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아 여호와로 자랑하라 (시34:1-7)
본문
삼상21:10-15에 보면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왕 아기스에게 가게 되었다. 즉 정치적인 망명 비슷한 것을 한 것이다. 아기스의 부하들은 다윗에 대하여 춤추며 노래하며 아기스에게 이르기를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하였다. 다윗은 다시 두려움에 사이게 되었다. 다윗의 용맹과 다윗에 대한 신하들의 노래가 마음에 걸려서 미친체하여 대문짝에 끄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체하여 도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윗의 용맹에 대하여 노래를 하고 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이것이 문제가 되어서 사울왕의 미움을 받았으며, 이것이 가는 곳마다 문제거리로 떠올랐다. 그 노래의 내용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에 게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스라엘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어린 다윗이 물리쳤기 때문이다. 사실 다윗은 그것이 충분히 자기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에 의하여 다윗의 용맹이 자랑되어 질 때에, 다윗이 높아져 가고 있을 때 자기에게 계속하여 환난이 닥치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서 도망쳐 나온 후에 이 노래를 지은 것이다. 다윗의 노래를 통하여, 고백을 통하여 우리를 신앙을 새롭게 하는 시간.
1.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고백(1-3) 1 하나님을 송축한다.(1절) “내가 여호와를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시 63:4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시145: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1“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다윗은 항상, 날마다, 영영히, 계속-여호와를 송축한다고 고백하였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 찬양하는가 내가 필요할 때, 시간이 나면, 생각이 나면 찬송합니다. 찬송의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하며, 시간이 나지가 않고, 생각나는 찬송도 없다. 그래서 일주일에 1번 예배시간에 혹은 예배시간 외에는 찬송이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산다. 그러나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에 보면 하늘에 천군과 천사들이 밤낮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을 하며 영광과 존귀를 돌리고 있다. 하나님이 찬송 받기를 얼마나 즐기시는지 밤낮 쉬지 않고 천사들이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밤낮 찬송을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된 우리도 천사와 같이 매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엡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 TV가 오늘날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TV앞에 모두 모이고 그것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되었다. TV를 켜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TV를 켜면 유행가들을 많이 듣는다. 그래서 우리들의 입에는 대중가요들이 쉽게 자리를 잡는다. 언제나 흥얼흥얼 거린다. 요즈음은 하도 신세대 노래가 많아서 노래를 알수없다. 옛날 노래를 듣기도 힘들다. 그래도 옛날노래만 나오면 가사하나 안틀리고 따라 부른다. 그 긴 “육자배기”를 글자 하나 안틀리고 잘도 외운다. 얼마나 목청이 잘올라가고 굽이쳐 넘어가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찬송을 부르는데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다.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요즘 목사님이 똑같은 찬송을 자꾸 반복해 부른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찬송을 익숙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찬송을 입에 자리잡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찬송가 23장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로 자랑하라(2절) 시 44:8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렘9:23-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들이 다윗의 용맹을 자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다른 나라에가지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4장에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로에서 곤하여 우물 곁에 섰는데 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길러 와서 예수가 “물을 달라”고 하시고 그 여인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는 예수와 이야기를 하다가 예수가 영생하는 물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 그가 곧 메시야임을 깨달았습니다. 여인은 빨리 달려내려가 동네에 가서 자랑을 하였습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내가 메시야를 우물가에서 만났다” 그녀의 자랑에 많은 동네 사람들이 예수에게 온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어떤 여자였는가 전에 남편이 다섯이었다. 혹시 몸을 파는 여인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남편이 다섯이나 바뀌었다는 것은 결코 떳떳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에게는 자랑할 것이라고는 건덕지는 커녕 국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영생의 기쁨을 얻으니 자랑할 것이 생겼습니다. 예수를 자랑한 것입니다.
마1:40-45에 한 문둥병자가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침받은 사람은 그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한 것입니다. 예수가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에게는 자랑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자기가 깨끗함을 받은 것이 자랑거리이고, 특별히 예수가 자랑거리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자랑거리가 생겨야 합니다. 병도 고침을 받고, 복도 받고, 명예도 얻고, 기쁨도 넘쳐야 합니다. 예수가 자랑이 되는 성도. 바울은 고전 13장에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고전 1:29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말라”, 고전 5:6에서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자랑하지 말라고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갈6:14에 보면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형틀로서 수치와 치욕, 죄인, 죽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가 지신 그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자랑할 것이 생기면 자랑해야만 하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힘과 지식과 재물과 능력과 권세와 자녀를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 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 재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 권세 자녀 다윗은 하나님만 자랑하고,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만 자랑하였습니다. 주곡교회 성도들도 하나님만 자랑하고, 예수의 십자가만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라(3절) 사람들이 다윗을 점점 높이고 있습니다. 사울왕은 천천을 죽였는데 다윗은 만을 주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왕보다 훨씬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을 높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높이지 말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4:8)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15:2)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왕이면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고 자기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얼마전 민선군수가 자기 지역의 높은 산 봉우리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비석을 세워서 말썽이 난 적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갔는데 그곳 성지에도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사람들까지 자기들의 이름을 써놓은 것을 볼 때에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 높이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기에 합당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화) 우리는 종종 이런 일들을 봅니다. 미스 코리아가 되고, 무슨 최우수 선수가 되면, 수석을 하면 인터뷰를 하는데, 그 때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름다움도, 우승의 기쁨도, 지식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쓰여져야 합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만 자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주곡교회 성도의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하는 성도, 하나님만 자랑하는 성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2. 그런 고백이 나온 배경 1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4)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예수가 가르쳐 주었다. 사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사사기 6장에 기드온의 기도가 나오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얼마나 철저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전쟁에 승리를 주시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려거든 타작마당의 솜뭉치에만 이슬이 젖고 나머지는 젖지 않기를 간구하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또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이번에는 송뭉치만 젖지 않고 땅에 젖기를 간구하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도응답이 있기에 하나님을 찬양, 자랑, 높여야 한다.
