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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받을 축복 (사1:2-9)

본문

사 1:2-9절 말씀의 남은 백성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 민족을 뜻하지만 한편 생각하면 우리처럼 6.25와 같은 무서운 재난에서 살아 남은 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6.25 4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악한 것은 기억하지 말며 좋지 않은 일을 오래 생각하지 말라 하지만 한국 사람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일제시대와 6.25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사 1:9절과 4:2-3절을 중심으로 해서 “남은 자의 받을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몇 가지 상고하면서 6.25 45주년을 맞이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남은 자’(The Remnant) 사상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참으로 중대한 의미를 심어주는 축복의 복음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어떤 재난 중에서라도 반드시 그 얼마를 남겨 주십니다. “그 중의 1/10이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것이 바로 어떤 재난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후대에 전승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남겨두신 얼마만큼의 씨 즉 남은 자의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두 아들 중 아벨이 가인에게 희생당한 후 하나님의 축복을 전승하기 위해 셋을 세워서 그 땅에 거룩한 씨의 그루터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에 인간들의 죄가 땅에 관영하고 하늘에 사무치게 될 때도 40일간 내린 홍수로 천하를 다 심판하시고 전멸하셨지만 노아의 8식구를 남겨두시고 그들로 하여금 또한 그 땅에 거룩한 씨의 그루터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때에도 당시 의인 열 사람이 없어 유황불로 그 땅을 심판하시고 전멸하셨지만 롯의 가족 4사람을 살게 하시고 저들로 모압과 암몬의 씨의 그루터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 엘리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머리 숙이지 아니하고 입맞추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 두사 저들로 그 땅에 거룩한 씨의 그루터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때에도 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범죄하고 원수들에게 밤나무처럼 베임을 당하고 상수리 나무처럼 잘림을 당하였지만 스알야습과 같은 사람을 남겨 두사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씨의 그루터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후대에 전승하시기 위해 남겨두신 거룩한 씨의 그루터기입니다. 이 시간에 다른 이야기 더할 필요도 없이 6.25때의 일을 생각해 봅시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금 남겨 두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도 저 소돔과 같이 그리고 고모라와 같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조금 남겨 두셨습니다. 이 웬 은혜며, 웬 사랑이며, 웬 축복입니까 우리는 이 시간에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있었던 한국 교회와 한국 민족의 아슬아슬했던 2대 위기를 생각해 봅시다. 한국을 36년간 통치했던 일제는 한국 기독교 말살 정책을 위해 1945년 8월 18일에 전국 교회의 지도자급을 비밀리에 미리 준비한 갱도에 몰아 넣고 독살시키려 했습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1945년 8월 6일에는 히로시마에 1945년 8월 9일에는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투하시켜 삼일전인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천황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 기독교가 한번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에는 한국을 적화시키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남침을 하였습니다. 전쟁 3일만에 수도 서울이 침공을 당하였는데 이는 세상의 어느 전쟁사에도 없는 일입니다. 전쟁 3개월만에 전 국토의 3/4가 적군의 손아귀에 들어간 전쟁이 천하 어디에 또 있단 말입니까 만일 그 전쟁이 유엔군의 지원없이 3개월만 더 계속되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금과 같은 남한의 발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조국의 인구는 4.500만 여명에 달하며 G.N.P.도 만 불이 되었으며 서울에는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각 지방에는 산업 시설이 세워졌습니다. 쌀이 먹고 남아 북한에 보내는 일도 생겼습니다. 교회도 부흥하여 교인이 1.200만이요, 교회가 4만 여개이며 교역자의 수도 늘어났고 선교사도 세계 도처에 파송하며 예산도 늘어났습니다. 물론 그런 발전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점도 생겨났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도덕적인 부패와 정신적인 타락도 보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언론에서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한국은 미치게 발전한 나라’라고 꼬집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예정된 축복을 그의 후손들에게 전승시키기 위해 그 얼마를 남겨 두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도 소돔과 같고 고모라와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은 백성 즉, 하나님의 남은 자입니다.
