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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 이대로 (히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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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거리를 달리는 선수에게는 순발력이 필요하지만 장거리(마라톤)를 달리는 선수에게는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신앙생활도 마라톤이라 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루나 이틀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거리 선수처럼 순발력만 뛰어났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끈 기와 인내가 필요하고 증단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말씀과 믿음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일평생 동안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그가 신앙의 마라톤에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젊은 시절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일평생 동안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서 겪었던 고난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 수를 셀수가 없습니다. 굶주렸고 헐벗었고 매맞았고 투옥되었고 추방당했고 그 리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가 신앙의 마 라톤을 하는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해냈고 면류관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옛말도 있습니다만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 면 마라톤에 임하는 자세와 인내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때로 우리는 조급증이라는 올무에 걸려 넘어질 때가 많 습니다. 충신교회에서 세례 받는 사람들에게 묻는 세가지 공통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는 누구인가, 왜 예수를 믿는가, 언제까지 예수를 믿을 것인가입니다. 그 대답 역시 모두가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나의 구주이시며 죄사함 받고 영생얻기 위해 믿 으며 그리고 영원히 믿겠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영원히 믿겠다'는 그 대답은 곧 그 시간부터 신앙의 멀고 긴 길을 떠나=K다는 약속이며 결승점까지 중단하지 않고 달려가겠다는 서원인 것입니다. 신앙생이란 힘들다고 낙심해도 안되고 성취했다고 자만에 빠져도 안됩니다. 실패했다고 절망해도 안되고 성공했다고 오만해져도 안됩니다. 주님을 향해 걷던 길 그대로 걸어야 하고 가던 길 그대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1986년을 마지막 보내는 송년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읍니다. 한마디로 1986년 한해 역시 어수선하코 힘겨운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오늘 여기에 있게 되었고 오늘을 맞 게 되었습니다. 원망이라는 안경을 낀 채 198실을 되돌아 본다면 온통 세상이어둡 고 짜증스럽고 망스러운 사건들로 가득 차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라는 안경을 끼고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 보면 우리네 삶 구석구 석마다 감사할 일들이 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나간 한해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 온 한해였다면 다가오는 한해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고 그리고 마무리되는 한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본문 16절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요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을 우리가 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며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파스칼이 지적한대로 인간은 아주 큰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주 적 은 미세한 소리도 듣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아주 큰 것도 보지 못하고 아주 적은 것도 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연약하고 미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지니는 신앙이라는 것도 때로 시험에 빠질 때도 있고 낙심할 때도 있고 증단할 때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찬바람 쏘이면 감기 걸리고 햇빛 쪼이면 피부가 타는 것과도 같이 신앙생활 역시 추위와 더위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다. 물론 사람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약간씩 다르긴 합니다. 환경이나 상황에 별 영향 반지 않고 일생동안 꿋꿋하게 신앙의 길 을 걷는 사람도 있고 환경이나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약하 고 부족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도움의 힘을 가리켜 히브리서의 저자는 u하나님의 은혜라고 본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 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말하는 은혜의 보좌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처소 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로 은혜를 받기 위해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21장을 보면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위 해 성소에 들어가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이 가지고 들 어가는 제물이 흠없고 깨끗한 것이어야 함은 물론 제물을 가지고 들 어가는 제사장 역시 건강한 사람이어야 했고 신체에 이상이 없어야 했고 생활이 섭결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께 나가는 절차나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구약시대 사람들처럼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 갈 필요도 없고 까다로운 절차도 저칠 필요 가 없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로 나와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과 사랑의 보호 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조건없이 하나님께로 나와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된 데는 다음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큰 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차례씩 백성들의 지은 죄 를 용서받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사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징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 소에 들어 갈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짐승의 피 대신 예수의 피로 죄를 속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의 제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대제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 으로 찬송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체'이라는 말의 뜻은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자신의 피가 아닌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에 들어가 제사를 드렸습니다만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속죄의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주님은 손과 발에 못이 박히셔야 했고 옆구리 에 창이 찔려야 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어야 할 온갖 고난을 다 겪으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님 자신이 겪을 것을 다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 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넉넉히 아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난을 짐작할 수 있고 이론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있으나 그 고난을 실감하지는 못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고난을 겪어 본 사람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난 을 층분히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친히 온갖 고통을 다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들을 층분히 이해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본문 16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라면 은혜의 보좌로 나 가야 한다는 것이 16절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16절은 그 은혜를 받 기 위해 담대히'라는 헬라어 원문의 뜻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는 한 하나님께 떳떳하게 나 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구분되고 통제되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이야기든 다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라도 나아가 은혜를 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들의 자세를 저는 '내 모습 이대로'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가는 사람이라 면 자신을 꾸미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는 환자가 의사 앞에서 자기 병을 감춘다면 그는 고침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주님을 찾아 나오는 사람이라면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은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가 좋습니댜. 누가복음 5장을 보면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있었 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빔새도록 한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그 현장에 찾아오신 예수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말씀대로 하겠다'면서 깊은 데로 다시 가서 그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후 베드로가 무릎을 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것이 베드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베드로를 불러서 유명한 제자를 삼아 주셨던 것입니다. 지난 한해 동안 죄에 쓸려 살았던 내 모습 이대로, 불신앙과 게으름과 태만으로 얼룩겼던 내 모습 이대로, 진실하지 못했고 성실하지 못했던 내 모습 이대로, 거역했고 불평했던 내 모습 이대로, 미워했고 질투했고 분쟁했던 내 모습 이대로. 간악했고 오만했던 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으로 나갑시다. 그리고 그의 은혜를 갈망합시다. 그리고 다가 을 새해에도 살아 갈 은혜를 달라고 간구합시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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