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광의 집 (엡4:7-16)
본문
우리가 사는 시대의 여러 특징을 나타내는 말 중에 하나가 우주 시대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더 높은 우주 공간에 잠겨 있던 신비한 비밀들을 캐내기 시작한 지식적 탐구 영역을 가리켜 이른바 우주 과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주 과학의 더 높은 만세 소리는 사람들이 달나라를 갔다 오는 인공위성의 우주비행 성공과 더불어 극에 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생각할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어떤 요지경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감정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이른바 인공위성(人工衛星)을 타고 여러 번이나 달나라에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도착하여 달나라 정복의 표시로 미국인들은 미국의 성조기를,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인들의 깃발을 꽂아 놓고 돌아왔습니다. 이른바 우주 과학의 개가라고 할 만합니다.
저는 인공위성 시대를 보면서 일찍이 신공위성(神工衛星)이란 말을 썼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높고 높은 저 하늘의 영광보좌에서 이 낮고 낮은 세상(지구)에까지 오셔서, 33년을 지구 위에 사시다가 다시 부활하여 하늘로 생환(부활 승천)한 사실을 가리켜 신공위성이라고 불러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달나라에 갔다 오면서 거기에 사람이 갔다 왔다는 표적을 남겨 놓고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세상(지구)에 오셨다가 가시면서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위대한 자기 표적이 바로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달나라에 남긴 표적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있다면 비이성적인 기계의 작동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가 세상에 오셨던 표적으로 남겨 놓은 교회는 위대한 동력을 가진 생명의 단체가 되어
2,000년이 가깝도록 전세계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엄청난 생명의 파동과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표적인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생명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산 돌로서 기초(모퉁이의 머릿돌)가 되어(벧전 2:4, 엡 2:20) 사망의 세력을 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마 16:18). 그래서 교회는 사실상 신공위성(神工衛星)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적 산물입니다.
교회는 지금 세상에 한시적(잠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이 세상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택자 구원 운동의 기능을 다하고 있습니다. 택자 구원 운동이 성취되는 그날에 예수는 다시 오시고, 지상에 자리잡은 교회는 다시 하늘로 옮겨 영원한 천성의 영화로운 교회로 영화할 것입니다. 대단한 비밀입니다. 그러나 만천하에 알려진 공개적인 복음의 비밀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교회를 내 영광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본문에서 주님은 사도를 통하여 당신의 교회(집)를 어떻게 영화롭게 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하여 여러 직분자를 세워서, 그 직분들을 통하여 당신의 집(교회)을 영화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I. 교회의 직분은 신적인 은사라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χρι)를 주셨습니다(엡 2:8).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은혜란 말은 믿어 구원받은 자에게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주신 각양 선물의 은사(χρισμα)를 가리킵니다(고전 12:4-31).
바울은 구원받은 우리 각사람에게 주신 은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께로부터 주신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도 선물이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여러 기능과 직분의 은사들도 거져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에 「그가 …주셨다」고 한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 다음 교회 직분의 내용들을 알려 줍니다.
먼저 사도가 있습니다(엡 4:11).
이는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하고, 그의 사역을 증거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셨습니다(마 10:1-4). 지금 교회 시대에 사도직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사도적 이름과 권위와 이적(계시적 이적) 등은 없습니다. 주께서 처음 교회를 세우실 때 특별한 사람들에게 한정하고 주신 직분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비상직분이라고 합니다.
다음 선지자가 있습니다(엡 4:11).
이는 장래 일에 대하여 미리 말하는 은사를 받은 자였습니다. 이 선물은 사도 시대에 주어진 특별한 은사 중에 하나였는데 예컨대 안디옥 교회의 유다와 실라(행 15:32), 빌립의 네 딸(행 21:9) 등이 있습니다. 저들은 종종 사도들과 연명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습니다(엡 2:20, 3:5). 이 직분도 사도직처럼 교회를 세우는데 기초 사역을 한 은사들이었습니다. 나중에 교회가 성장하고 자리를 잡을 때 이 은사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역시 비상 직분이었습니다.
