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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속의 사도 바울 (행27,9-26)

본문

다 같이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고기들인데 좋은 것이 있는가하면 못된 것도 있다. 사람 사는 곳에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 선하고 좋은 것이 아니라 못된 사람도 함께 섞여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 세상에는 적제 적소에 유용한 사람이 있다. 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도 있다. 그리고 또 있으나 마나한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가이샤라에서 이달리아 로마로 가던 알렉산드리아 배가 그레데 해안을 지나다가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배에는 사람이 무려 276명이나 타고 있었다. 온갓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사람의 한계에 도달하고 말앗다. 배가 부셔질까바 바줄로 배를 동여 매었고 배를 가볍게 할려고 싣고 가던 모든 짐짝을 다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도 풍랑은 계속되었다. 20절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이 일은 지금으로부터
2,000 년전의 일이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면서 항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낮도 밤도 없이 즉 해 별을 볼 수 없는 날들속을 풍랑 속에서 헤메였으니 상상만 해도 끔직한 풍랑이었다.
그런데 극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때에 구원의 서광이 빛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큰 풍랑에서 건짐을 받아 살아나게 된다. 큰 풍랑 중에 어떤 일이 일어 났길래 살 수 있었을까 s.o.s. ! 지나가던 더 큰 배에 의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가 아니다. 거기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이 타고 있었다.

1,기도하는 사람 사도 바울 " 사도 바울은 276명 중의 한 사람이다. 다 같은 사람이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배 안에는 크게 대별되는 산건을 찾을 수가 있다. 한 사건은 큰 풍랑으로 인하여 아우성을 치고 짐짝을 바다에 내어 버리면서 난리를 떨고 있는 사건이고 또 다른 사건은 그 풍랑의 와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 해서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이 대작할 때 사람들의 방법과 힘과 경력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믿는 무리들이 있었던 반면에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도 같은 풍랑을 만났으면서도 그 살아가는 방법이 얼마나 다른가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재주와 힘과 능력으로 발버등치고 있을 때 고요히 전능자 하나님을 향하여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 여러분들은 예기치 못했던 어려운 일들을 만나면 무었부터 하시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을 하는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기도하고 나서 그 일을 하시는가 지금이라도 기도로 시작하지 못한 일이 있거든 이 시간에 그 일을 위하여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의 사람이 가는 길에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어떤 교단을 지칭하기가 미안하다. 그들은 하루 24 시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은 하는데 특별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24시간 기도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한다는 대답이 "밥 먹을 때도 일할때도 심지어 놀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그것이 곧 기도라"는 것이었다. 정말 이런 것이 기도일까
그런데 예수님은 어째서 특별한 시간인 새벽에 기도를 했을까 또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가 되도록 기도를 하시었을까 주님의 제자들도 시간을 정해 놓고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었다. 여러분들은 언제 기도를 하시는지 정말 기도의 시간들을 따로 작정을 하시고 살고 계시는지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쁘기 때문에 기도한다" 고 했다. 사도 바울은 이 풍랑의 와중에도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평소에 기도의 사람이었기에 이런 곳에서 이런 와중에서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일 매일 정한 기도의 시간을 두시기 바란다.

2,환상을 보는 사도 바울 " 사람들이 살기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기도를 했었다. 그랬더니 23절에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해와 별을 볼 수 없었다고 함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캄캄한 풍랑 속에서 헤메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14 주야를 그렇게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지금 사도 바울은 자기 곁에 서서 계시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았다.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야말로 인생 항해의 영적인 나침반인 것이다. 나침판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배의 선장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 배가 출항하는 처음부터 사도 바울은 영적인 나침을 보앗기에 항해를 만류햇던 것이나 무지한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들은 백부장의 무리한 결정이 곧 풍랑을 만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기도의 사람 사도 바울은 영적인 나침판인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배의 참 선장은 사도 바울인 것을 말하고 있음이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통하는 사람이엇다. 여러분은 어떤가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인가

3,말씀을 믿는 사도 바울 " 25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 바울이 기도하는 사람이엿고 하나님과 토통하는 환상의 사람이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되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믿는 사람이엇기 때문이다. 예수는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는 믿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4,일행을 안심시키는 사도 바울 " 23-26절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겟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사도 바울은 환상을 본 그대로 함께 행선하는 일행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얼마나 멋있는가 276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안심하라고 말 할 수 있는 바울! 함께 동행하고 있는 일행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있는 바울! 죽을 수 박에 없에 없는 지경에 평안을 선물하는 사도 바울!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이다. 이런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이다. 기도 많이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통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산다. 일행에게 안심을 시키면서 일행에게 평안을 주면서 일행이 요구하는 필요의 사람이 되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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