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종교와 새종교 (막2:21-22)
본문
예수님께서 이 본문 말씀을 통하여 두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깁는 이가 없다는 비유입니다. 생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그나포스인데 이는 한번도 세탁한 적이 없는 천을 가리킵니다. 그 새천을 물에 빨아 말리면 줄어듭니다. 그러나 낡은 옷감 이란 거듭거듭 여러번 세탁을 해서 쭈그러질대로 다 쭈그러진 그런 옷감입니다. 그러나 새 옷감은 한번도 세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물에다 담궈서 빨면 쭈그러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옷감에다가 새 천을 가지고 기워 놓으면 그 다음에 세탁을 할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겠습니까 낡은 옷감은 쭈그러 들지 않는데 새 옷감은 힘이 넘쳐서 쭈그러들기 때문에 결국 낡은 옷감도 버리게 되고 생베 조각 도 버리게 된다고 하는 그런 뜻의 비유인 것입니다. 생베 조각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낡은 옷이 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의 낡은 종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 운 복음을 옛 낡은 종교인 유대교 의식에 접을 붙이려고 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싱싱한 복음의 힘에 의해서 감당치 못하므로 허물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 리새인들의 교리는 많은 금식과 또 금욕주의적 의식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복음과는 서로 조화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 교리들과 바리새인들의 낡은 교리들은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며 이 두교리를 접목 시키려고 하면 거기에서 문제가 생기고 또 이 낡은 종교가 생명력 이 넘치는 새로운 기독교 복음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는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가죽부대라는 것은 옛날 중동 사람들이 양이나 염소를 잡아가지고 통채로 가죽을 벗긴 다음에 목 부분 이상을 떼어 내버리고 기름을 빼서 말려서 그것을 항아리 비슷하게 사용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죽 부대가 낡아서 튼튼하지 못할 경우 거기에다가 새 술을 담는다고 하면 새 술은 발효력이 강하기 때문에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은 새 술을 낡은 가죽 부대에 담을 경우에는 터져버리므로 낡은 가죽부대도 버리게 되고 새 술도 쏟아져 버리게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뜻은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과 바리새인들의 낡은 가르침과는 공존할 수 없다고 하는 교훈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력이 충만한 복음을 낡고 생명력 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전통과 의식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하는 의미의 말씀인데 옛 언약이란 새 언약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어떤 전통적인 종교나 기성종교와 접목을 시키거나 배합하려고 하면 두개 다 파괴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셋째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새 옷감은 새 옷에만 기울 수가 있는 것이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만 담을 수 있다는 말씀 입니다. 포도주를 수식하는 '새' 라고 하는 형용사는 네오스라고 하는 말로 서 전혀 훼손되지 않고 매우 양호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훈은 지금 새로이 시작하는 것으로서 그의 가르침과 그의 나라는 형식과 전통의 종교인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유대교의 전통과 형식속에 부어 넣으려고 하면 부대 가 터져서 예수님의 복음도 유대교의 전통과 의식도 쓸모없게 되어 버린다는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이 낡은 유대교의 전통과 교훈과 의식에 알맞게 변형될 수 도 없는 것이며 또한 그 전통에 의해 통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를 능가 하는 새로운 질서인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말하는 금식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금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 며 이 율법의 계명과 예수님이 주시는 새 계명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낡은 종교와 새 종교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낡은 종교는 유대교를 의미하고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의미하는데 반해서 새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낡은 종교는 생명력이 없고 전통과 의식에 얽매여 있을 뿐입니다. 낡은 종교는 금식, 할례, 제사, 절기, 구제 등을 형식적으로 지키고 이행할 뿐이며 생 명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레에 두번씩 금식을 했으나 그것은 마음으로 우러나와 서가 아니라 계명에 얽매여서 억지로 하는 금식이었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지만은 그것 역시 마음에서 우러나와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제사 를 지내지 아니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두려운 마음에서 할 수 없이 억지로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제사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존경하 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술로 나를 가까이 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있다" 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성회와 대회와 안식일과 월삭을 지켰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불효를 행하다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사람들 체면 때문에 장례를 거판스럽게 하며 제삿날이 돌아오면 효 자인채 제사를 지낸다든지 하는 것과 같이 형식적인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외식적인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 줄로 믿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 