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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축복이 머물게 하자 (삼하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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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씨랜드 사건은 다시한번 부주의와 방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오는지 를 보여주고있습니다. 사고는 언제나 방심에서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사고의 방 지를 위해서 늘 긴장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타락도 사실은 느슨해진 방심에서 일어납니다. 어떤일이 생길 때 현장은 우리에게 사건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사고가 낳은 결과입니다. 그것은 신아인에게 있어서도 예외일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법궤가 옮겨지는 현장을 보게되고 사건의 결과인 아비나답의 가 정의 불행과 오벧에돔의 가정에 임한 축복을 보게됩니다.
I. 먼저 사건의 역사의 현장을 찾아갑니다.-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려고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모든 장수로 더불 어 이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뺀 3만 명의 정예 를 모았고, 전국의 유명한 악사들을 초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궤'의 별명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삼하 6:2). 이 말은 그 ' 하나님의 궤'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수레를 몰고, 바알레유다 곧 법궤가 있던 기럇여아림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요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블레셋에게 빼앗김 당해 버린 법궤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말 못하는 두 암소의 수레 위에 실려 다시 이스라엘 경내인 제사장의 도시 벧세메스(수 15:10)까지 되돌아 온지 실로 70년 만입니다. 벧세메스에서 하나님의 법궤는 그 기럇여아림 지방 아비나답의 집으 로 옮겨져 그곳에서 20년을 보냈습니다(삼상 6:13-7:2). 그리고 사울 왕의 통치 기간 40년과 다윗의 통치가 시작된 지 10여 년을 합쳐 보면, 참으로 기나긴 70 년이란 세월 동안에 하나님의 법궤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의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는 실로 거국적 행사였습니다(삼하 6:5, 대상 13:8).
그런데 이 축제의 현장에 정말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기돈 이라고도 불리는 나곤의 타작마당(삼하 6:6, 대상 13:9)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수레를 끌고가던 소들이 뛰었습니다. 수레 위에 실린 궤 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손을 펴서 흔들리는 궤를 붙들었습니다. 이때 웃사가 그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크게 진노하사 웃사와 충돌하시므로, 그가 그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삼 하 6:6, 7, 대상 13:9-11).그 순간 모든 악기 소리는 중단되었고, 노래하고 춤추 던 왕과 백성들은 조용해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다윗은 고심하고 고심 했습니다. 다윗은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법 궤를 하나님의 율례(법)대로 운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법궤를모세를 통 하여 주신 하나님의 법궤 운반의 율례는 레위 지파 족속 중에 고핫 자손들이 친히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제정되어 있었습니다(민 4:15, 7:9). 한순간의 방 심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깊이 뉘우치고, 다시 법궤 운반을 재개하여 다윗성으로 옮기는데 성공했습니다(대상 15장).
2 . 사건의 결과로 생긴일은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궤가 머문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으로 향하던 축제의 현장은 웃사의 사망 사건으로 쑥 대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윗은 기분이 상했습니다(대상 13:11). 그리고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대상 13:12, 삼하 6:8, 9). 하나님의 궤는 그 근처에 있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 석 달 동안 그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법궤가 그 집에 머무는 석 달 동안에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고 하였습니다(삼하 6:11). 역대상 13장 14절에는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받은 복은 우 연한 복이 아니었습니다. 전에 법궤를 모시고 있던 아비나답과 오벳에돔을 비교 해 보면 이것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심지어 아비나답의 집에서 오벳에돔의 집 으로 법궤를 모시고 올 때에 아비나답의 아들이 법궤를 잘 못 다루다가 즉사하 고 말았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축복인데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을 40년 동안 섬긴다고 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모셨던 집안에서 오죽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을 모시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그 아들이 길에서 죽는 참사가 일 어 나겠습니까 그러니 아비나답이라는 집을 대충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라니까 마지 못해 모셔 놓은 것이지, 집안에 법궤가 있 어도 별 관심도 없었고, 자녀들에게 그 법궤가 무엇이며 어떻게 모셔야 된다고 철저히 가르치지도 않았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40년을 모셔도 어떤 증거가 안 보였습니다. 여러분! 법궤가 무엇입니다. 출 25:22절을 보면 법궤는 눈으로 보기를 좋아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여기 계신다] 하는 증거물로 주신 것이 법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법궤를 놓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법궤 앞에서 내가 너와 만나고, 이 법궤 앞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한 모든 것 을 이르리라]
그러므로 법궤는 사람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궤를 가정에 모셨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하나님과 날마다 만나는 놀라운 축복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축복을 누리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집안에 모신 것 자체만 해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73: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 이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좋으신 분입니까 그 분이 복 자체이시기 때문에 그 분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해도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나님과 만나고, 이런 하나님을 통해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가정 이라면 어찌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런 분을 모신 가정에서 40년 동 안 복 받았다는 말이 없으면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아닙니까 그래서 아비나 답의 가정은 오벳에돔의 가정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지금 신약시대의 법궤는 누굽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도록 인간의 몸 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또 부활하셔서 오늘날 나와 함께 동거하시 고, 나와 함께 말씀하시고, 나와 함께 거니시는 주님! 우리 가정에 늘 함께 계셔 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예수님은 구약의 법궤와 같습니다.
