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도하노라 (빌1:7-11)
본문
10월이 들어서면 제가 부교역자생활로 부터해서 저의 목회생활을 시작한지 16년이 됩니다. 그 중 절반을 안양서부교회에서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주 젊은나이에 시작케하시고, 큰 실수없이 걸어오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 시간동안 오직 위를 보면서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몇개의 교회를 생활해 봤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한 200여개 교회를 다니며 말씀을 나누게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나름대로 느낀 것은 가장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가 있지만 그 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목회자와 교인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서로가 아끼고 사랑하는 교회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빌립보 교회에 대한 바울사도의 태도를 보면서 더욱 이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이 교회는 바울이 설립하였으며, (설립당시의 고난의 배경)
더구나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 바울의 옥바라지를 가장 열심히 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더구나 그 교회의 목회자였던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도우러 로마에 갔다가 죽을 병이 걸립니다. 그때에 그 교회는 눈물로 기도하여 주었고 그 기도로 인하여 에바브로디도가 고침을 받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깊음 감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빌립보교회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사실 목회자가 교인에게 받은 사랑을 갚을 것은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갚아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바울도 빌립보교회에 받은 사랑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예)신자에게 있어서 목회자의 기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본인들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목회자의 한번의 기도도 중요합니다.
기도원에서 만나 목회자의 간증-속 썩이는 교인을 위하여서 일절 기도하지 않았더니 그 교인이 영적으로 말라가더라고.
-여기서 먼저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생각한 뒤에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많은 게획도 갖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한 만큼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가는 신앙인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생각조차 싫어합니다.
예)학의 고고한 모습. 그러한 먹을 것을 향한 생각일 뿐이다.
예)고호의 ‘생각하는 사람’의 동상. ‘내 팬티어디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현대인들의 생각은 고작 그 수준인 것 같습니다.
예)머리곁에 모니터가 달려서 그 사람의 생각이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추잡하고,음탕하고, 돈과 미움과 악한생각이 현대인의 생각이 아닐까요
우리는 좀더 영원을 생각하고, 영혼을 생각하며, 영적이고 정신적인 생각을 하면서 우리를 성숙시키고, 또한 그 생각에 멈추지 말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그것을 붚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기도, 즉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신앙이 초보일 때에는 무조건 기도하면 된다고 합니다. 열심히, 뜨겁게 많이 기도하면 되고 그것이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면서 우리는 자신이 하는 기도의 내용을 살펴야 합니다. 어떤 기도를 하는 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저 세상적인것과 육신적인 것만 구하는 기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주옵시고’의 나열만 하고, 어린아이같이 달라고만하는 기도는 성숙되면서 달라져야 합니다. 기도에 감사가 있어야 하고, 도전과, 결심과, 회개와, 성장을 위한 기도, 무엇보다도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를 위한 기도에서 그 내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보면 빌립보교회의 성숙과 그 성숙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1.사랑의 풍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독교인의 성숙은 사랑의 성숙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생활을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직 그는 미숙아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서는 안됩니다. 감정적이고 정만있는 사랑은 오히려 위헙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에 ‘지식과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지식은 ‘에피그노시스’라는 특별한 단어로서 하나님의 지식, 신앙적인 지식등으로 한단계 높은 지식을 의미합니다. 총명은 통찰력을 의미하는데 ‘아이스데시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풍성하고 깊어져가야 하는데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적인 지식과 지각있는 통찰력으로 사랑할 수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예)자녀 사랑도 이 짓과 총명으로 사랑하여야지 무조건적으로 동물적인 사랑은 그 자식을 오히려 망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분별력을 달라고 합니다.
시대가 혼돈되어 있습니다. 선과 악의 구별이 희미하고,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립니다. 온통 회색지대 투성입니다. 이와같은 시대에서 우리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분별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위조지폐를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자신의 정당의 후보를 시험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며, 제사장들이 제물을 구별할 때 사용 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그것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이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도 분별할 수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라는 말 자체가 구별됬다는 의미인데 우리가 구별된 삶을 살려면 먼저 분별력이 있어야합니다.
옳은 것을 분별하지 못하여서 잘못된 친구를 사귀고, 좋지못한 일에 손을 댄다면 결코 우리의 인생은 복된 인생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허물이 없이 일생을 마쳐야 합니다.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먼저 ‘진실’입니다. 이 말은 ‘밑칠하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도자기 산업이 발달 되었는데 굽다가 금이 가면 거기에 밒칠을 하여 색을 칠하면 그냥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햋빛에 비추어 보면 쉽게 들어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하여서 및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위선적인 삶을 살지말고 개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위장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서로가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완전한 것처럼 위장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에게 보이며 서로가 감싸고 이해하며 살아갈 때에 거기에 멋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감추며 사는 사람하고는 관계가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나아가서 일생 ‘허물’ 없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지키는 작업입니다. 참으로 힘든 작업입니다. 세상의 갖은 시험과유혹이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사람들은 금, 은 그릇으로 자랑하고 그것을 원합니다.
4.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선한 삶을 향한 도전입니다.
나 자신이 나쁜 짓은 하나도 않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선한 삶을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생활할 때에도 그저 아무런 잘못없이 살면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자로서 자신을 희생하며 무언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어느 영화의 한 장면-‘아무것도 안한 죄’
이 열매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의 가지입니다. 그를 떠나서는 아무 열매도 기대할 수없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없음이라”(요15:4,5)
이 가을에 열매를 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의 모습이 저래야합니다.
성령의 열매, 의의 열매가 주렁 주렁 맺은 모습의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이 기도를 보면서 우리의 기도도 깊이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서 더욱 노력하시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 가을에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더욱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위하여서 기도합시다.
