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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시23:1-6)

본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 진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로 말 미암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기의 원어는 "네페쉬"(nephesh) 원래의 뜻은 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이 말이 여러 가지로 번역 이 되는데, 시편 23편의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에서도 바로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생명으로도 영혼으로도 함께 쓰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적 개념으로는 영혼과 생명을 따로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소생시킨다는 말은 지친 생명에 새 기운을 불어 넣는다는 의미가 있고, 혹은 잃어버렸던 희망을 되찾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시들고 지치며 죽어가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게서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바람이 가득 들어간 공과 같다 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숨을 우리 속에 가득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바람이 가득 들어 있을 때는 공이 아주 팽팽하고 잘도 튀어 오릅니다. 그러나 거기에 바늘 구멍이라도 뚫리면 서서히 바람이 빠져 공은 쭈굴 쭈 굴해지고 전혀 튀어 오르지를 못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 상처가 생기면 생기가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절망에 빠지 고 짜증을 부리며, 모든 의욕을 상실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상 처를 받게 되는 요인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구멍 뚫린 우리의 생 명은 아무리 우리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바람을 넣으려 해도 그 바람 들은 일시적일 뿐 곧 빠져 나가고 맙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악의 상처 를 치료하실 수 있으며, 또 그만이 우리 속에 생기를 불어 넣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공허한 바람들 사람들은 생기가 빠져버린 자신들의 생명에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온갖 노력들을 다 기울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바람을 불어 넣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그러면 인생이 즐거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30년간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어느 정도 살게 되었습니다. 돈을 주체할 수 없을만큼 많이 가진 부자들도 생겨 났습니다. 그래서 큰 저택, 호화로운 가구, 억대가 넘는 자동차, 값비싼 장신구를 모두 마련합니다. 그리고 하룻밤 몇백만원씩 쓰는 룸싸롱에 드나들고, 해외로 나가 골프를 즐깁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참으로 멋진 생활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가 일찍이 그 모든 것을 누려보고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어떤 사람은 이념(리념)의 바람으로 채우려 합니다. 레닌의 사회주의 이 념이 사람을 한때 휘어 잡아 공산주의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주체사상)의 이념이 사람들을 완전히 사로 잡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부 젊은 이들 가운데 이런 이념에 사로 잡혀 물 불을 가리지 않고 그 이념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이념 에 대립하여 반공주의 이념을 맹신하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땅에 살고 있습니다. 반공(반공)만이 살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이념들이 모두 공허한 것임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이념에 의한 체제가 강화 될수록 그것은 사람을 더욱 부자유하게 할 뿐이라는 사 실을 우리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그 빠져버린 생기를 채우려 합니다. 그래서 태어 나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지식을 탐구하는데 모든 정력을 쏟아 바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철학을 찾아내고, 과학을 발전시켜 세계에 공헌을 합니다. 그러나 지식만으로 인간의 생기를 되찾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발 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다 찾아낸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지식인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모두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김빠진 생명을 어떻게 하면 다시 생기가 돋아나게 할까를 생각 하면서 술도 마시고, 쾌락을 추구하기도 하고, 여행도 해보지만 한번 빠져 버린 생기를 되찾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들이 추구하는 이런 것들로 인하여 그 상처는 더 깊어지고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치료할 길 없는 절망의 상태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을 몸에 받아 들였을 때는 황홀하고 기분이 좋지만, 약기운 이 떨어지면 견딜 수 없는 무력감으로 해서 또 다시 마약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결국은 폐인이 되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의욕, 우리의 피곤해진 영혼을 누가 되살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다시 희망찬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생명의 회복자 룻기에 보면, 나오미는 남편과 두 자식을 모두 잃어버리므로 완전히 절 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영혼은 쇠잔하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 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 룻이 그의 고난의 동반자로 등장하면서 그 의 절망은 서서히 희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룻이 보아스와 결 혼하여 아들을 낳게 되자 사람들이 나오미에게 이르기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죽음만을 바라보던 나오미에게 이 아기는 그의 생명의 회복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기를 잃어버린 인간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생기를 불어 넣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가 오셔서 행하신 모든 기적들이 바로 생명의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잃은 양의 비유는 바로 이런 생명의 회복자이신 예수님의 사랑 을 보여 줍니다. 