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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은총 (계17:7-14)

본문

지금 우리는 기쁘고 만족한 한 미래적 약속을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주제입니다.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궁극적 승리, 완전 승리, 영원한 승리를 알려 주는 약속입니다. 이 말은 군사적 술어로써 죽음의 전투에서의 승리를 말함입니다. 싸우지 않고 얻은 승리가 아니고 싸워 얻은 승리, 곧 쟁취하여 얻은 승리를 가리킵니다. 나폴레옹은 ‘싸우지 않고 취한 승리는 비겁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싸워서 얻은 승리들도 결국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승리는 남은 자에게 약속된 최후 승리를 말합니다. 어떤 승리일까
I. 어린 양 예수께서 쟁취한 승리입니다. 14절 전반 부분에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저희가 누구인가 일곱 째 짐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일곱 번째 짐승을 사도 요한은 영감 속에서 일곱 머리(17:7) 그 일곱 머리(17:9), ‘일곱 산’(17:9) 일곱 왕(17:10)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일곱 왕 가운데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현재(요한 당시) 있고(여섯 번째) 다른 이는(일곱 번째)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7:10). 이 일곱 번째 짐승은 일곱 째 왕을 가리키는데 두 얼굴을 가진 짐승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나타난 일곱 째 짐승이 없어지는 것 같이(죽은 듯) 하다가 다시 되살아나는 짐승인데, 사람들은 여덟 째 짐승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일곱 번째 짐승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하였습니다(17:11). 이 짐승은 1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큰 붉은 용 옛 뱀, 마귀와 2 요한계시록 13장에 나타나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권력)과 3 또 땅에서 올라온 짐승(거짓 선지자-타락한 종교)의 합세를 가리킵니다.
계시록 16장 13절로 14절에 말하기를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짐승의 정체인데 이놈이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을 규합하고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준비한다고 하였습니다(계16:14). 이 짐승은 역사의 최종에 나타난 적그리스도입니다. 이 때 모든 세상의 왕들(열 왕들=천하 임금들)은 한마음과 한 뜻으로 자원해서 자기의 능력과 통치의 권세를 그 짐승에게 바친다고 하였습니다(17:12-13). 그래서 사탄은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합니다. 이 때 짐승(개구리 같은 세 영)은 자기를 추종하는 세계의 왕들(통치자)을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모습니다(계16:16). 그리고 예수와 예수의 교회, 예수의 군대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계19:19). 이 때 사탄이 통일한 나라의 국시(國是)는 계시록 12장과 13장에 너무나도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완전히 무신론적이요, 유물론적이요, 반신적이요, 반기독적이요, 반교회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 교회를 진멸하는 것이 저들의 국시입니다. 이 때 전세계에 산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살아 남을 가능은 전무하게 됩니다. 이것은 역사상에 마지막 전쟁이 됩니다. 그것은 사실상 영전(靈戰) 곧 종교적 전쟁입니다. 사실상 인류의 역사는 종교전쟁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가인이 아벨을 예배(제사) 문제 때문에 쳐죽인 것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도 사탄과 사탄의 지배를 받는 666의 세력이 총 연합하여 바벨론이라고 하는 큰 음녀 곧 바벨론 문화를 배경으로 이 세상에 예수와 예수의 교회(백성)를 진멸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큰 짐승이 큰 음녀(바벨론)을 자기 등에 업고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계17:1-6). 이 때 하늘에 문이 열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백마를 타고 나타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은 말씀과 충신과 진실의 이름으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의 눈은 불꽃같고, 그 분의 머리에는 면류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은 피뿌린 옷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의 뒤에는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는 하늘 군대들이 동원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의 입에서는 이 한 검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천하만국을 치고, 친히 철장으로 다스리고,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아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계19:11-15). 그 분의 옷과 그 다리에는 이름 쓴 것이 있는데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하였습니다(계19:16). 본문 17장 14절에는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가 이기실 터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7장 14절에 어린양이 저희로 더불어 싸운다고 한 ‘저희’는 일곱 번째 짐승인데 그것을 더 분해하면 1 짐승(바다에서 올라온 무신론 권력-계13:1-10) 2 거짓 선지자(땅에서 올라온 짐승-계13:11-15) 3 666의 짐승의 표를 받은 자 4 큰 붉은 용(마귀=옛 뱀-계12:9-17, 20:7-9) 5 큰 바벨론(음녀-17:1-5) 등이 합세한 정체입니다. 그 결과는 어린양의 쾌승을 하고 무서운 사탄과 사탄의 추종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으로 던지움을 당하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9:20, 20:10).
