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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은총(5 (롬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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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과 세상의 역사는 맹목적인가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적이고 목적적인가 그 역사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이고, 역사의 향방은 어디인가 이 세상과 세상의 역사는 누가 주장하는가 우연인가 사탄인가 사람인가 여호와 하나님이신가 성경은 거침없이 대답하기를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 그 어떤 시간, 그 어떤 사건에도, 우연이나, 인간이나, 사탄이 자리를 잡을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와 통치와 섭리의 대주재이시요, 인류 구원의 주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존재하는 세계 역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구속사)가 그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는데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에 있다(요3:16)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하신 주권적 역사 섭리 가운데 ‘남은 자’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과 교회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남겨둔 ‘남은 자’의 역사를 조명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남은 자’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 남은 자들의 내용이 무엇인가 그 남은 자들의 특색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원합니다. 오늘은 남은 자의 구원론적 의미를 생각하기 원합니다.
I. 남은 자는 구원받기로 선택받은 자들이었습니다. 11장 5절에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 남은 자는 하나님의 선택 안에 있는 자기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누구인가 1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11:1).
2 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라고 하였습니다(11:2). 곧 사랑하신 자라고 하였습니다. 3 은혜로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11:5).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의 행위적 공로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4 그것은 이스라엘이 바라는 메시아로 말미암는 대망의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11:6). 5 구원은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만이 얻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1:7).
2. 하나님의 선택은 전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의지의 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의지에 힐문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롬9:20).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진흙을 가지고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롬9:2).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고 하였습니다(롬9:27-28).
Ⅱ. 남은 자는 믿음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믿음, 오직 믿음이라는 사실은 전 성경 가운데 흐르는 중심 사상입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는 역시 ‘은혜로 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요(롬10:4, 9). 예수의 영이 기록한 성경 곧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롬10:8).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연약으로 인하여 저희가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택권 안에 있는 남은 자들을 향한 구원은 아무런 변동이나, 이상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남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 진행과 목적과 결과는 성취되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도 믿음으로, 온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롬11:25-26).
Ⅲ. 남은 자는 소수(小數)라고 하였습니다. 영감의 사람 바울은 선지자 엘리야의 경우를 실례로 남은 자의 수효가 적은 무리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자신만이 홀로 남았다고 하나님께 토로하였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답하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칠 천을 남겨 두었다고 하였습니다(롬1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원 얻는 무리의 수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는 설명 이후에 받은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눅13:22-2
4). 누가복음 12장 32절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로 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남은 자의 역사를 살펴보는 가운데서, 그 시대 시대마다 구속사의 무대에 나타난 남은 자의 무리가 소수라고 하는 사실을 잘 보았습니다. 미가서 5장 8절 중에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수 중에 소수로 존재함을 가리킵니다. 로마서 9장 27절에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Ⅳ. 지금 중공에 있는 삼자교회(三者敎會)는 남은 자의 교회인가 중국 교회는 1900년에 세칭 의화단(義和團) 사건으로 5만명의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1949년 이후 교회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와해(瓦解) 내지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1966년에도 이른바 문화혁명의 바람과 함께 교회가 죽음의 지경을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중공의 교회는 여전히 암혈과 토굴 등에서 산재하며 살아 남아 있습니다. 근년에 와서 중공은 이른바 수정공산주의를 채택하면서 ‘삼자교회’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삼자교회’란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을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중공 교회는 외세에 의존 없이 자립, 자조, 자생한다는 교회 스스로의 정책이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대면하여 들은 중공 삼자교회의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삼자교회’란 이름은 공산당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중공 교회 지도자 스스로가 교회의 자생책을 마련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공산주의를 통하여 기독교를 보호하고 육성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중공을 다녀오는 짧은 기간에 삼자교회에 대한 놀라운 점을 발견하고,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째, 중공은 교회 설립의 자유나 예배 자유, 선교자유, 언론과 출판과 결사의 자유가 없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반드시 당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아야 하였습니다. 예배의 설교는 중공 삼자교회에 소속된 목사만이 해야 되고, 외국의 선교사나, 목사는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설교를 하려면 삼자교회 목사가 종교청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습니다.
