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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비판하는죄 (마7:1-5)

본문

우리 성도들, 특히 주의 종들이 범하는 가장 많은 죄는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훼방하는 죄라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기껏 은혜 받고 능력 받았다가도 우리의 입으로 다 쏟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비판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명령을 어길 때가 너무 많습니다. 비판하는 버릇은 남을 해칠 뿐 아니라 자신도 해치는 행위입니다. 데이비드 푹(David H fink)박사에 의하면 신경과민증에 걸린 환자 1,000명과 그렇지 않은 사람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신경과민증에 걸린 사람들 대부분이 남을 날카롭게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고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남을 비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날카롭게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남에게도 해를 끼치고 자신에게도 큰 손해를 가져옵니다. 예수께서 왜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물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1. 우리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법정 앞에 동상이 하나 서있는데 저울질하는 저울대를 가지고 저울질하는 모습의 동상인데 그 사람의 눈은 수건으로 가려져 있는 동상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리 공평하고 바르게 판단한다고 해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정확히 판단하실 분은 만민의 재판장이신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만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것은 내가 보기에 틀려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일은 현재 보기에 틀려 보이나 나중에는 옳은 것으로 판명되는 때가 오기도 합니다. 함부로 남을 비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요 잘못된 것입니다.
2. 나도 실수가 많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 인간은 내 잘못은 못보고 남의 잘못만 들추어 찾아내는 수가 많습니다. 본문 3-4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요사이 이 말씀의 참 뜻을 깨달았습니다. 대부분 남을 비판하고 중상 모략하는 사람들은 자기 비판하는 사람보다 백 배, 천 배, 죄가 더 많은 사람들임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못보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보느냐"하신 말씀이 참으로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나는 저런 잘못이 없는가 살펴보고 없다면 나는 저런 잘못을 하면 안되겠다" 하고 조심해야 됩니다.
3. 비판하는 만큼 자시고 비판을 받게 됩니다. 남을 가혹하게 비판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도 더 가혹하게 비판받는 때가 옵니다. 남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자기도 너그러운 판단을 받게 됩니다. 본문 7장 1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그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도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되로 주면 되로 받을 뿐 아니라 마로 받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심는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남에게 너그러우면 자기도 너그러운 대접을 받게 되는 법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남을 손가락질하면 적어도 세 손가락은 자기를 손가락질합니다. 남을 흉보면 자기는 더 크게 흉보는 사람이 생기는 법입니다. 어느 목사님 한 분이 상당히 유명한 분인데 아들 하나를 신학교 보내고 나서 "목사로서 자기 아들 하나도 목사 만들지 못하면 목회에 실패한 것이다"고 큰소리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아들이 신학교를 다니다가 술 먹고 담배 먹고 속만 썩히는 사람이 되어 버려서 그 목사님이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하면서 더 이상 남을 비판하지 못하더랍니다. 남을 비판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 비판받는 날이 꼭 옵니다.
4. 모든 것은 하나님이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억울한 욕을 받았지만 같이 욕하거나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하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조급하게 남을 비판하는 죄를 범치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시편 37편 7-8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 감신대 총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식사를 하고 대화도 하고 성전 이모저모를 구경도 했습니다. 이것은 남북정상회담이 분단 5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며 희귀한 만남인 것처럼 감신대 교수님들이 우리 교회를 방문한 사실도 희귀한 일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이 변, 홍 교수 출교시킨 것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하길래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 일로 말미암아 타 교단, 특히 보수교단에서 감리교를 이단이라고 비방하던 말이 다 쑥 들어갔고 이단 교파라는 누명을 벗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살고 부흥 되야 신학생 지원자도 많고 여러모로 유익한데 왜 그렇게 교회를 비방하고, 특히 대형교회들을 무참하게 짓밟고 혹독하게 비판하지 마십시오. 