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기쁨의 잔이 넘치게 하려면? (잠4:1-9,딤후1:3-14,요15:9-17)
본문
잠12:1의 말씀을 보면, 바른 인생 길을 알려는 사람은 그 아비의 꾸 지람을 달게 받아들이지만, 미련한 자는 짐승과 같아서 아무리 꾸짖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부모들 중에서, 거의 대부분의 정상적인 어버이들은, 그 자 식이 바른길 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 은 웬만하면 다 좋은 말이요 바르게 되라는 말일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냐 고 하는 방법상의 차이는 있을지는 몰라 도, 그 본질은 모두가 자식이 올바르게 사는 것을 염원해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내가 하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너에 게 이르는 말을 어겨서는 안 된다(잠언4:5) 고 하면서, 지혜롭게 살기를 자식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아니되는 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때에 부모를 통해서 출생한다는 것 말고도, 사람이 제 구실을 할 때까지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정상적으로 성 장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미숙하기 짝이 없는 한 인간이 사회의 한 일원이 되기까지 부모가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이 낙오자가 되어 세상을 버릴지 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모만은 자식의 모든 허물을 감싸주고, 넘어졌 을 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끝까지 이끌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자 식이 잘못할 때에 사정없이 야단치지만, 속으로는 자식이 안쓰러워 눈물 짓는 게 부모입니다. 혹 자식이 살인죄를 지었을지라도, 그 부모만큼은 그 자 식을 용서하고 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지난 5월 9일자 조선일보에는 홍사중 씨의 감동적인 칼럼이 실려 있 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미국 소년의 얘기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그는 작은 체격에 말라깽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풋볼을 무 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는 코치에게 애원한 끝에, 축구팀에 들어가 온 힘을 다해서 선수가 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보다 너무나도 체격이 작아 서, 늘 후보선수로서 다른 선수들이 뛰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 소년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경기 할 때마다 벤치에만 앉아 있는데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나와 아들 팀을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도, 여전히 그는 자기 반에서 제일 키가 작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할 수 있다고 고무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일에 풋볼이 하기 싫으면 언제든 그만 둬도 좋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풋볼 선수가 되려는 꿈은 버 릴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자기도 주전 멤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 업할 때까지 3년동안 그는 단 한번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고, 경기를 놓 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코치는 그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 았습니다. 그래도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을 따라다니며 격려해 주었 습니다. 소년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그는 풋볼 팀을 찾아 가서 자기를 선수로 뽑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의 왜소한 체격을 보 고 모두가 그는 불합격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풋볼 팀에 뽑혔습니다. 코치는, 그의 넘치는 투지와 열성이 다른 선수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풋볼 팀의 선수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그는 아버지 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 이상으로 기뻐한 아버지는 당장에 전 시즌 티켓을 샀습니다. 대학에서도 그는 4년동안 단 한번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단 한번도 경기에는나가보지 못했습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경기를 맞아, 전과 다름없이 경기장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그에 게 코치가 한 장의 전보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전보를 뜯어보고는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한참 후에 그는 코치에게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버 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연습을 걸러도 괜찮겠습니까 코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위로하면서 토요일 경기 때에 안나 와도 좋 으니 이번 주말까지 집에 가 있어라 고 했습니다. 토요일 경기 날이 왔습니다. 경기는 그의 대학 팀에게 불리하게 전개 되고 있었습니다. 제3쿼터에 들어 가 10점이나 뒤지고 있을 때, 뜻밖에 도 그가 선수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코치에게 간청하는 것이었 습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출전하게 해 주십시오. 코치는 애써 못들은 체했습니다. 가뜩이나 뒤지고 있는 판에 단 한번도 경기에 출전한 경험 이 없는 미숙한 후보선수를 내보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코치에게 매달리다시피 애원했습니다. 측은한 생각 이든 코치는 그의 출전을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상황은 코치와 선수들이 전혀 믿을 수가 없는 일이 었습니다. 단 한 번도 경기 경험이 없는 그가 누구보다도 잘 뛰는 것이 었습니다. 그는 천하무적이었습니다. 전의(戰意)를 상실하기 시작했던 그 의 팀이 그가 들어온 다음부터 득점하기 시작하여 드디어 동점을 이루었습니다.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기고 그는 상대방 공을 가로채 터치다운을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경기장 안은 함성으로 터져 나갈듯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모든 선수가 축하 파티를 위해 나간 텅빈 탈의실 구석에, 그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을 코치가 발견했습니다. 코치는 그에게 오늘 너는 정말 멋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직이 코치에게 말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장님 이었다는 사실은 모르셨죠 아버지는 모든 경기를 보러 오셨지만 내가 뛰지 못한 것을 모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아가셨기 때문에, 오늘 처음으로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실 수가 있었답니다. 