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을 먹이라 (요21:15-20)
본문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다에 가셨을 때에 된 일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난 다음에 열렬한 신앙을 가졌지만 또 얼마 동안 암흑이 오니까 다시 옛날 어부노릇 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고기 잡으러 간다고 가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 신 일입니다. 그들이 디베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이 언덕에 서셔 가지고 너희들이 뭐 고기를 잡았느냐 이러시니 까 하나도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물을 오른편으로 던져 라. 던지니까 참 그물을 끌어올리지 못할 만큼 고기가 잡혔는데 아주 큰 고기만 백쉰세 마리가 잡혀서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한 것이 기적이라 이랬 습니다.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거기다가 고기를 구우시고 밥을 해 가지고 너희들이 조반을 먹으라 하시는데 주님이 아침밥을 준비하셔 가지고 그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후에 밥 대접을 했습니다. 우리 부활은 이런 부활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인데, 밥도 할 수 있고 밥을 먹 을 수도 있고 안 먹고 억만 년이라도 살 수 있고 이 모든 물체들과도 같이 상종 상접할 수가 있는 그런 것으로 부활합니다. 조반을 다 먹고난 후에,-그때는 이제 예수님인 줄 그들이 알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러니까 녜 대답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모든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특별히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하기를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 나이다. 할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 두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제는 모 든 사람보다 사랑하느냐는 말씀 하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내 양을 치라 했습니다. 내 양을 치라 말은 내 양 을 관리해라 그말입니다. 치라 말은 관리하라고 한 뜻입니다. 그러고난 다음에 세번째 또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시니까 베드로가 세번째는 근심을 했습니다. 어떻게 같 은 말로 자꾸 이렇게 세 번이나 나한테 물으시는가 해서 이제는 겁이 나서 두려워서 멈추다가 주는 알지 못하심이 없사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말했습니다. 그럴 때에 네가 내 양을 먹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고난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려서는 네 마음대로 다녔지만 이제는 노숙해지면 네가 손을 벌리리니 네가 팔을 벌리리니 네 손을 널리 펴리니, 네 구원의 손을 널리 펴게 되고 이렇게 되리니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워 가지고 네 원대로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원 대로 너는 끌려가는 그런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하시고 사랑한다 할 때에 세 번 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 그 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녜,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거든 네가 내 어린 양을 먹 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 중에 수제자 되는 베드로를 향해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하셨고 주를 사랑합니다 할 때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그렇게 세 번 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양을 먹이고 치고 먹이고 하는 그것이 주님을 제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외에 딴것이 없는 것을 여기 밝혀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는 네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로 네 마음대로 다녔지만 이제 네가 장성하면 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우고 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우고… 띠 띠우는 것은 긴장하는 것이오. 띠를 띠우는 것은 긴장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너를 긴장을 시키고, 다른 사람이, 너 원하는 대 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원하는 대로 네가 끌려가서 마지막에 순교하 리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 철없는 양. 장성한 양 그러면 어린 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 말씀했는데, 모든 사람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라면 어린 양을 먹이라 말했습니다. 어린 양은 장성한 양과 다릅니다. 어린 양은 젖을 먹여야 되지 꼴을 먹 이면 안 됩니다. 젖을 먹여야 되지 꼴은 못 먹습니다. 본문에서 세번째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할 때에 내 양을 먹이라 한 그 장성한 양은 배고프지 않게 꼴만 먹이면 잘 자랍니다. 또 관리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구렁텅이에 빠지지도 않고 언덕에 떨어져 죽지도 않고 또 저기에 맹수가 있으면 피해서 도망쳐서 우리로 목자에게로 오고 하니까 아주 관리에 힘이 안 듭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양은 면했지만 철이 없는, 젖을 반 먹고 사료를 반 먹는 그런 양 새끼는 관리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벌써 좀 크니까 여기 저기 제 마음대로 뛰어 돌아다니니까 그것이 돌아다니는 그 모든 향방을 잘 살 펴서 잘 관리를 하지 않으면 그게 어느 언덕에 떨어질런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어린 양은 물론 조금 큰 양보다도 관리도 힘들고 먹이는 것도 힘들고 하지만 중간 양은 먹이는 것도 젖도 가끔 가다 먹여야 되고 꼴도 먹여야 되고 또 그거는 이제는, 어릴 때는 그만 어미 옆에 있으니까 관리하는 데는 힘이 좀 덜 들지만 중간 양 이것은 이제 제 맘대로 뛰어 돌아다니 니까 이거 관리하기가 제일 힘듭니다. 그래서 그 차이적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아가서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두 유방이 쌍태노루 새끼 같다 이랬습니다. 유방이 쌍태 노루 새끼 같다 하신 쌍태 노루는 크고 작은 것이 없이 두 마리가 꼭 같이 큽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유방이 쌍태 노루 새끼 같다 그말은 진리와 영감으로 먹이는 그 젖통과 자기의 행함으로 먹이는 그 젖통이 같은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그 혀 밑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 그말은 언제든지 양 새끼가 먹을 수 있는 그런 달콤한 젖을 내고 있는 그것을 주님이 사랑 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어린양 먹이는 목자의 길
그러므로 어린 양은 이거 철없는, 철없는 어린 교인이기 때문에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가르쳐 가지고는 그게 알지 못하고 젖으로 먹여야 되니까 어미 양이 사료를 먹고 젖을 내서 어린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젖이 안 나서 젖을 먹이려고 꼭 콩국을 사서 먹 고 이랬는데, 젖을 내 먹일 그 욕심에서 콩국을 한 그릇도 먹기 어려운데 배야 터지든지 말든지 억지로 세 그릇을 사서 먹었더라고.
