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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생활 지혜 (창26:12-22)

본문

우리나라가 해방된 후 벌써 수십년이 흘렀습니다. 참 세월이 빠릅니다. 이제는 광복의 기쁨도 흐려졌고 그 역사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때는 서로 뺏고 뺏기는 시대였습니다. 힘이 없으면 뺏기고 힘이 있으면 뺏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는 지났지만 오늘도 적자생존의 생활 습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을 가리켜서 생존 시대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누가 더 힘이 세냐에 따라서 입지가 달라지고 위치가 달라진다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강해지려고 합니다. 넓게는 세계 정치에서부터 좁게는 동네 골목대장에 이르기까지 힘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을 누르고 지배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강해지려고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도 능력을 먼저 봅니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 있고 실력 있고 그럴 만한 머리를 가진 사람을 우선해서 선택합니다. 양순하고 온순한 사람들은 자꾸만 그 대열에서 도태됩니다. 오늘은 흥부 같은 사람은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놀부 같은 사람이 이기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세상이 이렇게 재미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삭막하고 비정하고 인정이 메마른 멋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반대로 오히려 온유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본문에서 바로 그 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에서도 온유한 사람이 최후에 승리하고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언제나 세상을 거스려서 말씀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언제나 세상 이론과 정반대의 이론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세상은 악착같이 이기며 살아야 성공한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오히려 온유해야 성공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그런 이론이 성립될 수 있는지 본문이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의 시대가 열립니다. 그때 이삭은 불레셋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조용하고 온순하고 침착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농사꾼이었습니다.
농사꾼에게는 農心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농심은 무리하지 않고 하늘을 거역하지 않고 신의 섭리를 알고 과욕하지 않으면 심은 대로 거둔다는 정신입니다. 이삭은 그런 마음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삭은 온유했고 불필요한 모험을 삼갔고 싸우지 않고 순리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요즘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이삭이 무능한 사람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아주 옹졸한 사람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생각과 다른 점입니다. 이삭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해 농사가 백 배의 수확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수확입니다. 한 가마니를 뿌렸는데 백 가마니를 거두었다는 말입니다. 이삭의 성품으로 보아서 아주 성실하게 일하고 정성을 다해서 가꾸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으니 그 농사가 얼마나 잘되었겠습니까 성경은 이삭이 복을 받아 창대하여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보면 농사도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축복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탄이 주는 복입니다. 사탄도 복을 줍니다. 사탄도 사람으로 하여금 부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탄이 주는 복을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그 복은 반드시 재앙으로 끝이 납니다. 뇌물은 사탄이 주는 복입니다. 그래서 뇌물은 언제나 마지막에 가서는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니으로부터 주어지는 복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 복이라야 유익을 주고 은혜가 됩니다. 이삭은 단번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를 했습니다. 자기들이 농사 지은 것과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자기들도 죽도록 애를 썼는데 그 결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래서 방해를 했습니다. 우물을 흙으로 메웠습니다. 그곳에서 우물은 상당한 재산입니다. 물이 귀한 곳이라 우물은 큰 재산입니다.
그런데 불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우물을 메웠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일이 있은 후 이삭은 보따리를 쌉니다. 아무 말없이 짐을 싸들고 그랄 골짜기로 이사를 갑니다. 그리고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곳에 겨우 정착하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또 와서 방해를 합니다. 이삭은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러기를 여러분 했습니다. 블레셋에서 그랄로, 그랄에서 싯나로, 싯나에서 르호봇으로 옮겼습니다. 마지막으로 판 우물에서 더 이상 다툼이 없으므로 “르호봇”이라 이름 짓고 정착하였습니다. “(창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 어떻게 생각하면 이삭은 참 무능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 같았으면 그렇게 도망다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 때는 싸워야 하는데, 따져야 할 때는 따져야 하는데 이삭은 슬그머니 내주고는 떠나 버립니다. 고생해서 파 놓은 우물인데도 그냥 버리고 슬그머니 떠나 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바보스럽고 무능해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아주 양순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이것이 이삭이 세사을 살아가는 처세술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세상을 달관한 사람의 처세술입니다. 이삭은 어떻게 보면 어리숙한 사람같이 보이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세상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에는 이삭의 세 가지 삶의 철학이 나타나 있습니다.