2 내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내시고(4)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두려움이 있다. 최초의 두려움은 창3:10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 즉 죄로 인한 두려움이 있다. 죄를 진 사람은 두려움 가운데 살수밖에 없다. 또 사람들은 죽음 앞에 두려워한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고, 많은 물질을 가졌다 할지라도, 높은 권세를 가졌다 해도 죽음 앞에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자기를 둘러싼 많은 적들이 두려움을 일으킨다. 또 앞으로 전개될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다윗은 나의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다고 고백을 하였다.(시23) 이사야는 두려움을 갖지말라고 말하였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계1:17)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 자랑, 높여야 한다.
3 그 얼굴을 영영히 부끄럽게 하시지 않으신다.(5)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그가 주시는 평강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의 검은 그림자가 사라지고 동시에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환한 빛이 그를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되는 환난을 당하엿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이 빛났으며, 하나님은 당신을 바라보는 스데반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비록 그가 돌에 맞아 죽었지만 첫 순교자로 아름답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달이 태양을 바라봐야만 밝게 빛이 납니다. 태양을 등지면 빛을 낼 수 없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므로 주의 광채를 입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짜증내고, 화내고, 신경질내고, 성질내고, 찌그러지고, 슬퍼하던 얼굴이 기쁨과 환희의 얼굴로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영영히 하나님이 세우고 그를 높이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빛나게 하시며 높이시므로 하나님을 찬양, 자랑, 높여야 한다.
4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다.(6-7) 곤고한 자를 건지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애굽의 고난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시키시고 건지셨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를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환난 가운데 있는 소경이 부르짖자 하나님이 환난에서 건지십니다. 모든 환난에서 부르짖는 자의 음성을 들으시는 하나님. 그를 찬양하며, 자랑하며,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응답하고, 두려움에서 건지시며, 주를 바라보는 자를 부끄럽게 아니하며,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항상 찬양하고, 자랑하며,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서 도망쳐 나온 후에 이 노래를 지은 것이다. 다윗의 노래를 통하여, 고백을 통하여 우리를 신앙을 새롭게 하는 시간.
1.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고백(1-3) 1 하나님을 송축한다.(1절) “내가 여호와를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시 63:4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시145: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1“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다윗은 항상, 날마다, 영영히, 계속-여호와를 송축한다고 고백하였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 찬양하는가 내가 필요할 때, 시간이 나면, 생각이 나면 찬송합니다. 찬송의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하며, 시간이 나지가 않고, 생각나는 찬송도 없다. 그래서 일주일에 1번 예배시간에 혹은 예배시간 외에는 찬송이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산다. 그러나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에 보면 하늘에 천군과 천사들이 밤낮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을 하며 영광과 존귀를 돌리고 있다. 하나님이 찬송 받기를 얼마나 즐기시는지 밤낮 쉬지 않고 천사들이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밤낮 찬송을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된 우리도 천사와 같이 매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엡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 TV가 오늘날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TV앞에 모두 모이고 그것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되었다. TV를 켜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TV를 켜면 유행가들을 많이 듣는다. 그래서 우리들의 입에는 대중가요들이 쉽게 자리를 잡는다. 언제나 흥얼흥얼 거린다. 요즈음은 하도 신세대 노래가 많아서 노래를 알수없다. 옛날 노래를 듣기도 힘들다. 그래도 옛날노래만 나오면 가사하나 안틀리고 따라 부른다. 그 긴 “육자배기”를 글자 하나 안틀리고 잘도 외운다. 얼마나 목청이 잘올라가고 굽이쳐 넘어가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찬송을 부르는데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다.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요즘 목사님이 똑같은 찬송을 자꾸 반복해 부른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찬송을 익숙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찬송을 입에 자리잡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찬송가 23장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로 자랑하라(2절) 시 44:8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렘9:23-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들이 다윗의 용맹을 자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다른 나라에가지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4장에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로에서 곤하여 우물 곁에 섰는데 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길러 와서 예수가 “물을 달라”고 하시고 그 여인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는 예수와 이야기를 하다가 예수가 영생하는 물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 그가 곧 메시야임을 깨달았습니다. 여인은 빨리 달려내려가 동네에 가서 자랑을 하였습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내가 메시야를 우물가에서 만났다” 그녀의 자랑에 많은 동네 사람들이 예수에게 온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어떤 여자였는가 전에 남편이 다섯이었다. 혹시 몸을 파는 여인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남편이 다섯이나 바뀌었다는 것은 결코 떳떳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에게는 자랑할 것이라고는 건덕지는 커녕 국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영생의 기쁨을 얻으니 자랑할 것이 생겼습니다. 예수를 자랑한 것입니다.
