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호11:1-12)
본문
호세아서는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간 범죄한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신실한 하나님의 선지자 호세아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인 고멜과 가정을 이루게 하신다. 호세아 1:2-4절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고 했다.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하여 얻은 장자의 이름이 “이스르엘”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이름이다. 당신의 뜻이 담겨져 있는 이름이다. 앞으로 하실 일을 보여 주시는 예언이 담긴 이름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승리”를 의미하는데,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쫓아내신다는 뜻이다.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자를 물리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이스르엘”이란 이름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의 아합 왕가가 예후에게 “이스르엘”에서 멸망할 것을 보여주시고(왕하9:10) 마침내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것을 보여 주시는 이름이다.둘째 아들은 로루하마로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고 했다(호1:6).셋째 아들은 로암미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고 했다(호1:9) 뿐만 아니라 자녀를 낳으며 가정 생활을 꾸려 나가다가 다시금 지난날의 음란한 삶으로 돌아가, 남의 품에 안긴 고멜을 용서하고 속전을 주고 사가지고 오라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이방신에게로 떠나버린 이스라엘을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인간은 패역함으로 범죄의 길을 걷고 있으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용서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됨을 보여준다(눅15:32)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향하여 베풀어주시는 이 놀라운 사랑을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라고 한다. 곧 불타는 사랑을 보여 주신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요, 자신의 죄와 허물 로 영영 죽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죄인을 향하여 베푸시는 “긍휼”이다. 야고보 2:13절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다. 긍휼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여호와 하나님의 우리 인간을 향하신 뜨거운 마음의 불을 붙일 수 있는 힘이 바로 긍휼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그 긍휼의 사랑,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라는 말씀을 살펴 보고져 한다.
1.부를수록 더 멀리하는 자를 부르심 본문 1-2절에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불러내셨다. 애굽은 우상숭배가 난무하는 곳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곳이 아니다. 창세기 50:24절에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했다. 애굽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아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땅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언약이 이루어질 약속의 땅으로 떠나야 할 애굽이다. 출애굽기 8:26절에 “모세가 가로되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라고 했다. 애굽은 언약이 이루어질 약속의 땅이 아니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곳에서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다.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한때는 잘 살았건마는 이제는 마음놓고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는 곳이다. 애굽에서 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고, 울부짖음을 들으셨다. 그 고난과 시련 속의 시달림…. 강제 노역에 끌려 나와 비지땀을 흘리건마는 내리치는 회초리에 찢겨지는 등자욱 그 처참하고 불쌍한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이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로 역사한다. 내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리라. 미디안 광야 호렙산에서 연단시킨 내 종을 보내리라. 본문 1절에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이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불러내었다고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사랑하여” 불러내었다고 하신다.
그들이 잘 하였거나, 무슨 공로가 있어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에” 불러내었다고 하신다. 그들은 “내 어린 아들”이라고 하셨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순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불러낸 것이다. 본문 2절에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했다. 순전히 사랑으로 내 어린 아들을 불러내어 놓았건마는 이 어찐 일인가 그들은 부르면 부를수록 여호와 하나님을 점점 멀리한다고 하신다. “어린 아들”이기에 무슨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순종”을 하면 그만인데 이스라엘은 순종은 커녕 점점 더 멀리한다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갈 데가 어디인가 우상이 되고 만다. “바알들에게” 분향하고,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한다고 했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출애굽의 은혜를 송두리째 잊은 것이다. 사사기 2:17절에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고 했다. 신명기 31:16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했다. 출애굽 여정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가 그렇게도 다짐을 하였던 일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음란하게 쫓아 섬겼다. 심지어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일도 서슴치 않고 행하였다. 열왕기하1 7:13절에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고 했다. 참으로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불렀다. 오랫동안 불렀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오히려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쳤다.
