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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은총(4) (눅1:6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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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맥도넬 항공기 제조 회사의 부사장인 월터 버커(Walter Burke)씨는 달나라 여행을 위한 아폴로 계획의 예비 단계로 2인승 우주비행 계획의 총책임자였습니다. 어느 주일, 그가 주일학교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을 때 인터뷰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기자는 처음 질문으로 ‘당신은 우주선 계획을 총 지휘하는 위대한 과학자로서 성경과 신앙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월터 버커씨는 답하기를 ‘과학이나 우주 개발에 있어서 나에게 성경을 믿지 않거나, 성경을 버리도록 하는 어떤 오류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내가 믿는 나의 구세주 예수를 부인하게 할 만한 것들을 전혀 발결한 수 없습니다. 우주 시대가 오히려 내 자신의 영적 생활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소, 그러기에 나는 그 전보다 더 열심히 성경을 읽고, 내가 과학에서 깨닫거나, 얻을 수 없는 것들, 곧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성경에서만 얻고 있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진실된 크리스찬 과학자였습니다. 성경 신앙과 과학은 결코 모순되거나, 서로 대적하거나, 서로 상충하거나,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고 대답한 내용이 됩니다. 성경은 인생의 문제 곧 영의 문제, 다시 말하면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대답이 됩니다. 더 쉽게 말하면 성경은 제일 원리 문제를 다루고, 과학은 제 2원리의 실체를 다룬다고 하는 대답이 됩니다. 또 다시 말하면 성경은 존재의 근원(기원)과 본질을 다루고, 과학은 존재하는 현상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고유한 영역이 다르다고 대답한 것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와 통치와 섭리, 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도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중요한 것들 곧 신앙 문제, 구원 문제, 영생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 성경의 교훈 중에 남은 자라고 하는 특별한 성경 구절과 사건들을 중심하고 생각 중에 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남은 자의 역사를 생각 중에 그 마지막 부분에 이르고 있습니다. 첫사람 아담을 위시하여 족장 시대를 전후해서 셋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롯, 그리고 출애굽 시대에 모세와, 그 뒤를 이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갈렙, 가나안 정복 시대의 초기에 저 여리고 성의 기생라합, 그후에 남겨진 사사들, 또한 신정국 시대에 남은 선지자들, 포로기 전후 시대에 남겨진 소수의 무리들을 보았습니다. 신구약 중간 시대, 특별히 세계 제국들인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천 속에 선민이 당하던 멸종의 위기들 가운데도 하나님이 남겨 두신 소수의 남은 자들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셀레우커스 왕조를 이어받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선민 멸종 정책에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소수의 남은 자를 통하여 지혜와 용맹을 떨치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남은 자의 역사 부분에 그 마지막으로 구약의 끝날과 신약 시대의 남은 자를 보게 됩니다. 이 때 세계사의 무대는 로마제국의 등장으로 이른바 여섯 번째 짐승이 활동하는 시대를 맞게 됩니다. 유다는 로마의 속국이 되는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과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하나님이 먼저 보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말4:5).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 돌이키게 해 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말4:6).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왔습니다(눅1:26, 36). 그는 아비야 반열에 경건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 부인 엘리사벳 사이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가브리엘 천사의 수태 예고로 이 세상에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출생하기 전에 이름까지 지음 받아 세상에 온 사람이었습니다(눅1;13).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자기 차례가 와서 성소에 들어가 제사장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하던 중에 주의 사자 가브리엘이 그 우편에 나타나서 아들의 출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이름까지 요한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출생은 그 부모와 가문은 물론이고 전 이스라엘이 기쁨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나실인이 될 것이고, 모태로부터 성령님이 충만하여, 많은 이스라엘 자손을 주께로 돌아오게 할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엘리야의 심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만민의 구세주 예수를 영접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 많았던 사가랴는 하나님이 보내어 전하여 준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불 신앙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했습니다. 나중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천사 가브리엘의 예언대로, 아들이 출생하여, 할례를 행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하자고 할 때 벙어리가 되어 지내던 제사장 사가랴가 서판을 통하여 요한이라고 써 주면서 그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시간에 사가랴의 입이 풀렸습니다. 그 이름 요한(John)의 뜻은 여호하난(Jehohanan) 즉 ‘여호와의 선물'(Jehovah's gift) 혹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God is gracious)는 뜻을 가진 약자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남겨 놓은 마지막 구약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가서 그 길을 예비하고 그 백성에게 사죄로 말미암은 구원을 예비하기 위하여 남겨진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께로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 광야의 사람으로 남겨짐이 되고 사람들에게 절박하게 의를 환기시켰습니다. 백성들에게 메시아를 맞이할 회개의 소리를 전하는 광야의 소리로 남겨짐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예수의 전령사로 남겨짐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일을 죽음에 이르도록 영예롭게 감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이 한 구절은 실로 유명합니다. 전 구속사의 맥을 연결하는 중요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 표현입니다. 마태복음 2장 1절에 헤롯 왕 때,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역사의 도래를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역사의 신기원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새 역사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로 13절에 천사가 가로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장 1절로 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믿음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하였습니다. 옛적 곧 구약 시대에 남겨짐이 된 여러 선지자들과 조상들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오실 메시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존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이 남겨 놓은 마지막 자기 사랑의 계시가 자신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메시아로서 남은 자의 구원을 책임지고 완성시킬 구세주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아담으로, 살려주는 영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고전15:4
5). 그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남겨 주신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잃어버린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 곧 선택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눅19:9-10). 예수는 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왔다고 하였습니다(막10:4
5). 예수는 그 남은 자들을 상대하여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초청하였습니다(막1:15).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이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였습니다(막16:15).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막16:16). 이 남은 자에게 복음이 증거 되면 세상 끝이 오리라고 하였습니다(마24:14). 그 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성령님을 받고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끝까지 남은 자를 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행1:5, 8). 이 놀라운 작업은 이천년동안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들로부터 이루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계7:9). 분명히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5절에서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도 있었고 신약 시대에도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사는 남은 자의 역사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그 후 속사도 시대의 교부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초기 박해 300년 중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카타콤의 기독교 문화였습니다. 하나님은 중세 카톨릭의 박해 중에도 저 영국의 위클립, 보헤미야의 요한 허스, 그리고 저 서남 구라파의 왈도파 등을 남겨 두었습니다. 중세기 루터를 위시한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과 그 후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교도 시대를 통하여 남은 자는 미국으로 이주시켜 세계 선교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은 독일에 나치주의의 박해 아래서도 남은 자를 보게 하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36년동안의 일제 박해 아래서도 남은 자를 우리에게 보게 하였습니다. 625 사변 중에도 남은 자들을 두었습니다. 저들로 말미암아 오늘의 한국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북에도 지하에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중공에도 문화혁명 때 기독교가 떼죽음을 당하는 것 같았으나, 지금 지하 교회들을 통하여 엄청나게 많은 남은 자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기되는 종말의 날은 세계적인 환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잠깐 동안의 평화 시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특별히 종말 계시인 요한계시록은 남은 자의 최후 승리를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길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네 번에 걸쳐 남은 자의 역사를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조명하였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 성경은 사실상 ‘남은 자’를 위한 기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은 자들의 역사적 의미를 개괄해 보았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남은 자의 특색’들을 더 깊이 언급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식이 아닙니다. 철학이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과학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한 지식입니다. 구원에 관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공개된 비밀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분별을 못합니다. 오직 들을 귀 있는 자들이 듣고, 깨달을 자들이 깨닫고, 눈이 열린 자들이 볼 수 있는 생명의 지식입니다. 남은 자의 반열에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의 행복 앞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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