그런데 요새는 젖도 가짜 젖이 많이 있어 가지고 모두 요새는 가짜 젖 먹고 큽니다, 가짜. 진짜 어머니 젖을 먹지 못하고 가짜 젖 먹고 크기 때문에 가짜 젖으로 자 식을 기르니까 효성이 있을 수가 없어요. 젖을 먹이기 위해서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 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 은혜를 자기에게 소화를 시켜 가지고 나오는 그 거라야 되니까, 이제 나오는 어린 그것에게 젖을 내 먹이기 위해서 참 하나님 앞에 어데 개울가로도 가고 나무 밑에도 가고 산만당에도 가고 철야도 하고 이렇게 별별 곳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자기가 은혜를 소 화시켜서 먹여야 합니다. 그에게 말씀은 가르쳐도 잘 모르고 이러니까 양식이 될 만한 그 믿음의 자기 보고나, 자기나 먹을까 하나님 말씀은 들어도 모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말씀을 받아 가지고 깨달아서 그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져 가지고 먹여야 비로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 보고도 못 깨닫고 설교 듣고도 못 깨닫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화, 영감화된 자기를 먹고 그것이 자랄 수 있고 자기의 언행심사를 보 고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어린 양떼에게 어쩌든지 은혜가 되어서 그의 믿음 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은혜 생활에 나아가는 그런 노력 하는 것 을 가리켜서 여기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가서 4장에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쌍태 새끼를 낳은 목욕탕에서 나 온 털 깎은 양 같다 그래 말해 놨습니다. 털 깎은 양이요, 목욕탕에서 나 온 양이요, 또 쌍태 새끼를 낳은 양이라. 그것이 주님 앞에 아름다운 신부 의 이빨이라 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이빨은. 이는 어떻게 생겼느냐 이빨은 털깎은 양, 목욕탕에서 나온 양, 쌍태 새끼를 낳은 양 같다 이렇게 말씀했 어요. 그것이 예수님의 신부의 이빨의 아름다움이라고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양이 털이 자라면 사료를 많이 안 먹어도 됩니다. 털을 깎으면 사료를 많이 먹습니다. 또 털 깎고난 다음에 목욕을 시키면 사료를 더 많 이 먹습니다. 또 새끼를 쌍태를 낳아 놓으면 더 많이 먹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의 신부는 새끼를 위해서, 주인의 수입이 되는 털을 기르 기 위해서, 자기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자기 깨끗,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 얼마든지 성경 말씀을 더 연구해야 되고 또 더 묵상해야 되고 이렇게 해서 영감과 진리를 많이 먹는 것, 주인 수입 털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신덕 있는 그 행위를 주인이 털을 깎아서 필요함과 같이 그렇게 주님은 필요로 여기시고, 그 털을 깎아 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처럼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덕 있는 그 행위를 당신 이 수입으로 삼아 당신이 입고 다니는 의복입니다. 이래서 너희 착한 행 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어린 양은 성경 말씀만 가르쳐 가지고도 안 되겠고 내 말이 성경 말씀이 되어야 되겠고, 내 행동이 성경 말씀이 되어야 되겠고, 내 성질이 성경 말씀이 되어 야 되겠고, 내가 그에 대해서 모든 상대하는 것이나 봉사하는 것이나 내 전 부가 그에게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거는 성경 보고 따라오지 못하 고 나 보고 따라오고, 나를 양식으로 삼아 가지고 살지 성경 보고 영감 보 고 양식으로 삼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양식이 되어 줘야 되니 자기가 양식 되기 위해서, 영감도 그 어린 양을 위해서, 묵상도 어린 양을 위해서, 성경 보는 것도 어린 양을 위해서 … 자기가 과거에는 저 위해서 띠를 띠었지만 남이 띠를 띠워준다 다 른 사람 때문에 조심 안 할 수 없고, 남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남 때문에 하기 싫은 말도 하게 되고, 남 때문에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이제 다른 사람 때문에, 저 때문에 하지 못하고 남 때문에 모든 자기의 행동은 다 조절되어지고 결국은 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원대로 …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다른 사람 때문에 갔고, 다른 사람과 같이 신사참배 그것 뭐 안 하려면 그만 딴 데로 픽 피해서 도망을 치든지 망명을 하면 되지만 뭐 하려고 거기 있어서, 거기서 그런 시련을 받으면서 그런 고문 고통을 당하면서 있을 필요 없지만 양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고, 또 625 같은 때도 뭐 그럴 때는 그만 모른 척 하 고 교회 내버려 두고 이래 숨어서 살면 일없지만,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고 마지막에 죽는 곳에 끌려가도, 양의 유익을 위해서 제가 죽는 곳이라도 끌려가지 아니할 수 없는 그자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네가 모든 사람보 다 나를 사랑하는 행위요 대우라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이 말씀하신 것은 참 그게 아직 자라지 못해 가지고 철이 없으니까, 철이 없으니 성경을 암만 가르쳐도 성경을 깨닫습니까, 그것 이 무슨 기도를 하라 해도 기도를 합니까 이러니까 성경은 안 보고 다만 제가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하는 그것만 보고 그것만 양식으로 삼고 그것만 보고 항상 믿습니다. 이러니까 얼마 동안 믿다가도 만일 내가 휘떡 변해버 리면 그 따른 것은 다 변해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양식되기 위해서 자기를 삼가고 자기를 지키고, 또 그들에게 양식되기 위해서 자기를 통해서 영감이 타나나야 되겠고 진리가 나타나야 되겠으니까, 이제 주님을 사랑함으로 어린 양을 위해서 먹일 그 젖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 날뛰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처음에는 그것이 하나님 말씀 보고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먹고, 자기를 먹고 자랄 수 있는 그 어린 양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 어린 양에게 젖이 되어질 수 있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젖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 젖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모든 면으로 노력하고 염려하고 하는 그것 을 주님이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반사 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권찰 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또 목회 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교회 를 다니되 장로나 집사나 그런 성직을 가진 자가 복이 있습니다. 또 어디 가든지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나는 장로라, 집사라 그러면 참 힘듭니다. 그러나 그래도 나타내는 것이 좋습니다, 나타내는 것이. 나타내지 아니할 때도 나타날 줄 알고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곳에 이사를 가 가지고 아무도 모르는 거기서도 내가 이 자리에서 장로로 나중에 그들이 알아도 손색이 없고, 목사로 알아도 손색이 없고, 집사로 알아도 손색이 없고 다 그들이 그렇기 때문에 그랬는가보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그들에게, 참 그게 어린 양 인데, 그게 아직 예수 믿지 않는 어린 양인데 그들에게 양식이 되어야 되 지 하고 조심 조심해서 이렇게 사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 저 무슨 사람이 저런 사람이 있을까 이래 저래 차차차 보고 그 사람 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러하구나. 해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아직 택한 사람이나 신앙에 출발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양식이 되도록 하는 그것이 어린양을 먹이는 것이요, 이제 믿기로 시작했지만 철이 없으니까 자기만 보고 예수 믿습니다.
자기만 보고 예수 믿는데 자기가 능히 그에게 어린 양이 먹고 지낼 만한 충 분한 그런 젖이 될 수 있는, 자기에게 젖이 나오는 그런 일을 위해서 자기 가 조심해서, 그런 사람으로 그렇게 주를 사랑함으로 양을 젖을 먹여 기르는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철없는 양 관리 그 다음에 두번째는 좀 어리니까 그저 젖만이 아니고 꼴도 먹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행동만 볼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차차차차 조금씩 알 아서 이제는 성경 보고 믿고 하나님 보고 믿도록 자꾸 그렇게 옮겨 세울려 고 애를 쓰면 이제 조금 빠닥거리는 신앙이 되어서 어북 크면 여기 대해서는 문제가 뭐이냐 이것이 지금 관리가 제일 문제입니다, 관리가. 행동 이 문제입니다. 조금 예수를 믿었다 하지만 그게 그저 과거에 예수 안 믿을 때에 세상 생활하던 거와 같은 그런 생활로 그저 뭐 질팡갈팡 믿는 생활로, 교회 오면 믿는 생활 또 가면 안 믿는 생활, 술자리에는 술먹는 사람, 노름자리에는 노 름하는 사람, 이 죄에 가면 또 이 죄인, 저 죄 범하는 데 가면 또 저 죄인 이렇게 되어지는 그것을 네가 하나 하나 관리해 가지고, 내가 네게 대해서 오래 참은 것과 같이 그렇게 네가 길이길이 오래 참아서, 그것을 일대 일로 그렇게 복수하지 말고 오래 오래 참아서 그렇게 그들을 한 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 그런 가운데서 또 타이르고 관리하고 해서 마지막에는 죄와 상관 이 없는 사람으로 길러 이제는 꼴만 주면 됩니다. 장성한 양 꼴만 주면 뭐 그거는 뭐 언덕이니까 못 가게 가릴 것도 없고, 처음에는 못 가도록 가리워놓고 이렇지만 이제는 가릴 것도 없고 맹수 오는 데에 맹 수라고 지킬 것도 없고 맹수가 오면 달음질쳐서 피할 줄 알고, 언덕에는 떨 어지면 죽을 줄 알고 안 가고, 물에도 빠지면 죽을 줄 알고, 함정에 빠지면 죽을 줄 알고, 이러니까 관리할 것은 없이 다만 그들에게 영감과 진리의 말씀만 가르쳐서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고 갈 길을 모르는 것을 이 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참 목자의 심정 내가 이 말씀을 강단에 와서도 보면서, 앉아 보면서도 내가 읽을 때에 내게는 마음에 자꾸 울음과 눈물이 날려고 해서 내가 억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다른 게 아니오. 나는 참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뿐이지, 장성한 양을 먹여서 꼴만 베다가 자꾸 줘 가지고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뿐 이지, 내가 목부가 돼 가지고 장성한 양을 먹이는 꼴만 베다가 자꾸 이래 놓으면 그 꼴을 먹여서, 꼴만 먹여 안 되는 것은 젖과 섞어 먹이고, 또 꼴은 하나도 못 먹이는 것은 젖을 먹이고 이래 가지고 이것들을 하나 하나 관리 하는 것은 이 권찰님들과 반사 선생님들이 한다 하는 그걸 제가 생각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 권찰님들은 참, 그래서 제가 종종 속에 그런 느낌을 가집니다. 또 말도 합니다. 권찰님들은 참 교인들에게 대해서 아주 따뜻한 어머 니입니다. 따뜻한 어머니요. 어머니로서 거게는 다 흉금을 열고 오만 의논도 다 할 수 있고 공력이 다 들었고 젖도 먹였고 꼴도 먹였고 또 관리도 했고 다 이랬지만 나는 찍해야 이 꼴 베다가 한 짐 져다가 툭 부들트리면 그걸 로 다 되는, 나는 풀 베 가지고 오는 목부지 나는 이 양떼에 대해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양떼라도 다 권찰님들과 반사 선생님들과는 밀접한 그런 모자의 다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런 핏줄이 얽힌 것이 있지만 나는 그저 목부로서 한짐 져다가 툭 던져 놓으면 다 되는 처지의 사람입니다. 그래 내가 말했습니다.
