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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은총 (에4:14-17)

본문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전개하시는 전 역사의 지평선에서 하나님의 크신 구속의 경륜을 보게 됩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펼쳐 가시는 구속사는 중단을 모르고 진행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꽃같이 떨어지고, 풀같이 마르고 시드는 인류의 흥망성쇠 역사는, 사실상 세세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의 구속 역사 경륜을 성취해 가는 무대임을 보게 됩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크신 구속사는 ‘남은 자’를 통하여 계승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남은 자의 은총’이라고 하는 메시지, 그 두 번째를 맞게 됩니다. I. 먼저 남은 자의 역사
1. 첫사람 아담은 죄 중에도 남겨짐이 된 대표자였습니다.
2. 족장 전후 시대의 남은 자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1) 셋이 있었습니다.
(2) 노아와 그 가족이 있었습니다.
(3) 아브람이 있었습니다.
(4) 롯이 있었습니다.
3. 출애굽 시대에 남은 자를 보았습니다. 저들은 모세의 뒤를 이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4. 가나안 정복 시대에 남은 자를 봅니다. 기생 라합은 남은 자의 수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정복 초기 역사 중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지경의 첫 성 여리고와 접전하게 됩니다. 여리고는 모든 성문을 굳게 닫아 버림으로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의 진군을 사실상 도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멸망성 여리고에서 기생 라합과, 그 부모와 형제들을 구원받도록 남겨 주었습니다(수6:22-27). 히브리서 11장 31절은 이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를 선택하였습니다. 때가 올 때 그를 여리고 성에 출생하게 하고 거기에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멸망 성에서 그를 구원하여, 여호수아 군대를 영접하게 하여 하나님의 여리고 성 함락 작전을 성공 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라합’은 남은 자의 은총을 받은 여자가 아닌가 남은 자로서 자기 존재적 의미와 사명을 다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태복음 1장 5절에 예수님의 구속사 족보에 그 이름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는 초기 가나안 정복 사역에 실로 큰 일을 해낸 여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 역사의 한 장(章)을 여는 작업에 남은 자의 은총을 입고, 남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5. 사사 전국 시대는 사사들이 남은 자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착 시대를 성취한 후 이스라엘의 왕정 역사가 일어나기까지 약 300여년 어간을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이 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혼란의 때였습니다(삿17:6, 18:1, 19:1, 21:25). 백성들은 미친 듯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과 결탁을 해 버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을 징치의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방인의 압제를 받을 때 저들은 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사사를 세워 저들을 구원하게 됩니다(삿2:16). 이른바 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과 같은 대 사사(師士)들과, 삼갈, 돌라, 야일, 입산, 삼손같은 소 사사(師士)들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요 또한 선지자로서, 이스라엘 신정국을 탄생시키는데 산파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남겨 놓은 자였습니다. 6.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 남은 자를 봅니다.
1) 칠 천명의 선지자가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8절에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엘리야 자신도 나중에 하나님이 알려 주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1 하나님께서 직접 남겨 두신다고 하였습니다.
2 저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입맞추지도 아니한 정절의 신앙가들이라고 하였습니다.
2) 이사야 선지자는 남은 자를 그 그루터기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6장 13절에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 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에 그루터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범죄로 인하여 그 대부분이 포로가 되고, 또는 죽고, 그 중에 십분의 일이 남아 있을 지라도 그것마저도 멸망하여 버린다고 한 말입니다. 이것은 바벨론 느브갓네살의 침략을 받은 결과 이스라엘의 망국(亡國)과 함께 죽고, 흩어져 버릴 저 민족의 비극을 예언한 말입니다(렘44:11-27). 그 중에도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아 있는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남은 자들은 마치 나무의 그루터기 같은데, 그들이 이 땅의 거룩한 씨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선지자 이사야는 ‘남은 자’를 언급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그 아들 중에 하나의 이름은 ‘스알야숩’이라고 이름하였는데, 그 뜻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선민 이스라엘이 길고 긴 고난의 포로 생활 중에 다 없어지지 않고 살아 남아서 돌아 올 자들을 예시하는 상징적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또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사4:3). 이사야 11장 11절에는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11장 16절에는 그의 남은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미가야, 스바냐, 등의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역설하고 있습니다(렘23:3, 겔14:14-20, 22, 암9:8-10, 미2:12, 5:3, 습3:12-13). 7. 포로기와 포로 귀환 시대에 남은 자들을 봅니다.
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습니다. 저들은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 불꽃 가운데서 타 죽지 않고 살아 남았습니다. 그 결과 느브갓네살이 자신의 입을 통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단3:28). 누구든지 저들의 하나님을 설만히 말하는 자는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단3:29). 마침내 저들의 신분과 권위는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아져 버렸습니다(단3:30). 저들은 포로지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백일하에 드러낸 사람들이었습니다.