마태복음 23:37절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다. 끝내 저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남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고전2:8)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의 사랑으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위에 버리시고,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멀리하는 자를 불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이다. 마태복음 27:46절에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했다.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더 멀리 도망하는 자, 바로 나 자신이 아니던가요 나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의 사랑으로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는 독생자 예수의 부르짖음도 외면하고 나를 사랑하여 “불러내었거늘.” 우리가 지금 그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자. 여호와 하나님을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지나 않는지
2.고치는 줄 알지 못하는 자를 고치심 본문 3절에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마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걸음마”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걸음마”는 자라는 아이의 “걸음마” 공부가 아니다. 저희를 “고치는” 일이다. 자신도 알고 남들도 아는, 그런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본문 말씀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병을 말하고 있다. 그 “걸음마”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자신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 그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나 자유인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상숭배를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기업도 없는 나그네 생활에서 약속의 땅에 기업을 찾아가는 것이다. 잊어버렸던 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들의 조상들에게게 맹세하여 주리라 하시던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것이다.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이 이루어질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조금만 불편하고 힘이 들면 지난날 애굽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오히려 더 힘들고 소망이 없다며 “애굽으로 돌아가자”를 외치고 있다.
민수기 14:1-4절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라고 했다.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들이 밤새도록 부르짖어 무엇을 위해 울었을까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애굽으로 돌아가자”이었다. 본문 5절에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이라고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애굽 땅도 아니다. 참으로 “걸음마”를 하듯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늘 양식을 내려 먹이셨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한다. 이사야 53:8절에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했다. 광야에서 하늘 양식 만나를 먹고도 원망하던 이스라엘, 하늘로서 내려온 참 떡이요, 산 떡이요,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알지 못한다(요6:51). 그 세대 중에서 누가 알았으리요.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죄인을 위함이요, 죄로 찌들고 죽어 가는 영혼을 “고치심”이다. 자신의 영혼이 죽어져 감을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소리 지르기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이다(눅23:21). 누가복음 23:34절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놀라운 사랑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죄로 인하여 영영 죽어 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고치시려 십자가를 지신다. 그들의 죄 사함을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참으로 무지한 자들이여 아니 그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요 그들을 욕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3.사랑의 줄로 이끄신다. 본문 4절에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서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런 사랑의 줄로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당신의 백성들을 이끌고 계신다고 한다. 이런 사랑이 아니었다면, 부를수록 점점 더 멀리하는 자, 자신을 고치는 줄도 모르고 오히려 원망하는 자를 어찌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겠는가 이사야 1:2-3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라고 했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가 양육한 내 자식 이스라엘은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고, 거역하고, 버리고 떠나간다는 탄식의 목소리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이 당신의 백성들의 목에 메어진 고통의 멍에를 벗겨 주셨다. 애굽에서 당하는 노예 생활의 멍에이요, 자신들의 몫에 테인 죄의 멍에이다.
마태복음 11:28-29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내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실 분, 내 고통의 멍에를 벗겨 주실 분, 나에게 참 안식을 주실 분, 바로 그분의 사랑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이 당신들의 백성 앞에 하늘 양식 만나로 먹을 것을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이스라엘이 일찍이 보지 못한 양식이요, 그 조상들에게서도 들어보지도 못한 양식이었다. 애굽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 광야를 통과하는 40년의 광야 생활, 이 하늘 양식 만나를 내려 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농사를 지으며 양식을 얻었겠는가.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마신 이스라엘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목도하고 체험한 이스라엘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을 입은 이스라엘이다. 요한복음 6:51절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고 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 죽은 떡 만나가 아닌 참 떡이요, 산 떡이요, 생명의 떡을 하나님의 자녀들 앞에,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두셨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다(요6:58)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떡 먹기를 거역하고, 해골의 곳이라는 골고다 언덕 위에 버렸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참으로 불타는 사랑을 당신의 살 찢고 피 흘려 만든 떡인데. 이스라엘이여! 에브라임이여! 내 어찌 너를 놓아 두겠느냐 내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 어찌 너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이 너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이스라엘이여! 에브라임이여! 나의 맹렬한 노를 발하지 아니하리라. 내 너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을 베푸시는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은 사람이 아니기에 가능하다고 하신다. 부를수록 점점 멀리하는 자, 자신을 고쳐 주는 이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는 자, 사람이면 이 불타는 사랑을 베풀 수 없다는 말씀이다.