옛날에 박신환 조사님이 별세해서 저 산에다 장 례를 치러놓고 그때에 온 교인들이 참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 랬습니다. 이 박 조사님은 그래도 어린 양을 먹인 것이 있고 양을 먹인 것이 있지만 나는 찍해야 풀밖에 안 베다 줬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이만큼 곡성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그 말을 했어. 내가 죽으면 이만큼 곡성이 없을 것입니다. 왜 그들과 나와의 별로 연결된 것이 없고, 오래 가면 서 차차차 설교나 없으면 설교를 좀, 설교 말씀이 그립다 하는 것뿐이 지 그런 것이 없을 것이다 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주님이 제일 원하는 것이 어린 양 먹이는 이걸 제일 원하시고, 그 다음 에는 철이 없는 양을 다스리는 이것을둘째로 원하시고,셋째는 장성한 양 먹이는 것을 원하시는데첫째둘째 이것을 내가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여기 부산 오기 전에는첫째둘째의 일들을 했고 내가 부산 와서 처 음에 몇 해 동안 했지만 벌써 세월이 삼십여 년이 지나가고 나니까 그만첫째둘째 거기 대해서 나는 관심도 못 가졌고 하지도 못했고 이러니까 이 거 뭐 쭉정이가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러니 내 마음에 자비심이 자 라가나 안 가나, 긍휼심이 자라가나 안 가나 그래 내가 혹 말해 보기도 합니다.
어떤 구역장이 와서 어떤 양떼의 사정을 말할 때에 뭐 그까짓 거 그럴 게 뭐 있는가 던져 내 버리지. 내가 이렇게 말을 해 봅니다. 이렇게 말해 보면 그 권찰님은 마음이 녹습니다. 마음이 녹아서 그래도 어떻게 버릴 수가 있느냐면서 그럴 수가 없어 서 놓지를 못하는 걸 내가 봅니다. 또 반사들이 뭐 학생들 어쩌고 저쩌고 이럴 때 그래 내가 한번 툭 내뱉 기를 그런 아이들은 안 나오면 내버려둬라 해 보면 그 반사가 그 학생 을 인해서 마음에 안타까와 아파하는 그런 것을 봅니다. 내가 어제도 어떤 반사를 보니까 자기가 기르는 학생을 말하면서 그만 자기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나와서 눈물이 줄줄 흘러. 주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이 어린양 먹이는 것입니다.둘째로 원하시는 것이 철없이 날뛰는 그 양을 관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셋째로 원하시는 것이 양을 꼴을 베다 줘서 배불리 장성하게 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원수도 주님의 양인지 모르니 양은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모든 택한 자들이요, 또 좁게 말하면 믿는 사람들입니다. 또 택한 사람 가운데는 불교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유교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무신론자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택한 자로서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는 그런 반대자 속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잃어버린 양입니다. 그러기에, 주의 피로 구속한 양은 공산주의에게는 없다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 집은 저렇게 예수 믿는 사람을 반대하니까 저 사람들 집에는 주의 양은 없으리라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잃어버린 양이 지금 어디 가서 붙들려 매여 가지고 어디 가서 헤매고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거든 나를 사랑함으로 내 양을 먹이 고, 치고, 다스려 달라. 그리하여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사랑하고, 내 양을 나를 위해서, 나를 인하여 사랑하면 그것이 막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 주님이 구속한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주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그것이니까, 주님이 소원하시는 것이 그것이니 …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대우하려고 해 봤자 대우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완전자십니다. 영원 자존자십니다. 내가 그분에게 무엇을 대 우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양을 사랑해 다오, 나를 위하 거든 내 양을 위해 다오, 나를 좋아하거든 내 양을 좋아해 다오, 나를 귀중 히 섬겨 아끼거든 내 양을 귀중히 여겨 아껴 다오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 주의 양이 어디 들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지금 대적하는 내 원수 그 사람도 주님의 양인지 모릅니다. 지금 공산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가 지고 독침을 가지고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그 원수도 주님의 양인지 나는 모릅니다.
어떤 이종교 속에 들어있는 참 만고에 형언 못할 그런 악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막바로 주님의 양인데 지금 목자를 잃어 가지고 이리에게 삼켜서 죽고 있는 양인지 모른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주의 부탁한 양을 사랑해야 되겠는데 주의 양이 어느 것인지 모르니 주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를 대접하는 것 으로 모든 사람을 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내게 와 가지고 권총을 대고, 독침을 가지고 오고, 하나님 믿는다고 몽둥이로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이래도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 를 사랑하면 내 양을 사랑해 다오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나를 대적 하는, 지금 몽둥이로 나를 치고 있고 나를 고문하고 고형하고 있는 그 사람 이 주님의 양인지 나는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도 내가 사랑해야 주님을 사랑함이 되지 그 사람 에게 내가 홀대하는 그것이 주님을 홀대하는 것이 되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내가 박대하는 일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사랑에 빚진 사람으로, 주의 사랑에 팔린 우리들은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어떤 사람이든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은 나를 미워서 죽이면 죽으면서도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을 마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스테반의 순교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이스라엘이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음을 이스라엘에게 전해서 그것을 경고해서 건 져내려고 그들에게 사는 복음을 전해 줬을 때에 그들은 분개해서 모여 가 지고 돌로 쳐서 스데반을 돌쪼산을 만들어 가지고 돌무더기를 만들어서 죽 였습니다. 죽일 때에 그는 주님이 부탁하신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에 돌쪼산 속에 묻혀 가면서 하는 말이 그거였습니다. 보라,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주님이 살아서 아버지의 우편에 계시면서 지금 나를 기다리고 서서 계시는 것을 보라. 눈을 떠서 위를 쳐다 보라. 주님이 천국 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서서 계시는 것을 보라. 이분이 너희들의 주님이시니까 주님을 믿으라고 그럴 때에 아우성을 치면서 돌을 마구 던져서 돌쪼산 속에 파묻혀 죽어가 면서 한 마지막 기도가 그것이었습니다. 주님이여, 저희들이 알지 못해서 저렇게 하는 것이니 그들에게 죄를 돌 리지 마시고 죄를 정하지 마시고 그들을 구원에 달라는 그 말을 마지막으 로 마치고 운명했습니다. 그가 주님이,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사람들보다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어린 양 을 먹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그 주님, 십자가에 대속하신 그 주님, 죽음으로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도 주를 생명 바쳐 사랑해야 마땅할 그분이 소원 하기를 양을 사랑해 달라고, 양을 길러 달라고, 쳐 달라고, 다스려 달라고, 잘 관리해 달라고, 먹여 달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그분의 음성을 그는 기억 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불붙음이 자기를 돌로 쳐서 돌 속에서 죽도록 하는, 돌무더기가 되게 하는 그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뜨거움이 그 원수를 위해서 정죄하지 않기를, 그들이 몰라 그런 것이니까 그들을 구출해 주기를 기도하고 떠났습니다. 그것이 주님에게는 스데반이 하는 일 중에 가장 기쁨이요 만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죽음 속에서도 참 주님을 사랑했고, 죽음에서도 주님을 사랑했고, 죽 음에서도 주님을 사랑했고 생명보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께서는, 돌로 쳐 서 죽이는 그 원수를 향하여 주님 앞에 정죄 하지 말고 구원해 달라고, 그 들이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변호하는, 양을 사랑하는, 양을 사랑함에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만족히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하나님이 만족하셔서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그 얼굴의 광채를 스데반에게 비출 때에 스데반의 그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광 채가 나면서 변해졌습니다. 