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채우라 (눅14:15-24)
본문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16절) 청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 게도 "다 일치하여 사양"(18절) 했습니다. 하나는, "나는 밭을 샀으니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데 나를 용서하라" (18절) 또 하나는,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데 나를 용서하라!" (19절) 또 하나는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20절)고 합니다. 이 잔 치는 이미 선약이 된 잔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결같이 큰 잔치의 초청을 거 절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천국의 복락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기꺼이 큰 잔치를 마려하시고 그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일치했습니다. "가지 못하겠노라!"
첫째 사람은 변명했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변명도 없이 가버렸습니다. 세번째 사람 은 변명할 필요도 없다는듯 당연히 빠져야 되는 줄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이같이 완악합니다. 이같은 태도는 오늘날 현 대인들의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지 놀랍습니다. 현대인들은 영양식으로 포동포동 살 이 쪄 있습니다. 날마다 호화로운 연회에 참석합니다. 너무나 잘 먹어서 비만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여유있는 육체에 비하여 그들의 영 혼은 너무도 메말라 있는 슬픈 현실입니다. (시 106:15)"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 셨도다" (암 8:11)"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 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마 4: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 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을 살지우고 충족하게 해줄 하나님의 잔치에 관해 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청을 거저한 진짜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인간의 타락한 근성 때문입니다.
둘째, 다른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변명하기를 "하와가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진짜 이유는 하나님보다 선악과가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밭을 샀노라고 했고, 소를 사서 시험하러간다했고, 또 방금 장가들어서 못간다고 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는 천국 초청에 대한 변명들이 더 많습니다. 어떤 이는 공부가 급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피곤하여 쉬고 싶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선약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임에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바빠서 도무지 나갈 수 없노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한갖 변명에 불과합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 진 짜 이유란 그들의 관심사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아니라, 선악과였습니다. 데마의 관심은 바울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세상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관심사는 삼년동안 따랐 던 예수님이 아니라, 은 30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관심은 성령님 충만한 뜨 거운 가슴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인정받고 싶은 명예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진실한 관심사는 무엇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세상입니 까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자나깨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 라!"입니다. (히 3:12)"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 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모든 변명을 버린 자들입니다. 모든 변명 을 극복한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노아가 그런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런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그렇고 세례요한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었습니다. 이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라야 합니다.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우선순위는 먼저 하나님 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정말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다음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천국 잔치를 배설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이미 먼저 믿어 하나님의 집에 하인과 같이 일군으로 뽑힘을 받은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본론>
1. 빈 자리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주인은 빈자리가 생긴 사건을 몹시 화를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빈자리가 있 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반드시 그 빈자리의 임자는 있는 법입니다. 다른 사람 들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내가 지켜야 할 자리를 잘 지켰는지 돌이켜 봅시다. 친구 집에는 하루가 멀다고 들락거리면서 하나님의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도 못 찾는 이가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학교에는 6년 개근, 3년 개근 하면서도 하나님의 집에는 1 년 개근조차 못하는 교인이 있다면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먹사는 직장에는 10년 개 근 20년 개근하면서도 영혼이 먹고 영원토록 살게 하는 하나님의 집에는 6개월도 제 대로 개근 못한다면 뉘우쳐야 합니다. 왜 이렇게 이빠진 자리가 자꾸 생깁니까 멀 어서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세상보다 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켜야 할 자리 누가 대신 지켜줄 이는 이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비어있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우리가 초청장을 나누지 않았기 때 문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입을 벌려 전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전도 에 힘써야 할 장본인이 전도는 커녕 세상 재미에 빠지는 것 때문에 아버지의 집의 자리는 빈자라가 늘어가는 것입니다. 가출한 자녀는 부모님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주일날 아버지의 집을 등진 교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찾는 부모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 시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등지고 세상으로 향하다니 너무나 슬픈 현 실입니다. 연휴가 되면 유원지는 붐벼도 하나님의 집은 빈자리가 더 많아 집니다. 바캉스 철이 되면 명산대천은 발 디딜 틈이 없는데도 하나님의 집은 텅텅 빈다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반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집을 채워야 합니다(23). (눅 14: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 가 내 집을 채우라" 여기서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세가지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길과 산울가로 나가라!"고 합니다. 다시말해 좁은 구석만 바라보지 말고 넓게 사통 팔방으로 틔인 곳으로 나가서 이 사람 저사람, 이 친구 저 친구들을 만나 야 합니다. 시야를 넓혀서 전도 대상을 잡 아야 합니다. 많은 전도 대상을 잡아야 합니다.
둘째, "사람을 강권하여"야 합니다. 다시말해 강한 의지와 설득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자가 아니라, 증인입니다. 그가 믿든지 안 믿든지 우리가 알 일이 아니 고 무조건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해야 합니다.
셋째,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과정이 나옵니다 그것은 데려 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읍시다"로 끝 나지 않고 예배당까지 인도하고 주님께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예화) 호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소녀가 골수염으로 두 다리를 잘리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이 그것 으로 그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두 팔에까지 번져 마침내 두 손도 잘리우게 되었습니다. 이제 생명은 구했으나, 팔도 다리도 없는 토막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거저 드러누워 남의 도움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불행한 경우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이후 큰 사명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 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중에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그날부터 뭉 둥 팔에다가 연필을 동여메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피나는 노력끝에 드러 누워 편지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먼저 자기와 안면이 있는 성도들에게 감사 의 편지를 쓰기로 시작하여 점차 안면은 있지만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도 전도 편 지를 썼습니다. 기도와 눈물로 간절하게 쓴 편지여서 그의 전도 편지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감격해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 앞으 로 나와서 함께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레루야!