사랑, 그리고 분별력, 진실과 허물없는 일생, 무엇보다 의의 열매가 주렁주렁한 그 분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아멘.
그동안 몇개의 교회를 생활해 봤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한 200여개 교회를 다니며 말씀을 나누게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나름대로 느낀 것은 가장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가 있지만 그 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목회자와 교인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서로가 아끼고 사랑하는 교회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빌립보 교회에 대한 바울사도의 태도를 보면서 더욱 이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이 교회는 바울이 설립하였으며, (설립당시의 고난의 배경)
더구나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 바울의 옥바라지를 가장 열심히 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더구나 그 교회의 목회자였던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도우러 로마에 갔다가 죽을 병이 걸립니다. 그때에 그 교회는 눈물로 기도하여 주었고 그 기도로 인하여 에바브로디도가 고침을 받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깊음 감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빌립보교회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사실 목회자가 교인에게 받은 사랑을 갚을 것은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갚아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바울도 빌립보교회에 받은 사랑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예)신자에게 있어서 목회자의 기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본인들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목회자의 한번의 기도도 중요합니다.
기도원에서 만나 목회자의 간증-속 썩이는 교인을 위하여서 일절 기도하지 않았더니 그 교인이 영적으로 말라가더라고.
-여기서 먼저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생각한 뒤에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많은 게획도 갖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한 만큼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가는 신앙인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생각조차 싫어합니다.
예)학의 고고한 모습. 그러한 먹을 것을 향한 생각일 뿐이다.
예)고호의 ‘생각하는 사람’의 동상. ‘내 팬티어디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현대인들의 생각은 고작 그 수준인 것 같습니다.
예)머리곁에 모니터가 달려서 그 사람의 생각이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추잡하고,음탕하고, 돈과 미움과 악한생각이 현대인의 생각이 아닐까요
우리는 좀더 영원을 생각하고, 영혼을 생각하며, 영적이고 정신적인 생각을 하면서 우리를 성숙시키고, 또한 그 생각에 멈추지 말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그것을 붚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기도, 즉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신앙이 초보일 때에는 무조건 기도하면 된다고 합니다. 열심히, 뜨겁게 많이 기도하면 되고 그것이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면서 우리는 자신이 하는 기도의 내용을 살펴야 합니다. 어떤 기도를 하는 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저 세상적인것과 육신적인 것만 구하는 기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주옵시고’의 나열만 하고, 어린아이같이 달라고만하는 기도는 성숙되면서 달라져야 합니다. 기도에 감사가 있어야 하고, 도전과, 결심과, 회개와, 성장을 위한 기도, 무엇보다도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를 위한 기도에서 그 내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보면 빌립보교회의 성숙과 그 성숙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1.사랑의 풍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독교인의 성숙은 사랑의 성숙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생활을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직 그는 미숙아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서는 안됩니다. 감정적이고 정만있는 사랑은 오히려 위헙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에 ‘지식과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지식은 ‘에피그노시스’라는 특별한 단어로서 하나님의 지식, 신앙적인 지식등으로 한단계 높은 지식을 의미합니다. 총명은 통찰력을 의미하는데 ‘아이스데시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풍성하고 깊어져가야 하는데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적인 지식과 지각있는 통찰력으로 사랑할 수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예)자녀 사랑도 이 짓과 총명으로 사랑하여야지 무조건적으로 동물적인 사랑은 그 자식을 오히려 망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분별력을 달라고 합니다.
시대가 혼돈되어 있습니다. 선과 악의 구별이 희미하고,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립니다. 온통 회색지대 투성입니다. 이와같은 시대에서 우리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분별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위조지폐를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자신의 정당의 후보를 시험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며, 제사장들이 제물을 구별할 때 사용 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그것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이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도 분별할 수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라는 말 자체가 구별됬다는 의미인데 우리가 구별된 삶을 살려면 먼저 분별력이 있어야합니다.
옳은 것을 분별하지 못하여서 잘못된 친구를 사귀고, 좋지못한 일에 손을 댄다면 결코 우리의 인생은 복된 인생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허물이 없이 일생을 마쳐야 합니다.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먼저 ‘진실’입니다. 이 말은 ‘밑칠하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도자기 산업이 발달 되었는데 굽다가 금이 가면 거기에 밒칠을 하여 색을 칠하면 그냥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햋빛에 비추어 보면 쉽게 들어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하여서 및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위선적인 삶을 살지말고 개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위장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서로가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완전한 것처럼 위장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에게 보이며 서로가 감싸고 이해하며 살아갈 때에 거기에 멋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감추며 사는 사람하고는 관계가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나아가서 일생 ‘허물’ 없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지키는 작업입니다. 참으로 힘든 작업입니다. 세상의 갖은 시험과유혹이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사람들은 금, 은 그릇으로 자랑하고 그것을 원합니다.
4.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선한 삶을 향한 도전입니다.
나 자신이 나쁜 짓은 하나도 않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선한 삶을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생활할 때에도 그저 아무런 잘못없이 살면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자로서 자신을 희생하며 무언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어느 영화의 한 장면-‘아무것도 안한 죄’
이 열매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의 가지입니다. 그를 떠나서는 아무 열매도 기대할 수없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없음이라”(요15:4,5)
이 가을에 열매를 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의 모습이 저래야합니다.
성령의 열매, 의의 열매가 주렁 주렁 맺은 모습의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이 기도를 보면서 우리의 기도도 깊이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서 더욱 노력하시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 가을에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더욱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위하여서 기도합시다.
사랑, 그리고 분별력, 진실과 허물없는 일생, 무엇보다 의의 열매가 주렁주렁한 그 분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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