둘째로, 기독교 지도자 양성에 필수 기관인 신학교 설립도 당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1 신학교 입학을 지원할 경우는 삼자교회 목사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2 수학하는 학생의 신분이 종교청에 등록이 되어야 하고 3 신학 수업 중에는 신학교가 아닌 상부의(당) 지도를 받아야 하고4 졸업 후에도 자유로운 교회의 청원이나, 본인의 원대로 교회 부임을 할 수 없고 당에서 배정하는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런 교육 과정 어간에 사실상 공산주의 사상의 교육을 다 받게 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셋째로, 목사의 활동은 자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1 목사 안수도 철두철미한 양회(養會)의 감독과 종교청의 감독 아래서 이루어집니다. 양회란 교회 지도자와 공산당 지도자로 구성된 일종의 협의기관으로 실질적으로 교회를 운영 하는 단체입니다. 교회 장로 그룹과 목사 그룹은 각각 다르게 당과 협의체를 구성하여 서로 견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2 목사가 안수를 받은 후에도 교회나, 대회(大會)나 총회에 소속됨이 아니고, 종교청에 직속되어 거기로부터 모든 지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3 물론 장로 안수도 목사의 경우와 같이 전적으로 종교청의 감독 아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넷째로, 교회 재정 관리도 종교청 소관인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는 1 교회 연보는 이른바 양회가 관계하고 있고
2 목사의 생활비(월급)는 종교청에서 받고 있다는 유력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다섯째로, 외국 선교사 입국은 물론이고, 선교사 선교 활동이나, 외국의 기독교서적 반입은 허락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공에 산재하는 여러 나라 여러 선교사들은 목사 직함을 쓰지 못하고 선생, 사장님 등으로 호칭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의 정보망에 의하여 선교사들의 활동은 거의 알고 있다고 하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여섯째로, 공안국(公安國), 곧 경찰청이 교회 활동을 간섭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은 종교청에서 교회를 관여하였으나, 종교청과 교회가 밀착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사례들 때문에, 정부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공안국이 종교청과 교회를 감독하고 수사하도록 하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일곱째로, 중공 정부가 교회의 포교 활동을 실제로 간섭하고 주장하고, 간접적인 핍박을 감행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1 중공 시에 조선족 교회에서 엄밀히 협력 사역을 하는 사역자 부인에게 공안청 소속의 사람이 두 번이나 찾아와서, 자기 남편의 활동에 대하여 심문 비슷한 질문을 하는 중에 교회가 왜 이렇게 잘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이 교회의 부흥을 크게 염려하고 있다는 증거로 생각됩니다.
2 엄밀히 선교하는 사역자들을 붙잡아 공안청에 데리고 가서 여러 가지 심문과 협박을 하고, 추방령을 내리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한 사실입니다.
3 제가 중공 삼자교회와 관계된 곳 한 곳에서 설교를 하고 또 지역 신학교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곳에서 모두 교회 담당자들로부터 설교 시간에 당(정부)에 대하여 관계되는 이야기는 삼가해 달라고 부탁을 받은 경우입니다.