그 다음 복음 전하는 자가 있습니다(엡 4:11).
이 직분은 일정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도한 경우입니다. 예컨대 일곱 집사 중 하나였던 빌립을 전도자라 불렀습니다(행 21:8). 디모데에게도 전도자의 일을 하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5). 현재의 경우 선교사와 가까운 입장의 은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복음 전도자들입니다. 보통 경우에 따라 이 은사는 비상직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은사는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목사와 교사들이 있습니다(엡 4:11).
목사(ποιμν)는 목자라는 뜻으로 양들(교인)을 먹이고 보호하고 양육하는 영적인 면을 나타내는 은사의 이름입니다. 교사(διδσχαλο)는 사실상 목사와 같은 의미인데 목사의 사역 중 한 면은 지목해서 가리키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말씀은 가르치는(도리)면을 말한 것입니다. 이 두 이름은 내용적으로 한 묶음의 은사입니다. 지금 현존하고 있는 직분입니다.
그리고 목회서신에서 나타낸 장로와 집사의 직분입니다(딤전 3:1-13). 이 장로와 집사의 직분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교회사 시대에 상존한 교회의 기본 직분은 목사와 교사로 불리우는 직분과, 장로(감독)와 집사의 직분입니다(행 6:1-6). 그리고 교회 중에 여러 지체로서의 직분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통상 직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이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의 직분들은 그 이름과 내용과 성격과 목적이 모두 신적인 산물이고, 영적인 구령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기관들에서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조직사회의 직분과 그 이름과 성격과 내용과 목적이 판이하다는 사실입니다. 신적 산물이요, 영적 은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주께서 자기의 집(교회)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신 영의 직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적인 신분의 직위를 가지고 일하는 장소가 전혀 아닙니다.
Ⅱ. 교회 직분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첫째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온전케 함」(χαταρτιαμ)이란 의학적 의미로 외과의사들이 골절된 수족을 다시 맞추고 어긋난 관절을 다시 제자리에 꿰어 맞추는 경우에 사용된 말입니다.
또 정치적 의미로는 정치적으로 대립된 당파들을 서로 합칠 때 사용된 말입니다. 성경에는 찢어진 그물을 깁는 데 사용되었습니다(막 1:19). 또 부족을 채우는 경우(살전 3:10), 이전에 잘못된 상태를 바로 잡는 경우(갈 6:1)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어떤 잘못된 일이나, 잘못된 사람을 바로 있어야 할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해 준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 직분을 주신 첫 번째 목적은 그 직분자들로 하여금 신자들이 신자답도록 교육하고, 도와주고, 인도하고, 돌보아 주고, 또 길을 잃었을 때 그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오게 해주도록 하기 위함이란 뜻입니다. 말하자면 그릇 행하여 제 갈길로 가버린 양들을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신 예수에게로 되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직분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둘째 목적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이 또 말하기를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봉사(δικονια)란 실제적 섬김을 가리킵니다. 그 뜻은 하인, 봉사, 집사(διακονο) 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신학적 교리나 교회의 규칙을 가르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한 것을 실제적 행동으로 옮기는 직분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육탄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 세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마지막 부분에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에베소서 2장 20-22절에 나타난 말씀대로 모퉁이 돌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터 위에 세움을 입어,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는 산 돌의 역할(벧전 2:5)을 가리킵니다.