바르트 신학자도 신학은 교회를 봉사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심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데 어머니를 죽이시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뱀 중에 '살모사' 즉 엄마를 잡아먹는 뱀이라고 해서 살모사라고 한답니다."고 했더니 "교회가 잘 못하는 것은 누가 바로 잡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잘못되거나 목사가 잘못하면 하나님이 심판하고 하나님이 쳐버리십니다. 교회가 부흥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교수님들이 공부하고 수고해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것 못지 않게 목회자들도 금식하고, 기도하며 희생, 헌신했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지 여러분 생각하듯이 누워서 팥떡 먹는 것 같이 쉽게 되는 것 아닙니다"라고 대립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언론들이 하나님의 종들과 교회들을 비판하며 도마 위의 생선처럼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영안이 어둡고 거듭나지 못해서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세에나 내세에 무서운 심판을 받는 때가 꼭 옵니다. 주의 종들이나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그때그때 판단하시고 징계하십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하면 무서운 죄를 짓게 됩니다. 함부로 사람을 비판해도 무서운 죄인데 하나님의 교회를 멋대로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이겠습니까
5. 겸손한 사람은 너무 날카로운 비판의 눈을 가지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교만해질 때 다른 사람을 날카롭게 비판하게 됩니다. 겸손의 영이 충만한 사람은 함부로 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내 입에서 너무 날카로운 비판의 말이 나올 때 내 영적 상태가 잘못되거나 병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해야 됩니다. 제가 30대 초반 부흥회 처음 다니고 있을 때 존경하는 노장급 부흥사 목사님들과 식사를 하는 중에 젊은 부흥사들을 혹독히 비판하면서 "같지도 않은 젊은것들이 부흥회 다닌다고참 한심해서." 또 어떤 분은 "요사이 부흥사 춘추전국시대를 만나서" 하면서 모두 젊은 목사들을 비판하다 못해 욕을 하면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듣고 '아! 나는 안 그래야겠다'하는 생각을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 마음속에서도 풋내기 부흥사들이 신문에 광고를 많이 내는 것을 보고 그 노장 부흥사들의 말이 제 입에서도 나오는 것을 보고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입을 다물곤 합니다. 그만해도 제가 고참 부흥사라는 자부심이 생긴 모양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과 사모님 한 분은 다 좋고 훌륭한데 말끝마다 다른 목사를 혹독하게 비판을 하는 말을 듣게 될 때 '그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선배목사님 훌륭한 목사님을 충고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요 서양에 비판에 대한 이런 경구들이 있습니다. "비판하는 즐거움은 깊은 내면의 더 큰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지 말라한 소년이 그 집 개를 사랑하는 것은 그 집 주위에 그의 결점을 발견하지 않는 자는 오직 그 개뿐이기 때문이다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큰 입을 가지고 있음을 주의하라만이 비판이 당신에게 고통을 주거든 그것을 하라; 만이 비판이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주거든 네 입을 닫아 버리라"고 했습니다.
6. 비판을 받을 때의 태도 끝으로 우리가 온당치 않은 비판을 받을 때에는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보고 마치려 합니다. 올바른 비판은 괴로워도 받아드리고 고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변명하느라고 바쁩니다. 온당치 않은 비판이나 험담은 내게 해를 줄 것 같지만 실상 아무런 해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고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히 나아가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비판 악담을 나비처럼 날아다니기는 해도 돌처럼 나를 해치지는 못합니다. Tasso 라는 시인에게 어떤 친구가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악평하고 다닙니다."하고 일러줬더니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온 세상에 악평하고 다니는 것이 온 세상이 나를 악평하고 다니는 것 보다 낫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더랍니다. 한 번은 보스턴의 저명인사가 자신을 비평하는 신문기사를 보고 달려와서 항의하면서 화를 내니까 유명한 헤일씨(Edward Everett Hale)는 대답하기를 "자. 좀 진정하십시오. 이 도시에 이 신문을 읽는 사람이 절반도 안됩니다. 또 이 독자 중에 신문을 전부 다 읽는 사람이 절반도 안됩니다. 또 읽는 사람의 절반이 그 기사를 보지 않습니다. 그 기사를 읽는 사람들 중에 그 기사를 믿는 사람이 절반도 안됩니다. 믿는 사람 중에도 결과를 초래할 사람은 절반도 안됩니다."라고 설명해 주더랍니다. 이사야 51장 7-8절에 "너희가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함부로 남을 비판하는 죄를 짓지 맙시다. 좋은 말 칭찬하는 말만 전달하는 사람이 되도록 힘씁시다.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참소하는 일은 분명한 마귀의 역사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6-3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혀를 마귀의 도구로 내어주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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