양떼를 떠나서 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메고 돌아 온 목자는 절망에 빠졌던 그의 영혼을 위로하고 상처를 싸매주며 특별히 보살펴 줄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자기의 목동의 이런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와 같이 보살펴 주셨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잘 알았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이 그와 동행하여 주셨음을 그는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고 점점 더 편안해지며 더 분주해졌을 때 점차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죄를 저질렀고 이로 인하여 그는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는 목자를 떠난 어린 양 처럼 길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언자 나단을 통해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비로소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다 시 소생시켜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죄 많은 한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와 눈물과 그 머 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입을 맞추며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때 예수님 을 청한 바리새인이 이를 보고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의 상처받은 영혼을 보셨고 그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영혼을 싸매주셨으며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심으로 평안을 몰랐던 그 여 인은 죄사함을 통해 구원과 평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시 달리면서 갈기 갈기 찢겼던 그의 영혼이 치유함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 에게 냉대를 받으면서 시베리아의 동토처럼 얼어 붙었던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의 바람에 녹으면서 거기에 사랑의 싹이 돋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아마도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그가 내영혼을 소생 시키셨다"고 간증하였을 것입니다. 사랑이 영혼을 소생시킨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깊이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 에게 어떤 눈에 보이는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몇마디 말씀 만을 하셨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있는 일인데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그 여인에게 희망을 줄 수 없었을까요 거기에는 바리새인 들도 있었습니다. 율법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잘 공경한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왜 이 여인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결국 사랑이 좌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 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만 있었지 사랑이 없었습니다. 율 법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은 하였지만 그 상처받은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랑의 눈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서도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맏아들의 냉담한 태도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기적적인 초능력이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치료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 합니다만, 그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거기에 심오한 대속의 의미가 있습니다만, 인간을 끝없이 용 서하셔서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랑이 바로 그 십자가의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 이 온 인류의 영혼을 소생시키신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요일 4:18)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이 죽음의 모든 공포를 몰아낸 것입니다. 사랑의 빛이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 에 비쳐들면서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 빛을 차단했던 죽음의 그늘이 물러가고 생명의 빛이 우리의 얼어붙은 영혼에 봄이 오게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님을 받 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은 바로 우리의 생명을 부풀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 생명을 힘차게 약동시키는 것은 성령님이 가져오시는 사랑입니다. 성령님이 가져오시는 구원 의 능력은 바로 사랑의 능력입니다.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으면 무엇보다도 그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그의 생명 이 약동할 뿐 아니라 그 생명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또한 치료하고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불의를 보고 그 불의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영혼들을 또한 봅니다. 그 불의를 향하여 예언자와 같이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선 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이 사회를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에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젊은이들의 함성과 열정을 갸륵하게 생각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운동에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갖는 것입니다. 칼날같은 정의감과 더불어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는 뜨 거운 사랑이 없이는 구원의 역사가 성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를 위해 교회에 나오지만, 그 상처를 이해 하고 치유할만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일에 몰두 하다 보니 남의 영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간 직하였던 능력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성령님 충만함을 통하여 받은 사랑의 능력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교회들은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서 떠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의 사랑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셨다면 이제 그 사랑을 내가 받아 이웃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틀란타에 있는 수많은 의사 들과 대화를 나눠본 로빈스(R. B. Robins)박사란 분이 "좌절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이 교회를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정신과 의사는 상처받은 영혼이 필요로 하는 사랑 을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만이 이 사랑을 가지고 있고 또 줄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잃어버린 이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서 우리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킬 뿐 아니라 이웃의 영혼을 또한 소생시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끊임없는 기도가 아니면 또다시 우리의 생명의 기운은 빠져 나갈 것입니다. 아무리 꼭 매어놓은 풍선도 오랫동안 가만히 놔두면 바람이 빠지게 마련입니다. 날마다 기도를 통해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기다리 면서 그가 가져오시는 사랑의 생기를 받으므로 생명의 힘이 넘치는 생활을 이룩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가 이웃들의 상처받은 영혼, 절망에 빠진 영혼들, 죽어가는 생명들을 돌아보고 사랑을 통해 그 영혼들을 살려 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하신것처럼 실의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주신 계명 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룩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신 일에 감사함과 동시에 이웃의 영혼을 소생시켜야 할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성령님 충만함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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