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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빼라 (마5:27-32)

본문

그러므로 오늘 아침 27-32말씀은 예수님이 옛사람에게 말한 구약의 율법에 대하여 비교하면서 말씀하신 내용의 두번째의 말씀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 두번째의 내용인즉 7계명에 대한 간음죄에 대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은 너희의 눈이 간음케하여 너희를 실족케 하면 그눈을 빼는 것이 좋고, 너희 백체 중 그어떤 팔이라든지, 다리라든지, 손이라든지, 어느 부위라도 너희를 실족케하는 일이 있게 되면 차라리 그것을 없이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심으로 오늘의 이 말씀에 대한 깊은 뜻을 교훈을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사람들에게 음욕이 왜 생깁니까 그래서 오늘 아침 생각할 것은 왜 우리 사람들이 음욕을 품게 되는가 하는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음욕이 왜 생깁니까
1. 눈으로 볼 때 간음하게 된다. (삿16;삼하11;4, 벤후2;14) 우리의 눈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경험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은 마음이 비단결 같습니다. 저도 맹인을 몇사람 알고 있는데 그분들을 대할 때마다 마치 무슨 천사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들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볼때 한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사람이 눈으로 보는 데서부터 더러워지고 때묻고 순전하지 못하게 되는것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 우리 인간이 왜 음욕을 품게 되어지고 이 무서운 죄에 이르게 되어지는 생활을 하게 되는가 하는 것은 눈으로, 무엇을, 어떻게, 봤느냐에 따라서 그사람의 인생이 좌우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삿16;1이하에 우리가 잘 아는 삼손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랬습니다.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랬습니다. 삼손은 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특별히 구별되어서 성장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진 몸, 특별히 구별하여 남달리 자라온 삼손이었지만 아름답게 꾸미고 유혹 하는 기생을 눈으로 봤을때 그 눈이 결국 유혹하는 여인에게 매혹되어서 드릴라를 사모하게 되고 드릴라의 무릎에누워서 달콤하게 살아 보겠다고 생각한것이 결국 나중에 두눈이 뽑힌채 건물에 버티고 서서, 마지막엔 그건물을 넘어뜨리며 압사 하고 마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되어질때에 우리의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볼때에 역시 우리의 마음은 아름다운게 됩니다. 그러나 누추함과 더러움의 모습을 보게 되어질 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모습으로 점점 내마음의 그림이 바뀌어 진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유명한 성경 주석가 가운데 박윤선 목사님이게셨습니다. 이분이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에 거리를 다니면서 눈을 위로 보지 아니하고, 바로 보지 아니하고, 바닥을 바라보면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거리의 풍경들이 비슷하지만 과거의 우리나라 전통적인 거리의 모습과 미국의 현대적인 모습은 전혀 달랐기 때문에 이 박윤선 목사님의 눈에 보이는것마다 사람을 흔드는 충동적인 모습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번 해볼까하고 생각을 하다가 전봇대에 쾅 박아가지고는 잘못하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 사람은 보여지는 것을 보고 그렇게 변해 가는 것입니다. 곳곳마다 선정적인 광고들이 우리의 눈을 빼갈 듯이 유혹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눈을 잘 사용하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벤후2;14에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졌다. 사람의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지금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버스,,, 지하 교회전세) 삼하 11;2-4에 또 우리가 음욕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잊지 못할 사람이 있습니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지라” 그랬습니다. 다윗의 눈으로 보았던 그 여체는 그의 마음을 음욕케 만들었고 결국 음욕케된 그는 간음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다윗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역사상 어는나라, 어는 왕궁속에서도 이러한 일은 상당히 많았을 것으로 생각 되어지기도 합니다. 창3;6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틈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지하신 중앙의 실과를 먹지 말아야하는데 그것을 보았은즉 먹음직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 짝이 없어서 그만 그들의 눈이 잘못 보게되어진 그것때문에 인류는 죄라고 하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습니다. 욥31;1에 욥이 말하기를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은 눈을 지키기위해 눈과 언약을 세우고 결코 눈으로 잘못된 음욕을 품는 모습의 내용들을 보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 4;25-26에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리의 눈은 위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우리의 눈은 주님만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우리의 눈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눈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마음에 음욕이 생기므로 간음하게 된다. (삼상16;7, 잠4;23) 왜 사람들에게 음욕이 생깁니까 마음의 음욕이 생기므로 간음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마음이라고 하는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아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잠언기자는 잠4;23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가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모든 것을 다 빼앗긴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물질을 빼앗기고 혹은 우리의 환경요건들이 다 이리저리 갈기갈기 찢겨 빼앗겼다 할지라도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모든것을 빼앗기지 않은 것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물질의 풍성함을 가지고 좋은 환경과 여건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도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모든 것을 다 빼앗긴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항상 우리가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자가 되어서 간음하게 되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됩니다. 마15;19에 “우리인간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그랬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간음과 음란의 마음이 나온다고 그랬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항상 간음과 음란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때에 우리가 범죄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늘 항상 우리의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늘 마음을 지켜나갈 수 있는 아름다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3. 부부사이의 공동책임. (마5;31-32, 19;7-9) 왜 사람들이 음욕하게 되어지는 것입니까 부부사이에 공동책임이 있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31절로 32에서 말하기를 또 일렀으되 “또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각각 공동책임이 있음을 분명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의 공동책임 의식을 가지고서 가정의 파탄이 이 음욕으로부터 일어나지 아니하도록 삼가 부부의 아름다운 생활이 우리의 생활 속에 잘 유지되어 나갈 수 있는 축복의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 음욕은 어떻게 물리칠까 (적극적) 그러면 우리가 이러한 음욕을 어떻게 벗을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음욕을 품지 말아야만 된다고 하는 사실임 것입니다.
