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입힌 손해에는 보상정신이 철저해야 합니다 (레6:1-7)
본문
영육간에 깨끗합시다. 사람은 특수하게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고, 짐승은 육 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천사와 같은 영과 짐승이 소유한 육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적으로 천사와 교제할 수 있으며, 육적으 로 짐승을 통제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입니다. 먼저 영적인 관계를 회복합시다. 간혹 심방을 가보면 악한 영들에게 꽉 잡혀 있거나, 눌려 있는 자들을 많이 봅니다. 이러한 자들은 벌써 그 얼굴에 표가 납니다. 그리고 그 집안 분위기가 대단히 어둡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영적인 관 계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영이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면 모든 영역에서 억눌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인간관계가 잘 합시다. 사람을 한자어로 인간이라 부릅니다. 사람인 (人), 사이간(間)을 씁니다.
그러므로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인간 이란 말 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내가 태어 낳습니다. 학교나 직장에 가면 친 구과 동료들 사이에 내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양무리들 사이에 내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이사이에서 관계를 잘하면 벗이 되고 동료가 되 고 친구가 되지만 관계를 잘못하면 적이 되고 원수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물질관계입니다. 자연과 피조세계의 모든 물질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이 인간의 필요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천사에게는 물질이 필요 없습니다. 짐승 에게는 생리적 본능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 이용할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을 가지고 문화적 기능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므로 부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망각해서도 안되고, 가난함을 통해서 창조질서를 어지럽혀도 안됩니다. 물질은 일용할 것이면 족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은 잠언에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잠언 30:7-9). 주님도 우리에게 기도로서 가르쳐 주셨습니다(마태복음 6:11). 오늘은 속건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불신자들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았을 때 보복정신이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어려움 이나 손해를 입었을 때 보복정신이 아니라 보상정신이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그 래야 자신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 집니다. 속건제(trespass)란 경계를 침범한 것 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웃의 경계를 침법하면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하고, 속 죄를 받아야 합니다. 보상을 할 때는 1/5(20%)를 더하여 해야 합니다.
첫째:어떤 경우에 속건제를 드리는가 위탁받은 물건에 손해를 입혔을 때입니다. 옛날은 요즈음과 같이 은행이 나 보험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혹 집을 비우고 장기 간 여행을 떠날 때는 귀중한 물건을 이웃에게 맡기고 갑니다. 이럴 때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1 물건을 도적을 맞았을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물건을 잘못 지켰으므로 주인에게 반드시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2 물건이 파손되었을 경우입니다. 그 물건을 관리를 잘못하여 손상을 입혔거나 아니면 깨 뜨려 파손이 되었을 경우입니다. 이럴 때도 반드시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3 거짓말을 할 경우입니다. 물건을 맡고 있다가 탐욕이 생겨서 그러한 물건을 맡은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제사장에게 가서 그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출애굽기 22:7-13).
그러므로 남의 소유물을 잘 보관 하여 손해를 입혀서는 안됩니다. 전당잡은 물건에 손해를 입혔을 때입니다. 경제위기와 같이 예측 불허할 예외 적인 경우가 혹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남의 재물로 보증을 세 웠을 경우나 담보로 설정을 했을 경우에 손해를 입혀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면 에서 성경은 보증을 서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잠언 20:16). 강도질한 물건은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부지런하게 수고하여 얻 은 소득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지창조 때부터 노동의 법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 사는 것은 하나님이 기 뻐하지 않습니다. 적은 소득이지만 의를 겸하면 불의한 재물의 많은 것보다 아 름다운 것입니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 라 (잠언 13:11)고 했습니다. 능봉한 물건은 보상해야 합니다. 속여 취하신 것은 더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한 이후에 토색 한 것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 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 이 있사오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고 했습니다. 주운 물건은 반드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임자가 없으면 보관했다가 돌려 주어야 합니다. 주울 때의 기쁨보다 잃은 자의 아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취할 때 가지는 양심의 아픔보다 돌려주는 보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원수의 것이라도 돌려주어야 합니다(신명기 22:1-3, 출애굽기 23:4).
