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의 구원 (롬11:1-10)
본문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의 절망과 재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습니다. 이때 엘리야의 생각에 여호와를 믿는 충실한 자는 다 죽임을 당하고 자기 혼자만 남은 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전 이스라엘을 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이와 같이 실망하였을 때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왕후 이세벨이 도입한 농경신 바알 우상 앞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명을 남겨 두었으니 그리 알고 용기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아합왕의 폭정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우상 숭배를 강요 받았고 거기에 굽히지 않고 여전히 여호와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학대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전 국민이 하나님을 떠났어도 적은 수나마 7천명 충성된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국민 전체가 부패하고 불신앙으로 넘어가는 시대일지라도 참 신자는 어디엔가 있는 법입니다. 택함 받은 소수의 무리는 생명입니다. 이 소수가 사명을 다할 때 세상에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열 사람의 의인이 있었으면 소돔성은 멸망을 면했을 것입니다. 기드온의 300명 장병에게 미디안의 메뚜기떼 같이 중다한 군사가 궤멸되었습니다. 소수의 예언자들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그 명맥을 유지하였습니다. 눅 12:32에 보면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니라”고 했습니다. 삼상 12:22에 “여호와께서 너희로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을 기뻐 하신고로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반드시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였습니다. 또한 신 31:6에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니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였습니다.
또한 왕상 6:13에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시 99:14 에서"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 하시리로다.“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구약시대로부터 그의 택한 백성을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겠다고 거듭거듭 약속하신 것을 믿는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후로 데려오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만 섬겨야 할 이스라엘 왕이 왕후 이세벨이 가지고 온 이방신 바울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인을 잘 맞이하여야합니다. 장가 잘못 들면 고스란히 망합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왕이라도 부인의 말을 듣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섬기는 것보다 바알 우상을 섬기는 일에 기울어지게 되니까 이것 때문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켰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왕에게 아부하는 사람도 생기고 그러다보니 바알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요새도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면 정부요원들 모두 기독교 신자가 됩니다. 대통령이 불교를 신봉하면 정부요원들이 불교신자가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그 자리에 오래 붙어 있어 보려는 심산입니다. 군대에도 지휘관에 따라서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아합왕 때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왕과 왕후가 바알우상을 섬기게 되니까 그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되어서 집집마다 거의 바알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제서는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비가 내리지 않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메말라서 봄가을에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없는 땅인데 3년 반 동안 한 방울 비도 내리지 않으니 땅이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을 만나 하나님이 참신인가 바알신이 참신인가 갈멜산에 다 제단 쌓아 불로 응답받는 신을 참신으로 분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제단에 불로 응답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바알제사장, 아세라 제사장 850명을 기손강에 끌고 가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왕후 이세벨이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이세벨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밑에 숨었다가 40주야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와서 굴속에 숨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만 남았습니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불의 선지자입니다. 열성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기만 열심 있고 다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7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 이렇게 다릅니다. 엘리야는 전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으로 송사했으나 하나님은 남은 자가 7천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현재는 불신앙으로 타락한 포로민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영적인 시련기를 통해서 연단된 후 언젠가는 회개하면서 그리스도 앞에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9-11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오늘날 세계 교계 정세나 한국 교계 정세를 살펴 볼 때 세속주의가 물밀듯 밀려옵니다. 세속주의란 쉽게 예수를 믿자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면서 예수를 믿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되 “너희는 믿지 않은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후 6:14)고 합니다. 정세로 보아 참신자는 다 없어진 것 같고 나만 예수 잘 믿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7천명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세상에 무신적인 세속 사회가 될수록 하나님께서는 참 신자를 어디든지 감추어 두십니다. 독일의 히틀러 시대에도 그랬고 지금의 소련, 중공, 북한 가운데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는 금일도 지켜 주십니다. 진리의 신앙과 신조와 교리를 지켜 주십니다. 세속주의는 분명코 오늘날의 바알우상입니다. 그러나 엘리야 시대 7천명을 남겨두신 하나님께서는 금일도 바알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아니한 남은 자들을 지켜 주십니다.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니라”고 했습니다. 삼상 12:22에 “여호와께서 너희로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을 기뻐 하신고로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반드시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였습니다. 또한 신 31:6에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니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였습니다.
또한 왕상 6:13에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시 99:14 에서"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 하시리로다.“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구약시대로부터 그의 택한 백성을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겠다고 거듭거듭 약속하신 것을 믿는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후로 데려오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만 섬겨야 할 이스라엘 왕이 왕후 이세벨이 가지고 온 이방신 바울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인을 잘 맞이하여야합니다. 장가 잘못 들면 고스란히 망합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왕이라도 부인의 말을 듣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섬기는 것보다 바알 우상을 섬기는 일에 기울어지게 되니까 이것 때문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켰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왕에게 아부하는 사람도 생기고 그러다보니 바알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요새도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면 정부요원들 모두 기독교 신자가 됩니다. 대통령이 불교를 신봉하면 정부요원들이 불교신자가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그 자리에 오래 붙어 있어 보려는 심산입니다. 군대에도 지휘관에 따라서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아합왕 때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왕과 왕후가 바알우상을 섬기게 되니까 그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되어서 집집마다 거의 바알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제서는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비가 내리지 않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메말라서 봄가을에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없는 땅인데 3년 반 동안 한 방울 비도 내리지 않으니 땅이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을 만나 하나님이 참신인가 바알신이 참신인가 갈멜산에 다 제단 쌓아 불로 응답받는 신을 참신으로 분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제단에 불로 응답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바알제사장, 아세라 제사장 850명을 기손강에 끌고 가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왕후 이세벨이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이세벨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밑에 숨었다가 40주야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와서 굴속에 숨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만 남았습니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불의 선지자입니다. 열성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기만 열심 있고 다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7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 이렇게 다릅니다. 엘리야는 전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으로 송사했으나 하나님은 남은 자가 7천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현재는 불신앙으로 타락한 포로민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영적인 시련기를 통해서 연단된 후 언젠가는 회개하면서 그리스도 앞에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9-11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오늘날 세계 교계 정세나 한국 교계 정세를 살펴 볼 때 세속주의가 물밀듯 밀려옵니다. 세속주의란 쉽게 예수를 믿자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면서 예수를 믿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되 “너희는 믿지 않은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후 6:14)고 합니다. 정세로 보아 참신자는 다 없어진 것 같고 나만 예수 잘 믿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7천명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세상에 무신적인 세속 사회가 될수록 하나님께서는 참 신자를 어디든지 감추어 두십니다. 독일의 히틀러 시대에도 그랬고 지금의 소련, 중공, 북한 가운데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는 금일도 지켜 주십니다. 진리의 신앙과 신조와 교리를 지켜 주십니다. 세속주의는 분명코 오늘날의 바알우상입니다. 그러나 엘리야 시대 7천명을 남겨두신 하나님께서는 금일도 바알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아니한 남은 자들을 지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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