면서 느헤미야의 위대함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자기의 죄로 돌리고 하나님앞에 기도해 나갑니다. 좁게 우리 가정과 자신은 어떻습니까 가정의 문제가 생기면-남편 탓, 아내 탓, 부모탓, 자녀탓 다 남 탓으로 돌립니다(이웃교회-성경학교 하는중 어린이 추락사-개구장이, 병원에서 목사 잡아 죽인다고난리. 물론 전적인 책임은 목사가 져야 하지만, 그 부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개구쟁이들인데 말도 듣지 않고 지맘대로 하도록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도 여러문제있습니다.-
그런데 ‘다 너 탓이다.’ 어쩌면 한결같이 우리들은 ‘내 탓이요’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다 ‘너 때문에’라고 해버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 마귀 사탄의 사주를 받은 마귀의 역사이더군요. 창세기 3장을 보면,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동일하게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와 탓, 하와는 뱀을 탓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이 ‘내 탓으로’돌리지 않고 남 탓을 돌리는 것을 문제로 삼아, 기를 죽이고, 왜 그러느냐고 책망하고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내 탓으로가 아닌, 너 때문에라는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하고 살아 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해결이 되기는커녕 더 어려워지고,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너 때문이야 하고 하는데는 성령님이 역사할리 만무하고, 마귀의 역사만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아픔을 격어 왔고, 손해를 보고, 발전은 없었습니다. 하므로 이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사랑안에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서로 세워주고,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고, 디딤돌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살기 좋은 우리나라, 부흥하는 우리 교회 행복한 우리 가정, 확장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되어지려면, 이제 우리는 바꾸어야 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을 바꾸어야 합니까 ‘너 때문에’가 아니라 ‘나 때문에’, ‘너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겨야 여기에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럴 때 복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행복이 넘치는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시집을 온 며느리가 일하는 것이 서투러서 인지 밥상을 방으로 들고 들어오다가 그만 놓여진 책에 걸려 밥상이 엉망이 되었답니다. 아마 독한 시어머니를 만났더라면, ‘밥상도 제대로 들고 오지 못한다’고 야단을 맞을 법 한데, 이 시어머니가 오히려 더 당황을 하면서 며느리를 위로를 했답니다. ‘예야, 내가 같이 들어주어야 하는데 너 혼자 무거운 것을 들고 오게 해서 그렇구나, 미안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시아버지도 거들고 나섭니다. ‘아니야, 내가 책을 보고 빨리 치웠어야 했는데 치운다고 생각만 하고 치우지를 못했구나, 미안하다’ 얼마나 행복한 가정입니까 여기에 무슨 악한 영이 역사를 하며,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겠습니까 여러분!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겨 보십시오.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 티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 눈에는 들보가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니까 얼마나 은혜가 되든지 저는 우리 행복한교회 성도들 가정 가정,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서 참 가슴 아파했습니다. 물질로 어려움을 당한 가정, 건강으로 고생하는 가정 여러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가정, 좋은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 때가 되었은데도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든 문제가 바로 그 영혼들을 책임지고 있는 내 탓이구나, 내가 더 기도하고, 축복하고, 믿음의 역사를 이루도록 했어야 하는데 더 기도하지 못한 내 문제구나. 내 잘못이구나. 지난주간에 이렇게 생각하며 아픈 가슴을 안고 기도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기도가 얼마나 간절히 나오든지. 뿐만 아니라 교회의 여러 힘들고 어려움 문제들도 그렇게 보니 은혜가 되더군요. 솔직히 물질적으로 좀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 매어야 할 때입니다. 아낄 것을 아껴야 할 때입니다. 물가는 올라갔죠, 은행이자는 늘어났죠. 교회 성도들의 생활은 뻔하죠. 다들 힘들게 생활하다보니 주님앞에 드리고 싶어도 많이 드리지 못하는 성도들의 마음 오죽 하겠습니까 지난 주간에 성경학교가 열렸는데 참 은혜가운데 끝이 났습니다. 다들 기도해 주시고, 물질로도 참여해 주시고,
그런데 예상외에 더 많은 물질이 소비되고, 하기는 해야 하는데 없어서, 모자라서 고민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의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풍성하게 지원을 해 주도 부족한데 없다고 아우성인데고 해주지 못하는 마음 오죽 했겠습니까 아픈 가슴을 안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 어려운 때에도 도우시고, 채우신 하나님, 지금의 환난이 나로 인하여, 목사인 나 때문입니다.” 하고 말입니다. 목사인 나로 더 많은 기도를 하게 하시려고, 더 하나님을 붙들어라고 하나님이 사인으로 주신줄 알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성도들간에 서로 갈등이 있고, 시험에 들어 아파하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 내가 부덕해서, 내 기도가 부족해서, 내가 더 영적으로 지도를 하지 못해서 그렇구나, 앞으로 잘 하도록 해야지 이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와의 관계든, 어디서든, 무엇 때문이든 ‘너 때문이야’,‘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다 나 때문이야’, ‘내 탓’으로 돌립시다. 설사 상대방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 났다고 할지라고 그것을 내 탓으로 여기고 내 문제로 끌어 안고 나갈 때에 복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왜 내탓입니까 내가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볼때마다 그것이 그 일을 행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돌리지 말고, 그 일이 내가 온전히 서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왜 나를 하나님은 빛으로, 소금으로 세웠는데 이 일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문제로 여기도 그 문제를 끌어 안고 나아가면 축복된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문제들이 해결되는 일들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복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은혜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서로 세워가는 일들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나를 바다에 던지라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대풍이 일어난 바다, 대풍으로 큰 위기가운데 빠져있던 배와 사람들이 위기가운데서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언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그 일이 나로 인하여, 나 때문에 일어난 일로 여기고 나를 그 대풍이 일고 있는 그 바다에 던지면 해결이 되어집니다. 욥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12절에-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그리하면 잔잔하리라 그래서 15절에-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욥이 자기 문제로 알고 자기를 바다에 던졌더니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문제 해결은 네 탓으로 여기고 내가 던져지면 된다. 나를 바다에 던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욕하면 욕을 먹습니다. 때리면 맞습니다. 내것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드려짐을 말합니다. 내가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든지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자고 할 때에 같이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더를 보십시오. 포로로 잡혀가 있는 그의 동족이 하만이라는 악한 사람의 모함에 다 죽게 되었을 절대절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의 삼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사람을 보내어 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고자 할 때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사흘을 금식하며 왕앞에 나아가 그 어려운 문제의 해결이 있도록 자신을 드려 쓰임을 받았습니다. 내가 던져저서 살리기만 한다면 기꺼이 나를 던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살아나는 역사, 일으킴을 받는 역사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와 집사람도 이런 심정 가지고 지금껏 주님의 일을 해 왔습니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중에 일부분을 목사의 생활을 위하여 사례로 지급이 되어 집니다.