그때 그것을 책임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기로 한 책임자 사울이 거 기 있었는데 사울이 거기서, 죽으면서도 그렇게 기도하는, 기도하는 그 인격 성, 그 참 인격성, 그 위대성, 그 진실성,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성, 그런 가운데서 위해서 또 기도하는 것, 그럴 때에 하나님의 빛이 그에게 와 비추어 가지고 얼굴이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사울은 남자가 칼을 뺏다가 도로 꽂을 수가 있느냐 냈던 바람에, 죽이 고난 다음에 이제 다메섹으로 가서 또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겠다 이렇게 가면서도 그 속에 스데반이 참 하나님의 도를 밝히 생명을 아끼지 않고 바 로 증거해 준 것과 죽음에서도 원수를 위해서 하나님에게 간절한 기도가 있은 것과 또 하늘에 주님이 보인다고 말하고 그 얼굴에 광채나는, 만족하 고 광채나는 빛난 얼굴을 보고 사울에게는 그 마음에 고민이 있었습니다. 고민이 있고 고민이 있고 가면서도 번민 고민이 있어 고민하여, 고민하 여 과연 하늘에서 하늘문을 열고 기다리고 서신 그분이 누굴까 스데반 에게 그런 가운데서도 요동되지 않는 그 뜨거운 인류의 사랑 그 사랑을 주 신 이가 누굴까 그의 얼굴을 빛나게 반사케 한 그분이 누굴까 이것 이 점점 주님을 가깝게 하게 되어서 주님이 다메섹 도중에서 나타났습니다. 빛에 나타나 가지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 여 당신이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나는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다시 살아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 할 때에 그 때에 사울은 그만 완전히 기절해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눈은 그때 멀었습니다. 그때 그 먼 눈이 뒤에 회복이 안 됐습니다. 그 평생 눈먼 그 것으로 자기에게는 은혜로 살았습니다. 눈이 멀어 가지고 그때 다메섹 성 중에 들어가서 그만 거기서 회개하면 서,-그때 다메섹에는 사울이라 하는 율법사가 오니까 이 사울이 와 가지 고 이 성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다 몰사시킬 것이라 하고 유태인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선포했습니다. 나는 이렇고 이렇고 이랬는 데, 예수를 나는 하나의 이단으로 알았는데 그가 우리가 대대토록 고대한 메시야다, 구주시다. 하는 것을 거기서 증거하고, 나도 지금 이제는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는다. 하는 걸 증거할 때에 그 성에서 모든 사람들이 잡아 죽이려고 이래서 거기서 피해서 들 창문으로, 성 들 창문으로 광주리 에 달아 내려서 죽음을 면해 가지고 아라비아에 가 가지고 삼 년 동안을 울었습니다.
3년 동안을, 대대로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메시야의 대적이 되고 참 메시야를 영접지 못했고 메시야를 영접한 스데반 같은 그 런 신앙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는 것과 하나님이 부탁하신 그 부탁의 도 를 그대로 신실히 전하는 자기가 되지 못한 데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예수 믿는 교회에 대해서, 모든 유대인들에게 거짓부리 유대인들을 깨워 주 지 못한 데 대해서, 자기 본족에 대해서, 이방에 대해서, 주님에게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울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삼 년 그곳에서 참 인사불성한, 뭐인지 모를 만치 피골이 상접하게 그는 거기서 회개를 하고 뜨거운 각오를 가지고 주님 앞에 능력 받아 가지고 나와서 사도 바울로 사도들 중에 제일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이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이 부탁한 양이라고 우리가 보는 것이 그것이 틀림이 없 고 바로 보는 것입니다. 양이 아닐지라도, 양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양인 줄로 알고 그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도 가 지고, 우리는 모든 걸 다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그 양을 위해서는 내가 기 회를 주시는 대로, 하나님이 형편을 주시는 대로, 힘을 주시는 대로 우리에 게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주의 양떼를 사랑 하는 여기에 다 바쳐서 살고 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운동의 가치
그러므로 주님이 거룩한 자 수만으로 더불어 와서 심판할 때에 그 심판 은 경건한 일 경건한 말 이거 외에는 하나님이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 나머 지는 모조리 다 심판해서 다 유황불로 다 사루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이 일을 위한 말을, 내 가 악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그 말을, 내가 악하면서 그 인간을 구원하는 말을 하게 되고, 내가 잔인하면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되어지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 그러기 때문에 설교자가 기쁜 것은 나는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데 내가 설 교하려고 강단에 섰을 때에는 하나도 섞임 없이 어쩌면 이 양떼들에게 내가 은혜를 끼칠까 하는, 그 양떼의 구원을 위하고자 하는 그 마음만 솔빡이지, 딴것이 하나도 없이 그 마음만 가지고 설교를 하고난 다음에도 혹이나 미진한 것이 없는가 생각할 때,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놈을 주님이 이렇게 안 하래야 안 할 수 없고, 억지로 복을 받고, 억지로 경건이 되고, 억지로 경건한 말 하고, 억지로 경건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오 주여! 어떻 게 제가 무엇이관대 주님이 이렇게 해 주셨습니까! 제가 그때 남해 내산 기도원에 가 가지고 두 주간을 기도를 하고 오면 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제가 볼 때에 모든 사람은 다 세상에 있는 것 이것 저것, 이 장사 저 장사, 이 운동 저 운동하는데 내게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진리를 파는 장사꾼을 만들었으니까 장사꾼 중에는 제일 고급 장사꾼이다. 나를 이렇게 주님이 제일 원하시는 양을 먹일 수 있는 이 직책을 주셨으니 참 복이다. 제가 너무 감사해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복음을 전하고난 다음에 참 거기서 나오는 눈물을 억제하면서 그래 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후면 우리는 갑니다. 또 언제 갈지 모릅니다. 뜻밖에 갑니다. 주님의 부탁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또 가라사대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다스리라 말이오. 내 양을 치라. 또 세번째 가라사대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째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고로 시몬이 심히 근심하여 가로되 주는 알지 못하심이 없사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 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것은 네가 이제는 장차 네 소원대로 하지 못하고 모든 양떼들의 소원, 네가 자고 싶다고 자지도 못하고 양떼 위해서 자야 되 고, 먹고 싶다고 먹지 못하고 양떼 위해서 먹어야 되고, 네가 순전히 네 생활 전체는 하나님의 양을 위한 생활이 되어지고, 너 하고 싶은 것은 하나도 못 하고 양 소원하는 그대로, 양이 여기 원하면 여기 가 있게 되고, 저기 가 기 원하면 저기 가게 되고, 양이 감옥을 원하면 감옥 가게 되고, 양의 유익 을 위해서, 이제는 양을 위해서 네가 처소도 정해지고 가는 곳도 정해지고 사는 것도 정해지고 죽는 것도 정해지느니라 하는 이것으로서 어떻게 죽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을 마지막으로 선언하고 부탁했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의인들이 말하기를 언제 주님 이 주리실 때 내가 대접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대접했으며 벗었을 때 옷 을 입혔으며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 내가 방문하였나이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예비하였던 의의 나라로 가라. 영접하시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 나를 이렇게 대접하지 않았다 언제 주님이 주리시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대접치 않더이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치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행치 아니한 것이니라 다 놀 랬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양떼에게 행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직접 행한 것이 되고 양떼에게 하지 않고 무심히 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하지 않고 무심히 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을 아무도 그렇게,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그때 가 가지고는 다 놀랐습니다. 