교회의 직분은 파괴가 아니라, 건설이란 말입니다. 무너뜨림이 아니라 세움이란 말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것입니다(엡 2:22). 말하자면 하나님의 교회를 굳게 세우기 위하여 직분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교회의 직분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고, 성숙한 신자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엡 4:13, 15). 교회의 머리요, 몸이 되신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각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의 몸된 교회를 자라가게 하고 세워가게 해야 된다(엡 4:15-16)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딤전 3:15). 큰 집이라고도 하였습니다(딤후 2:20). 그리고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습니다(딤전 3:15).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엡 1:23, 고전 12:27). 뿐아니라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습니다(엡 2:21, 고전 3:16, 고후 6:16, 벧전2:5). 벌써 그 이름들이 특이합니다. 영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집에 여러 일꾼들을 세웠습니다. 그것을 비유하기를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과 같다고 하였습니다(딤후 2:20). 그릇 자체의 재료 여하를 말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그릇이 언제나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 유용한 그릇이 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딤전 2:21). 천히 쓰이는 그릇이든, 귀히 쓰이는 그릇이든 그 그릇이 주인의 손에 잡혀 주인의 의향에 따라 주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유용하게 쓰임을 받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주께서 교회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목사와 교사, 장로와 집사, 그리고 권사, 주교교사, 구역장, 성가대 등 등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그 이름대로 쓰여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각자의 분량대로 직분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의 교회, 하나님의 집을 세움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인 몸이라고 하였습니다(엡 4:4). 성령도 하나라고 하였습니다(엡 4:4). 소망도 하나라고 하였습니다(엡 4:4).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라고 하였습니다(엡 4:5). 하나님도 하나인데 곧 만유의 아버지라 하였습니다(4:6). 그 아버지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각각 다른 직분의 은사들은 결국 출처가 하나요, 진행도 하나요, 마침도 하나입니다. 주신 대로, 받은 대로, 현재의 모습 그대로 주인께 쓰임을 받을 때, 그 결과 교회는 영광스럽게 되고 맙니다.
저 대영제국의 여왕 빅토리아가 언제인가 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많은 신하들과 여행하던 도중 갑자기 밀려드는 안개로 인해 그만 길을 잃고 헤매이게 되었습니다. 왕을 보좌하던 많은 신하들이 큰 근심 중에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들은 우연히 그 곳 지리에 익숙한 한 목동을 만나 무사히 길을 다시 찾게 되고, 무사히 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목동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궁으로 돌아온 여왕은 그 소녀에게 사례를 하고 싶어 찾았으나, 이미 목동은 멀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몹시 안타까운 여왕은 신하들을 시켜 백방으로 그 목동의 거처를 찾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마침내 이틀이 지나고서야 그 목동이 사는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왕은 지체하지 않고 급히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신하를 시켜 소녀에게 보냈습니다.
그 목동 소녀는 왕의 편지를 들고 왔다는 신하의 소리에 놀래고 말았습니다. 그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급히 집에서 뛰어나와 여왕으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그 편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여왕의 편지를 받은 소녀는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한낱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여왕이 이렇게 친서까지 보내어 찾아 주었다는 사실 앞에 소녀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소녀는 생각하기를 만약 여왕께서 나른 부르신다면 난 어떻게 하지 나에겐 마땅한 옷도 없고, 짐승의 냄새마저 나는데 어떻게 이 초라한 모습으로… 그 목동 소녀는 순간적으로 이러한 생각들이 스쳐가는 흥분된 마음으로 여왕의 편지를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너무 간단했습니다.
너는 내게로 오라. 지금 오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왕이신 주께서 우리에게 내가 나의 집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너는 오라. 내게로 오라. 지금 오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 내가 네게 목사와 교사의 직분을 주겠노라. 내가 네게 장로와 집사와 전사의 직분을 주겠노라. 내가 네게 구역장과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의 직분을 주겠노라. 내가 네게 건축위원의 직분을 주겠노라…고 하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겠노라고 하십니다. 목사와 교사, 장로와 집사와 권사 그리고 여러 지체의 직분들! 이것은 하나님의 집을 영화롭게 하는 신적 직분이요, 은사들입니다. 목사가 목사될 때 하나님의 집은 영화롭게 되고 말 것입니다. 장로가 장로될 때, 집사가 집사되고 권사가 권사될 때 하나님의 집은 영화롭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영광의 직분인 것입니다. 영의 직분, 의의 직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살리는 직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축복의 직분인 것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4:1-2).