처럼 하나님에게 보이기 위해서 성전 뜰만 밟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너희가 성회와 더불 어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성회를 맞이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나왔다고 하면서도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리고 악만 행하며 서로 싸우 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다툼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 그런 것을 원하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과 저는 마음과 뜻을 모두어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산 예배 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새 종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능 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복음은 사람을 구원해 내는 능력이 그 복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확신하고 믿으며 증거하여 이 복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 어 지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13장 12절에 어떤 사람이 상을 당하게 되었는데, 사람의 시신을 관에다 담아 가지고 상여에 메고 공동묘지를 향하여 가던 도중에 적군인 모압군대가 갑자 기 쳐들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너무 급해서 시신을 장지까지 운구할 수 없 게 되었는데, 마침 길 옆에 엘리사의 무덤이 있어 그 시신이 든 관을 엘리사의 무 덤에다가 집어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 엘리사의 무덤에 시신이 닿는 순간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았을 때에 곧 회 생되어 일어나는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엘리사의 시체를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육체만 살아 있을 뿐 영혼이 죽어있는 시신과 같은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접촉되기만 하면 그 영혼이 벌떡 살아 일어나서 뛰기도 하고, 걷 기도 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죽은 해골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노니 사망을 당한 뼈들아 일어날찌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뼈들 이 소리를 내더니 머리뼈, 손뼈, 척추뼈, 발뼈 들이 자기 위치로 가서 연결을 하 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자 살이 덮히고, 힘줄이 생기고, 핏줄 이 생기고, 가죽이 덮혀서 사람의 모양이 되었습니다.
또 생기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생기가 그 사망을 당한 사람 속에 들어가니 이 시신이 벌떡 일어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더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을 외치고 증거하기만 하면 사 망을 당한 영혼들이 살아나서 벌떡 일어나 주님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군대가 되며 십자가 군병이 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은 심령 속에 사랑의 열정을 불러 일 으키며 새로운 활력과 소망과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유대교는 낡은 종교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것만 추구하게 했지만은 새 종교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적인 것이므로 영혼을 살려내며 신령한 능력을 공급해 주 며, 낡은 종교는 의식을 중요시 하지만은 새 종교는 믿음을 강조하고, 낡은 종교는 사람들을 의식으로 얽어매지만 새 종교는 영으로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낡은 종교는 문자로된 율법을 강조하지만 새 종교는 심령을 소중히 여기며 심 비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비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여러분의 마음 속에다가 하나님의 계명을 새겨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을 범 하려고 해도 남의 것을 훔치려고 해도 하나님의 것을 훔치려고 해도 하나님의 음 성이 우리의 마음속에 울려 퍼져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하나님의 것을 훔치지 말라, 십일조를 온전히 하나님게 드리라'고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낡은 종교는 인간의 의를 강조하지만 새 종교인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의 를 강조하며 낡은 종교는 육에 속한 사람을 만들어 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령께 속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으며 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했으나 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있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계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셋째로 새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으나 새 종교인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믿음에 근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새 종교의 성전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도들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성전도 있습니다만 이 눈에 보이는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이고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살아 움직이는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이 성령님을 모시고 다니는 성전임을 확신하고 긍지를 갖고 성전답게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새 종교에 있어서 예배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4장 21절 이하에 보면 "이 산에 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참된 예배는 형식적이거나 의식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새 종교에 있어서 제물은 무엇입니까 이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하나님께 드리셔서 속죄를 완성해 주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죄의 노예로 바치지 말고 마귀의 종으로 주 지말며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산 제물로 바칠 때에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가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새 종교에 있어서 향은 무엇입니까 초상이 났을 때나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안에 항상 향불을 피웠는데 그것은 의식적인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신약시 대에 있어서 생명있 기독교의 향불은 기도인 것입니다. 