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느7:1-7)
본문
예루살렘 성이 52일 만에 완공되자 대적들과 사면 이방사람 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면서 낙담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역 사는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알았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시되 하나님의 감 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예물을 사용하셨음을 기억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신의 감동하심을 입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쓰임받는 일군이 되어야 할 것 입니다.
1.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그동안 폐허가 되다시피한 예루살렘의 성에는 사람들이 별로 거주하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예루살렘 성을 완공하였으니 그 성 을 지키고 거주할 백성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해야 설득력있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이 일을 이루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 느헤미야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감동하심을 입어서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명 단을 찾고 작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명단이 느헤미야 7장 7절로 69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루하리 만큼 계속되는 사람의 이름과 정확한 숫자의 제시는 무 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이렇게 생명책에 기록 되어져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나 한 사람만 생명 책에 기록된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스의 자손이
2,172명이요, 스바댜의 자손이 372명이요, 아라 자손이 652명이요 (느 7:8-10)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주의 깊게 살 펴 보십시요 ! 이것은 성도 여러분과 저로 인하여 구원받은 백성 들의 숫자가 하나님 앞에서 정확하게 계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나 저나 열심을 품고 전도해 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백성의 계수는 단순한 인구조사 차원이 아닙니다. 이는 완성된 예루살렘 성과 함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회 복, 국력의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그는 이 명단을 통하여 예루살렘 백성을 선발하고, 성전의 직임자를 선별하는 일 에 하나님의 뜻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확실한 근거있고 설득력있는 자료제시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쳤 다는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의 여지를 없앨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이란 한 시간은 커녕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살지 않습니까 ! 사람의 지혜란 자기 자랑에 빠지기 쉽고, 사단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는 헛되고 헛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도 넉넉히 이루어 과연 하나님 의 하나님 되심을 보이시고야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감동하 심으로 그 일의 동기를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쓰임받는 일군
1). 하나님의 전을 지키는 문지기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사람들을 세운 후에 (느 7:1).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존재의 원인이요,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 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란 모름지기 하나님으로 복 을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육신 장막을 벗고 이 세상을 떠 날 때, 싸고 지고 가지 못할 세상적인 물질로 소망을 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라면 기꺼이 죽어도 좋 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섬기는 제단을 생명같이 여기며, 제 단을 통하여 오는 복을 사모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 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 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시 128:5-6)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을 완공하자마자 성전에서 봉사할 일군 들부터 세운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계획할찌라도 그 일을 지어서 성취하시는 분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 의 성취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문지기를 여호와의 전 여러 문에 두어 무릇 아무 일에든 지 부정한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대하 23:19).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군들은 문 지기가 되어서 부정한 것들이 자신과 가정과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며 충성된 사람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느 7:2).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 어나며 한결같이 충성됨을 봅니다. 충성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한문을 보면 충성(忠誠)은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 말씀 언(言)에 이룰 성(成)으로 되어 있습니다. 곧 충성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룸에 있어서 마음과 뜻과 생명을 다하여 일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란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주인이 명하신 바 를 어김없이 수행하는 일군의 신뢰성을 말합니다. 비록 자기의 뜻과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아서 일하고 싶지 않더라도 주인이 이르신 것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일단 믿고 따르면서 순종 하는 태도를 가리켜 충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맡겨진 일에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커다란 상급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 그 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3). 자기와 가까운 이웃을 지키는 파숫군 내가 저희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班次)를 따라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 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느 7:3). 성도의 신앙생활이란 자기를 지키고, 맡겨진 자기 가정과 이 웃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셔서 군대마귀들린 사람 을 고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사람이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 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親屬)들에게 고하라 고 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바로 받은 자요, 하나님의 일 군으로 세움을 바로 받았다면 먼저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 고, 친속들을 지키는 일에 간증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 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과 가정 일은 나몰라라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일군의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속한 가정과 친속들과 공동체의 구원을 위하여 먼저 파숫군으로 뽑힘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세우셨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예루살렘 이여 !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 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게 하라 (사 62:6-7). 하나님께서 영광의 찬송을 받으시기까지 쉬지말고 입을 벌려 우리에 게 맡겨진 가족들의 이름과 친속들의 이름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3. 역사(役事)를 위한 자원하는 예물 족장들과 방백들이 하나님의 일의 역사를 위하여 금과 은, 제사장의 의복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힘에 겹도록 넘치도록 드 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감동을 받은 백성들도 어려운 형편과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마네와 제사 장의 의복 육십 칠 벌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느 7:70-73).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으로 헌신하는 것 뿐 아니 라 물질적인 헌신도 필요합니다. 족장들과 온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아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 예물은 하나님의 일에 쓰여지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것이였습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기억할 것은 본문에 나온 예물들의 가치와 수량이 어느정도인가가 중요한 가가 아니라 그 예물에 담긴 우리 의 정성이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예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요.