본문 7절에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다.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기에 결심하고 뒤로 물러가는 자를 불타는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고,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기에 불러도 일어나는 자 하나 없는 당신의 백성들을 고쳐서 불러내어 구원하시는 불타는 사랑을 베푸신다는 말씀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겠는가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된 나이지만, 이 불타는 사랑이 없다면 잠시라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겠는가. 로마서 8: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주님이시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그 사랑 잊지 못해, 그 사랑에 감격하여 늘 감사 찬양을 드리자. 오늘도 내 심령 속에 살아계시어 온유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러 주시는 그 사랑에 우리 함께 영광을 돌리자. 세세 무궁토록.
1.부를수록 더 멀리하는 자를 부르심 본문 1-2절에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불러내셨다. 애굽은 우상숭배가 난무하는 곳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곳이 아니다. 창세기 50:24절에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했다. 애굽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아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땅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언약이 이루어질 약속의 땅으로 떠나야 할 애굽이다. 출애굽기 8:26절에 “모세가 가로되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라고 했다. 애굽은 언약이 이루어질 약속의 땅이 아니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곳에서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다.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한때는 잘 살았건마는 이제는 마음놓고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는 곳이다. 애굽에서 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고, 울부짖음을 들으셨다. 그 고난과 시련 속의 시달림…. 강제 노역에 끌려 나와 비지땀을 흘리건마는 내리치는 회초리에 찢겨지는 등자욱 그 처참하고 불쌍한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이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로 역사한다. 내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리라. 미디안 광야 호렙산에서 연단시킨 내 종을 보내리라. 본문 1절에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이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불러내었다고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사랑하여” 불러내었다고 하신다.
그들이 잘 하였거나, 무슨 공로가 있어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에” 불러내었다고 하신다. 그들은 “내 어린 아들”이라고 하셨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순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불러낸 것이다. 본문 2절에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했다. 순전히 사랑으로 내 어린 아들을 불러내어 놓았건마는 이 어찐 일인가 그들은 부르면 부를수록 여호와 하나님을 점점 멀리한다고 하신다. “어린 아들”이기에 무슨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순종”을 하면 그만인데 이스라엘은 순종은 커녕 점점 더 멀리한다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갈 데가 어디인가 우상이 되고 만다. “바알들에게” 분향하고,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한다고 했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출애굽의 은혜를 송두리째 잊은 것이다. 사사기 2:17절에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고 했다. 신명기 31:16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했다. 출애굽 여정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가 그렇게도 다짐을 하였던 일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음란하게 쫓아 섬겼다. 심지어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일도 서슴치 않고 행하였다. 열왕기하1 7:13절에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고 했다. 참으로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불렀다. 오랫동안 불렀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오히려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쳤다.
마태복음 23:37절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다. 끝내 저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남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고전2:8)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의 사랑으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위에 버리시고,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멀리하는 자를 불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이다. 마태복음 27:46절에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했다.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더 멀리 도망하는 자, 바로 나 자신이 아니던가요 나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의 사랑으로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는 독생자 예수의 부르짖음도 외면하고 나를 사랑하여 “불러내었거늘.” 우리가 지금 그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자. 여호와 하나님을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지나 않는지
2.고치는 줄 알지 못하는 자를 고치심 본문 3절에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마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걸음마”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걸음마”는 자라는 아이의 “걸음마” 공부가 아니다. 저희를 “고치는” 일이다. 자신도 알고 남들도 아는, 그런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본문 말씀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병을 말하고 있다. 그 “걸음마”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자신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 그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나 자유인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상숭배를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기업도 없는 나그네 생활에서 약속의 땅에 기업을 찾아가는 것이다. 잊어버렸던 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들의 조상들에게게 맹세하여 주리라 하시던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것이다.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이 이루어질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조금만 불편하고 힘이 들면 지난날 애굽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오히려 더 힘들고 소망이 없다며 “애굽으로 돌아가자”를 외치고 있다.