계시록 5장 8절에 천사 들이 성도들의 기도를 금 대접에 받아가지고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 기도할 때 천사들이 금대접을 가지고 나타나서 여러분 한분 한분앞을 지나 가면서 천사가 향기로운 기도를 담아가지고 하늘 보좌로 올라가게 되어질 줄로 믿 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기도, 의식적인 기도는 천사가 담아 가질 않는데 신약시 대의 향불은 성도의 생명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등불은 무엇입니까 구약시대의 성전 안에는 항상 일곱 촛대에 이 등 불이 밝게 켜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있어서 등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것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비취는 성도들의 행실이 바로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성령님충만을 받아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시고 삶으로 말미암아 성령님께서 비춰주시는 그 빛을 어 두운 세상에 밝게 비춰줄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신약 시대의 시은소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도의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적에 예루살렘성전에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 까지 쫙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담대하게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 게 된 것입니다. 멧세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인 것입니다. 율법 종교의 중요 의식은 세례와 성찬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바꾸어지게 된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중생과 성령님의 내주를 상징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늘 거듭나는 체험을 해야하며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그런 살아 움직이는 신앙생활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생베조각으로 낡은 옷을 깁는 것이 아니고 생베 조각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이며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는 것이 아니라 새 포도주를 새부대에 담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구약의 종교를 개조한 것이 아니며 구약의 종교에 신약 의 종교를 접붙인 것이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으로 전혀 새롭게 만들어진 종교가 바로 기독교의 복음인 것입니다. 이 기독교의 복음은 생명을 살려내는 생명력이 넘치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복음을 믿으면 우리가 들어가며 나가며 생명의 꼴을 얻게 되고 풍성 한 생명을 얻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 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되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첫째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깁는 이가 없다는 비유입니다. 생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그나포스인데 이는 한번도 세탁한 적이 없는 천을 가리킵니다. 그 새천을 물에 빨아 말리면 줄어듭니다. 그러나 낡은 옷감 이란 거듭거듭 여러번 세탁을 해서 쭈그러질대로 다 쭈그러진 그런 옷감입니다. 그러나 새 옷감은 한번도 세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물에다 담궈서 빨면 쭈그러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옷감에다가 새 천을 가지고 기워 놓으면 그 다음에 세탁을 할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겠습니까 낡은 옷감은 쭈그러 들지 않는데 새 옷감은 힘이 넘쳐서 쭈그러들기 때문에 결국 낡은 옷감도 버리게 되고 생베 조각 도 버리게 된다고 하는 그런 뜻의 비유인 것입니다. 생베 조각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낡은 옷이 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의 낡은 종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 운 복음을 옛 낡은 종교인 유대교 의식에 접을 붙이려고 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싱싱한 복음의 힘에 의해서 감당치 못하므로 허물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 리새인들의 교리는 많은 금식과 또 금욕주의적 의식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복음과는 서로 조화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 교리들과 바리새인들의 낡은 교리들은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며 이 두교리를 접목 시키려고 하면 거기에서 문제가 생기고 또 이 낡은 종교가 생명력 이 넘치는 새로운 기독교 복음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는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가죽부대라는 것은 옛날 중동 사람들이 양이나 염소를 잡아가지고 통채로 가죽을 벗긴 다음에 목 부분 이상을 떼어 내버리고 기름을 빼서 말려서 그것을 항아리 비슷하게 사용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죽 부대가 낡아서 튼튼하지 못할 경우 거기에다가 새 술을 담는다고 하면 새 술은 발효력이 강하기 때문에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은 새 술을 낡은 가죽 부대에 담을 경우에는 터져버리므로 낡은 가죽부대도 버리게 되고 새 술도 쏟아져 버리게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뜻은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과 바리새인들의 낡은 가르침과는 공존할 수 없다고 하는 교훈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력이 충만한 복음을 낡고 생명력 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전통과 의식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하는 의미의 말씀인데 옛 언약이란 새 언약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어떤 전통적인 종교나 기성종교와 접목을 시키거나 배합하려고 하면 두개 다 파괴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셋째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새 옷감은 새 옷에만 기울 수가 있는 것이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만 담을 수 있다는 말씀 입니다. 