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채우라 (눅14:15-24)
본문
예수님께서는 갚을 것이 없는 자들을 접대하는 것이 의인들의 부활 시에 갚음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던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이 “무릇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고 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연히 천국잔치에 참여할 것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예수님께서는 큰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두목이 예수님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을 초대한 자리는 일상의 식사 자리였지 큰 잔치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민족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결혼이나 회갑을 축하하는 잔치를 큰 잔치라고 할 수 있지 아무 때나 음식을 차렸다고 해서 큰 잔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고 축하하기는 우리 민족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보다 더 열성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집안 여건에 따라서 며칠씩이나 잔치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주인은 아마도 이와 같은 혼인잔치를 성대하게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은 초청했습니다. 그는 초청받은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부요함과 기쁨을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잔치 자리에서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하면 잔치를 베푸는 정확한 시간은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당일에 알려준다고 합니다. 주인은 시간이 되어 초청한 사람들에게 종을 보냈습니다. 종의 임무는 잔치에 사람들을 인도하여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종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잔치를 베푸실 천국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연말까지 한 사람이 한 사람 전도하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전도를 하는 데 알아야 할 사항들을 몇 가지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로, 처음 기대가 어긋난다고 하여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비유에 의하면 잔치에 참석하기로 이미 약속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부터 주인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초청을 받았을 때 기꺼이 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이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잔치에 나오도록 다시 초청하자 이들은 한결같이 핑계를 대며 거부했습니다. 한 사람은 밭을 사서 나가 보아야 하므로 갈 수 없다고 하고, 또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해 보아야 하므로 갈 수 없다고 하고, 또한 사람은 장가 들어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외의 다른 사람들의 핑계도 대동소이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전도하러 나갈 때 복음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예수님께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호의적인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내심 그들이 다음 주일이라도 예배시간에 참석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상대방이 예배에 참석하겠다는 약속까지 하면 우리는 뛸 듯이 기뻐하며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문제는 약속한 주일 날 그들이 참석하면 좋지만 약속을 지키는 사람보다는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은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참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이런 일을 겪게 되더라도 낙심치 마십시오. 성경이 진리라면 마귀 사단의 존재도 진리입니다. 마귀는 결코 불신자들이 그의 손아귀에서 손쉽게 빠져나가도록 방관하지 않습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하도록 합니다. 멀쩡하던 아기가 갑자기 아프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졌던 친구로부터 때마침 연락이 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날 따라 남편의 심사를 부추겨서 부부싸움을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소외받는 사람들도 접촉해야 합니다. 주인은 별 성과 없이 풀이 죽은 채 돌아온 종에게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 때문에 소외받고 신체의 장애 때문에 소외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이웃, 친지를 전도하다가 안 된다고 하여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는 사람만을 상대로 전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골목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지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쉽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창녀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죄수들을 상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본문의 바로 앞부분에는 예수님께서 접대에 관한 교훈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잔치를 배설하려면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13-14절) 천국잔치에 이들을 초대한다면 장차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이 되겠습니까
셋째로, 강권해야 합니다. 누구나 오라는 초청에도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예복이 없어서 응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방인이라서 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주인이 종에게 한 말은 이런 사람들의 염려를 덜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한두 번 전도하다 성과가 없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마귀 사단이 결코 호락호락 넘어갈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복된 소식인데 필요하다면 강권해서라도 상대방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다는 것은 아직도 천국에 빈 자리가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빈 자리가 하나도 없이 채워지는 날 우리는 영광의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속히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도해야 하고 강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천국잔치로 초청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예배로도 초청하고 계십니다. 청함 받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초청을 거부한 것 같이 그리스도인 중에도 예배로의 초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21절)
첫째로, 처음 기대가 어긋난다고 하여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비유에 의하면 잔치에 참석하기로 이미 약속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부터 주인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초청을 받았을 때 기꺼이 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이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잔치에 나오도록 다시 초청하자 이들은 한결같이 핑계를 대며 거부했습니다. 한 사람은 밭을 사서 나가 보아야 하므로 갈 수 없다고 하고, 또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해 보아야 하므로 갈 수 없다고 하고, 또한 사람은 장가 들어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외의 다른 사람들의 핑계도 대동소이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전도하러 나갈 때 복음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예수님께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호의적인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내심 그들이 다음 주일이라도 예배시간에 참석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상대방이 예배에 참석하겠다는 약속까지 하면 우리는 뛸 듯이 기뻐하며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문제는 약속한 주일 날 그들이 참석하면 좋지만 약속을 지키는 사람보다는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은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참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이런 일을 겪게 되더라도 낙심치 마십시오. 성경이 진리라면 마귀 사단의 존재도 진리입니다. 마귀는 결코 불신자들이 그의 손아귀에서 손쉽게 빠져나가도록 방관하지 않습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하도록 합니다. 멀쩡하던 아기가 갑자기 아프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졌던 친구로부터 때마침 연락이 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날 따라 남편의 심사를 부추겨서 부부싸움을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소외받는 사람들도 접촉해야 합니다. 주인은 별 성과 없이 풀이 죽은 채 돌아온 종에게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 때문에 소외받고 신체의 장애 때문에 소외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이웃, 친지를 전도하다가 안 된다고 하여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는 사람만을 상대로 전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골목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지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쉽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창녀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죄수들을 상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본문의 바로 앞부분에는 예수님께서 접대에 관한 교훈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잔치를 배설하려면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13-14절) 천국잔치에 이들을 초대한다면 장차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이 되겠습니까
셋째로, 강권해야 합니다. 누구나 오라는 초청에도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예복이 없어서 응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방인이라서 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주인이 종에게 한 말은 이런 사람들의 염려를 덜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한두 번 전도하다 성과가 없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마귀 사단이 결코 호락호락 넘어갈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복된 소식인데 필요하다면 강권해서라도 상대방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다는 것은 아직도 천국에 빈 자리가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빈 자리가 하나도 없이 채워지는 날 우리는 영광의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속히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도해야 하고 강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천국잔치로 초청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예배로도 초청하고 계십니다. 청함 받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초청을 거부한 것 같이 그리스도인 중에도 예배로의 초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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