<결론>
우리에게는 성한 발이 있습니다. 성한 두 손이 있습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전 할 수도 있고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시간도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를 중심으로 이번 전도대회에 참석하도록 꼭 전도하십시다. 바울은 말 하기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고9:16)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20절)고 합니다. 이 잔 치는 이미 선약이 된 잔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결같이 큰 잔치의 초청을 거 절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천국의 복락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기꺼이 큰 잔치를 마려하시고 그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일치했습니다. "가지 못하겠노라!"
첫째 사람은 변명했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변명도 없이 가버렸습니다. 세번째 사람 은 변명할 필요도 없다는듯 당연히 빠져야 되는 줄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이같이 완악합니다. 이같은 태도는 오늘날 현 대인들의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지 놀랍습니다. 현대인들은 영양식으로 포동포동 살 이 쪄 있습니다. 날마다 호화로운 연회에 참석합니다. 너무나 잘 먹어서 비만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여유있는 육체에 비하여 그들의 영 혼은 너무도 메말라 있는 슬픈 현실입니다. (시 106:15)"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 셨도다" (암 8:11)"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 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마 4: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 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을 살지우고 충족하게 해줄 하나님의 잔치에 관해 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청을 거저한 진짜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인간의 타락한 근성 때문입니다.
둘째, 다른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변명하기를 "하와가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진짜 이유는 하나님보다 선악과가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밭을 샀노라고 했고, 소를 사서 시험하러간다했고, 또 방금 장가들어서 못간다고 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는 천국 초청에 대한 변명들이 더 많습니다. 어떤 이는 공부가 급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피곤하여 쉬고 싶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선약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임에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바빠서 도무지 나갈 수 없노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한갖 변명에 불과합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 진 짜 이유란 그들의 관심사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아니라, 선악과였습니다. 데마의 관심은 바울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세상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관심사는 삼년동안 따랐 던 예수님이 아니라, 은 30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관심은 성령님 충만한 뜨 거운 가슴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인정받고 싶은 명예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진실한 관심사는 무엇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세상입니 까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자나깨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 라!"입니다. (히 3:12)"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 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모든 변명을 버린 자들입니다. 모든 변명 을 극복한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노아가 그런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런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그렇고 세례요한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었습니다. 이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라야 합니다.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우선순위는 먼저 하나님 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정말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다음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천국 잔치를 배설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이미 먼저 믿어 하나님의 집에 하인과 같이 일군으로 뽑힘을 받은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본론>
1. 빈 자리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주인은 빈자리가 생긴 사건을 몹시 화를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빈자리가 있 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반드시 그 빈자리의 임자는 있는 법입니다. 다른 사람 들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내가 지켜야 할 자리를 잘 지켰는지 돌이켜 봅시다. 친구 집에는 하루가 멀다고 들락거리면서 하나님의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도 못 찾는 이가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학교에는 6년 개근, 3년 개근 하면서도 하나님의 집에는 1 년 개근조차 못하는 교인이 있다면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먹사는 직장에는 10년 개 근 20년 개근하면서도 영혼이 먹고 영원토록 살게 하는 하나님의 집에는 6개월도 제 대로 개근 못한다면 뉘우쳐야 합니다. 왜 이렇게 이빠진 자리가 자꾸 생깁니까 멀 어서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세상보다 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켜야 할 자리 누가 대신 지켜줄 이는 이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비어있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우리가 초청장을 나누지 않았기 때 문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입을 벌려 전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전도 에 힘써야 할 장본인이 전도는 커녕 세상 재미에 빠지는 것 때문에 아버지의 집의 자리는 빈자라가 늘어가는 것입니다. 가출한 자녀는 부모님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주일날 아버지의 집을 등진 교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찾는 부모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 시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등지고 세상으로 향하다니 너무나 슬픈 현 실입니다. 연휴가 되면 유원지는 붐벼도 하나님의 집은 빈자리가 더 많아 집니다. 바캉스 철이 되면 명산대천은 발 디딜 틈이 없는데도 하나님의 집은 텅텅 빈다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반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집을 채워야 합니다(23). (눅 14: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 가 내 집을 채우라" 여기서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세가지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길과 산울가로 나가라!"고 합니다. 다시말해 좁은 구석만 바라보지 말고 넓게 사통 팔방으로 틔인 곳으로 나가서 이 사람 저사람, 이 친구 저 친구들을 만나 야 합니다. 시야를 넓혀서 전도 대상을 잡 아야 합니다. 많은 전도 대상을 잡아야 합니다.
둘째, "사람을 강권하여"야 합니다. 다시말해 강한 의지와 설득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자가 아니라, 증인입니다. 그가 믿든지 안 믿든지 우리가 알 일이 아니 고 무조건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해야 합니다.
셋째,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과정이 나옵니다 그것은 데려 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읍시다"로 끝 나지 않고 예배당까지 인도하고 주님께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예화) 호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소녀가 골수염으로 두 다리를 잘리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이 그것 으로 그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두 팔에까지 번져 마침내 두 손도 잘리우게 되었습니다. 이제 생명은 구했으나, 팔도 다리도 없는 토막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거저 드러누워 남의 도움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불행한 경우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이후 큰 사명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 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중에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그날부터 뭉 둥 팔에다가 연필을 동여메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피나는 노력끝에 드러 누워 편지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먼저 자기와 안면이 있는 성도들에게 감사 의 편지를 쓰기로 시작하여 점차 안면은 있지만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도 전도 편 지를 썼습니다. 기도와 눈물로 간절하게 쓴 편지여서 그의 전도 편지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감격해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 앞으 로 나와서 함께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레루야!
<결론>
우리에게는 성한 발이 있습니다. 성한 두 손이 있습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전 할 수도 있고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시간도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를 중심으로 이번 전도대회에 참석하도록 꼭 전도하십시다. 바울은 말 하기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고9:16)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