난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아버지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볼에 두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필자인 홍사중 씨는 이 글을 끝맺으면서,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뭉클 하는 감동과 부끄러움으로 콧등이 시큰거리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제 어버이의 날에 주고받은 카네이션 꽃 한 송이는 오늘 벌써 시들어 있다. 그러나 이 얘기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언제까지나 시들 지 않는 꽃이 되었으면 한다. 고 했습니다. 이 보다 더 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모든 여건이 풋볼 선수가 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 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그 아들로 하여금 선수가 되게끔 밑받 침 해 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아들을 향한 그의 위 대한 사랑이 그 아들로 하여금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훌륭한 선수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아니, 그 아들의 체격 조건이나 다른 모든 여건은, 그 아들로 하여금 선수로 뛸 수 없도록 했지만, 아버지의 그 사랑이 그 아들에게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서, 드디어 마침내는 훌륭한 선수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한편 자녀는, 자신이 태어나서 장성하기까지 돌보아 주신 그의 부모 가 늙어 힘을 못쓰게 되었을 때,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심신이 다 낡아지게 되면, 흐느적거리는 육신은 지팡이 가 지탱해 주지만, 어린아이처럼 연약해지는 마음은 그의 자녀가 지팡 이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연의 이치가, 모든 사물이 한번 태어나 그 젊음을 한껏 자랑하다가 늙어 시들어져 죽어 가는 것이라면, 사람에게 있어서는, 부모가 자녀를 키우고 자녀가 그 부모를 공양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준 법칙인 것입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도 분명하며 당연히 지켜야 할 인간의 본분인, 이 이치와 법칙을 망각한 채,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 고 살기 때문에, 그만 범죄에 빠지고 불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1.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닌, 불신하고 억압하는 관계 에 놓여 있습니다 요15:10-11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 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하 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제자들을 억압하고자 함 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맛보고 있는 기쁨을 제자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서 잔소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면, 심심풀이로 하신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간절히 부탁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는 것도 주님의 그 마음을 갖고 하는 말 이었습니다.
ㄱ.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혜롭고 담대히 행하라(1:7).
ㄴ.절제하면서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가야 한다(1:7).
ㄷ.주님을 위해서 고난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1:8).
ㄹ.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1:13). ㅁ.성령님께서 주신 능력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1:14).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들과 같이 여기는 디모데가 훌륭한 주님의 제자가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부모도 거의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자녀가 잘되라고 하 시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인간의 출발점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바른 의도를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딤후1:9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총은 천지창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 삼으 시고, 우리에게 온갖 복된 것을 다 베풀어주시되,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 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만 바르게 인식한다면, 인간이 엉뚱한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축구 선수는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모든 절망과 낙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그 지극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 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15:9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 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도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밖에서 살고 있는 고로, 겪지 않아도 될 많은 불행과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다.
2그 결과로 해서, 우리 인간 사이도 온전치 못한 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 깨달아야, 서로의 허물도 덮어 주게 되는 것이 고,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게 되면, 서로가 좋은 점보다는 못마땅한 것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고, 서로가 고마운 줄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그렇거니와, 부부 사 이도 그러하며, 이웃간에 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되면, 부모님의 사랑 과 은혜도 알게 되며, 부부간에도 서로 고마움을 느끼며 살 수가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게 되면 고마움이나 사랑보다는 미움이나 원망이 더 많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을 주님의 은혜 안에서 바라보게 되면, 좋은 사람들도 참 많 고 고마운 사람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 은혜 를 다 갚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중에는 물론 부모가 있고 스승이 있으며, 좋은 이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이 땅 위 에는 못된 사람 천지입니다. 부모도 원망스럽고 형제도 미우며, 자녀도 또한 맘에 안 드는 것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그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를 좋은 길로 인도하려고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좋은 말씀, 우리에게 복받아 잘 살라고 주시는 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잠언 기자는 그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내 말을 명심하고 잘 지켜 행하라. 그래야 네가 복되게 살리라(잠4:4) 고 말입니다.
