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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시143:7-12)

본문

오늘은 살아가기가 참 힘든 때입니다. 아마 지금이 살기 어려운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들도 오늘을 전후 가장 어려운 때라고들 말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나라 전체가 어렵습니다. 건실하던 기업들까지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무너져야 끝이 날지 걱정입니다. 매일같이 실직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실직자들이 1만 명씩 발생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직자들이 대책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 얼마나 어려운 때입니까 이것이 이제는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입니다. 거리를 보면 술취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술이라도 취해서 오늘의 고민을 덜어 보려고들 합니다. 갑자기 실직하고 보니까 가정 경제가 어려워져 좀도둑이 늘고 생각도 못한 사람들이 강도로 돌변해서 잡히기도 합니다. 참 피곤한 새대입니다. 정신이 피곤하고 마음이 피곤하고 영혼이 피곤합니다. 본문은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다니다가 위험이 점점 가까이 오자 두려운 마음을 쓴 시입니다. 언제 잡혀 죽을지는 모릅니다. 다윗은 지치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 심정을 토로하기를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모두 다윗의 심정만큼이나 피곤합니다. 마음이 피곤하고 정신이 피곤하고 몸이 피곤합니다. 이런 때는 몇 가지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불안하고 걱정되고 피곤할 때 그 방법들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습니다.
1. 조용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t1143:8)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침”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를테면 기도하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그 인생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았을 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묵상함으로써 그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사람은 이 묵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좀 차분하게 앉아서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탄원하는 묵상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고 풀립니다. 모세는 광야에 40년 동안 있으면서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날의 그 화려했던 시간을 생각하고 지금의 초라한 처지를 생각하면 아마 미칠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한 번 영광을 맛본 사람이 이렇게 되면 미쳐 버립니다. 모세가 옛날 왕궁에서 살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모세에게는 불가능히란 없었습니다. 그의 삶이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의 앞에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 모세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합니까 아마 그때를 생각하고 오늘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고민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그런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호렙산으로 올라갑니다. 가서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내놓고 호소했습니다. 이것은 신앙인이라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신앙인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그 시간에 풀립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문제가 생기면 묵상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애굽으로 가서 네 백성을 이끌어내라.” 그래서 모세는 80의 나이에 화려하게 재기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옛날의 영광을 되찾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얻어지는축복들입니다. 예수님도 마음이 괴롭고 복잡할 때는 감람산을 찾았던 것으로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날밤에도 감람산을 찾았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고 다짐도 하고 각오도 다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묵상 생활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필수입니다. 조용히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돌아다볼 때 마음이 맑아집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의 영감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고 짐승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닭도 조용한 음악을 들려 주면 알을 더 잘 낳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끄러운 재즈 같은 음악을 틀어 주면 신경질을 부리고 알을 낳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젖소도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고 맑은 물소리를 들려주면 젖을 더 많이 낸다고 합니다.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초들도 주인의 사랑을 받으면 잘 자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람이야 이런 시간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하겠습니까 세상에는 내가 해결할 일이 있고 내 힘으로는 풀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해결하고 풀 수 있는 일은 누구를 의지하지 말고 열심히 다니며 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풀지 못하는 일은 괜히 헛수고하지 말고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조용히 묵상하면서도움을 요청하고 문제를 풀어 달라고 청원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아마 이 모습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하고 바람직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가장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 때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시143:8)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주 지혜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2. 앞길을 주께 맡겼습니다. “(시143:8)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은 “나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앞길을 맡겼습니다. 압살롬이 막강한 반란군을 이끌고 쫓아오고 있습니다.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언제 붙잡혀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합니까 그 어려운 시기를 다윗은 하나님께 의지함으로써 극복했습니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이 말은 “나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 한편 불안하기도 하고 또한편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분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이 실직된 것을 누가 알까 봐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어떤 실직자는 자기 아내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평소와 같이 출근하는 척하고 매일 아침마다 집을 나선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고 외롭겠습니까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기는 너무 힘듭니다. 사람은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혼자서는 못 삽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옛날보다 살아가기가 더 피곤하고 힘든 것은 매사를 이렇게 혼자 해결하려고 해서입니다. 혼자서 해결하고 감당하려고 해서 더 피곤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참된 안식은 하나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도움을 요청하고 앞길을 안내해 달라고 기도하는 데서 얻어집니다. 그래야 힘든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교회문화 연구소” 라는 곳에서 실직을 당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24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어려움을 이웃에게 알리고 기도를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알까 봐서 숨기고 창피해서 혼자만 알고 고민을 하면 문제를 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되도록 이웃에게 알리고 조언을 부탁하고 기도를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옛말에 병은 자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난날 살아온 세월 가운데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람들을 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때로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할 수 있는데 그러고 나면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자책하게 되고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나중에는 열등감에 빠져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바로 이런 소극적인 마음이 숱한 병을 만든다고 합니다. 루이스 헤이라는 사람이 “당신은 당신의 생을 치유할 수 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는 사람들이 악성종양에 걸리는 이유를 “영적 실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실패했다는 강한 자책감이 악성종양에 걸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흑인들이 “적혈구 빈혈증”이라는 병에 자주 걸리는데 그 병은 대부분 자신이 흑인이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서 생긴다고 합니다. 열등감이 마침내는 중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이즈도 동성연애자들이나 마약 복용자들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도 동성연애나 마약 복용이 선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자멸감 때문에 걸린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도 알고 보면 열등감 때문이고 패배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마음들이 마침내 병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 후에는 사람들을 자꾸 회피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다시 올 기회를 위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기회는 한번 지나가면 끝이 아니고 자주 옵니다.