둘째:속건제를 드리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죄책(guilt)에서 자유합니다. 성도들은 남에게 원망들을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마귀와 사단은 항상 원망과 불평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23-26)고 했습니다. 여기 호리라도 갚아야 한다 고 합니다. 호리 란 말은 로마의 화폐 단위로서 가장 최소단위인 동전을 말 합니다. 완전히 청산하지 않으면 사단은 그것을 미끼로 이용합니다. 마귀와 사단 이 우리를 가장 잘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죄책입니다. 인간은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죄의 꼬리를 사단이 잡고 언제나 우리를 조 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죄의 꼬리를 마귀가 잡지 못하도록 완전 히 때어 버려야 합니다. 갚을 때는 넉넉하게 갚읍시다. 그래서 속건제를 드릴 때는 손해에 보상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1/5를 더하여 갚습니다. 그래야 다른 뒷말이 없습니다.
신약의 삭개오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주님이 삭개오 집에 들어갔을 때 동네 사람들 이 어떠했는가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려 들어 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 을 간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 나이다 (누가복음 19:7-8)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자기 집 안방에 모신 정 도가 아니고 자신의 마음 중심에 모셨습니다. 그러니 자기 속에 어두운 그림자 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적은 것 하나라도 남겨 둘 수가 없습니다. 다 토설해 놓았 습니다. 그 소유의 절반이라도 떼어놓았습니다. 토색한 것에 대하여 1/5 정도가 아니라 4배라도 갚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입니다.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졌 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죄를 절대로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생깁니다. 저 가 오래 전에 수면 부족으로 졸음운전을 하다가 접촉사고를 내었습니다. 억울하 게 많은 돈을 물어주고난 후로는 절대로 그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삶의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전에 추구하는 탐욕과 정욕적인 삶이 배설물 같이 여겨지는 진정한 변 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또한 모든 것 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 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 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립보서 3:7-9)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발견하는 순간 삶의 가치관이 변 화되었습니다. 이전의 삶에 대한 아무런 미련없이 배설물처럼 버렸던 것입니다.
셋째: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탐욕적인 이기주의 청산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가장 큰 걸 림돌이 욕심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 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탐 욕의 창고에는 천하를 다 삼켜도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 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 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의를 사모합 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태복음 5:3)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하여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복됩니다(마태복음 5:6). 청지기 정신이 투철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생명이 있는 동안에 잠시 동안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청지기입니다. 청지기의 사명은 주인의 뜻을 따라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청지기 정신이 투철한 사람 대표적으로 몇뿐만 소개 하겠습니다. 1 요셉의 경우입니다(창세기 39:4-5). 요셉은 보디발의 청지기 이전 에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니 하나님이 보 디발에게 은혜를 입도록 간섭하신 것입니다.
2 욥의 경우입니다(욥기 1:21-22). 욥은 자신이 모은 재산에 대하여 한 번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주신 분도 거두신 분도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재주나 실력으로 벌 어서 모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잃은 것도 자신의 실수나 이웃 의 중상과 모략으로 된 것이 아니라 거두신 분도 주신 거분이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주권신앙입니다. 3 바울의 경우입니다(빌립 보서 1:21). 생명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믿고, 살려주면 복음 전하고 죽으면 천국가는 소망을 가지니 범사에 감사할 뿐입니다. 청결한 삶입니다. 속건제의 근본정신은 보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속죄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자들을 쓰십니다(디모데후서 2:21). 그릇은 무엇을 담는 용기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가 질적인 가치나 아름다운 모양 이전에 내부의 청결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무엇을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문에서 잘 갖춘 지식의 소유자라도 성결하지 못하면 사용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심령이 아 니면 주와 성령님이 동행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담은 그릇은 깨끗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 보상정신을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남에게 손해를 입혔으면 철저히 보상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책에서 자유하고 다시는 그러한 죄에 얽매이지 않 습니다. 탐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다 청 지기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이 깨끗한 자들을 쓰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적으로 천사와 교제할 수 있으며, 육적으 로 짐승을 통제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입니다. 먼저 영적인 관계를 회복합시다. 간혹 심방을 가보면 악한 영들에게 꽉 잡혀 있거나, 눌려 있는 자들을 많이 봅니다. 이러한 자들은 벌써 그 얼굴에 표가 납니다. 그리고 그 집안 분위기가 대단히 어둡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영적인 관 계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영이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면 모든 영역에서 억눌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인간관계가 잘 합시다. 사람을 한자어로 인간이라 부릅니다. 사람인 (人), 사이간(間)을 씁니다.