2.하나님은 그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 고 말 입니다. 1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인간 답게 사는 길입니다.
ㄱ.어버이가 되시는 하나님과 그 부모를 섬기며 순종하는 일.
ㄴ.이웃을 사랑하는 일.
ㄷ.그리고 친구를 사랑하는 일. 이것이 인간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구비해 놓고 멋있게 지내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그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진정 사람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더 깊고 넓게 실천하 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2또한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부모 자녀 사이도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 야 합니다. 억압이나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 사이도, 어떤 권한 행사이거나 굴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 사랑하며 신뢰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고맙게 여기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서에 보면, 지혜를 열심히 찾게 되면, 그 지혜가 우리를 감싸주고 구원 하며 보호하신다(4:6) 그렇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지혜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게 되면,
3.우리는, 사람답게 서로 감싸주고 구원해 주며 지 켜 주는, 고마운 관계를 이루어 살 수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때에, 우리의 부모가 부족한 게 참 많을지 몰 라도, 자식인 나에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분으로 여겨질 때,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혹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나의 남편이 허물투성일지라도, 아내인 나 에게는 더 없이 존경스럽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진정 구원받았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남편에 있어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온전히 구원받아 바른 인간성을 지니고 살 때 에, 그래서 모든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될 때에, 내 생활과 내 마음에 기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기사 다른 사람이 구원받음으로써, 나에게 기쁨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구원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온전케 되어도 내 마음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문제는, 내가 먼저 온전한 구원을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누 구를 탓하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온전케 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따지기보다는 그의 장점을 먼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자식이 아무리 부족하여도 그에게 힘과 용기를 복 돋아 주게 되며, 부모가 좀 허물이 있어도 먼저 그 은혜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눈이 안 보여서 대학 때까지 참아준 아버지이지만, 자식 에게는 그것이 참 고마왔던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좋은 점을 찾아 인정해 주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간관계 를 올바르게 해 주는 윤활유가 됩니다. 이것이 또한 주님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부탁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요15:11에서 우리 인생에 기쁨의 잔이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의 삶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먼저 모범을 주시고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만 하신 게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삶인지, 진정 인간다운 삶인지를 보여 주신 다음에, 사랑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주님의 은총과 그 사랑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기쁨의 근원이 되고 삶의 목적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5월 9일자 조선일보에는 홍사중 씨의 감동적인 칼럼이 실려 있 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미국 소년의 얘기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그는 작은 체격에 말라깽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풋볼을 무 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는 코치에게 애원한 끝에, 축구팀에 들어가 온 힘을 다해서 선수가 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보다 너무나도 체격이 작아 서, 늘 후보선수로서 다른 선수들이 뛰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 소년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경기 할 때마다 벤치에만 앉아 있는데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나와 아들 팀을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도, 여전히 그는 자기 반에서 제일 키가 작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할 수 있다고 고무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일에 풋볼이 하기 싫으면 언제든 그만 둬도 좋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풋볼 선수가 되려는 꿈은 버 릴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자기도 주전 멤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 업할 때까지 3년동안 그는 단 한번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고, 경기를 놓 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코치는 그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 았습니다. 그래도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을 따라다니며 격려해 주었 습니다. 소년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그는 풋볼 팀을 찾아 가서 자기를 선수로 뽑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의 왜소한 체격을 보 고 모두가 그는 불합격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풋볼 팀에 뽑혔습니다. 