Ⅱ. 그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는 승리입니다. 17장 14절 후반부에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 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의 주제인 17장 14절에 ‘이긴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는 어린양 예수 자신께서 만주의 주로서 만 왕의 왕으로서 사탄과 사탄의 왕국을 이긴다고 한 사실입니다. 그 다음 그와 함께 있는 자들에게도 이김이 있다고 한 사실에 유의하고 소망을 걸어야 합니다.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남은 자들입니다. 저들이 어떤 자들인가
1) 부르심을 받은 자(κλητ)들이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언약 안에서 초청된 자들을 가리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는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주인의 잔치 집에 초청되어 예복을 갖추고 온 자를 가리킵니다.
2) 빼내심을 얻은 자(κλεκ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자를 가리킵니다. 선택받은 자는 반드시 구원에로 초청(부르심)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3) 진실한 자들(πιστο)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독실한 예수의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저들의 진실(신앙)이 어디에서 나타났는가 1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믿음) 가짐에서 나타났습니다(계12:17, 14:12).2 어린양의 생명 책에 그 이름이 녹명됨에서 나타났습니다(계13:8). 3 짐승의 표 666을 받지 않음에서 나타났습니다(계13:8, 14:13).4 짐승의 수를 세는 총명에서 나타났습니다(계13:13). 다시 말하면 짐승(사탄)의 활동을 분별하고 그를 대처할 줄 아는 영지(靈知) 작용에서 나타났습니다. 5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인(도장)을 받음에서 나타났습니다(계14:1, 7:2, 5:9, 엡1:13, 4:30) 6 죽기까지 예수에게만 신실함(충성)에서 나타났습니다(계2:10). 이것이 그와 함께(예수) 있는 자들의 특색입니다. 곧 ‘남은 자’들의 특색은 그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선택받은 자들로서 은총에로 부름을 입고, 죽기까지 진실 곧 믿음을 지키고 있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남은 자의 은총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남은 자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남은 자의 구원론적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남은 자의 특색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오늘은 남은 자의 종말론적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에 남은 자는 최후 승리를 얻은 자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확실히 약속합니다. 남은 자는 최후 승리를 할 것이라고 그것은 예수 자신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개가를 선언하였습니다(요19:30). 그의 이러한 승리는 사탄에서의 승리 사망에서의 승리, 영원한 생명의 승리를 가리킵니다. 본질적인 승리, 총체적인 승리, 완전한 승리, 영원한 승리를 가리킵니다. 이 승리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곧 남은 자들에게도 약속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습니다(요16:33). 그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심(임마누엘)으로 이 승리를 보장해 주었습니다(마28:20).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15:57).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마다 주님은 승리(이김)를 권장하였습니다. 이기는 교회마다 승리의 상급을 약속하였습니다. 예수는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짐승=사탄)를 이겼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있으므로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예수 자신의 종말론적 승리입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 Vidi Vici), 저 유명한 로마의 황제 시저의 말입니다. 이 말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현대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나간 한 영웅의 말로만 끝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오고, 보고, 이겼다는 시저가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신하 폴리페리크는 알렉산더에게 야음을 틈타서 다리우스 왕을 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이 때 그는 답하기를 “안된다. 안된다. 승리의 도둑질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그런데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취한 그의 승리가 지금 어디로 갔는가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정복하였으나, 30대 초반에 일찍 죽음으로 그가 취한 승리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승리는 살아 있는 승리입니다. 영원히 살아 있는 승리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무덤에서 부활하여 세세토록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아 계셔서, 영으로 다시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와 함께 있는 예수의 백성들이 교회 운동을 통하여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생명의 승리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다시 재림하여 새하늘 새 땅에서 영원한 황제가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남은 자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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