그러므로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인간 이란 말 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내가 태어 낳습니다. 학교나 직장에 가면 친 구과 동료들 사이에 내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양무리들 사이에 내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이사이에서 관계를 잘하면 벗이 되고 동료가 되 고 친구가 되지만 관계를 잘못하면 적이 되고 원수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물질관계입니다. 자연과 피조세계의 모든 물질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이 인간의 필요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천사에게는 물질이 필요 없습니다. 짐승 에게는 생리적 본능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 이용할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을 가지고 문화적 기능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므로 부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망각해서도 안되고, 가난함을 통해서 창조질서를 어지럽혀도 안됩니다. 물질은 일용할 것이면 족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은 잠언에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잠언 30:7-9). 주님도 우리에게 기도로서 가르쳐 주셨습니다(마태복음 6:11). 오늘은 속건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불신자들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았을 때 보복정신이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어려움 이나 손해를 입었을 때 보복정신이 아니라 보상정신이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그 래야 자신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 집니다. 속건제(trespass)란 경계를 침범한 것 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웃의 경계를 침법하면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하고, 속 죄를 받아야 합니다. 보상을 할 때는 1/5(20%)를 더하여 해야 합니다.
첫째:어떤 경우에 속건제를 드리는가 위탁받은 물건에 손해를 입혔을 때입니다. 옛날은 요즈음과 같이 은행이 나 보험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혹 집을 비우고 장기 간 여행을 떠날 때는 귀중한 물건을 이웃에게 맡기고 갑니다. 이럴 때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1 물건을 도적을 맞았을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물건을 잘못 지켰으므로 주인에게 반드시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2 물건이 파손되었을 경우입니다. 그 물건을 관리를 잘못하여 손상을 입혔거나 아니면 깨 뜨려 파손이 되었을 경우입니다. 이럴 때도 반드시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3 거짓말을 할 경우입니다. 물건을 맡고 있다가 탐욕이 생겨서 그러한 물건을 맡은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제사장에게 가서 그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출애굽기 22:7-13).
그러므로 남의 소유물을 잘 보관 하여 손해를 입혀서는 안됩니다. 전당잡은 물건에 손해를 입혔을 때입니다. 경제위기와 같이 예측 불허할 예외 적인 경우가 혹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남의 재물로 보증을 세 웠을 경우나 담보로 설정을 했을 경우에 손해를 입혀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면 에서 성경은 보증을 서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잠언 20:16). 강도질한 물건은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부지런하게 수고하여 얻 은 소득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지창조 때부터 노동의 법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 사는 것은 하나님이 기 뻐하지 않습니다. 적은 소득이지만 의를 겸하면 불의한 재물의 많은 것보다 아 름다운 것입니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 라 (잠언 13:11)고 했습니다. 능봉한 물건은 보상해야 합니다. 속여 취하신 것은 더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한 이후에 토색 한 것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 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 이 있사오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고 했습니다. 주운 물건은 반드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임자가 없으면 보관했다가 돌려 주어야 합니다. 주울 때의 기쁨보다 잃은 자의 아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취할 때 가지는 양심의 아픔보다 돌려주는 보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원수의 것이라도 돌려주어야 합니다(신명기 22:1-3, 출애굽기 23:4).