1. 음욕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창 39;7-8) 창 39;7-8속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을 게속 유혹하고 있는 보디발의 아내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집요하기 짝이 없는 유혹을 하고 있었지만 절대로 요셉은 마음속에라도 보디발의 아내에 대한 음욕을 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늘 보디발의 아내가 눈빛을 주고 별의별 짓을 다해도 요셉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2. 결단성이 있어야 합니다. (29-30) 본문 29-30에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리라 네의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뭄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눈으로 범죄할 때 눈을 빼라. 손으로 범죄하면 손을 찍어 내 버려라. 무슨 말입니까 진짜 눈을 빼버리라는 말입니까 진짜 손을 잘라버리라는 말입니까 이건 저 이방 교회에서나 하는 일입니다. 중동 아랍지역에 있는 이슬람교회에서나 하는 이야깁니다. 진짜 눈을 빼고, 팔을 잘라버리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것은 눈을 빼듯이 팔을 잘라버리듯이 결단성을 가져야만 된다는 의미를 여기에서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3. 부부의 귀중성을 알아야 합니다.(31-32, 히13;3-4) 또 어떻게 할 때 음욕을 물리 칠 수가 있습니까 부부의 귀중성을 알아야만 된다는 사실 입니다. 히13;4에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이는 부부의 귀중성, 곧 혼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침소를 더럽히지 아니하는 생활이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귀중성을 알아야지, 아무 여자나 아무 남자나 그냥 눈에 맞는다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안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워준 부부의 귀중성 (혼인의 귀함)을 알고서 천하 모든것이 부부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된다는 말입니다.
(3)음욕을 경계 해야 합니다. (소극적)
1. 남녀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벤후2;
2, 고전6;18) 남, 여가 가까이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음욕을 피해야 된다 그랬습니다. 음욕은 피하는 것입니다. 가까이 하면 가까이 할수록 자꾸만 음욕은 더 커지고 불어나게 되는 것이 음욕이라는 것입니다. 잠5;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여인에개서 멀리 해라, “그 집문에도 가까이 가지말라” 여인의 집 문에 가까이도 가지 말아라 그랬습니다. 가까이 하면 안되고 멀리해야된다고 한것입니다.
2. 입술로 조심해야 합니다.(고전15;33, 시41:3) 어떻게 음욕을 경계하라고 했습니까 입술로 조심해야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격언에 말이 뭐가 된다고요 말이 씨가 된다. 자꾸만 말을 하게 되면 그게 씨가 되어서 그렇게 되고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을 조심함으로 음욕을 경계해야 되겠습니다. 입술을 지켜서 우리의 입술을 성결한 입술로, 제단 숯불로 지져 입술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잠16;6 창39;9) 마지막으로 음욕을 경계해야 되겠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잠16;6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고 말 했고 창39;9에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계속 받을 때에 그는 말하기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에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쳐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일수록 일찍 은헤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합니다. 어려서 아예 사춘기가 들기전 부터 은혜를 받아서, 성령님의 은사도 받고 이렇게 해야지만 그때를 잘 넘길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어떤 유혹이나 미혹이 있을때 이겨나갈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기를 때, 공부해라 공부해라 쓸데없는 짓입니다. 한 순간 눈 잘못 팔아가지고 휙돌아서면 공든 탑이 다 흔들립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 잘하며, 어려서부터 하나님 잘 섬겨서 뭔가 자기의 마음에 영적인 체험(신앙의 은혜)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적으로 받게 되면 왜 공부를 해야하는가, 그 목표를 분명하게 알기때문에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지 않아도 공부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나쁜 짓하지 말아라, 말아라, 하지 않아도 않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교회의 중진들 자녀들도 교회생활은 등한히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어려서부터 심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과 마음과 손으로 범죄치 않는 우리의 생활이 되야되겠습니다. 결단성 있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서 우리가 범죄치 말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의 소중성을 깨닫고 부부사이의 귀중함을 늘 항상 느끼면서 우리의 가정이 파탄되어지지 아니하고 행복한, 스윗트 홈 되어질 수 있는 축복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원하면서 기도하는 좋은 아침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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