그렇게 그런 줄은 다 몰랐습니다. 후회 없는 생활합시다. 뭐 이래도 저래도 먹고는 삽니다. 우리가 공연 히 세상 일 가지고 양떼에게 손해 가는 일 남의 구원에 해가 되는 일 하지 말고 그저 조심해서 잘 살고 갑시다. 주님이 제일 사랑하는 자로, 주님을 제일 사랑하는 자로 어린양 먹이고, 철없는 양 다스리고, 양 먹이고, 양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의 의식주가 다 바 쳐지고 마지막에는 주님이 원하는 양을 위해서 양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 몸과 생명을 바쳐 주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생순교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래도 순교해야 됩니다! 우리가 순생하다가 순교해야 됩니다! 우리가 참 늙어서 죽고 병들어 죽으면 참 불쌍한데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나 아무래도 우리는 순생하다가 순교해서 주님이 우리를 다해서 사랑하심같이 우리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또 두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제는 모 든 사람보다 사랑하느냐는 말씀 하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내 양을 치라 했습니다. 내 양을 치라 말은 내 양 을 관리해라 그말입니다. 치라 말은 관리하라고 한 뜻입니다. 그러고난 다음에 세번째 또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시니까 베드로가 세번째는 근심을 했습니다. 어떻게 같 은 말로 자꾸 이렇게 세 번이나 나한테 물으시는가 해서 이제는 겁이 나서 두려워서 멈추다가 주는 알지 못하심이 없사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말했습니다. 그럴 때에 네가 내 양을 먹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고난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려서는 네 마음대로 다녔지만 이제는 노숙해지면 네가 손을 벌리리니 네가 팔을 벌리리니 네 손을 널리 펴리니, 네 구원의 손을 널리 펴게 되고 이렇게 되리니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워 가지고 네 원대로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원 대로 너는 끌려가는 그런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하시고 사랑한다 할 때에 세 번 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 그 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녜,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거든 네가 내 어린 양을 먹 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 중에 수제자 되는 베드로를 향해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하셨고 주를 사랑합니다 할 때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그렇게 세 번 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양을 먹이고 치고 먹이고 하는 그것이 주님을 제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외에 딴것이 없는 것을 여기 밝혀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는 네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로 네 마음대로 다녔지만 이제 네가 장성하면 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우고 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우고… 띠 띠우는 것은 긴장하는 것이오. 띠를 띠우는 것은 긴장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너를 긴장을 시키고, 다른 사람이, 너 원하는 대 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원하는 대로 네가 끌려가서 마지막에 순교하 리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 철없는 양. 장성한 양 그러면 어린 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 말씀했는데, 모든 사람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라면 어린 양을 먹이라 말했습니다. 어린 양은 장성한 양과 다릅니다. 어린 양은 젖을 먹여야 되지 꼴을 먹 이면 안 됩니다. 젖을 먹여야 되지 꼴은 못 먹습니다. 본문에서 세번째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할 때에 내 양을 먹이라 한 그 장성한 양은 배고프지 않게 꼴만 먹이면 잘 자랍니다. 또 관리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구렁텅이에 빠지지도 않고 언덕에 떨어져 죽지도 않고 또 저기에 맹수가 있으면 피해서 도망쳐서 우리로 목자에게로 오고 하니까 아주 관리에 힘이 안 듭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양은 면했지만 철이 없는, 젖을 반 먹고 사료를 반 먹는 그런 양 새끼는 관리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벌써 좀 크니까 여기 저기 제 마음대로 뛰어 돌아다니니까 그것이 돌아다니는 그 모든 향방을 잘 살 펴서 잘 관리를 하지 않으면 그게 어느 언덕에 떨어질런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어린 양은 물론 조금 큰 양보다도 관리도 힘들고 먹이는 것도 힘들고 하지만 중간 양은 먹이는 것도 젖도 가끔 가다 먹여야 되고 꼴도 먹여야 되고 또 그거는 이제는, 어릴 때는 그만 어미 옆에 있으니까 관리하는 데는 힘이 좀 덜 들지만 중간 양 이것은 이제 제 맘대로 뛰어 돌아다니 니까 이거 관리하기가 제일 힘듭니다. 그래서 그 차이적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아가서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두 유방이 쌍태노루 새끼 같다 이랬습니다. 유방이 쌍태 노루 새끼 같다 하신 쌍태 노루는 크고 작은 것이 없이 두 마리가 꼭 같이 큽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유방이 쌍태 노루 새끼 같다 그말은 진리와 영감으로 먹이는 그 젖통과 자기의 행함으로 먹이는 그 젖통이 같은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그 혀 밑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 그말은 언제든지 양 새끼가 먹을 수 있는 그런 달콤한 젖을 내고 있는 그것을 주님이 사랑 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어린양 먹이는 목자의 길
그러므로 어린 양은 이거 철없는, 철없는 어린 교인이기 때문에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가르쳐 가지고는 그게 알지 못하고 젖으로 먹여야 되니까 어미 양이 사료를 먹고 젖을 내서 어린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젖이 안 나서 젖을 먹이려고 꼭 콩국을 사서 먹 고 이랬는데, 젖을 내 먹일 그 욕심에서 콩국을 한 그릇도 먹기 어려운데 배야 터지든지 말든지 억지로 세 그릇을 사서 먹었더라고.
그런데 요새는 젖도 가짜 젖이 많이 있어 가지고 모두 요새는 가짜 젖 먹고 큽니다, 가짜. 진짜 어머니 젖을 먹지 못하고 가짜 젖 먹고 크기 때문에 가짜 젖으로 자 식을 기르니까 효성이 있을 수가 없어요. 젖을 먹이기 위해서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 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 은혜를 자기에게 소화를 시켜 가지고 나오는 그 거라야 되니까, 이제 나오는 어린 그것에게 젖을 내 먹이기 위해서 참 하나님 앞에 어데 개울가로도 가고 나무 밑에도 가고 산만당에도 가고 철야도 하고 이렇게 별별 곳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자기가 은혜를 소 화시켜서 먹여야 합니다. 그에게 말씀은 가르쳐도 잘 모르고 이러니까 양식이 될 만한 그 믿음의 자기 보고나, 자기나 먹을까 하나님 말씀은 들어도 모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말씀을 받아 가지고 깨달아서 그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져 가지고 먹여야 비로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 보고도 못 깨닫고 설교 듣고도 못 깨닫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화, 영감화된 자기를 먹고 그것이 자랄 수 있고 자기의 언행심사를 보 고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어린 양떼에게 어쩌든지 은혜가 되어서 그의 믿음 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은혜 생활에 나아가는 그런 노력 하는 것 을 가리켜서 여기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가서 4장에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쌍태 새끼를 낳은 목욕탕에서 나 온 털 깎은 양 같다 그래 말해 놨습니다. 털 깎은 양이요, 목욕탕에서 나 온 양이요, 또 쌍태 새끼를 낳은 양이라. 그것이 주님 앞에 아름다운 신부 의 이빨이라 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이빨은. 이는 어떻게 생겼느냐 이빨은 털깎은 양, 목욕탕에서 나온 양, 쌍태 새끼를 낳은 양 같다 이렇게 말씀했 어요. 그것이 예수님의 신부의 이빨의 아름다움이라고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양이 털이 자라면 사료를 많이 안 먹어도 됩니다. 털을 깎으면 사료를 많이 먹습니다. 또 털 깎고난 다음에 목욕을 시키면 사료를 더 많 이 먹습니다. 