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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열두시의 감사 (요11:7-16)

본문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처음 세례를 주던 곳인 베뢰아 지방에 계실 때였습니다(요10:40, 1:28). 저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그의 친구 나사로 집에 누이들로부터 급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사로가 병이 들어 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병은 죽은 병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온 사환을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로부터 이틀을 지나신 주님께서 유대로 다시 가자고 하였습니다(11:7). 이 말은 병든 친구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로 가자는 말이었습니다(11:11). 그 때 제자들은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그리로 또 가시려 하십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는 말에 유의하면서 '낮 열두 시의 감사'라는 제목의 말씀을 받고자 합니다.
I. 낮 열두 시란 무엇을 말함인가 11장 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첫째, 표면적 의미는 유대인의 하루를 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낮 시간을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를 열두 시간으로 나누었습니다. 저들은 그 시간의 장단에 관계없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의 시간을 아예 12시간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은 하루의 정오를 가리킴도 됩니다. 하루의 대낮을 가리킴도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식 열두 시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면적 의미는 비유적인 뜻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의 재세 어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는 세상에 계실 동안 자신이 세상의 빛이시라고 하였습니다(요8:12). 마치 자연계의 태양이 지면을 비추는 어간을 낮이라고 하듯이 의의 태양(말4:2)이 되신 예수님 자신이 세상에 머무는 그 어간을 낮이라고 비유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 4절에 [때가 아직 낮]이라고 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9장 5절에 [내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증거 되고 있는 어간이 낮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땅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복음 선교의 어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마24:14).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말과 상통하는 뜻이 됩니다(마5:14).
그러므로 영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자는 빛 속에 머무는 자들입니다. 말하자면 낮에 사는 자들입니다.
넷째의 경우는 영원한 새하늘 새 땅 곧 천국은 영원한 낮이 됩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 왔다]고 한 말입니다. 바로 천국은 밤이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계21:25). 그럼에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낮 열두 시란 해뜰 때부터 해 지는 시간까지의 유대력 하루를 말하면서, 이것을 비유적으로 자신의 재세 어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Ⅱ. 낮 열두 시의 감사가 무엇인가
1. 주어진 기회(시간)를 붙잡는 감사입니다. 우리 본문 11장 9절에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하시는 주님의 말씀 속에는 아직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시간)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어간에 자기의 잠든 친구 나사로를 깨우러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는 이미 나시로가 죽은 지 사흘이 되었고, 주님이 거기에 도착했을 때는 하루가 지난 나흘째였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시간의 창조자였고, 또 시간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심에 있어서 성실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는 나사로가 병들어 앓다가 죽어 무덤에 장사지낸 후에야 거기로 가셨습니다. 내 친구 나사로의 잠을 깨우러 가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을 가리켜서 잠들었다고 했는데 제자들은 그 의미도 모르고 잠들었으면 낫겠다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나사로는 죽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기회)을 효과 있게 사용하시는 주님의 진의를 나타내었습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를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이는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키는 역사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그리고 나사로 형제들에게 유대인들에게 부활 신앙을 넣어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2. 주어진 기회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감사입니다(요11:40-42). 마침내 그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에게 너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1:40). 그리고 나사로의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고 하였습니다. 항상 자기의 기도에 응답해 주심을 감사했습니다. 이번에 또 기도하는 것은 둘러선 무리들에게 믿음을 주고 예수 자신께서 아버지가 보낸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죽은 나사로를 불러내기 직전에 그 무덤 앞에서 올린 예수의 감사 기도입니다. 그 후에 그는 큰 소리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었습니다. 그 결과는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수건에 얼굴이 가리운 채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그 얼굴에 수건과 수족을 묶은 베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낮이 밤을 물러가게 하고 말았습니다.