포도주를 수식하는 '새' 라고 하는 형용사는 네오스라고 하는 말로 서 전혀 훼손되지 않고 매우 양호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훈은 지금 새로이 시작하는 것으로서 그의 가르침과 그의 나라는 형식과 전통의 종교인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유대교의 전통과 형식속에 부어 넣으려고 하면 부대 가 터져서 예수님의 복음도 유대교의 전통과 의식도 쓸모없게 되어 버린다는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이 낡은 유대교의 전통과 교훈과 의식에 알맞게 변형될 수 도 없는 것이며 또한 그 전통에 의해 통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를 능가 하는 새로운 질서인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말하는 금식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금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 며 이 율법의 계명과 예수님이 주시는 새 계명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낡은 종교와 새 종교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낡은 종교는 유대교를 의미하고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의미하는데 반해서 새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낡은 종교는 생명력이 없고 전통과 의식에 얽매여 있을 뿐입니다. 낡은 종교는 금식, 할례, 제사, 절기, 구제 등을 형식적으로 지키고 이행할 뿐이며 생 명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레에 두번씩 금식을 했으나 그것은 마음으로 우러나와 서가 아니라 계명에 얽매여서 억지로 하는 금식이었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지만은 그것 역시 마음에서 우러나와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제사 를 지내지 아니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두려운 마음에서 할 수 없이 억지로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제사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존경하 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술로 나를 가까이 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있다" 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성회와 대회와 안식일과 월삭을 지켰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불효를 행하다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사람들 체면 때문에 장례를 거판스럽게 하며 제삿날이 돌아오면 효 자인채 제사를 지낸다든지 하는 것과 같이 형식적인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외식적인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 줄로 믿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 처럼 하나님에게 보이기 위해서 성전 뜰만 밟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너희가 성회와 더불 어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성회를 맞이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나왔다고 하면서도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리고 악만 행하며 서로 싸우 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다툼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 그런 것을 원하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과 저는 마음과 뜻을 모두어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산 예배 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새 종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능 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복음은 사람을 구원해 내는 능력이 그 복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확신하고 믿으며 증거하여 이 복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 어 지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13장 12절에 어떤 사람이 상을 당하게 되었는데, 사람의 시신을 관에다 담아 가지고 상여에 메고 공동묘지를 향하여 가던 도중에 적군인 모압군대가 갑자 기 쳐들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너무 급해서 시신을 장지까지 운구할 수 없 게 되었는데, 마침 길 옆에 엘리사의 무덤이 있어 그 시신이 든 관을 엘리사의 무 덤에다가 집어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 엘리사의 무덤에 시신이 닿는 순간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았을 때에 곧 회 생되어 일어나는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엘리사의 시체를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육체만 살아 있을 뿐 영혼이 죽어있는 시신과 같은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접촉되기만 하면 그 영혼이 벌떡 살아 일어나서 뛰기도 하고, 걷 기도 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죽은 해골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노니 사망을 당한 뼈들아 일어날찌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뼈들 이 소리를 내더니 머리뼈, 손뼈, 척추뼈, 발뼈 들이 자기 위치로 가서 연결을 하 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자 살이 덮히고, 힘줄이 생기고, 핏줄 이 생기고, 가죽이 덮혀서 사람의 모양이 되었습니다.
