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뇨 (마5:43-48)
본문
사람중에는 본문과 사명이 있고 사는 짐승 같은자.자신의 본분만 감당하면 그만이 라는 철저한 이기주의 자가 있다.그런 사람들로서는 보다 큰 역사를 기대할수 없다. 모든 기독자들은 필요하 사람, 요구되는 사람이 되어야 할것이다.오늘 본문 47절에 주 님은 남보다 나은것이 무엇이뇨 라고 물으신다 과연 이말씀의 깊은 뜻은 무엇인가
1.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뇨 라고 하는 질문이다. 산산 수훈은 천국시민의 법이다.본문의 사상,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은 산상수훈의 최절정이다.본래 이웃을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율법의 가르침이다.(레19:18,26:17, 신7:1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는 당연히 해야할 의무를 초 월한 교훈과 모든 철학과 종교위에 뛰어난다. 본문 47절에 "너희가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었이냐" 라고 말씀 하신다.여기 문안이란 지극히 적은 사랑의 표현이다. 형제는 선택받은 동족,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형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남이란 이방인인요. 불신자를 뜻한다.그러므로 너히가 형제에게만 작은 사랑의 문안을 하고 불신자들과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뇨라는 뜻이다.이런 행위들은 다른이에게도 얼마든지 찻을 수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신자들은 의무와 상식과 모든 철학과 교훈을 뛰 어 넘는 영원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신자는 특히 윗사람은 자래 사람보다 더 나아야 하고 스승은 제자보다 더 나아야 한다. 교역자는 양 보다 직분자는 평신도 보 다 나아야 한다.
2. 상을받기 위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뇨. 본문 46절에 " 너히가 너희를 사란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갇이 아니하느냐 "라고 하신다. 여기 세리는 당시 가장 악질적인 매국노의 대접을 받았다. 이런 악한자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당연히 사랑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당 연히 해야할 일을 한다고 상즐자는 없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중한벌이 따른다. 그러면 신자는 상받기 위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즉 원수 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여기 사랑하라는 말은 아가파테이다. 이는 아가패의 사랑을 계속실천하라는 말씀이다. 이는 억재할 수 없는 자비심이요, 추종을 불허하는 선한 뜻이다 이는 모 욕하고, 상처를 입히고, 가슴을 찢고 반항,배신 하는더도 의지의 결정에의해 끊임없이 사랑하라는 불변적인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은 인간의 감정과 의무의 요구를 초월하고 뛰어넘어 그 이상을 실천하는 삶이다. 감정과 의무의 요구를 초월하고 뛰어넘어 그 아상을 실천하는 삶이다 바로이와같은 생활속에 하나님의 상급이 넘치도록 부여지개 되는 것이다.
3.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지기 위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뇨. 본문 48절에 결론이 소개 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히도 온전하라 " 여기서 온전이란 테레이오스로서 명사 틸로스 (끝, 목적,목표 종착점)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원래 존재론적 온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능적인 온전을 뜻한다. 즉 주어진 본분과 사랑을 바로 감당 했을때 그 기 능과 성능을 바로 감당 했음을 의미하는 온전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해 지는 비결은 무엇인가 마태복음19:16-22에 한 청년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화가 소개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론적으로 " 내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내 소유를 팔아 가난 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쫘으라 " 이것은 먼져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명을 지킨후 온전해 지고자 할찐대 모든 의무를 뛰 어넘는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으라는 말씀인 셈이다. 우리는 이제 차원이 낮은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삶의 모범을 본받아 온전의 경지에 이르는 사명자들이 되어보자.
1.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뇨 라고 하는 질문이다. 산산 수훈은 천국시민의 법이다.본문의 사상,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은 산상수훈의 최절정이다.본래 이웃을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율법의 가르침이다.(레19:18,26:17, 신7:1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는 당연히 해야할 의무를 초 월한 교훈과 모든 철학과 종교위에 뛰어난다. 본문 47절에 "너희가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었이냐" 라고 말씀 하신다.여기 문안이란 지극히 적은 사랑의 표현이다. 형제는 선택받은 동족,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형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남이란 이방인인요. 불신자를 뜻한다.그러므로 너히가 형제에게만 작은 사랑의 문안을 하고 불신자들과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뇨라는 뜻이다.이런 행위들은 다른이에게도 얼마든지 찻을 수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신자들은 의무와 상식과 모든 철학과 교훈을 뛰 어 넘는 영원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신자는 특히 윗사람은 자래 사람보다 더 나아야 하고 스승은 제자보다 더 나아야 한다. 교역자는 양 보다 직분자는 평신도 보 다 나아야 한다.
2. 상을받기 위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뇨. 본문 46절에 " 너히가 너희를 사란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갇이 아니하느냐 "라고 하신다. 여기 세리는 당시 가장 악질적인 매국노의 대접을 받았다. 이런 악한자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당연히 사랑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당 연히 해야할 일을 한다고 상즐자는 없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중한벌이 따른다. 그러면 신자는 상받기 위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즉 원수 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여기 사랑하라는 말은 아가파테이다. 이는 아가패의 사랑을 계속실천하라는 말씀이다. 이는 억재할 수 없는 자비심이요, 추종을 불허하는 선한 뜻이다 이는 모 욕하고, 상처를 입히고, 가슴을 찢고 반항,배신 하는더도 의지의 결정에의해 끊임없이 사랑하라는 불변적인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은 인간의 감정과 의무의 요구를 초월하고 뛰어넘어 그 이상을 실천하는 삶이다. 감정과 의무의 요구를 초월하고 뛰어넘어 그 아상을 실천하는 삶이다 바로이와같은 생활속에 하나님의 상급이 넘치도록 부여지개 되는 것이다.
3.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지기 위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뇨. 본문 48절에 결론이 소개 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히도 온전하라 " 여기서 온전이란 테레이오스로서 명사 틸로스 (끝, 목적,목표 종착점)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원래 존재론적 온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능적인 온전을 뜻한다. 즉 주어진 본분과 사랑을 바로 감당 했을때 그 기 능과 성능을 바로 감당 했음을 의미하는 온전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해 지는 비결은 무엇인가 마태복음19:16-22에 한 청년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화가 소개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론적으로 " 내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내 소유를 팔아 가난 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쫘으라 " 이것은 먼져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명을 지킨후 온전해 지고자 할찐대 모든 의무를 뛰 어넘는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으라는 말씀인 셈이다. 우리는 이제 차원이 낮은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삶의 모범을 본받아 온전의 경지에 이르는 사명자들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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