4 또 어느 날 지역, 어느 신학교에서 강의가 약속되어 있었는데, 그 전날 밤 상부로부터 그 외국인 목사의 신학교 강의를 시키지 말라고 하는 제지를 받았습니다. 5 한국에 유력한 어느 원로 목사는 어느 삼자교회 담임 목사로부터 설교 부탁을 받았고, 그 삼자교회 목사는 설교 신청을 냈으나, 상부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하여 결국 설교를 못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6 중공에 삼자교회 목사는 한국 교회가 초청할 때에는 반드시 중공 종교청의 관리가 그 목사와 함께 한국까지 수행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7 중공 성에 모 신학교 매입 사건입니다. 한국에 있는 유력한 어느 교회가 큰 액수의 돈을 드려 그 지역에 땅과 건물을 사서 신학교로 기증한 바 있습니다. 금년 9월에 개교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돈(연보)을 건네주는 과정에 그 소속 신학교 목사도 한국에 오고(종교청 관리와 함께), 또한국에서도 그 곳에 여러 번 왕래한 것같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잔금 지불을 위하여 한국에 있는 그 교회 목사님(당회장)과 그 일에 참예한 장로와 교회 대표들이 그 현장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 종교청 관리들이 참여한 가운데 신학교를 위한 잔금을 모두 지불하고 파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다음날 아침에 공안 관리들이 호텔에 나타나서 그 목사님과 수행한 자들을 공안국에 데리고 가서 심문하고 한국으로 되돌려 보낸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종교청 사람이나, 그 신학교 당국자들은 아무런 관계도 해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8중공 성에 아주 유력한 삼자교회당 정문에 달린 간판에 ‘시 중국 기독교 삼자 애국 운동 위원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과 교회와의 밀착된 관계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이러한 실례들은 부분적으로 교회 현장에 나타난 일들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철두철미하게 중공은 공산주의 국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그 한 수단적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교회는 복음 활동을 위하여 삼자교회란 이름 아래 당과 결탁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추측하기로는 삼자교회는 지도자(목사, 장로, 신학생, 등.)들은 공산주의 사상 이념에 철두철미하게 잘 교육을 받은 자들이 아닌가 라고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과연 현재 중공에 있는 삼자교회가 순수한 복음의 교회인가 무신론과 유물론적 사관을 국시(國是)로 하고 중국 공산당과 교회가 합작해서 공유함이 성경적인가 이것이 단순한 어떤 선교의 방법 문제인가 아니면 본질적 신앙과 신학 문제인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합하여 동행하고 동사(同事)하고 동역 함이 선교 신학의 본질적 문제인가 아니면 방법적 문제인가 삼자교회의 지도자들은 현대판 바알인 무신론적 유물과 공산주의에 입맞추지 아니하고 무릎꿇지 아니한 자들인가 우리는 역사상에 일어났던, 과거에 로마제국, 독일 나치주의, 일본의 군국주의, 그리고 붕괴 직전에 있었던 러시아 세계 공산주의 국가들이 기독교에 가한 박해를 명심해야 합니다
과연 예기되는 종말의 선교 시대에 현재 중공에 있는 삼자 교회와 그 지도자들이 장차 21세기 교회를 주도할 수 있는 자들인가 현대 중공에 있는 삼자교회 지도자들은 정부가 교회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중공은 현대화 할 수 없다고 충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충고가 마르크스와 레닌주의자들에게 가납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교회들에게 실망을 하고 말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전 중공 지역에는 부지기수의 이른바 ‘처소교회’ 혹은 ‘광야교회’들이 산지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삼자교회는 타협한 교회요,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입맞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은 당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반대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중공 교회에 소망이 있고, 또 중공 교회를 통한 종말 선교에 소망이 있다면 삼자교회와 지도자들이 아닌 광야교회의 숨은 자들이 아닌가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이 환난 날에 남겨 놓은 자들이요, 남겨 놓은 교회가 아닌가 불행스럽게도 지금 중공에 있는 삼자교회는 삼자교회의 정신과 어긋나게 한국교회나 아니면 다른 나라의 선교사들로부터 물질적 도움에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경우에도 그 대부분이 삼자교회와 손을 잡고 일하면서 선교를 한다고 법석을 떨고 있숩니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한마디의 말이나, 설교나, 전도 행위를 못하고 있습니다. 삼자교회들에게 측면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 중국 선교의 현실입니다. 교회로부터 아무런 신분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선교사 신분마저 숨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숨은 교회들과 교역자들에 의해서 광야교회 선교를 지원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사명감과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중공이 현대화하여 선진국의 머리가 되는 날에 과연 선교의 문이 공개적으로 열릴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당의 도움을 받고 자란 삼자교회가 새로운 차원에서 환난을 당할 것인가 중공이 현대화하여 선진국의 머리가 되는 날에 현재의 공산주의 체제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더 확고히 할 것인가 그리고 중공이 세계를 향하여 어떤 자세로 나올 것인가 총명 있고 지혜 있는 자들의 분별력이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확실히 종말의 날 21세기를 맞는 세계 교회는 중공의 현대화 운동과 그 진행과 결과에 대하여 고도의 영지 작용을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남겨 놓은 자들은 구원받기로 선택된 자들이요 저들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이요 역사의 한가운데서 소수의 무리들이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존재하는 세계 역사는 구속사가 그 중심이라는 사실 앞에 다시 한번 기독교적 사관(史觀)을 재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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