코치는, 그의 넘치는 투지와 열성이 다른 선수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풋볼 팀의 선수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그는 아버지 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 이상으로 기뻐한 아버지는 당장에 전 시즌 티켓을 샀습니다. 대학에서도 그는 4년동안 단 한번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단 한번도 경기에는나가보지 못했습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경기를 맞아, 전과 다름없이 경기장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그에 게 코치가 한 장의 전보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전보를 뜯어보고는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한참 후에 그는 코치에게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버 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연습을 걸러도 괜찮겠습니까 코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위로하면서 토요일 경기 때에 안나 와도 좋 으니 이번 주말까지 집에 가 있어라 고 했습니다. 토요일 경기 날이 왔습니다. 경기는 그의 대학 팀에게 불리하게 전개 되고 있었습니다. 제3쿼터에 들어 가 10점이나 뒤지고 있을 때, 뜻밖에 도 그가 선수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코치에게 간청하는 것이었 습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출전하게 해 주십시오. 코치는 애써 못들은 체했습니다. 가뜩이나 뒤지고 있는 판에 단 한번도 경기에 출전한 경험 이 없는 미숙한 후보선수를 내보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코치에게 매달리다시피 애원했습니다. 측은한 생각 이든 코치는 그의 출전을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상황은 코치와 선수들이 전혀 믿을 수가 없는 일이 었습니다. 단 한 번도 경기 경험이 없는 그가 누구보다도 잘 뛰는 것이 었습니다. 그는 천하무적이었습니다. 전의(戰意)를 상실하기 시작했던 그 의 팀이 그가 들어온 다음부터 득점하기 시작하여 드디어 동점을 이루었습니다.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기고 그는 상대방 공을 가로채 터치다운을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경기장 안은 함성으로 터져 나갈듯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모든 선수가 축하 파티를 위해 나간 텅빈 탈의실 구석에, 그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을 코치가 발견했습니다. 코치는 그에게 오늘 너는 정말 멋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직이 코치에게 말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장님 이었다는 사실은 모르셨죠 아버지는 모든 경기를 보러 오셨지만 내가 뛰지 못한 것을 모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아가셨기 때문에, 오늘 처음으로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실 수가 있었답니다. 난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아버지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볼에 두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필자인 홍사중 씨는 이 글을 끝맺으면서,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뭉클 하는 감동과 부끄러움으로 콧등이 시큰거리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제 어버이의 날에 주고받은 카네이션 꽃 한 송이는 오늘 벌써 시들어 있다. 그러나 이 얘기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언제까지나 시들 지 않는 꽃이 되었으면 한다. 고 했습니다. 이 보다 더 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모든 여건이 풋볼 선수가 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 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그 아들로 하여금 선수가 되게끔 밑받 침 해 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아들을 향한 그의 위 대한 사랑이 그 아들로 하여금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훌륭한 선수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아니, 그 아들의 체격 조건이나 다른 모든 여건은, 그 아들로 하여금 선수로 뛸 수 없도록 했지만, 아버지의 그 사랑이 그 아들에게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서, 드디어 마침내는 훌륭한 선수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한편 자녀는, 자신이 태어나서 장성하기까지 돌보아 주신 그의 부모 가 늙어 힘을 못쓰게 되었을 때,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심신이 다 낡아지게 되면, 흐느적거리는 육신은 지팡이 가 지탱해 주지만, 어린아이처럼 연약해지는 마음은 그의 자녀가 지팡 이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연의 이치가, 모든 사물이 한번 태어나 그 젊음을 한껏 자랑하다가 늙어 시들어져 죽어 가는 것이라면, 사람에게 있어서는, 부모가 자녀를 키우고 자녀가 그 부모를 공양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준 법칙인 것입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도 분명하며 당연히 지켜야 할 인간의 본분인, 이 이치와 법칙을 망각한 채,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 고 살기 때문에, 그만 범죄에 빠지고 불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1.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닌, 불신하고 억압하는 관계 에 놓여 있습니다 요15:10-11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 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하 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제자들을 억압하고자 함 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맛보고 있는 기쁨을 제자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서 잔소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면, 심심풀이로 하신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간절히 부탁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는 것도 주님의 그 마음을 갖고 하는 말 이었습니다.
ㄱ.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혜롭고 담대히 행하라(1:7).
ㄴ.절제하면서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가야 한다(1:7).