또 새끼를 쌍태를 낳아 놓으면 더 많이 먹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의 신부는 새끼를 위해서, 주인의 수입이 되는 털을 기르 기 위해서, 자기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자기 깨끗,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 얼마든지 성경 말씀을 더 연구해야 되고 또 더 묵상해야 되고 이렇게 해서 영감과 진리를 많이 먹는 것, 주인 수입 털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신덕 있는 그 행위를 주인이 털을 깎아서 필요함과 같이 그렇게 주님은 필요로 여기시고, 그 털을 깎아 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처럼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덕 있는 그 행위를 당신 이 수입으로 삼아 당신이 입고 다니는 의복입니다. 이래서 너희 착한 행 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어린 양은 성경 말씀만 가르쳐 가지고도 안 되겠고 내 말이 성경 말씀이 되어야 되겠고, 내 행동이 성경 말씀이 되어야 되겠고, 내 성질이 성경 말씀이 되어 야 되겠고, 내가 그에 대해서 모든 상대하는 것이나 봉사하는 것이나 내 전 부가 그에게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거는 성경 보고 따라오지 못하 고 나 보고 따라오고, 나를 양식으로 삼아 가지고 살지 성경 보고 영감 보 고 양식으로 삼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양식이 되어 줘야 되니 자기가 양식 되기 위해서, 영감도 그 어린 양을 위해서, 묵상도 어린 양을 위해서, 성경 보는 것도 어린 양을 위해서 … 자기가 과거에는 저 위해서 띠를 띠었지만 남이 띠를 띠워준다 다 른 사람 때문에 조심 안 할 수 없고, 남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남 때문에 하기 싫은 말도 하게 되고, 남 때문에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이제 다른 사람 때문에, 저 때문에 하지 못하고 남 때문에 모든 자기의 행동은 다 조절되어지고 결국은 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원대로 …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다른 사람 때문에 갔고, 다른 사람과 같이 신사참배 그것 뭐 안 하려면 그만 딴 데로 픽 피해서 도망을 치든지 망명을 하면 되지만 뭐 하려고 거기 있어서, 거기서 그런 시련을 받으면서 그런 고문 고통을 당하면서 있을 필요 없지만 양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고, 또 625 같은 때도 뭐 그럴 때는 그만 모른 척 하 고 교회 내버려 두고 이래 숨어서 살면 일없지만,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고 마지막에 죽는 곳에 끌려가도, 양의 유익을 위해서 제가 죽는 곳이라도 끌려가지 아니할 수 없는 그자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네가 모든 사람보 다 나를 사랑하는 행위요 대우라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이 말씀하신 것은 참 그게 아직 자라지 못해 가지고 철이 없으니까, 철이 없으니 성경을 암만 가르쳐도 성경을 깨닫습니까, 그것 이 무슨 기도를 하라 해도 기도를 합니까 이러니까 성경은 안 보고 다만 제가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하는 그것만 보고 그것만 양식으로 삼고 그것만 보고 항상 믿습니다. 이러니까 얼마 동안 믿다가도 만일 내가 휘떡 변해버 리면 그 따른 것은 다 변해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양식되기 위해서 자기를 삼가고 자기를 지키고, 또 그들에게 양식되기 위해서 자기를 통해서 영감이 타나나야 되겠고 진리가 나타나야 되겠으니까, 이제 주님을 사랑함으로 어린 양을 위해서 먹일 그 젖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 날뛰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처음에는 그것이 하나님 말씀 보고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먹고, 자기를 먹고 자랄 수 있는 그 어린 양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 어린 양에게 젖이 되어질 수 있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젖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 젖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모든 면으로 노력하고 염려하고 하는 그것 을 주님이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반사 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권찰 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또 목회 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교회 를 다니되 장로나 집사나 그런 성직을 가진 자가 복이 있습니다. 또 어디 가든지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나는 장로라, 집사라 그러면 참 힘듭니다. 그러나 그래도 나타내는 것이 좋습니다, 나타내는 것이. 나타내지 아니할 때도 나타날 줄 알고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곳에 이사를 가 가지고 아무도 모르는 거기서도 내가 이 자리에서 장로로 나중에 그들이 알아도 손색이 없고, 목사로 알아도 손색이 없고, 집사로 알아도 손색이 없고 다 그들이 그렇기 때문에 그랬는가보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그들에게, 참 그게 어린 양 인데, 그게 아직 예수 믿지 않는 어린 양인데 그들에게 양식이 되어야 되 지 하고 조심 조심해서 이렇게 사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 저 무슨 사람이 저런 사람이 있을까 이래 저래 차차차 보고 그 사람 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러하구나. 해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아직 택한 사람이나 신앙에 출발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양식이 되도록 하는 그것이 어린양을 먹이는 것이요, 이제 믿기로 시작했지만 철이 없으니까 자기만 보고 예수 믿습니다.
자기만 보고 예수 믿는데 자기가 능히 그에게 어린 양이 먹고 지낼 만한 충 분한 그런 젖이 될 수 있는, 자기에게 젖이 나오는 그런 일을 위해서 자기 가 조심해서, 그런 사람으로 그렇게 주를 사랑함으로 양을 젖을 먹여 기르는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철없는 양 관리 그 다음에 두번째는 좀 어리니까 그저 젖만이 아니고 꼴도 먹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행동만 볼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차차차차 조금씩 알 아서 이제는 성경 보고 믿고 하나님 보고 믿도록 자꾸 그렇게 옮겨 세울려 고 애를 쓰면 이제 조금 빠닥거리는 신앙이 되어서 어북 크면 여기 대해서는 문제가 뭐이냐 이것이 지금 관리가 제일 문제입니다, 관리가. 행동 이 문제입니다. 조금 예수를 믿었다 하지만 그게 그저 과거에 예수 안 믿을 때에 세상 생활하던 거와 같은 그런 생활로 그저 뭐 질팡갈팡 믿는 생활로, 교회 오면 믿는 생활 또 가면 안 믿는 생활, 술자리에는 술먹는 사람, 노름자리에는 노 름하는 사람, 이 죄에 가면 또 이 죄인, 저 죄 범하는 데 가면 또 저 죄인 이렇게 되어지는 그것을 네가 하나 하나 관리해 가지고, 내가 네게 대해서 오래 참은 것과 같이 그렇게 네가 길이길이 오래 참아서, 그것을 일대 일로 그렇게 복수하지 말고 오래 오래 참아서 그렇게 그들을 한 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 그런 가운데서 또 타이르고 관리하고 해서 마지막에는 죄와 상관 이 없는 사람으로 길러 이제는 꼴만 주면 됩니다. 장성한 양 꼴만 주면 뭐 그거는 뭐 언덕이니까 못 가게 가릴 것도 없고, 처음에는 못 가도록 가리워놓고 이렇지만 이제는 가릴 것도 없고 맹수 오는 데에 맹 수라고 지킬 것도 없고 맹수가 오면 달음질쳐서 피할 줄 알고, 언덕에는 떨 어지면 죽을 줄 알고 안 가고, 물에도 빠지면 죽을 줄 알고, 함정에 빠지면 죽을 줄 알고, 이러니까 관리할 것은 없이 다만 그들에게 영감과 진리의 말씀만 가르쳐서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고 갈 길을 모르는 것을 이 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참 목자의 심정 내가 이 말씀을 강단에 와서도 보면서, 앉아 보면서도 내가 읽을 때에 내게는 마음에 자꾸 울음과 눈물이 날려고 해서 내가 억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다른 게 아니오. 나는 참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뿐이지, 장성한 양을 먹여서 꼴만 베다가 자꾸 줘 가지고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뿐 이지, 내가 목부가 돼 가지고 장성한 양을 먹이는 꼴만 베다가 자꾸 이래 놓으면 그 꼴을 먹여서, 꼴만 먹여 안 되는 것은 젖과 섞어 먹이고, 또 꼴은 하나도 못 먹이는 것은 젖을 먹이고 이래 가지고 이것들을 하나 하나 관리 하는 것은 이 권찰님들과 반사 선생님들이 한다 하는 그걸 제가 생각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 권찰님들은 참, 그래서 제가 종종 속에 그런 느낌을 가집니다. 또 말도 합니다. 권찰님들은 참 교인들에게 대해서 아주 따뜻한 어머 니입니다. 따뜻한 어머니요. 어머니로서 거게는 다 흉금을 열고 오만 의논도 다 할 수 있고 공력이 다 들었고 젖도 먹였고 꼴도 먹였고 또 관리도 했고 다 이랬지만 나는 찍해야 이 꼴 베다가 한 짐 져다가 툭 부들트리면 그걸 로 다 되는, 나는 풀 베 가지고 오는 목부지 나는 이 양떼에 대해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양떼라도 다 권찰님들과 반사 선생님들과는 밀접한 그런 모자의 다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런 핏줄이 얽힌 것이 있지만 나는 그저 목부로서 한짐 져다가 툭 던져 놓으면 다 되는 처지의 사람입니다. 그래 내가 말했습니다.