둘째:속건제를 드리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죄책(guilt)에서 자유합니다. 성도들은 남에게 원망들을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마귀와 사단은 항상 원망과 불평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23-26)고 했습니다. 여기 호리라도 갚아야 한다 고 합니다. 호리 란 말은 로마의 화폐 단위로서 가장 최소단위인 동전을 말 합니다. 완전히 청산하지 않으면 사단은 그것을 미끼로 이용합니다. 마귀와 사단 이 우리를 가장 잘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죄책입니다. 인간은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죄의 꼬리를 사단이 잡고 언제나 우리를 조 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죄의 꼬리를 마귀가 잡지 못하도록 완전 히 때어 버려야 합니다. 갚을 때는 넉넉하게 갚읍시다. 그래서 속건제를 드릴 때는 손해에 보상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1/5를 더하여 갚습니다. 그래야 다른 뒷말이 없습니다.
신약의 삭개오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주님이 삭개오 집에 들어갔을 때 동네 사람들 이 어떠했는가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려 들어 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 을 간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 나이다 (누가복음 19:7-8)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자기 집 안방에 모신 정 도가 아니고 자신의 마음 중심에 모셨습니다. 그러니 자기 속에 어두운 그림자 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적은 것 하나라도 남겨 둘 수가 없습니다. 다 토설해 놓았 습니다. 그 소유의 절반이라도 떼어놓았습니다. 토색한 것에 대하여 1/5 정도가 아니라 4배라도 갚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입니다.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졌 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죄를 절대로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생깁니다. 저 가 오래 전에 수면 부족으로 졸음운전을 하다가 접촉사고를 내었습니다. 억울하 게 많은 돈을 물어주고난 후로는 절대로 그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삶의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전에 추구하는 탐욕과 정욕적인 삶이 배설물 같이 여겨지는 진정한 변 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또한 모든 것 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 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 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립보서 3:7-9)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발견하는 순간 삶의 가치관이 변 화되었습니다. 이전의 삶에 대한 아무런 미련없이 배설물처럼 버렸던 것입니다.
셋째: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탐욕적인 이기주의 청산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가장 큰 걸 림돌이 욕심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 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탐 욕의 창고에는 천하를 다 삼켜도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 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 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의를 사모합 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태복음 5:3)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하여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복됩니다(마태복음 5:6). 청지기 정신이 투철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생명이 있는 동안에 잠시 동안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청지기입니다. 청지기의 사명은 주인의 뜻을 따라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청지기 정신이 투철한 사람 대표적으로 몇뿐만 소개 하겠습니다. 1 요셉의 경우입니다(창세기 39:4-5). 요셉은 보디발의 청지기 이전 에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니 하나님이 보 디발에게 은혜를 입도록 간섭하신 것입니다.
2 욥의 경우입니다(욥기 1:21-22). 욥은 자신이 모은 재산에 대하여 한 번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주신 분도 거두신 분도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재주나 실력으로 벌 어서 모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잃은 것도 자신의 실수나 이웃 의 중상과 모략으로 된 것이 아니라 거두신 분도 주신 거분이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주권신앙입니다. 3 바울의 경우입니다(빌립 보서 1:21). 생명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믿고, 살려주면 복음 전하고 죽으면 천국가는 소망을 가지니 범사에 감사할 뿐입니다. 청결한 삶입니다. 속건제의 근본정신은 보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속죄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자들을 쓰십니다(디모데후서 2:21). 그릇은 무엇을 담는 용기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가 질적인 가치나 아름다운 모양 이전에 내부의 청결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무엇을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문에서 잘 갖춘 지식의 소유자라도 성결하지 못하면 사용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심령이 아 니면 주와 성령님이 동행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담은 그릇은 깨끗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 보상정신을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남에게 손해를 입혔으면 철저히 보상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책에서 자유하고 다시는 그러한 죄에 얽매이지 않 습니다. 탐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다 청 지기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이 깨끗한 자들을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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