Ⅲ. 낮 열두 시의 현대적 의미의 감사가 무엇인가 바로 밤이 오기 전에 일하는 감사를 가리킵니다. 낮 열두 시 곧 밝은 태양 빛이 머물고 있는 하루는 깨어 있는 시간입니다. 일하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낮 열두 시의 현대적 의미는 복음 전파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 어간에 일해야 합니다. 낮 열두 시의 일이 무엇인가
1. 예수 믿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5절로 3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들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복음의 빛이 세상에 전파되고 있을 동안에 빛이신 예수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심판의 때 곧 밤이 오면 기회는 끝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가리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였습니다(고후6:2). 바로 예수 믿는 믿음 안에 사는 삶을 가리켜 낮에(빛) 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실족하지 않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요11:9).
2. 예수의 복음을 전파함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9장 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멋있는 말씀입니다. 낮에는 일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숨쉬고 사는 동안은 일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밤 곧 개인의 종말과, 우주적 종말, 곧 세상 끝날의 심판이 올 때는 일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때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3장 33절에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오늘과 내일과 모레라고 하는 낮동안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 뜻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성취하였습니다. 바로 낮 열두 시의 현대적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선교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베다니로 떠나면서 낮 열두 시를 선언하였습니다. '베다니'란 뜻은 '괴로움의 집'이란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자기 친구 나사로가 살고 있는 마을이 바로 '괴로움의 집'이었습니다. 그 괴로움의 집의 실상은 나사로의 병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결과 인생의 허무를 절감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베다니에 낮 열두 시를 선언하였습니다. 바로 부활의 빛을 뿌렸습니다. 어둡고 캄캄한 절망의 밤을 밝은 부활의 아침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바로 오늘 예수의 사랑하는 친구들, 곧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베다니 곧 '괴로움의 집'입니다. 병과 죽음과 눈물로 얼룩져 버린 슬픔의 마을들입니다. 예수께서 세우신 오늘의 교회는 이 세상 베다니 속에서 '낮 열두 시'를 선언해야 합니다.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를 증거 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낮이 남아 있다'고 소리 질러야 합니다. 아직까지 예수 믿을 기회가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일해야 합니다. 여기에 낮 열두 시의 감사가 있습니다. 여기에 낮 열두 시 감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낮 열두 시의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낮 열두 시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창조의 시간입니다. 낮 열두 시는 하나님께서 각자 각자에게 할당해 놓으신 시간입니다. 아무도 그 누구도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할당해 놓은 낮 열두 시를 변경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그 누구도 그 무슨 이유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낮 열두 시를 거절하거나, 보류하거나,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낮 열두 시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잠정적인 시간이고, 유한적인 시간입니다. 머무름이 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밤이 옵니다. 곧 개인의 종말(죽음)이 오고, 우주적 종말이 심판과 함께 도래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은 이 '낮 열두 시' 어간에 과거를 만들고, 현재를 만나고 또한 미래를 내다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된 모든 자들은 낮 열두 시 어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죄로 말미암아 기쁜 과거를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낮 열두 시 어간에 만난 현재를 창조하고 생산하며 축복의 감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높고, 더 깊고, 더 크고 더 많고 더 밝은 찬란한 미래를 설계하게 됩니다. 중대한 진리는 우리 개인 개인에게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낮 열두 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낮 열두 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낮 열두 시의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낮 열두 시의 기회를 감사의 기회로 선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베다니, 곧 '괴로움의 집'을 즐거움의 집, 부활의 집, 승리의 집, 영광의 집, 잔치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낮 열두 시를 선용하여 그 잠든 친구 나사로는 깨우는데 사용하러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베다니에는 감사의 잔치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요12:1-10). 이런 의미에서 1996년 추수감사절도 예외 없이 낮 열두 시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태양빛 아래서 열매를 받은 자연 은총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뿐아니라 의의 태양이신 예수의 빛 속에서 살게 된 특별 은총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낮 열두 시가 아니냐 아직까지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일하는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축복 받을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낮 열두 시의 감사! 그것은 바로 은총에 대한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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