우주 과학의 더 높은 만세 소리는 사람들이 달나라를 갔다 오는 인공위성의 우주비행 성공과 더불어 극에 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생각할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어떤 요지경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감정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이른바 인공위성(人工衛星)을 타고 여러 번이나 달나라에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도착하여 달나라 정복의 표시로 미국인들은 미국의 성조기를,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인들의 깃발을 꽂아 놓고 돌아왔습니다. 이른바 우주 과학의 개가라고 할 만합니다.
저는 인공위성 시대를 보면서 일찍이 신공위성(神工衛星)이란 말을 썼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높고 높은 저 하늘의 영광보좌에서 이 낮고 낮은 세상(지구)에까지 오셔서, 33년을 지구 위에 사시다가 다시 부활하여 하늘로 생환(부활 승천)한 사실을 가리켜 신공위성이라고 불러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달나라에 갔다 오면서 거기에 사람이 갔다 왔다는 표적을 남겨 놓고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세상(지구)에 오셨다가 가시면서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위대한 자기 표적이 바로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달나라에 남긴 표적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있다면 비이성적인 기계의 작동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가 세상에 오셨던 표적으로 남겨 놓은 교회는 위대한 동력을 가진 생명의 단체가 되어
2,000년이 가깝도록 전세계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엄청난 생명의 파동과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표적인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생명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산 돌로서 기초(모퉁이의 머릿돌)가 되어(벧전 2:4, 엡 2:20) 사망의 세력을 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마 16:18). 그래서 교회는 사실상 신공위성(神工衛星)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적 산물입니다.
교회는 지금 세상에 한시적(잠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이 세상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택자 구원 운동의 기능을 다하고 있습니다. 택자 구원 운동이 성취되는 그날에 예수는 다시 오시고, 지상에 자리잡은 교회는 다시 하늘로 옮겨 영원한 천성의 영화로운 교회로 영화할 것입니다. 대단한 비밀입니다. 그러나 만천하에 알려진 공개적인 복음의 비밀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교회를 내 영광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본문에서 주님은 사도를 통하여 당신의 교회(집)를 어떻게 영화롭게 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하여 여러 직분자를 세워서, 그 직분들을 통하여 당신의 집(교회)을 영화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I. 교회의 직분은 신적인 은사라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χρι)를 주셨습니다(엡 2:8).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은혜란 말은 믿어 구원받은 자에게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주신 각양 선물의 은사(χρισμα)를 가리킵니다(고전 12:4-31).
바울은 구원받은 우리 각사람에게 주신 은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께로부터 주신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도 선물이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여러 기능과 직분의 은사들도 거져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본문에 「그가 …주셨다」고 한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 다음 교회 직분의 내용들을 알려 줍니다.
먼저 사도가 있습니다(엡 4:11).
이는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하고, 그의 사역을 증거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셨습니다(마 10:1-4). 지금 교회 시대에 사도직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사도적 이름과 권위와 이적(계시적 이적) 등은 없습니다. 주께서 처음 교회를 세우실 때 특별한 사람들에게 한정하고 주신 직분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비상직분이라고 합니다.
다음 선지자가 있습니다(엡 4:11).
이는 장래 일에 대하여 미리 말하는 은사를 받은 자였습니다. 이 선물은 사도 시대에 주어진 특별한 은사 중에 하나였는데 예컨대 안디옥 교회의 유다와 실라(행 15:32), 빌립의 네 딸(행 21:9) 등이 있습니다. 저들은 종종 사도들과 연명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습니다(엡 2:20, 3:5). 이 직분도 사도직처럼 교회를 세우는데 기초 사역을 한 은사들이었습니다. 나중에 교회가 성장하고 자리를 잡을 때 이 은사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역시 비상 직분이었습니다.