왜냐하면 이 역 사는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알았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시되 하나님의 감 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예물을 사용하셨음을 기억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신의 감동하심을 입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쓰임받는 일군이 되어야 할 것 입니다.
1.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그동안 폐허가 되다시피한 예루살렘의 성에는 사람들이 별로 거주하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예루살렘 성을 완공하였으니 그 성 을 지키고 거주할 백성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해야 설득력있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이 일을 이루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 느헤미야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감동하심을 입어서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명 단을 찾고 작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명단이 느헤미야 7장 7절로 69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루하리 만큼 계속되는 사람의 이름과 정확한 숫자의 제시는 무 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이렇게 생명책에 기록 되어져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나 한 사람만 생명 책에 기록된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스의 자손이
2,172명이요, 스바댜의 자손이 372명이요, 아라 자손이 652명이요 (느 7:8-10)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주의 깊게 살 펴 보십시요 ! 이것은 성도 여러분과 저로 인하여 구원받은 백성 들의 숫자가 하나님 앞에서 정확하게 계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나 저나 열심을 품고 전도해 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백성의 계수는 단순한 인구조사 차원이 아닙니다. 이는 완성된 예루살렘 성과 함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회 복, 국력의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그는 이 명단을 통하여 예루살렘 백성을 선발하고, 성전의 직임자를 선별하는 일 에 하나님의 뜻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확실한 근거있고 설득력있는 자료제시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쳤 다는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의 여지를 없앨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이란 한 시간은 커녕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살지 않습니까 ! 사람의 지혜란 자기 자랑에 빠지기 쉽고, 사단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는 헛되고 헛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도 넉넉히 이루어 과연 하나님 의 하나님 되심을 보이시고야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감동하 심으로 그 일의 동기를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쓰임받는 일군
1). 하나님의 전을 지키는 문지기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사람들을 세운 후에 (느 7:1).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존재의 원인이요,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 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란 모름지기 하나님으로 복 을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육신 장막을 벗고 이 세상을 떠 날 때, 싸고 지고 가지 못할 세상적인 물질로 소망을 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라면 기꺼이 죽어도 좋 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섬기는 제단을 생명같이 여기며, 제 단을 통하여 오는 복을 사모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 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 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시 128:5-6)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을 완공하자마자 성전에서 봉사할 일군 들부터 세운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계획할찌라도 그 일을 지어서 성취하시는 분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 의 성취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문지기를 여호와의 전 여러 문에 두어 무릇 아무 일에든 지 부정한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대하 23:19).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군들은 문 지기가 되어서 부정한 것들이 자신과 가정과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며 충성된 사람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느 7:2).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 어나며 한결같이 충성됨을 봅니다. 충성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한문을 보면 충성(忠誠)은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 말씀 언(言)에 이룰 성(成)으로 되어 있습니다. 곧 충성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룸에 있어서 마음과 뜻과 생명을 다하여 일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란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주인이 명하신 바 를 어김없이 수행하는 일군의 신뢰성을 말합니다. 비록 자기의 뜻과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아서 일하고 싶지 않더라도 주인이 이르신 것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일단 믿고 따르면서 순종 하는 태도를 가리켜 충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맡겨진 일에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커다란 상급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 그 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3). 자기와 가까운 이웃을 지키는 파숫군 내가 저희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班次)를 따라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 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느 7:3). 성도의 신앙생활이란 자기를 지키고, 맡겨진 자기 가정과 이 웃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셔서 군대마귀들린 사람 을 고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사람이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 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親屬)들에게 고하라 고 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바로 받은 자요, 하나님의 일 군으로 세움을 바로 받았다면 먼저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 고, 친속들을 지키는 일에 간증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 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과 가정 일은 나몰라라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일군의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속한 가정과 친속들과 공동체의 구원을 위하여 먼저 파숫군으로 뽑힘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세우셨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예루살렘 이여 !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 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게 하라 (사 62:6-7). 하나님께서 영광의 찬송을 받으시기까지 쉬지말고 입을 벌려 우리에 게 맡겨진 가족들의 이름과 친속들의 이름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3. 역사(役事)를 위한 자원하는 예물 족장들과 방백들이 하나님의 일의 역사를 위하여 금과 은, 제사장의 의복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힘에 겹도록 넘치도록 드 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감동을 받은 백성들도 어려운 형편과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마네와 제사 장의 의복 육십 칠 벌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느 7:70-73).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으로 헌신하는 것 뿐 아니 라 물질적인 헌신도 필요합니다. 족장들과 온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아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 예물은 하나님의 일에 쓰여지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것이였습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기억할 것은 본문에 나온 예물들의 가치와 수량이 어느정도인가가 중요한 가가 아니라 그 예물에 담긴 우리 의 정성이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예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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