기회는 여러 방법으로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니 기회를 잃은 사람은 또다시 올 기회를 잡기 위해서 오늘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용기를 주는 용어입니다. 오늘의 어려움이 내일에 가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에 가서 어떻게 전화위복으로 작용할지 누구도 모릅니다. 오늘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에디슴을 우리는 발명왕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평생 2천 가지를 발명했고 그 중에서
1,300개의 발명 특허를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하는데 알고 보면 에디슨은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를 저능아로 알고 쫓아냈습니다. 거기다 그는 귀머거리였습니다. 이 정도면 그는 아주 완벽한 실패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 발명왕이 됩니다. 누구도 상상 못한 일입니다. 그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귀머거리인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가 귀머거리였기 때문에 연구실에 들어가면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전화위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어려움에 직면하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어려울 때는 나의 앞길을 주께 맡기는 생활이 믿음생활입니다.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생활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믿음생활을 잘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믿음이 10%밖에 되지 않습니다. 열 명 중 한 사람 꼴입니다.
그런데 도시인은 30%나 됩니다. 열명당 세 명꼴입니다. 이것이 외국에 나가서 사는 교포들일 경우에는 그 비율이 더 높아집니다. 외국 이민자는 믿는자의 비율이 70%라고 합니다. 열명 중 일곱 명이 믿음생활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 앞날이 불안해서입니다. 사람은 앞날이 불안하면 믿음생활을 더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거기가 고향이고 거기에 친구가 있고 부모가 있고 익숙한 산천이 놓여 있습니다. 죽으면 그곳에 묻힐 것입니다. 세상에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믿음생활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도시 생활자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사람도 새로 사귀어야 합니다. 부모도 떨어져 있습니다. 일자리도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늘 긴장이 있고 불안한 마음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더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외국에 이민 가서 살면 오죽하겠습니까 문화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환경도 다릅니다. 천하의 고아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긴장이 되고 스트레스가 많겠습니까 그래서 저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긴장과 불안과 근심스러운 마음을 하나님께 앞길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풀었습니다.
3. 운명을 주께 맡겼습니다. “(시143:12)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내 운명이 이제 당신 손에 달렸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것도 전적으로 운명을 맡기는 마음입니다. 옛날에 종의 운명은 주인의 손에 달렸습니다. 주인의 뜻에 따라 팔려 가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인의 뜻에 따라 평생 종으로 살 수도 있었고 어느 순간 자유인이 되는 은전을 입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이렇게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단단히 맡겨 놓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부 가운데 크리소스톰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황제 숭배를 끝까지 거부해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때 황제가 화가 나서 명령하기를 “그를 감옥에 가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시종이 “그것은 안됩니다. 만일 그를 독방에 가두면 더 기도할 것입니다.”하고 만류했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악질범들이 들어 있는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했습니다. 시종은 그것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악질범들이 모두 그로부터 감화를 받아서 그의 제자들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목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순교를 영광으로 알고 만세를 부를 것입니다.”하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을 어떻게 처치해야 합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조건 없이 풀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편안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모반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시골로 피했습니다. 반란군들이 언제 들이닥쳐서 능지처참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한 나날을 보냈겠습니까 그때 다윗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호소함으로써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까지도 다 하나님께 맡겨 놓고 전화위복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화려하게 재기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렇게 불안한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내일이 불안합니다. 일터가 걱정스럽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다윗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놓고 호소하고 의뢰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모세를 전화위복시켜 화려하게 재기시키신 것처럼, 다윗을 전화위복시켜 화려하게 재기시키신 것처럼 우리의 앞날에도 그런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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