그 다음 복음 전하는 자가 있습니다(엡 4:11).
이 직분은 일정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도한 경우입니다. 예컨대 일곱 집사 중 하나였던 빌립을 전도자라 불렀습니다(행 21:8). 디모데에게도 전도자의 일을 하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5). 현재의 경우 선교사와 가까운 입장의 은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복음 전도자들입니다. 보통 경우에 따라 이 은사는 비상직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은사는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목사와 교사들이 있습니다(엡 4:11).
목사(ποιμν)는 목자라는 뜻으로 양들(교인)을 먹이고 보호하고 양육하는 영적인 면을 나타내는 은사의 이름입니다. 교사(διδσχαλο)는 사실상 목사와 같은 의미인데 목사의 사역 중 한 면은 지목해서 가리키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말씀은 가르치는(도리)면을 말한 것입니다. 이 두 이름은 내용적으로 한 묶음의 은사입니다. 지금 현존하고 있는 직분입니다.
그리고 목회서신에서 나타낸 장로와 집사의 직분입니다(딤전 3:1-13). 이 장로와 집사의 직분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교회사 시대에 상존한 교회의 기본 직분은 목사와 교사로 불리우는 직분과, 장로(감독)와 집사의 직분입니다(행 6:1-6). 그리고 교회 중에 여러 지체로서의 직분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통상 직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이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의 직분들은 그 이름과 내용과 성격과 목적이 모두 신적인 산물이고, 영적인 구령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기관들에서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조직사회의 직분과 그 이름과 성격과 내용과 목적이 판이하다는 사실입니다. 신적 산물이요, 영적 은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주께서 자기의 집(교회)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신 영의 직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적인 신분의 직위를 가지고 일하는 장소가 전혀 아닙니다.
Ⅱ. 교회 직분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첫째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온전케 함」(χαταρτιαμ)이란 의학적 의미로 외과의사들이 골절된 수족을 다시 맞추고 어긋난 관절을 다시 제자리에 꿰어 맞추는 경우에 사용된 말입니다.
또 정치적 의미로는 정치적으로 대립된 당파들을 서로 합칠 때 사용된 말입니다. 성경에는 찢어진 그물을 깁는 데 사용되었습니다(막 1:19). 또 부족을 채우는 경우(살전 3:10), 이전에 잘못된 상태를 바로 잡는 경우(갈 6:1)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어떤 잘못된 일이나, 잘못된 사람을 바로 있어야 할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해 준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 직분을 주신 첫 번째 목적은 그 직분자들로 하여금 신자들이 신자답도록 교육하고, 도와주고, 인도하고, 돌보아 주고, 또 길을 잃었을 때 그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오게 해주도록 하기 위함이란 뜻입니다. 말하자면 그릇 행하여 제 갈길로 가버린 양들을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신 예수에게로 되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직분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둘째 목적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이 또 말하기를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봉사(δικονια)란 실제적 섬김을 가리킵니다. 그 뜻은 하인, 봉사, 집사(διακονο) 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신학적 교리나 교회의 규칙을 가르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한 것을 실제적 행동으로 옮기는 직분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육탄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 세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마지막 부분에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에베소서 2장 20-22절에 나타난 말씀대로 모퉁이 돌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터 위에 세움을 입어,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는 산 돌의 역할(벧전 2:5)을 가리킵니다.
