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그루터기 (사6:8-13)
본문
인류 역사를 지배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따르고 선을 행하고 악에서 떠날 때는 그 나라 ,그 사회, 각 개인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악한 곳으로 따라가고 부패하고 타락하고 이방신상을 섬길 때는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멸하시는 심판자로 임했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택한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징계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그 때 이사야가 본 메시지는 그 진노중에서라도 하나님의 은총은 있더라는 것입니다. 범죄하고 벌을 받은 그 무서운 벌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은 있더라는 것을 깨닫고 말하는 것이 남아있는 그루터기입니다. 나무나 풀의 윗부분은 모두 시들거나 말라 비틀거나 하는 등 다 제거되어 버려도 밑부분 뿌리부분은 남아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다시 새싹이 나고 움이 틉니다. 그런 희망적인 개념을 가지고 남아있는 그루터기에 대한 계시를 이사야가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 남아있는 그루터기는 소수를 말합니다. 얼마 안되는 수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이 다음 세대를 위해서 거룩한 씨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바울은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가 남아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옛날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다 타락하고 잘못된 길로 갈지라도 그래도 남은 자가 있다란 계시를 바울도 받았던 것입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분명히 하나님이 이 시대에도 남은 자를 두셨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 남은 자에 나 자신이 함께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은 자는 분명히 다수가 아닙니다. 남은 자의 수는 분명 소수입니다. 그리고 그 소수가 다음 시대를 열어 가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남아있는 그루터기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엔 남아있는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라고 했습니다.
13절에 보면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가 남아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 했습니다. 이 땅의 희망과 소망은 거룩한 씨입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고 굉장한 사람이 아니고 거룩한 씨가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여는 그루터기입니다. 계시록 32장 4절에 보면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연고니라"고 합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남아있는 몇 사람 그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계12:17에 보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고 했습니다. 용은 사탄 마귀입니다. 용이 지금 분노했습니다. 분노하여 남은 자손, 남은 자와 싸우려고 바다 위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 남은 자손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그 사람들이 남은 자인데 남은 자와 싸우려고 용이 즉 마귀가 분노한 것입니다. 마귀는 타락한 백성들을 상대도 안 합니다. 상대하나마나 수중에 다 들어간, 이미 다 죽어버린 자기백성이니 신경 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살아있는 더럽히지 아니한 거룩한 씨를 바라보고 분노하여 싸우려고 섰더라고 그랬습니다. 남은 자는 거룩한 자의 대명사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이 남은 자라는 대명사를 사용했고 사도 바울도 신약에서 남은 자라는 개념의 말을 했습니다. 윤리와 도덕을 깨끗하게 지킨 자는 어느 사회나 어느 민족이든지 거룩한 씨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하는 자는 거룩한 씨요 이 시대에 남겨둔 그루터기입니다. 어두운 밤에 등불처럼 양심의 등불이 켜져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사회에 그 민족에게 그 단체에 거룩한 씨입니다. 그루터기입니다. 오늘 이 사회, 이 나라, 이 민족에게 거룩한 씨가 누구입니까 악에 물들지 않고 오염되지 아니한 소수의 그 사람들이 남겨둔 거룩한 씨요 그루터기입니다. 신앙적인 입장에서 신앙을 바로 지키고 계명을 바로 지키고 믿음으로 살려고 힘쓰는 자만이 남겨둔 그루터기입니다. 옛날에 엘리야 때도 그랬습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하고 부패하고 바알에게 절하고 윤리도덕이 타락하여 완전전멸이라 아무도 없구나 탄식할 때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칠 천명을 남겨두었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가운데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남겨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아니하고 신앙생활,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남겨둔 사람들이요 다음 세대를 위하여 남겨둔 그루터기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홍수로 온 세상이 다 멸망할 때에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않고 쓸어버리신 것이 아니라 노아의 8식구를 남겨두셨습니다. 그 8식구를 통해서 새로 시작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유황불로 멸망시킬 때에도 한 가정 롯의 가정을 불러내시고 그 성을 멸망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느 곳에든지 이렇게 하십니다. 바울이 그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롬11:5에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탄식할 때, 모든 사람이 절망할 때 세상은 다 됐다 부패했다 끝났다고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래도 남은 자를 두셨습니다. 거룩한 그루터기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험악한 세상에 은혜로 남겨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불교 신자가 되지 아니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주일에 교회 와서 예배 드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악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 죄악을 끊을 수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은 자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남아야 합니다. 