1.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무리 부당한 일이 있어도 다투지 않았습니다. 누가 와서 방해를 하면 다 버리고 그냥 떠났습니다. 땀을 흘리고 고생하여 얻은 우물도 유감 없이 버리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변에서는 싸움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이것이 이삭의 체세술입니다. 이것이 이삭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얼핏 보면 우유부단한 것같이 보이고 한심하게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이상한 현상이 하나 나타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지형을 조사하고 지질을 탐사하고 물줄기가 있을 법한 곳을 골라서 우물을 파건만 물이 없습니다. 하루종일 헤메고 다니며 수원을 찾아 보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화가 나서 이삭의 우물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다 빼앗기고 떠난 이삭이 가다가 지쳐서 멈춘 곳에서 땅을 파면 물이 나옵니다. 이삭이 가는 곳마다 우물이 나옵니다. 참 신기한 현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악착같이 살아야 살아지는 줄 압니다. 그리고 남의 것을 빼앗을 망정 내 것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적인 소득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길게 보면 얻을 것이 없습니다. 싸움은 피차가 손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송사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이득이 없습니다. 다투는 집안이나 교회나 나라는 이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다 줄지라도 빼앗지 않는 것입니다. 이삭이 승리하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우물을 막고 방해를 합니다. 그러면 싸워야 순리인데 이삭은 그냥 주고 떠납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는 크게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마침내는 승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을 주름잡고 정복하고 빼앗아 지배한 황제 나폴레옹은 망했는데 조롱당하고 무능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저 예수는 결국 살아서 세상을 점령하는 승리자가 되었다.”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싸우지 않습니다. 누구와도 싸우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서도 싸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싸우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 저에게 싸움을 걸지 마십시오. 누가 싸움을 걸어오면 저는 싸우지 않고 그냥 져 줄 것입니다. 싸워서 이겼다고 상받는 것도 아닌데 왜 손해를 보면서 싸우겠습니까 하지만 자꾸 싸우자고 하면 저는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싸워 달라고 말입니다. 이삭은 그것을 믿고 뭐든지 다 주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삭이 이겼습니다. 이것이 이삭의 첫 번째 삶의 철학이고 처세술입니다.
2. 기다림입니다. 이삭에게는 우리들이 배울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리는 생활입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하면서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삭은 그 결과를 무리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그 결과를 믿은 사람입니다. 이삭이 나이 40세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습니다. 얼마나 조바심이 났겠습니까 이삭이 아버지를 닮았으면 조바심을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편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삭은 조용하게 요동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끝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쌍둥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납니다. 결국에 가서 이삭은 결실을 맺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보고 무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사람이야말로 무서운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삭이라는 사람은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가장 강하고 질긴 사람입니다. 말이 20년이지 그 세월이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시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20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아이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조바심이 날 법도 합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요동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쌍둥이 아들을 낳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삭이라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달관한 사람입니다.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기 일에 충실하고 평생 한 우물만을 파고 오직 한 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그런 축복을 주셨습니다.
3. 부드러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삭은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아주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주 조용한 사람입니다. 이삭은 별로 일하는 것같지도 않은데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할 일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알고 보면 이런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무서운 사람인지 아십니까 소리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조용 조용히 말하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말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이런 사람은 겉에서 보면 부드러운 것 같아도 속은 무서울만큼 견고합니다. 이런 사람은 좀처럼 실수하지 않습니다. 금방 부러질 것 같은데 부러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유하라고 말씀합니다. 온유하지 못하면 부러지기 쉽습니다. 옛날 로마라는 나라를 생각해 보시시오. 얼마나 강하고 견고한 나라였습니까 찬란한 문화와 권세를 누렸던 나라, 정복하고 강탈하고 수탈하고 마구 닥치는 대로 빼앗았던 나라가 아닙니까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몽고라는 나라도 그렇습니다. 그 옛날 이름난 들어도 무섭고 떨리던 나라가 몽고 아닙니까 패배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나라가 몽고입니다.
그런데 지금 몽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하면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그렇게 강했습니다. 36년 동안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강했습니까 그 강함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아시아를 모두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태평양 너머에 있는 미국에까지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세계를 다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부러집니다. 그렇게 강하던 일본이라는 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강하면 그렇게 부러집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강하면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빨이 부러지는 것입니다. 강하기 때문에 부러지고 뽑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드러운 혀는 부러지거나 뽑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는 언젠가 이렇게 부러트려 놓으십니다. 거꾸러트려 놓으십니다. 이런 이치는 산속의 질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산중의 왕은 분명 사자고 호랑이입니다. 이 동물들은 약한 동물들을 사정없이 잡아 먹습니다. “동물의 세계”라는 TV프로를 보십시오. 초식동물은 사정없이 잡아 먹힙니다. 아마 산속의 약한 동물들은 얼마 못 가서 모두 없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산속의 주인은 맹수들이 아니고 약한 초식동물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강자에게는 번식력이 없습니다. 호랑이나 사자는 번식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새끼를 낳아도 한두 마리입니다. 징기스칸이 그러했고 나폴레옹이 그러했으며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식이 없습니다. 후손이 없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강해서 부러지는 날 모든 것이 끝나 버렸습니다. 맹수나 정복자의 뇌리 속에는 언제나 한 가지 생각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힘 안 들이고 잡아 먹을 수 있을까” 그것만 골똘이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번식력이 감퇴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온순한 동물들은 한적한 곳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여유와 평안과 명상을 즐깁니다. 그러니까 성욕이 왕성해지고 번식력이 강해서 낳았다 하면 열 마리씩 낳지 않습니까 온유한 사람은 얼핏 보면 다 빼앗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보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늘 손해만 보고 살아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안 그렇습니다. 결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승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삭이라는 사람을 통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강하고 포악하면 언젠가는 꺾입니다. 부러집니다. 부러질 때는 사정없이 부러져 내립니다. 그것은 사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은혜를 역사를 통해서도 배웠고 세상의 질서를 통해서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온유해야 합니다. 사람은 뺏기는 한이 있어도 뺏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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