2) 다니엘이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때부터 시작하여 천하의 판도가 바뀌는 저 페르시아 제국, 고레스 원년까지 포로지에서 죽지 않고, 망하지 않고 살아 남아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궁중에 박사장이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적 고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왕의 꿈을 해몽하므로 하나님 구속사의 비밀을 역사 앞에 공개한 사람입니다(단2:). 그는 젊은 왕 벨사살이 일 천여 귀인들로 더불어 대연(大宴)을 즐기던 연회장 벽보에 나타난 글을 해석해 주므로 바벨론의 종말을 선언한 자였습니다(단5:24-30). 그 후 그는 새로운 세계 제국의 통치자로 나타난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오 치하에서 총리장이 되었습니다(단6:1-3). 그는 간신들의 계략으로,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어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리오는 다니엘의 하나님을 칭송하게 되었습니다(단6:).
3)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있습니다. 저들은 악한 신하 하만의 모략으로 전 세계에 산재하는 유대인들이 멸종의 위기를 만났을 때 죽음을 각오한 순교적 신앙으로 아하수에로 왕과 대면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의 역사에 부림절을 기록하고 마는 새 회망의 역사를 창조해 내었습니다(에4:16, 7:3-4, 9:31-32). 저들은 포로지 페르시아 제국에서 남은 자의 존재적 사명을 거뜬히 감당한 자들이었습니다.
4)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에스라, 느헤미야가 있습니다. 저들은 포로지에서 살아 남은 자들의 존재적 사명을 다한 자들이었습니다. 정치적 지도자 스룹바벨과 종교적 지도자 여호수아는 사만 이천 오백여 명의 유대인을 인솔하여 첫 번째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착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율법 학사로, 제사장이었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2차로 일천 오백여 명의 유대인을 이끌고 성지로 돌아와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아래 있던 유대인 출신의 술 맡은 장관으로 왕의 호의를 받아, 동지들과 함께 고국에 돌아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5) 포로 후기의 대표적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 말라기 같은 선지자도 있습니다.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는 포로민의 귀환 때 함께 돌아온 사람으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 역사에 결정적인 역사를 감당한 영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성전 재건 공사를 격려하고, 나태할 때 경책하고, 경고하고, 또 위로하면서 성공리에 성전 재건을 완공하게 한 선지자들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성전 완공 이후에 활동한 선지자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도덕적 타락을 질책하고, 오실 메시야 대망의 빛을 예언하던 선지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남은 자’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남은 자의 역사를 약술하는 중에 있습니다. 오늘은 가나안 정복 시대에 멸망성 여리고에 남은 자 기생 라합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때 거기에 남은 자로서 여호수아의 정탐꾼을 영접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사사 전국 시대는 사사들이 남겨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그 때, 남은 자로 죄에 빠져 고통하는 압제자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해 냈습니다. 이스라엘 왕정 시대는 엘리야를 위시한 칠 천명의 선지자들을 보았습니다. 저들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특별히 남겨 둔 자들로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하는 신앙 수절의 방어적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 중에 엘리야는 공격적 사명을 다하여, 저 갈멜산 대전에서 하나님의 불로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백성에게 참 살길을, 그리고 걸어가야 되는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망국의 비운을 온 몸에 가득 채우고,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여러 히브리 소년들 중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다니엘은 그 시대의 생존자로서 너무나도 정정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구김 없이, 소신껏 살았습니다. 분명한 자기 신앙의 철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목적과 수단을 분명히 하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불꽃 가운데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아 하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사자 굴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아 하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학개와 스가랴와 말라기 선지자들은 그 시대의 생존자들입니다. 저들은 예외 없이 그들이 그 때, 그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내가 왜 살고 있는가 하는 자신들의 생존 의미를 바로 깨달았던 자들입니다. 목적과 수단이 분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민감하게 분명한 행동으로 자기 삶의 고백을 입증할 줄 알았던 자들입니다. 저들은 모두 죽고자 하고 살았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살기 위하여 비굴하게 능력도 없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저들이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바쳐질 것인가를 바로 깨달았던 행복자들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들은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경륜에 수종들고, 역사를 만들고 계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말기에 태어나고, 8.15 해방 후에 태어나고 6.25 비극 이후에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경향교회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난의 먹구름이 지난 다음 세대들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역사 속의 지식으로 되었고, 오늘을 사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 시대에 태어나고, 평화 시대에 살게 되고, 신앙 자유의 때에 예수를 믿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때에 살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평화 시대를 사는 값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를 그리스도 앞에 바치는 일입니다. 세계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화 하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전쟁에 죽지 않고, 피난 가지 말고, 이산가족의 슬픔 없이 기쁨 중에, 감사 중에, 주의 일,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그 때 에스더는 그 때를 위하여 죽으면 죽겠다고 자기의 생존의 의미와 목적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된 것이 경향인이 된 것이 예수의 복음 운동을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우리 자신들과 교회 존재의 궁극적 승부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행복의 비전을 붙잡아야 합니다. 축복의 활로를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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