끝까지 그루터기를 지켜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변하든지 남아있는 그루터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은 자는 환란을 극복한 자입니다. 환란을 이기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옛날에 엘리야는 이세벨의 핍박을 받을 때 이세벨이 그렇게 엘리야를 죽이려고 군사를 풀어서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이 골짝 저 골짝 숨겨 주셨습니다. 계시록 7:14에 보면 "그가 나더러 이르시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한 사람들이니라."고 합니다. 예수의 공로로 희게 깨끗하게된 사람들은 환난에서 견디고 나오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환난을 참고 견딥니다. 예수의 공로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환난을 버티고 이길 어떤 아무 배경의 힘이 없습니다. 좋으면 좋음에 취하고 그 낙에 취하고 헤매다가 조그만 어려움이 닥치면 넘어집니다. 배후에서 힘이 되어줄 어떤 힘이 없습니다. 불쌍하단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안한 사람이 환난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에 감격되지 아니하고는 현실의 어려움을 참을 길이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이 죄사함 받은 즐거움 없이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의 은혜가 내 속에 있고 구원의 즐거움이 내 속에 있을 때에 가난해도 고생이 되어도 실패를 해도 병이 들어도 감사하고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생긴단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저절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환난을 극복한 사람이 세상에서도 성공한 것처럼 우리가 오는 이 시대에 가장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거룩한 씨, 남아있는 그루터기가 된다면 환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말 참는 사람, 견디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비난을 받고 이 세상에서 방황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사야 48:10절을 보면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다" 했습니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택하는 것이 아니고 환난의 풀무 속에서, 고난의 풀무 속에서 택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은 세상적으로 편안해 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고난을 견디고 이긴단 말입니다. 고난이 없는 환상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의 현실 속에 뛰어드는 강자를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전부 다 환난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면 정말 편안하고 행복할 줄 알지만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잘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고난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야곱도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 앞에 서서 한 말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으면 그렇게 고백했겠습니까 이외에 다니엘도 사자 굴에서 나온 사람이요, 요셉도 범죄하지 아니하려고 감옥에까지 간 사람입니다. 고난을 이긴 자가 남아있는 사람이요 거룩한 그루터기입니다.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눈물로 젖은 떡 조각을 먹어보지 아니하면 참 인생을 모른다."고 말입니다. 정말 뼈에 사무친 말입니다. 고난 때문에 믿음을 중단해 버리고, 시험 한가지로 예수 믿는 것 포기해 버리는 허약한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계명을 바로 지킵시다. 세상을 따라가는 생활을 정리합시다. 신앙생활에 좀 더 열심을 냅시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씁시다. 어려움을 잘 참고 인내력이 있으면 반드시 다음 날이 옵니다. 고난을 이기는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이요 거룩한 그루터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그루터기는 미래를 위하여 남겨둔 사명자 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할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그루터기의 할 일이 있습니다. 새봄이 오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사명자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다음 시대를 위해서 남겨두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추수를 해서는 다음해 농사지을 씨를 남겨두는데 비틀어져서 사람은 먹기도 싫은 것, 있으나마나 한 것은 다 골라 가지고 "이것은 씨앗하자."며 창고에 두는 농부는 농사를 잘 못 짓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추수를 해서는 알차고 제일 좋은 것, 충실한 것을 다 거두어 "이것은 종자다. 내년을 위한 씨앗이다."며 보관하고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것은 손을 대지 않습니다. 씨란 그런 것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말이요 다음 해를 위해서 남겨두었단 말입니다. 왜 그 좋은 것을 남겨 놓습니까 내년에 농사를 잘 지을려고 다음 시대를 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죽었으나 하나님은 셋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아벨이 죽고 없어졌으니, 이제 큰 일 났고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었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셋을 통하여 다시금 섭리와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모든 인류가 범죄하고 타락했으니 홍수로 심판할 때 세상이 끝났습니까 하나님은 노아의 가정을 통하여 새로이 시작하셨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지만 하나님은 바울을 남겨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구원을 일으키시던 하나님,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형성케 하신 하나님, 역사도 또한 그렇게 진행시켜 가십니다. 