ㄷ.주님을 위해서 고난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1:8).
ㄹ.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1:13). ㅁ.성령님께서 주신 능력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1:14).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들과 같이 여기는 디모데가 훌륭한 주님의 제자가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부모도 거의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자녀가 잘되라고 하 시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인간의 출발점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바른 의도를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딤후1:9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총은 천지창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 삼으 시고, 우리에게 온갖 복된 것을 다 베풀어주시되,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 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만 바르게 인식한다면, 인간이 엉뚱한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축구 선수는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모든 절망과 낙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그 지극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 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15:9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 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도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밖에서 살고 있는 고로, 겪지 않아도 될 많은 불행과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다.
2그 결과로 해서, 우리 인간 사이도 온전치 못한 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 깨달아야, 서로의 허물도 덮어 주게 되는 것이 고,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게 되면, 서로가 좋은 점보다는 못마땅한 것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고, 서로가 고마운 줄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그렇거니와, 부부 사 이도 그러하며, 이웃간에 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되면, 부모님의 사랑 과 은혜도 알게 되며, 부부간에도 서로 고마움을 느끼며 살 수가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게 되면 고마움이나 사랑보다는 미움이나 원망이 더 많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을 주님의 은혜 안에서 바라보게 되면, 좋은 사람들도 참 많 고 고마운 사람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 은혜 를 다 갚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중에는 물론 부모가 있고 스승이 있으며, 좋은 이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이 땅 위 에는 못된 사람 천지입니다. 부모도 원망스럽고 형제도 미우며, 자녀도 또한 맘에 안 드는 것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그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를 좋은 길로 인도하려고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좋은 말씀, 우리에게 복받아 잘 살라고 주시는 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잠언 기자는 그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내 말을 명심하고 잘 지켜 행하라. 그래야 네가 복되게 살리라(잠4:4) 고 말입니다.
2.하나님은 그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 고 말 입니다. 1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인간 답게 사는 길입니다.
ㄱ.어버이가 되시는 하나님과 그 부모를 섬기며 순종하는 일.
ㄴ.이웃을 사랑하는 일.
ㄷ.그리고 친구를 사랑하는 일. 이것이 인간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구비해 놓고 멋있게 지내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그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진정 사람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더 깊고 넓게 실천하 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2또한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부모 자녀 사이도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 야 합니다. 억압이나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 사이도, 어떤 권한 행사이거나 굴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 사랑하며 신뢰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고맙게 여기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서에 보면, 지혜를 열심히 찾게 되면, 그 지혜가 우리를 감싸주고 구원 하며 보호하신다(4:6) 그렇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지혜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게 되면,
3.우리는, 사람답게 서로 감싸주고 구원해 주며 지 켜 주는, 고마운 관계를 이루어 살 수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때에, 우리의 부모가 부족한 게 참 많을지 몰 라도, 자식인 나에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분으로 여겨질 때,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혹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나의 남편이 허물투성일지라도, 아내인 나 에게는 더 없이 존경스럽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진정 구원받았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남편에 있어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온전히 구원받아 바른 인간성을 지니고 살 때 에, 그래서 모든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될 때에, 내 생활과 내 마음에 기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기사 다른 사람이 구원받음으로써, 나에게 기쁨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구원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온전케 되어도 내 마음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문제는, 내가 먼저 온전한 구원을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누 구를 탓하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온전케 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따지기보다는 그의 장점을 먼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자식이 아무리 부족하여도 그에게 힘과 용기를 복 돋아 주게 되며, 부모가 좀 허물이 있어도 먼저 그 은혜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눈이 안 보여서 대학 때까지 참아준 아버지이지만, 자식 에게는 그것이 참 고마왔던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좋은 점을 찾아 인정해 주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간관계 를 올바르게 해 주는 윤활유가 됩니다. 이것이 또한 주님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부탁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요15:11에서 우리 인생에 기쁨의 잔이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의 삶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먼저 모범을 주시고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만 하신 게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삶인지, 진정 인간다운 삶인지를 보여 주신 다음에, 사랑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주님의 은총과 그 사랑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기쁨의 근원이 되고 삶의 목적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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