옛날에 박신환 조사님이 별세해서 저 산에다 장 례를 치러놓고 그때에 온 교인들이 참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 랬습니다. 이 박 조사님은 그래도 어린 양을 먹인 것이 있고 양을 먹인 것이 있지만 나는 찍해야 풀밖에 안 베다 줬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이만큼 곡성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그 말을 했어. 내가 죽으면 이만큼 곡성이 없을 것입니다. 왜 그들과 나와의 별로 연결된 것이 없고, 오래 가면 서 차차차 설교나 없으면 설교를 좀, 설교 말씀이 그립다 하는 것뿐이 지 그런 것이 없을 것이다 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주님이 제일 원하는 것이 어린 양 먹이는 이걸 제일 원하시고, 그 다음 에는 철이 없는 양을 다스리는 이것을둘째로 원하시고,셋째는 장성한 양 먹이는 것을 원하시는데첫째둘째 이것을 내가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여기 부산 오기 전에는첫째둘째의 일들을 했고 내가 부산 와서 처 음에 몇 해 동안 했지만 벌써 세월이 삼십여 년이 지나가고 나니까 그만첫째둘째 거기 대해서 나는 관심도 못 가졌고 하지도 못했고 이러니까 이 거 뭐 쭉정이가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러니 내 마음에 자비심이 자 라가나 안 가나, 긍휼심이 자라가나 안 가나 그래 내가 혹 말해 보기도 합니다.
어떤 구역장이 와서 어떤 양떼의 사정을 말할 때에 뭐 그까짓 거 그럴 게 뭐 있는가 던져 내 버리지. 내가 이렇게 말을 해 봅니다. 이렇게 말해 보면 그 권찰님은 마음이 녹습니다. 마음이 녹아서 그래도 어떻게 버릴 수가 있느냐면서 그럴 수가 없어 서 놓지를 못하는 걸 내가 봅니다. 또 반사들이 뭐 학생들 어쩌고 저쩌고 이럴 때 그래 내가 한번 툭 내뱉 기를 그런 아이들은 안 나오면 내버려둬라 해 보면 그 반사가 그 학생 을 인해서 마음에 안타까와 아파하는 그런 것을 봅니다. 내가 어제도 어떤 반사를 보니까 자기가 기르는 학생을 말하면서 그만 자기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나와서 눈물이 줄줄 흘러. 주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이 어린양 먹이는 것입니다.둘째로 원하시는 것이 철없이 날뛰는 그 양을 관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셋째로 원하시는 것이 양을 꼴을 베다 줘서 배불리 장성하게 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원수도 주님의 양인지 모르니 양은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모든 택한 자들이요, 또 좁게 말하면 믿는 사람들입니다. 또 택한 사람 가운데는 불교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유교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무신론자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택한 자로서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는 그런 반대자 속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잃어버린 양입니다. 그러기에, 주의 피로 구속한 양은 공산주의에게는 없다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 집은 저렇게 예수 믿는 사람을 반대하니까 저 사람들 집에는 주의 양은 없으리라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잃어버린 양이 지금 어디 가서 붙들려 매여 가지고 어디 가서 헤매고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거든 나를 사랑함으로 내 양을 먹이 고, 치고, 다스려 달라. 그리하여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사랑하고, 내 양을 나를 위해서, 나를 인하여 사랑하면 그것이 막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 주님이 구속한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주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그것이니까, 주님이 소원하시는 것이 그것이니 …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대우하려고 해 봤자 대우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완전자십니다. 영원 자존자십니다. 내가 그분에게 무엇을 대 우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양을 사랑해 다오, 나를 위하 거든 내 양을 위해 다오, 나를 좋아하거든 내 양을 좋아해 다오, 나를 귀중 히 섬겨 아끼거든 내 양을 귀중히 여겨 아껴 다오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 주의 양이 어디 들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지금 대적하는 내 원수 그 사람도 주님의 양인지 모릅니다. 지금 공산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가 지고 독침을 가지고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그 원수도 주님의 양인지 나는 모릅니다.
어떤 이종교 속에 들어있는 참 만고에 형언 못할 그런 악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막바로 주님의 양인데 지금 목자를 잃어 가지고 이리에게 삼켜서 죽고 있는 양인지 모른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주의 부탁한 양을 사랑해야 되겠는데 주의 양이 어느 것인지 모르니 주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를 대접하는 것 으로 모든 사람을 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내게 와 가지고 권총을 대고, 독침을 가지고 오고, 하나님 믿는다고 몽둥이로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이래도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 를 사랑하면 내 양을 사랑해 다오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나를 대적 하는, 지금 몽둥이로 나를 치고 있고 나를 고문하고 고형하고 있는 그 사람 이 주님의 양인지 나는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도 내가 사랑해야 주님을 사랑함이 되지 그 사람 에게 내가 홀대하는 그것이 주님을 홀대하는 것이 되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내가 박대하는 일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사랑에 빚진 사람으로, 주의 사랑에 팔린 우리들은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어떤 사람이든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은 나를 미워서 죽이면 죽으면서도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을 마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스테반의 순교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이스라엘이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음을 이스라엘에게 전해서 그것을 경고해서 건 져내려고 그들에게 사는 복음을 전해 줬을 때에 그들은 분개해서 모여 가 지고 돌로 쳐서 스데반을 돌쪼산을 만들어 가지고 돌무더기를 만들어서 죽 였습니다. 죽일 때에 그는 주님이 부탁하신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에 돌쪼산 속에 묻혀 가면서 하는 말이 그거였습니다. 보라,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주님이 살아서 아버지의 우편에 계시면서 지금 나를 기다리고 서서 계시는 것을 보라. 눈을 떠서 위를 쳐다 보라. 주님이 천국 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서서 계시는 것을 보라. 이분이 너희들의 주님이시니까 주님을 믿으라고 그럴 때에 아우성을 치면서 돌을 마구 던져서 돌쪼산 속에 파묻혀 죽어가 면서 한 마지막 기도가 그것이었습니다. 주님이여, 저희들이 알지 못해서 저렇게 하는 것이니 그들에게 죄를 돌 리지 마시고 죄를 정하지 마시고 그들을 구원에 달라는 그 말을 마지막으 로 마치고 운명했습니다. 그가 주님이,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사람들보다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어린 양 을 먹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그 주님, 십자가에 대속하신 그 주님, 죽음으로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도 주를 생명 바쳐 사랑해야 마땅할 그분이 소원 하기를 양을 사랑해 달라고, 양을 길러 달라고, 쳐 달라고, 다스려 달라고, 잘 관리해 달라고, 먹여 달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그분의 음성을 그는 기억 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불붙음이 자기를 돌로 쳐서 돌 속에서 죽도록 하는, 돌무더기가 되게 하는 그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뜨거움이 그 원수를 위해서 정죄하지 않기를, 그들이 몰라 그런 것이니까 그들을 구출해 주기를 기도하고 떠났습니다. 그것이 주님에게는 스데반이 하는 일 중에 가장 기쁨이요 만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죽음 속에서도 참 주님을 사랑했고, 죽음에서도 주님을 사랑했고, 죽 음에서도 주님을 사랑했고 생명보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께서는, 돌로 쳐 서 죽이는 그 원수를 향하여 주님 앞에 정죄 하지 말고 구원해 달라고, 그 들이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변호하는, 양을 사랑하는, 양을 사랑함에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만족히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하나님이 만족하셔서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그 얼굴의 광채를 스데반에게 비출 때에 스데반의 그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광 채가 나면서 변해졌습니다. 그때 그것을 책임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기로 한 책임자 사울이 거 기 있었는데 사울이 거기서, 죽으면서도 그렇게 기도하는, 기도하는 그 인격 성, 그 참 인격성, 그 위대성, 그 진실성,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성, 그런 가운데서 위해서 또 기도하는 것, 그럴 때에 하나님의 빛이 그에게 와 비추어 가지고 얼굴이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 사울은 남자가 칼을 뺏다가 도로 꽂을 수가 있느냐 냈던 바람에, 죽이 고난 다음에 이제 다메섹으로 가서 또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겠다 이렇게 가면서도 그 속에 스데반이 참 하나님의 도를 밝히 생명을 아끼지 않고 바 로 증거해 준 것과 죽음에서도 원수를 위해서 하나님에게 간절한 기도가 있은 것과 또 하늘에 주님이 보인다고 말하고 그 얼굴에 광채나는, 만족하 고 광채나는 빛난 얼굴을 보고 사울에게는 그 마음에 고민이 있었습니다. 고민이 있고 고민이 있고 가면서도 번민 고민이 있어 고민하여, 고민하 여 과연 하늘에서 하늘문을 열고 기다리고 서신 그분이 누굴까 스데반 에게 그런 가운데서도 요동되지 않는 그 뜨거운 인류의 사랑 그 사랑을 주 신 이가 누굴까 그의 얼굴을 빛나게 반사케 한 그분이 누굴까 이것 이 점점 주님을 가깝게 하게 되어서 주님이 다메섹 도중에서 나타났습니다. 빛에 나타나 가지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 여 당신이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나는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다시 살아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 할 때에 그 때에 사울은 그만 완전히 기절해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눈은 그때 멀었습니다. 그때 그 먼 눈이 뒤에 회복이 안 됐습니다. 그 평생 눈먼 그 것으로 자기에게는 은혜로 살았습니다. 눈이 멀어 가지고 그때 다메섹 성 중에 들어가서 그만 거기서 회개하면 서,-그때 다메섹에는 사울이라 하는 율법사가 오니까 이 사울이 와 가지 고 이 성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다 몰사시킬 것이라 하고 유태인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선포했습니다. 나는 이렇고 이렇고 이랬는 데, 예수를 나는 하나의 이단으로 알았는데 그가 우리가 대대토록 고대한 메시야다, 구주시다. 하는 것을 거기서 증거하고, 나도 지금 이제는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는다. 하는 걸 증거할 때에 그 성에서 모든 사람들이 잡아 죽이려고 이래서 거기서 피해서 들 창문으로, 성 들 창문으로 광주리 에 달아 내려서 죽음을 면해 가지고 아라비아에 가 가지고 삼 년 동안을 울었습니다.