서구교회가 부패되고 타락하며 속화될 때 청교도 운동을 일으켜 이 땅의 교회가 바로 서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위해서 다음 시대를 위해서 준비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은 사람들, 거룩한 그루터기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남은 그루터기입니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도 사명자요, 봉사를 잘하는 사람도 사명자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울 줄 아는 사람도 사명자요, 천국을 잘 가르치는 사람도 사명자요, 기도 열심히 하는 자도 사명자입니다. 나는 무슨 사명을 받았습니까 내 사명을 모르는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 어지럽고 중요한 시대에 다음 시대를 위해서 남겨 둔 그루터기가 되지 못한다면 어떡합니까 생명은 희망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사명감은 미래를 여는 에너지입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탄식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교회가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회가 다 타락하고 부패하고 윤리도덕이 허물어져도 하나님께 울부짖는 성도가 있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모두 다 남겨 둔 그루터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13절에 보면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가 남아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 했습니다. 이 땅의 희망과 소망은 거룩한 씨입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고 굉장한 사람이 아니고 거룩한 씨가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여는 그루터기입니다. 계시록 32장 4절에 보면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연고니라"고 합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남아있는 몇 사람 그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계12:17에 보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고 했습니다. 용은 사탄 마귀입니다. 용이 지금 분노했습니다. 분노하여 남은 자손, 남은 자와 싸우려고 바다 위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 남은 자손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그 사람들이 남은 자인데 남은 자와 싸우려고 용이 즉 마귀가 분노한 것입니다. 마귀는 타락한 백성들을 상대도 안 합니다. 상대하나마나 수중에 다 들어간, 이미 다 죽어버린 자기백성이니 신경 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살아있는 더럽히지 아니한 거룩한 씨를 바라보고 분노하여 싸우려고 섰더라고 그랬습니다. 남은 자는 거룩한 자의 대명사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이 남은 자라는 대명사를 사용했고 사도 바울도 신약에서 남은 자라는 개념의 말을 했습니다. 윤리와 도덕을 깨끗하게 지킨 자는 어느 사회나 어느 민족이든지 거룩한 씨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하는 자는 거룩한 씨요 이 시대에 남겨둔 그루터기입니다. 어두운 밤에 등불처럼 양심의 등불이 켜져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사회에 그 민족에게 그 단체에 거룩한 씨입니다. 그루터기입니다. 오늘 이 사회, 이 나라, 이 민족에게 거룩한 씨가 누구입니까 악에 물들지 않고 오염되지 아니한 소수의 그 사람들이 남겨둔 거룩한 씨요 그루터기입니다. 신앙적인 입장에서 신앙을 바로 지키고 계명을 바로 지키고 믿음으로 살려고 힘쓰는 자만이 남겨둔 그루터기입니다. 옛날에 엘리야 때도 그랬습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하고 부패하고 바알에게 절하고 윤리도덕이 타락하여 완전전멸이라 아무도 없구나 탄식할 때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칠 천명을 남겨두었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가운데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남겨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아니하고 신앙생활,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남겨둔 사람들이요 다음 세대를 위하여 남겨둔 그루터기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홍수로 온 세상이 다 멸망할 때에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않고 쓸어버리신 것이 아니라 노아의 8식구를 남겨두셨습니다. 그 8식구를 통해서 새로 시작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유황불로 멸망시킬 때에도 한 가정 롯의 가정을 불러내시고 그 성을 멸망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느 곳에든지 이렇게 하십니다. 바울이 그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롬11:5에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탄식할 때, 모든 사람이 절망할 때 세상은 다 됐다 부패했다 끝났다고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래도 남은 자를 두셨습니다. 거룩한 그루터기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험악한 세상에 은혜로 남겨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불교 신자가 되지 아니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주일에 교회 와서 예배 드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악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 죄악을 끊을 수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은 자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남아야 합니다. 끝까지 그루터기를 지켜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변하든지 남아있는 그루터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은 자는 환란을 극복한 자입니다. 환란을 이기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옛날에 엘리야는 이세벨의 핍박을 받을 때 이세벨이 그렇게 엘리야를 죽이려고 군사를 풀어서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이 골짝 저 골짝 숨겨 주셨습니다. 계시록 7:14에 보면 "그가 나더러 이르시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한 사람들이니라."고 합니다. 예수의 공로로 희게 깨끗하게된 사람들은 환난에서 견디고 나오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환난을 참고 견딥니다. 예수의 공로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환난을 버티고 이길 어떤 아무 배경의 힘이 없습니다. 좋으면 좋음에 취하고 그 낙에 취하고 헤매다가 조그만 어려움이 닥치면 넘어집니다. 배후에서 힘이 되어줄 어떤 힘이 없습니다. 