마1:40-45에 한 문둥병자가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침받은 사람은 그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한 것입니다. 예수가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에게는 자랑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자기가 깨끗함을 받은 것이 자랑거리이고, 특별히 예수가 자랑거리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자랑거리가 생겨야 합니다. 병도 고침을 받고, 복도 받고, 명예도 얻고, 기쁨도 넘쳐야 합니다. 예수가 자랑이 되는 성도. 바울은 고전 13장에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고전 1:29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말라”, 고전 5:6에서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자랑하지 말라고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갈6:14에 보면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형틀로서 수치와 치욕, 죄인, 죽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가 지신 그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자랑할 것이 생기면 자랑해야만 하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힘과 지식과 재물과 능력과 권세와 자녀를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 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 재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 권세 자녀 다윗은 하나님만 자랑하고,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만 자랑하였습니다. 주곡교회 성도들도 하나님만 자랑하고, 예수의 십자가만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라(3절) 사람들이 다윗을 점점 높이고 있습니다. 사울왕은 천천을 죽였는데 다윗은 만을 주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왕보다 훨씬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을 높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높이지 말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4:8)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15:2)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왕이면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고 자기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얼마전 민선군수가 자기 지역의 높은 산 봉우리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비석을 세워서 말썽이 난 적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갔는데 그곳 성지에도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사람들까지 자기들의 이름을 써놓은 것을 볼 때에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 높이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기에 합당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화) 우리는 종종 이런 일들을 봅니다. 미스 코리아가 되고, 무슨 최우수 선수가 되면, 수석을 하면 인터뷰를 하는데, 그 때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름다움도, 우승의 기쁨도, 지식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쓰여져야 합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만 자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주곡교회 성도의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하는 성도, 하나님만 자랑하는 성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2. 그런 고백이 나온 배경 1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4)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예수가 가르쳐 주었다. 사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사사기 6장에 기드온의 기도가 나오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얼마나 철저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전쟁에 승리를 주시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려거든 타작마당의 솜뭉치에만 이슬이 젖고 나머지는 젖지 않기를 간구하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또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이번에는 송뭉치만 젖지 않고 땅에 젖기를 간구하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도응답이 있기에 하나님을 찬양, 자랑, 높여야 한다.
2 내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내시고(4)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두려움이 있다. 최초의 두려움은 창3:10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 즉 죄로 인한 두려움이 있다. 죄를 진 사람은 두려움 가운데 살수밖에 없다. 또 사람들은 죽음 앞에 두려워한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고, 많은 물질을 가졌다 할지라도, 높은 권세를 가졌다 해도 죽음 앞에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자기를 둘러싼 많은 적들이 두려움을 일으킨다. 또 앞으로 전개될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다윗은 나의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다고 고백을 하였다.(시23) 이사야는 두려움을 갖지말라고 말하였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계1:17)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 자랑, 높여야 한다.
3 그 얼굴을 영영히 부끄럽게 하시지 않으신다.(5)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그가 주시는 평강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의 검은 그림자가 사라지고 동시에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환한 빛이 그를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되는 환난을 당하엿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이 빛났으며, 하나님은 당신을 바라보는 스데반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비록 그가 돌에 맞아 죽었지만 첫 순교자로 아름답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달이 태양을 바라봐야만 밝게 빛이 납니다. 태양을 등지면 빛을 낼 수 없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므로 주의 광채를 입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짜증내고, 화내고, 신경질내고, 성질내고, 찌그러지고, 슬퍼하던 얼굴이 기쁨과 환희의 얼굴로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영영히 하나님이 세우고 그를 높이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빛나게 하시며 높이시므로 하나님을 찬양, 자랑, 높여야 한다.
4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다.(6-7) 곤고한 자를 건지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애굽의 고난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시키시고 건지셨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를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환난 가운데 있는 소경이 부르짖자 하나님이 환난에서 건지십니다. 모든 환난에서 부르짖는 자의 음성을 들으시는 하나님. 그를 찬양하며, 자랑하며,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응답하고, 두려움에서 건지시며, 주를 바라보는 자를 부끄럽게 아니하며,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항상 찬양하고, 자랑하며,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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