교회의 직분은 파괴가 아니라, 건설이란 말입니다. 무너뜨림이 아니라 세움이란 말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것입니다(엡 2:22). 말하자면 하나님의 교회를 굳게 세우기 위하여 직분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교회의 직분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고, 성숙한 신자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엡 4:13, 15). 교회의 머리요, 몸이 되신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각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의 몸된 교회를 자라가게 하고 세워가게 해야 된다(엡 4:15-16)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딤전 3:15). 큰 집이라고도 하였습니다(딤후 2:20). 그리고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습니다(딤전 3:15).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엡 1:23, 고전 12:27). 뿐아니라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습니다(엡 2:21, 고전 3:16, 고후 6:16, 벧전2:5). 벌써 그 이름들이 특이합니다. 영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집에 여러 일꾼들을 세웠습니다. 그것을 비유하기를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과 같다고 하였습니다(딤후 2:20). 그릇 자체의 재료 여하를 말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그릇이 언제나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 유용한 그릇이 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딤전 2:21). 천히 쓰이는 그릇이든, 귀히 쓰이는 그릇이든 그 그릇이 주인의 손에 잡혀 주인의 의향에 따라 주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유용하게 쓰임을 받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주께서 교회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목사와 교사, 장로와 집사, 그리고 권사, 주교교사, 구역장, 성가대 등 등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그 이름대로 쓰여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각자의 분량대로 직분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의 교회, 하나님의 집을 세움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인 몸이라고 하였습니다(엡 4:4). 성령도 하나라고 하였습니다(엡 4:4). 소망도 하나라고 하였습니다(엡 4:4).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라고 하였습니다(엡 4:5). 하나님도 하나인데 곧 만유의 아버지라 하였습니다(4:6). 그 아버지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각각 다른 직분의 은사들은 결국 출처가 하나요, 진행도 하나요, 마침도 하나입니다. 주신 대로, 받은 대로, 현재의 모습 그대로 주인께 쓰임을 받을 때, 그 결과 교회는 영광스럽게 되고 맙니다.
저 대영제국의 여왕 빅토리아가 언제인가 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많은 신하들과 여행하던 도중 갑자기 밀려드는 안개로 인해 그만 길을 잃고 헤매이게 되었습니다. 왕을 보좌하던 많은 신하들이 큰 근심 중에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들은 우연히 그 곳 지리에 익숙한 한 목동을 만나 무사히 길을 다시 찾게 되고, 무사히 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목동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궁으로 돌아온 여왕은 그 소녀에게 사례를 하고 싶어 찾았으나, 이미 목동은 멀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몹시 안타까운 여왕은 신하들을 시켜 백방으로 그 목동의 거처를 찾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마침내 이틀이 지나고서야 그 목동이 사는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왕은 지체하지 않고 급히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신하를 시켜 소녀에게 보냈습니다.
그 목동 소녀는 왕의 편지를 들고 왔다는 신하의 소리에 놀래고 말았습니다. 그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급히 집에서 뛰어나와 여왕으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그 편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여왕의 편지를 받은 소녀는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한낱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여왕이 이렇게 친서까지 보내어 찾아 주었다는 사실 앞에 소녀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소녀는 생각하기를 만약 여왕께서 나른 부르신다면 난 어떻게 하지 나에겐 마땅한 옷도 없고, 짐승의 냄새마저 나는데 어떻게 이 초라한 모습으로… 그 목동 소녀는 순간적으로 이러한 생각들이 스쳐가는 흥분된 마음으로 여왕의 편지를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너무 간단했습니다.
너는 내게로 오라. 지금 오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왕이신 주께서 우리에게 내가 나의 집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너는 오라. 내게로 오라. 지금 오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 내가 네게 목사와 교사의 직분을 주겠노라. 내가 네게 장로와 집사와 전사의 직분을 주겠노라. 내가 네게 구역장과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의 직분을 주겠노라. 내가 네게 건축위원의 직분을 주겠노라…고 하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겠노라고 하십니다. 목사와 교사, 장로와 집사와 권사 그리고 여러 지체의 직분들! 이것은 하나님의 집을 영화롭게 하는 신적 직분이요, 은사들입니다. 목사가 목사될 때 하나님의 집은 영화롭게 되고 말 것입니다. 장로가 장로될 때, 집사가 집사되고 권사가 권사될 때 하나님의 집은 영화롭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영광의 직분인 것입니다. 영의 직분, 의의 직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살리는 직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축복의 직분인 것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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