그런데 아비나답은 40 년 동안 법궤를 모시고도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교회 안 에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를 10,20,30년, 40년을 믿었는데도 달라지는 것 이 없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아비나답의 집안하고 비슷하지 안을까요 하나님 을 모시고 사는데도 영적으로 육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없다면 무엇인 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길래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를 했길래 하나님을 어떻게 모셨길래 그 엄청난 축복의 근원 이 되시는 분을 우리 집안에 모셨는데도 표가 안나고 있습니까 오벳에돔의 집안이 단순히 법궤를 모시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 집안이 축복 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저는 궁금했습니다. 여러분이 집에 가셔서 사무엘하 6장을 좀 읽어 보시면 도움 이 되실 것입니다. 아비나답의 집에 40여년 동안 법궤가 있다가 드디어 법궤를 옮기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법궤를 옮기다가 아비나답의 아들이 즉사하는 불상사 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다윗이 기절초풍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두 려운 법궤를 내가 어떻게 모시고 가느냐 왕이 못 모시고 가겠다고 하니까 내 가 모시겠소라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제사장이나, 다른 신하나 백성들 누구 도 나서기가 어려웠습니다. 다윗과 같은 왕, 믿음이 좋은 사람도 뒤로 물러서는 데 누가 감히 나서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슬금슬금 두려워서 꽁무니를 뺍니다. 이 법궤를 누가 모시고 갈 것이냐 다윗왕의 성격을 보아서 [너! 네가 이 법궤를 모셔!]하고 강요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난처난처한 상황입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때에, 오벳에돔이 제가 모시지요! 라고 나서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모시기를 부담스러워 하고, 두려워 하고, 겁 을 낼 때에 오벳에돔이 제가 모시지요.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길때에 교회 에서 제가 그일을하지요라고 말할수있어야 복받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서 버린 법궤를 기쁨으로, 정성을 다해서 자기 집에 모신 오 벳에돔의 가정입니다.
역대상 13:14절을 보면 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왜 그 그 권속과 함께 있다고 말했 을 까요 그것은 오벳에돔 혼자서 모신 것이 아닙니다. 법궤가 그 집안으로 들어 오자, 오 집안 식구들이 한마음이 되어 정성껏 하나님을 집안에 모시고 모든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하나님을 그 가정은 기뻐하면서 즐거워 하며 모셨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 가정에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느니라!! 있으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 가정에 축복 해 주셨느니라! 이유없는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유없이 그렇게 짧은 기간에 축복을 주시지는 않습니다.소위 말하는 축복받을 짓을 했기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모시고 사는지 수십년이 된 크리스챤의 가정에 식구들을 보면 가 끔씩 하나님을 몹시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담스 럽게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그 사실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물어보시죠. 이왕 예수 믿을 바에는 오벳에돔의 가정 처럼 확끈하게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부터 미지근하고, 안 일한 신앙생활을 해서는 복이없습니다. 모든 일에 앞장서고 목사님 성도님 한번 해 보시죠. 하나님이 도와주실겁니다. 말하는 신앙의 자세를 축복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오벳에돔의 가정에서 우리는 이렇게 뜨겁고 열정적인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이 축복합니다. 오벧에돔의 자녀들은 아버지 한번 우리가 잘 모셔보죠. 그의 아내는 여보 우리가 하나님을 정성을 다해 모셔보죠. 그렇게 정성스럽게 석달을 섬겼더란 말입니다. 석달만 섬겨도 이러한 축복이 임했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한번 섬겨봅시다.