2. 6.25당시의 형편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생존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문호 토마스 카알라일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중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최대의 기적은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3.500여년전에 있었던 지난 일을 기념하기 위해 3대 절기를 지킵니다. 유월절과 장막절과 오순절을 지킵니다. 유대인들이 3.500여년전의 그날을 잊을 수 없고 2차대전 말기의 독일의 학정을 잊을 수 없음 같이 우리도 일제 때의 학정과 6.25때의 죽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간혹 제가 평소에 존경했던 전관묵 목사님의 기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목사님은 1960년대에 중국에서 귀환하신 목사님이신데 기도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버지 하나님 그날에 우리가 다 죽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시고 이 자유의 나라에 우리를 보내 주셨나이다” 저는 그 목사님의 그와 같은 기도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 하나님! 저 기도는 나의 기도입니다. 지금 내가 드릴 기도입니다. 그리고서 저도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저도 6.25때 10번도 20번도 더 죽었던 자입니다. 어떤 때는 칼끝이 등에 닿기도 하고 어떤 때는 유격대의 날카로운 창끝이 내 가슴에 와 닿기도 하고 또 그들이 기다리는 장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다 동리 개짓는 소리를 듣고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밤중에 도망쳐 대밭에 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대밭으로 도망쳤으나 발바닥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 지금도 소름끼치는 일이 많습니다. 6.25당시 우리 민족의 절박한 운명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 집니다.
저는 1950년 6월 27일 오후 5시 15에 서울에 있는 군경들의 가족만 태우고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갔습니다. 이때 피난 인파는 대전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제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쟁과 죽음의 행렬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피난민들의 마지막 정착지가 제주도와 부산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갈곳도 없었습니다. 마치 이때의 우리 민족의 처참한 광경 즉 현해탄 바닷가에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홍해 강변의 이스라엘 민족과 같았고 마치 추수해버린 늦은 가을, 논바닥, 발자국 물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송사리 떼의 운명과 같았습니다. 발자국의 물이 마르면 이곳에 모아 있는 송사리 떼는 어느 사이 들쥐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때 초량교회에 모였던 교역자들은 매일기도 하고 매일 회개하며, 매일 찬송을 애절하게 불렀습니다. 그때 불렀던 찬송가는 토풀레이디 목사의 찬송, 188장 3절이었습니다. “빈 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줍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성도의 참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유엔 16개국의 연합군을 한국에 보내주셔서 그 중에 우리를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6.25때 죽은 자의 수가 공산군 300만명 한국군 131.2836명, 유엔군 40만명, 유엔군 포로 20.735명 등 천 백만 명에 달하며 과부가 101.800명, 기아자가 20만 명이었고 가옥이 59만 채 파괴되었으며 교회가 2천 개소 파괴되었습니다. 전쟁 비용은 130억불로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금 남겨 주시지 아니하였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남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그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여주셨습니다. 6.25때 비하면 지금 우리의 처지는 말할 수 없는 축복된 처지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25당시 우리의 G.N.P는 60불이었습니다. 이때 한국의 어린이는 거지라고 불렸고 청년들은 도적이라고 불렸습니다. 60년대에는 70-80불이었던 G.N.P가 지금은 만 불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비하면 150배의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가져야 될 마음 자세는 무엇일까요
첫째, 생존자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최소한 몇 가지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으며 지금까지 살려 두셨을까 왜 내가 지금 살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살고 있을까 이것을 알고 세상을 살면 세상사는 것이 더없이 기쁘고 더없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세상을 살면 세상 사는 것 자체가 억울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억울하고 교회 나가는 것도 억울하며 교회 봉사하는 것도 억울할 것입니다. 더구나 헌금을 내는 것, 그리고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것도 억울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고 지금까지 살게 하셨을까요 대소 요리문답의 첫 번째 답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 남은 자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나 이제사나 죽으나 주의 뜻만 따라 살리라는 각오로 사명감을 가지고 세상을 삽시다.
둘째, 포로에서 돌아온 살아 남은 자는 여호와의 아름답고 영화로운 씨가 되고 싹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사 4:2). 살아 남은 자는 이 땅에 거룩한 씨가 되고 그루터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교포 2세들 중 박사를 원하는 사람은 41% 의사를 원하는 사람은 47%이고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21%인데 자기 자녀가 목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는 77.8%라고 합니다. 여기에 우리 이민 교회가 안고 있는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셋째, 다시는 죄의 멍에를 메지 말고 하늘 나라 생명책에 녹명된 구원이 보장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생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최소한 우리 이름을 세 곳에 기록하고 살아야 합니다. 호적에 이름이 있어야 하고 죽은 다음 내 무덤앞 비석에 이름을 새겨야 하며 그리고 성도는 하늘 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우리 고난 중에 살아 남은 자는 육신적으로만 세상에 살지 말고 아름다운 우리의 믿음을 후손들에게 유산하고 그 이름을 하늘 나라 생명책에 기록하여 영원히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6.25 45주년을 맞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생각하며 사명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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