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전12:7-10)

본문

얼마 전 11월 4일자 국민일보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뇌성마비 시인인 송명희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36세의 송명희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녀가 태어날 때 의사가 태안의 아기의 뇌를 집게로 잘못 건들어 소뇌가 손상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체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소뇌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함으로 그녀는 일생동안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게 됐습니다. 또한 송명희는 집안이 너무나 가난한 관계로 분유 한병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일곱살때 까지는 누워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열 살이 넘어서야 겨우 밥숟가락을 스스로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결핵으로 시달렸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스러운 나머지 그녀는 자기가 태어난 것을 저주했습니다. 사춘기 때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던 그 믿음 때문에 그녀는 그냥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7살 때 큰 결단을 했습니다. 이제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어야겠다며, 하루에 몇 시간씩 목숨을 걸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을 왜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가 하나님의 뜻을 절규하면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빛 가운데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죽으리라."> 글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거듭났습니다. 자기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그 후 시간을 정해 놓고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시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실 그녀는 학교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특별하게 문학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가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알았습니다. 시는 다름 아닌 예술가 중에 예술가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온몸을 뒤틀며 시를 썼습니다. 비록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소뇌는 손상됐지만, 사고와 감각을 담당하는 대뇌는 더욱 왕성하게 활동한 것입니다. 바로 이때 쓴 시가 바로 "나"였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의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나, 나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시상은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시를 써서 극동 방송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시에 곡이 붙여졌습니다. 그녀의 시에 곡을 붙여 '그 이름'이라는 음반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그녀의 시를 묶어 시집을 펴냈습니다. 시집과 음반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교회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송명희씨를 초청했습니다. 그녀는 뒤틀린 입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간증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1천 500여 회의 국내외 집회에 참석했고, 종합 예술 선교단인 "함께 선교단"을 만들어 문화 선교 활동도 벌였습니다. 머리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던 여린 뇌성마비 장애인 소녀가 하나님의 은혜로 세계를 돌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진정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기자는 송명희 시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송명희 시인보다 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시에 누가 과연 송명희 시인보다 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시월 마지막날 올림픽 공원에는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신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화려하게 치장한 그 어떤 신부도 휠체어에 앉아서 고개를 흔들며 절규하듯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이웃을 걱정하는 그녀보다 아름다울 수 없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맞이한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쁨이 넘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까 흔히들 세상에는 네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첫째는, 감사할 조건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감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둘째는, 감사할 조건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셋째는, 감사할 것까지는 아닌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넷째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자신들을 냉철하게 평가해 보십시다. 우리는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진정 감사하고 있습니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모지 고난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진정 감사하고 있습니까 신앙인의 정체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감사의 분량이 곧 그 사람의 신앙의 척도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진실한 신앙인 인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진실한 믿음의 사람 바울이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감사의 사람, 승리의 사람 바울은 자신의 어려웠던 고난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계시가 너무나 크고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너무 교만해질까봐 내 몸에 가시 같은 병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교만하지 않도록 나를 괴롭히는 사탄의 사자입니다. 나는 이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완전해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약한 것을 더욱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고 모욕을 당하고 가난하며 핍박과 괴로움 받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고 모욕을 당하고 가난하며 핍박과 괴로움 받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삶은 진정 감사의 삶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사랑하는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쓸 때 늘 감사의 말을 서두에 적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로마서 1:8)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린도전서 1:4)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로새서 1:3)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래서 3:15)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바울의 감사를 통해서 우리는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감사는 조건이나 환경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하는 일들이 잘되어진다고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감사의 사람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누가복음 17장의 10명의 문둥병자 치유의 사건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도 문둥병은 불치의 병, 저주받은 병으로 생각합니다. 하물며 예수님 당시는 두말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문둥병은 참으로 더러운 병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소망이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몹쓸 병에 걸린 10명의 문둥병자들이 한 촌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긍휼과 능력으로 이 더러운 병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얼마나 축복된 순간이었습니까 세상이 달라지는 감격의 시간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아홉 명은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도 돌리지 않은 채 자기 갈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인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감사하다고 사례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안색이 좋지 못합니다. 섭섭해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진정한 감사는 은혜를 깨달으면서부터 가능합니다. 본문 7절 말씀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이해함으로 감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은혜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질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8절 말씀처럼 이 병이 떠나기를 위해서 세 번이나 주께 간구했습니다. 이 세 번을 우리는 단순히 기도 세 번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집중적으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작정기도를 세 번 기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또 이 병이 얼마나 수치스러웠든지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다 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바울이 앓았던 병이 무엇이었을까 여러 면으로 추정해 보지만 확실한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질일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강한 빛을 받고 눈을 상해서 안질로 고생했을 것이다 추정합니다. 그러나 눈이 아픈 것을 가지고 사단의 사자라고 말한 것은 좀 무리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바울은 간질병을 앓지 않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갈라디아서 4장 13절 이하의 말씀을 상고하면 바울이 간질병을 앓았다는 것이 어는 정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설교한 목회자가 갑자기 쓰려져서 입에 거품을 품고 있다면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 아닙니까 이것을 위해서 목숨 걸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이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가 족함을 깨닫고 자기의 약함을,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 비로소 바르게 해석합니다. 약함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약함을 오히려 이제는 크게 기뻐합니다.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서 자랑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한 것들, 능욕, 궁핍, 핍박 곤란을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장 복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경배의 찬송으로 불렀던 20장 찬송 다 감사드리세 이 찬송은 가장 참담한 현실 속에서 부른 감사의 찬송입니다. 이 찬송은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동안 독일을 무대로 개신교와 개토릭교간에 벌어진 최대의 종교 전쟁이며 최후의 종교전쟁으로 기록된 "30년 전쟁"때 독일의 작세지방의 아일렌 베르크에서 목회 하던 린카르트 목사가 작시한 것입니다. 이 참혹한 30년 전쟁이 휩쓸고, 지나갈 때 기근과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린카르트 목사는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장사지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4150구의 시체를 장사 지낼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는 찬송시를 적어 나갔습니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와 온 세상 기뻐하네. 예로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 계셔 기쁨과 평화의 복 내려 주옵소서. 몸과 맘 병들 때 은혜로 지키사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다 경배할찌라.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드린 최고의 찬송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처해있는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좌절하지 맙시다. 불평하지 맙시다. 오히려 감사하십시다. 우리의 약할 때 오히려 강하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십시다. 사도 바울을 들어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도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0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