2)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대상 13:14) 고 하였습니다. 복은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십니다.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이 복은 통상적으로 받는 복이 아니고 특별히 받는 축복입니다. 법궤가 머문 이후부터 갑자기 받은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오벧에돔이 받은 복은 우연한 복이 아닙니다. 확실한 축복이고, 계획된 축복이고, 이미 목적되어 있었던 복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은 복이 성경에 나옵니다. 창26:14 이삭이 받은 복입니다. 불레셋에서 흉년중에 여호와께서 복주심으로 100배의 결실을 얻었고, 소와양이 떼를 이루며 마침내 거부가되었습니다.
3)소문난 축복이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 12절에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 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올라 갈새 라고 하였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이 하나님의 궤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은 비밀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함께 아는 큰 축복,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왕궁에 있는 다윗에게까지 들렸습니다.
3. 사건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법궤로 인한 축복의 오늘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법궤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념물이었습니다. 법궤안에는 아론의 싹난지팡이 십계두돌판 만나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신약시대에 나타나실 영원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우리 생명의 만나요, 죽었던 아 론의 싹난 지팡이는 예수님의 부활이요, 십계의 두 돌판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법궤가 머문 집에 임한 축복의 진의는 확실해집니다. 오늘의 법궤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예수의 다른 이름 과 같습니다. 마치 구약의 법궤가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를 나타내는 또 다른 상징적인 이름이 있다면 '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머무는 개인의 영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민족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사랑의 대명사요, 용서 의 대명사요, 영생의 대명사요, 구원의 대명사요, 복음의 대명사요, 축복과 승리 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곤(기돈)의 타작마당에서 법궤 때문에 웃사는 즉사 하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오벧에돔은 이 법궤 때문에 자신과 가정과 그 모든 소유가 복을 받고 말았습니다. 오벧에돔은 법궤 때문에 웃사가 현장에서 천벌 을 받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웃사가 법궤 때문에 죽은 것을 알면서도 자 기 집으로 그 법궤를 기꺼이 영접하는 그의 용기를 보십시오. 그것은 오벧 에돔의 신앙입니다. 그는 그 법궤의 참 모습인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법궤를 자기 집에 모심이 곧 자기 집에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께서 임재하는 영광으로 본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그 법궤가 자기 집에 머무는 그 3개월은 아마 자기 생애 최고의 날들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법 궤 앞에서 생의 최고의 충성을 다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기간에 그와 그의 가족들은 그의 소유들에게 크게 임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나중에 그 법궤가 다윗성으로 옮겨진 후에, 그는 그 법궤가 보관되어 있는 성막의 수종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대상 15:18). 그는 법궤의 축복을 알았기에 법궤를 따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법궤를 향한 오벧에돔의 신앙입니다. 집안의 68명 전체가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그에 충성을 봅니다. 오늘 예수의 십자가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가지고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자 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 자신과, 그 가정과, 그 소유물에 여호와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삶에 법궤가 머물게 하십시오. 십자가가 내 삶에 중심이되게 하십시오. 맥추감사절기에 진실한 마음으로 법궤를 모시기를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확실히 법궤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머무시는 가정마다 개인마다 소유물들에 여호와의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복이 이웃과 나라와 세계로 확산되기 를 축원합니다.
 바로 이곳이 세계 축복의 센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오벧에돔과 같은 이러한 마음과 자세로맥추감사절을 지키십시다.맥추감사절을 지킬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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