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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도를 요구할 때 (욥15:1-16)

본문

1. 엘리바스의 두 번째 연설
(1) 엘리바스는 욥이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그를 책망하고 있습니다(2-3절). 욥은 전에 지혜로운 자요 명성이 나 있었으나 지금은 그의 명성을 완전히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지혜가 그에게서 떠나 갔음으로 그의 말은 지나치고 별 유익이 없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의 친구 빌닷과 소발도 그렇게 비난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헛된 지식, 유익이 없는 무가치한 과학도 있다는 것이며, 이것들은 자신의 재능에서 나오는 것으로 영혼에게는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익이 없는 말, 하나님과 이웃에게 도움되지 못한 말, 그리고 교화시키는 일에 있어서 결코 소용이 없는 말은 하지 않은 편이 더 낫습니다.
(2) 엘리바스는 욥이 경건치 못하여 믿음이 없다고 하며 그를 책망하고 있습니다(4절). 기도없이 살아가는 자들은 분명히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묵도하기를 그치는 자들은 분명히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엄에 대해 경외심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그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혼과 영원에 대한 관심이 없음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간청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경외하는 일과 은혜받는 일을 폐한 자들입니다.
1) 엘리바스가 욥을 책망하였습니다. 욥 자신의 행동을 책망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가 주장했던 이론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사실에 관해 책망했습니다.
2) 부자연스러운 풍자를 바탕으로 해서 엘리바스는 욥이 경건치 못하다고 큰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5절). 엘리바스는 그의 첫 번 연설에서 단순한 추측으로 욥에게 대들었던 일이 있었으나(4:6-7절) 이제 그는 욥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그를 대적할 증거를 끌어내고 있습니다(6절).
3) 엘리바스는 참을 수 없는 오만과 자만으로서 욥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욥 12:3에 있는 욥의 고백에서 “나도 저희 같이 총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는 욥의 요구는 공정하고 타당하며 겸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욥이 마치 다른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척했던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였다면 이처럼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4) 엘리바스는 욥이 그의 친구들의 권고와 위로를 경멸했다고 해서 그를 책망하고 있습니다(11절). 엘리바스와 소발과 빌닷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매우 훌륭한 말을 들려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욥에게 적용시켰을 때 그들은 매우 형편없는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한 것을 위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매우 타당한 이유와 함께 그것을 보잘 것 없고 사소한 것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5)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과 믿음에 대항한다고 하여 그를 책망하고 있습니다(12-14절). 인간은 여인에게서 태어나기 때문에 깨끗하거나 의롭다는 판단을 얻을 수 없고, 여인으로부터 타락한 성품을 물려 받았음으로 그것은 그의 허물과 타락이 되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이런 명백한 사실들을 욥에게 설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욥은 고백하기를 욥 14:4에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성령으로 거듭날 때는 깨끗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우리들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구속자가 필요합니다. 그는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깊은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음식보다도, 공기보다도, 일광보다도 더 필요합니다. 실로 내게 있어 그리스도는 생명의 빵입니다. 의의 태양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생이십니다. 인생의 모범이시며 실현되어 있는 이상입니다. 내가 모본으로 하는 사람은 석가모니가 아닙니다. 쏘크라테스가 아닙니다. 플라톤도 아닙니다. 아브라함 링컨, 칼라일도 아닙니다. 내가 모본으로 하는 분은 그리스도가 부르는 나사렛 예수이십니다. 내가 생을 본받아 그 모습대로 살고자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탄을 이기기 위해 지닐 무기입니다. 우리는 몸의 불행을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우러러 보면 우리의 탄식은 곧 사라집니다. 그는 우리에게 소망과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 하나님을 보여 주시었고 나로 하여금 다시 무신론자가 될 수 없게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입은 바 은혜는 무한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나로 하여금 사는 보람이 있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하는 것은 내게 선한 도덕을 가르치고 생애의 모범을 주며 비통을 치유하고 눈물을 씻어주는 것이 아니며 나의 구주라고 하는 것은 나를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시는 일입니다. 즉 나의 죄 맡음을 알고 계시면서도 다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얼마나 거룩하신지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구속받을 수 있는 것은 다만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우러러 보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들었을 때 이것을 우러러 본 자는 모두 그 병을 고침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올려 놓고 이것을 우러러 보는자를 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론에 의한 것보다 신앙적인 체험에 의해 나는 그를 십자가 위에 우러러 보고 내 죄의 중하가 곧 나의 어깨에서 떨어지는 것을 압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지만, 나는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러러 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구원되고자 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따라서 나의 성서 지식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구원되고자 합니다. 나는 오로지 나의 죄를 사함 받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능히 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신앙 가운데 평생을 살아 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가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와 늘 함께 하셔서 이 세상에서 축복받고 마지막 심판 때 구원을 얻으시길 구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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