목자는 양이 내는 젖을 먹고 살아야 하기에 그럴수밖에 없어서 주면 주는대로, 안주면 안주는대로 삽니다.
그런데 제작년 교회 경매로 인하여 물질의 어려움을 격고난후 작년부터 재정적타격이 있고 해서 집사람과 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분간 교회서 지불되는 사례금을 하나님께 드려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쓰임을 받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한해와 그리고 올해 역시 지금까지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금 전부를 받아서 그대로 다시 하나님앞에 드려 교회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어디 돈을 버는데가 있어서, 아니면 돈이 필요 없으니까, 받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으니까 사례금을 하나님께 드려 교회에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저에게 이런 감동이 와서 사모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름대로 갈등도 하고, 고민을 하다가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히 받아 주어서 드려 쓰임을 받으니 감사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하고 생활을 하다 보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였습니다. 먹는 것 그냥 있는대로 먹고, 입는 것 누가 사주는 옷 입고, 그냥 그냥 살자해서 지금 여기까지 살아 옵니다만은, 참 가슴 아팠던 일은 부모야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만,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뭐 좀 사먹자고 해도 다음에 사먹자고 달래고, 돈 몇백원을 달라하면 다음에 준다고 하면서 거절하고 주지 못할 때 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거기다가 집사람은 어떻게 하다가 돈이 조금 생기면 그것 하나님앞에 헌금으로 드리는데 빠르니 넉넉하게 남들만큼은 안되지만 웬만큼 이라도 먹이고, 입히지 못할때가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애들이 피아노 다니고, 학원도 다니는데 피아노는 다른 교회 집사님이라 목사 자녀라고 몇 년째 그냥 가르쳐주고 있고, 교회일을 한다고 애들 가르칠 시간이 없으니 학원을 보내야 하겠는데, 방법이 없고 해서 속셈학원을 찾아가 남들 주는만큼 주지 못하지만 조금밖에 줄수 없지만 아이들을 좀 가르켜 달라고 해서 남들 절반 수준의 돈을 받고 가르쳐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힘들지 않고, 어렵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은 목사의 생활을 보자면 어떤 때는 답답함이 참 많습니다.
어디 직장을 구해서 돈을 벌겠습니까 장사를해서 돈을 모으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 주신 은헤가 있기에, 그 은혜를 나타내도록 사명을 주셨기에 감당케 되었고, 지금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사는 것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한몸을 드려서라도, 내 생명을 드려서라도 바다의 파도가 잠잠해 진다면 기꺼이 던지고 싶습니다. 내 한몸 던져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된다면 기꺼이 드려 쓰임을 받고자 합니다. 내 한몸 드려 교회가 일어서는데,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기꺼이 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그럽니다. 목사님, 왜 그 고생을 하십니까 왜 그렇게 어렵게 하시느냐고 말합니다만은 누구는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것이 뭐가 잘 난 일이라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풍랑이 일고 있기에 나를 바다에 던져서 그 풍랑을 잠잠케 할수만 있다면 기꺼이 던지겠다는 심정으로 합니다. 내 한 사람 욕먹고 다른 사람이 속이 후련만 한다면 얼마든지 욕을 먹을 자신이 있습니다. 왜그렇습니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속받은 하나님의 축복의 주인공이 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따지자면 우리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가 죄가 있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신 죽어 주셨기에 우리가 살아남이 있게된 것입니다. 그가 죄있는 우리 탓으로 돌렸다면 우리들은 지옥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탓으로 여기고 자기를 십자가에 기꺼이 내어 놓았기에 구원의 일들이 일어 난것입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항해하는 바다에 어떤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가정이라는 바다에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누구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기고, 나를 거기에 던지십시오. 우리 교회의 여러 풍랑이 일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일고 있는 풍랑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내가 열심을 내지 못해서,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 풍랑이 일고 있다고 여기고 나를 바다에 던져 보세요. 분명 풍랑이 잠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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