불쌍하단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안한 사람이 환난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에 감격되지 아니하고는 현실의 어려움을 참을 길이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이 죄사함 받은 즐거움 없이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의 은혜가 내 속에 있고 구원의 즐거움이 내 속에 있을 때에 가난해도 고생이 되어도 실패를 해도 병이 들어도 감사하고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생긴단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저절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환난을 극복한 사람이 세상에서도 성공한 것처럼 우리가 오는 이 시대에 가장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거룩한 씨, 남아있는 그루터기가 된다면 환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말 참는 사람, 견디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비난을 받고 이 세상에서 방황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사야 48:10절을 보면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다" 했습니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택하는 것이 아니고 환난의 풀무 속에서, 고난의 풀무 속에서 택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은 세상적으로 편안해 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고난을 견디고 이긴단 말입니다. 고난이 없는 환상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의 현실 속에 뛰어드는 강자를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전부 다 환난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면 정말 편안하고 행복할 줄 알지만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잘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고난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야곱도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 앞에 서서 한 말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으면 그렇게 고백했겠습니까 이외에 다니엘도 사자 굴에서 나온 사람이요, 요셉도 범죄하지 아니하려고 감옥에까지 간 사람입니다. 고난을 이긴 자가 남아있는 사람이요 거룩한 그루터기입니다.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눈물로 젖은 떡 조각을 먹어보지 아니하면 참 인생을 모른다."고 말입니다. 정말 뼈에 사무친 말입니다. 고난 때문에 믿음을 중단해 버리고, 시험 한가지로 예수 믿는 것 포기해 버리는 허약한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계명을 바로 지킵시다. 세상을 따라가는 생활을 정리합시다. 신앙생활에 좀 더 열심을 냅시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씁시다. 어려움을 잘 참고 인내력이 있으면 반드시 다음 날이 옵니다. 고난을 이기는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이요 거룩한 그루터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그루터기는 미래를 위하여 남겨둔 사명자 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할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그루터기의 할 일이 있습니다. 새봄이 오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사명자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다음 시대를 위해서 남겨두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추수를 해서는 다음해 농사지을 씨를 남겨두는데 비틀어져서 사람은 먹기도 싫은 것, 있으나마나 한 것은 다 골라 가지고 "이것은 씨앗하자."며 창고에 두는 농부는 농사를 잘 못 짓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추수를 해서는 알차고 제일 좋은 것, 충실한 것을 다 거두어 "이것은 종자다. 내년을 위한 씨앗이다."며 보관하고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것은 손을 대지 않습니다. 씨란 그런 것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말이요 다음 해를 위해서 남겨두었단 말입니다. 왜 그 좋은 것을 남겨 놓습니까 내년에 농사를 잘 지을려고 다음 시대를 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죽었으나 하나님은 셋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아벨이 죽고 없어졌으니, 이제 큰 일 났고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었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셋을 통하여 다시금 섭리와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모든 인류가 범죄하고 타락했으니 홍수로 심판할 때 세상이 끝났습니까 하나님은 노아의 가정을 통하여 새로이 시작하셨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지만 하나님은 바울을 남겨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구원을 일으키시던 하나님,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형성케 하신 하나님, 역사도 또한 그렇게 진행시켜 가십니다. 서구교회가 부패되고 타락하며 속화될 때 청교도 운동을 일으켜 이 땅의 교회가 바로 서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위해서 다음 시대를 위해서 준비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은 사람들, 거룩한 그루터기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남은 그루터기입니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도 사명자요, 봉사를 잘하는 사람도 사명자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울 줄 아는 사람도 사명자요, 천국을 잘 가르치는 사람도 사명자요, 기도 열심히 하는 자도 사명자입니다. 나는 무슨 사명을 받았습니까 내 사명을 모르는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 어지럽고 중요한 시대에 다음 시대를 위해서 남겨 둔 그루터기가 되지 못한다면 어떡합니까 생명은 희망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사명감은 미래를 여는 에너지입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탄식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교회가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회가 다 타락하고 부패하고 윤리도덕이 허물어져도 하나님께 울부짖는 성도가 있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모두 다 남겨 둔 그루터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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