민수기 14:1-4절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라고 했다.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들이 밤새도록 부르짖어 무엇을 위해 울었을까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애굽으로 돌아가자”이었다. 본문 5절에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이라고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애굽 땅도 아니다. 참으로 “걸음마”를 하듯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늘 양식을 내려 먹이셨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한다. 이사야 53:8절에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했다. 광야에서 하늘 양식 만나를 먹고도 원망하던 이스라엘, 하늘로서 내려온 참 떡이요, 산 떡이요,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알지 못한다(요6:51). 그 세대 중에서 누가 알았으리요.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죄인을 위함이요, 죄로 찌들고 죽어 가는 영혼을 “고치심”이다. 자신의 영혼이 죽어져 감을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소리 지르기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이다(눅23:21). 누가복음 23:34절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놀라운 사랑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죄로 인하여 영영 죽어 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고치시려 십자가를 지신다. 그들의 죄 사함을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참으로 무지한 자들이여 아니 그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요 그들을 욕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3.사랑의 줄로 이끄신다. 본문 4절에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서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런 사랑의 줄로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당신의 백성들을 이끌고 계신다고 한다. 이런 사랑이 아니었다면, 부를수록 점점 더 멀리하는 자, 자신을 고치는 줄도 모르고 오히려 원망하는 자를 어찌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겠는가 이사야 1:2-3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라고 했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가 양육한 내 자식 이스라엘은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하고, 거역하고, 버리고 떠나간다는 탄식의 목소리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이 당신의 백성들의 목에 메어진 고통의 멍에를 벗겨 주셨다. 애굽에서 당하는 노예 생활의 멍에이요, 자신들의 몫에 테인 죄의 멍에이다.
마태복음 11:28-29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내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실 분, 내 고통의 멍에를 벗겨 주실 분, 나에게 참 안식을 주실 분, 바로 그분의 사랑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이 당신들의 백성 앞에 하늘 양식 만나로 먹을 것을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이스라엘이 일찍이 보지 못한 양식이요, 그 조상들에게서도 들어보지도 못한 양식이었다. 애굽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 광야를 통과하는 40년의 광야 생활, 이 하늘 양식 만나를 내려 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농사를 지으며 양식을 얻었겠는가.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마신 이스라엘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목도하고 체험한 이스라엘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을 입은 이스라엘이다. 요한복음 6:51절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고 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 죽은 떡 만나가 아닌 참 떡이요, 산 떡이요, 생명의 떡을 하나님의 자녀들 앞에,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두셨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다(요6:58)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떡 먹기를 거역하고, 해골의 곳이라는 골고다 언덕 위에 버렸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참으로 불타는 사랑을 당신의 살 찢고 피 흘려 만든 떡인데. 이스라엘이여! 에브라임이여! 내 어찌 너를 놓아 두겠느냐 내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 어찌 너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이 너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이스라엘이여! 에브라임이여! 나의 맹렬한 노를 발하지 아니하리라. 내 너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을 베푸시는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은 사람이 아니기에 가능하다고 하신다. 부를수록 점점 멀리하는 자, 자신을 고쳐 주는 이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는 자, 사람이면 이 불타는 사랑을 베풀 수 없다는 말씀이다.
본문 7절에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다.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기에 결심하고 뒤로 물러가는 자를 불타는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고,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기에 불러도 일어나는 자 하나 없는 당신의 백성들을 고쳐서 불러내어 구원하시는 불타는 사랑을 베푸신다는 말씀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겠는가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된 나이지만, 이 불타는 사랑이 없다면 잠시라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겠는가. 로마서 8: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이 불타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주님이시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불붙듯 하도다 그 사랑 잊지 못해, 그 사랑에 감격하여 늘 감사 찬양을 드리자. 오늘도 내 심령 속에 살아계시어 온유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러 주시는 그 사랑에 우리 함께 영광을 돌리자. 세세 무궁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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