또 생기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생기가 그 사망을 당한 사람 속에 들어가니 이 시신이 벌떡 일어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더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을 외치고 증거하기만 하면 사 망을 당한 영혼들이 살아나서 벌떡 일어나 주님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군대가 되며 십자가 군병이 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은 심령 속에 사랑의 열정을 불러 일 으키며 새로운 활력과 소망과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유대교는 낡은 종교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것만 추구하게 했지만은 새 종교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적인 것이므로 영혼을 살려내며 신령한 능력을 공급해 주 며, 낡은 종교는 의식을 중요시 하지만은 새 종교는 믿음을 강조하고, 낡은 종교는 사람들을 의식으로 얽어매지만 새 종교는 영으로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낡은 종교는 문자로된 율법을 강조하지만 새 종교는 심령을 소중히 여기며 심 비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비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여러분의 마음 속에다가 하나님의 계명을 새겨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을 범 하려고 해도 남의 것을 훔치려고 해도 하나님의 것을 훔치려고 해도 하나님의 음 성이 우리의 마음속에 울려 퍼져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하나님의 것을 훔치지 말라, 십일조를 온전히 하나님게 드리라'고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낡은 종교는 인간의 의를 강조하지만 새 종교인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의 를 강조하며 낡은 종교는 육에 속한 사람을 만들어 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령께 속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으며 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했으나 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있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계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셋째로 새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으나 새 종교인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믿음에 근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새 종교의 성전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도들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성전도 있습니다만 이 눈에 보이는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이고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살아 움직이는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이 성령님을 모시고 다니는 성전임을 확신하고 긍지를 갖고 성전답게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새 종교에 있어서 예배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4장 21절 이하에 보면 "이 산에 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참된 예배는 형식적이거나 의식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새 종교에 있어서 제물은 무엇입니까 이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하나님께 드리셔서 속죄를 완성해 주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죄의 노예로 바치지 말고 마귀의 종으로 주 지말며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산 제물로 바칠 때에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가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새 종교에 있어서 향은 무엇입니까 초상이 났을 때나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안에 항상 향불을 피웠는데 그것은 의식적인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신약시 대에 있어서 생명있 기독교의 향불은 기도인 것입니다. 계시록 5장 8절에 천사 들이 성도들의 기도를 금 대접에 받아가지고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 기도할 때 천사들이 금대접을 가지고 나타나서 여러분 한분 한분앞을 지나 가면서 천사가 향기로운 기도를 담아가지고 하늘 보좌로 올라가게 되어질 줄로 믿 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기도, 의식적인 기도는 천사가 담아 가질 않는데 신약시 대의 향불은 성도의 생명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등불은 무엇입니까 구약시대의 성전 안에는 항상 일곱 촛대에 이 등 불이 밝게 켜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있어서 등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것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비취는 성도들의 행실이 바로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성령님충만을 받아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시고 삶으로 말미암아 성령님께서 비춰주시는 그 빛을 어 두운 세상에 밝게 비춰줄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신약 시대의 시은소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도의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적에 예루살렘성전에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 까지 쫙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담대하게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 게 된 것입니다. 멧세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인 것입니다. 율법 종교의 중요 의식은 세례와 성찬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바꾸어지게 된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중생과 성령님의 내주를 상징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늘 거듭나는 체험을 해야하며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그런 살아 움직이는 신앙생활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생베조각으로 낡은 옷을 깁는 것이 아니고 생베 조각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이며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는 것이 아니라 새 포도주를 새부대에 담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구약의 종교를 개조한 것이 아니며 구약의 종교에 신약 의 종교를 접붙인 것이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으로 전혀 새롭게 만들어진 종교가 바로 기독교의 복음인 것입니다. 이 기독교의 복음은 생명을 살려내는 생명력이 넘치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복음을 믿으면 우리가 들어가며 나가며 생명의 꼴을 얻게 되고 풍성 한 생명을 얻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 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되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