3년 동안을, 대대로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메시야의 대적이 되고 참 메시야를 영접지 못했고 메시야를 영접한 스데반 같은 그 런 신앙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는 것과 하나님이 부탁하신 그 부탁의 도 를 그대로 신실히 전하는 자기가 되지 못한 데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예수 믿는 교회에 대해서, 모든 유대인들에게 거짓부리 유대인들을 깨워 주 지 못한 데 대해서, 자기 본족에 대해서, 이방에 대해서, 주님에게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울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삼 년 그곳에서 참 인사불성한, 뭐인지 모를 만치 피골이 상접하게 그는 거기서 회개를 하고 뜨거운 각오를 가지고 주님 앞에 능력 받아 가지고 나와서 사도 바울로 사도들 중에 제일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이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이 부탁한 양이라고 우리가 보는 것이 그것이 틀림이 없 고 바로 보는 것입니다. 양이 아닐지라도, 양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양인 줄로 알고 그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도 가 지고, 우리는 모든 걸 다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그 양을 위해서는 내가 기 회를 주시는 대로, 하나님이 형편을 주시는 대로, 힘을 주시는 대로 우리에 게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주의 양떼를 사랑 하는 여기에 다 바쳐서 살고 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운동의 가치
그러므로 주님이 거룩한 자 수만으로 더불어 와서 심판할 때에 그 심판 은 경건한 일 경건한 말 이거 외에는 하나님이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 나머 지는 모조리 다 심판해서 다 유황불로 다 사루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이 일을 위한 말을, 내 가 악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그 말을, 내가 악하면서 그 인간을 구원하는 말을 하게 되고, 내가 잔인하면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되어지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 그러기 때문에 설교자가 기쁜 것은 나는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데 내가 설 교하려고 강단에 섰을 때에는 하나도 섞임 없이 어쩌면 이 양떼들에게 내가 은혜를 끼칠까 하는, 그 양떼의 구원을 위하고자 하는 그 마음만 솔빡이지, 딴것이 하나도 없이 그 마음만 가지고 설교를 하고난 다음에도 혹이나 미진한 것이 없는가 생각할 때,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놈을 주님이 이렇게 안 하래야 안 할 수 없고, 억지로 복을 받고, 억지로 경건이 되고, 억지로 경건한 말 하고, 억지로 경건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오 주여! 어떻 게 제가 무엇이관대 주님이 이렇게 해 주셨습니까! 제가 그때 남해 내산 기도원에 가 가지고 두 주간을 기도를 하고 오면 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제가 볼 때에 모든 사람은 다 세상에 있는 것 이것 저것, 이 장사 저 장사, 이 운동 저 운동하는데 내게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진리를 파는 장사꾼을 만들었으니까 장사꾼 중에는 제일 고급 장사꾼이다. 나를 이렇게 주님이 제일 원하시는 양을 먹일 수 있는 이 직책을 주셨으니 참 복이다. 제가 너무 감사해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복음을 전하고난 다음에 참 거기서 나오는 눈물을 억제하면서 그래 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후면 우리는 갑니다. 또 언제 갈지 모릅니다. 뜻밖에 갑니다. 주님의 부탁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또 가라사대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다스리라 말이오. 내 양을 치라. 또 세번째 가라사대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째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고로 시몬이 심히 근심하여 가로되 주는 알지 못하심이 없사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 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것은 네가 이제는 장차 네 소원대로 하지 못하고 모든 양떼들의 소원, 네가 자고 싶다고 자지도 못하고 양떼 위해서 자야 되 고, 먹고 싶다고 먹지 못하고 양떼 위해서 먹어야 되고, 네가 순전히 네 생활 전체는 하나님의 양을 위한 생활이 되어지고, 너 하고 싶은 것은 하나도 못 하고 양 소원하는 그대로, 양이 여기 원하면 여기 가 있게 되고, 저기 가 기 원하면 저기 가게 되고, 양이 감옥을 원하면 감옥 가게 되고, 양의 유익 을 위해서, 이제는 양을 위해서 네가 처소도 정해지고 가는 곳도 정해지고 사는 것도 정해지고 죽는 것도 정해지느니라 하는 이것으로서 어떻게 죽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을 마지막으로 선언하고 부탁했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의인들이 말하기를 언제 주님 이 주리실 때 내가 대접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대접했으며 벗었을 때 옷 을 입혔으며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 내가 방문하였나이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예비하였던 의의 나라로 가라. 영접하시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 나를 이렇게 대접하지 않았다 언제 주님이 주리시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대접치 않더이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치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행치 아니한 것이니라 다 놀 랬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양떼에게 행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직접 행한 것이 되고 양떼에게 하지 않고 무심히 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하지 않고 무심히 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을 아무도 그렇게,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그때 가 가지고는 다 놀랐습니다. 그렇게 그런 줄은 다 몰랐습니다. 후회 없는 생활합시다. 뭐 이래도 저래도 먹고는 삽니다. 우리가 공연 히 세상 일 가지고 양떼에게 손해 가는 일 남의 구원에 해가 되는 일 하지 말고 그저 조심해서 잘 살고 갑시다. 주님이 제일 사랑하는 자로, 주님을 제일 사랑하는 자로 어린양 먹이고, 철없는 양 다스리고, 양 먹이고, 양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의 의식주가 다 바 쳐지고 마지막에는 주님이 원하는 양을 위해서 양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 몸과 생명을 바쳐 주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생순교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래도 순교해야 됩니다! 우리가 순생하다가 순교해야 됩니다! 우리가 참 늙어서 죽고 병들어 죽으면 참 불쌍한데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나 아무래도 우리는 순생하다가 순교해서 주님이 우리를 다해서 사랑하심같이 우리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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