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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비젼 (창15:5-6)

본문

현대를 흔히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비젼을 잃고 매우 현실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도로 조직화되고 분업화된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자신의 존재의미를 잃고 소시민적인 꿈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인간은 이렇게 왜소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현실 문제에 빠져있는 아브람을 데리고 나가 "하늘의 뭇별 을 세어보라" 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같으리라." 언약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러 면 이 약속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첫째로, 아브람에게 뭇별을 보게 하심으로 믿음을 심으신 하나님(15장), 둘 째로, 아브람을 열국의 아비로 세우신 하나님(16,17장)에 대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나 한 사람에게 두신 하나님의 원대한 소망과 비젼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15장) 태초에 하나님은 온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야, 이 얼마나 좋으냐! Very good."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생명력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는 인간의 정신세계와 영적 세계를 병 들이고 인류 문명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의 홍수심판에도 불구하고 더욱 자라나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소망 없는 시대 가운데 75세의 아브람 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 아 세상에 선민을 세우시고 그의 후손 가운데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시기 위함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고 언약하 셨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지시하실 땅인 가나 안까지 순종하여 왔습니다. 14장에서 아브람은 조카 롯이 전쟁포로가 되어 생명이 위험하게 되었을 때, 318명의 용병을 이끌고 "사막의 폭풍작전"을 감행하여 4개국 동맹군을 격파하 고 롯과 많은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아브람은 마치 개선장군과도 같이 위풍이 당 당했습니다. 그러나 15장에서 그는 두려움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떨고있는 졸장 부와도 같습니다. 일개 족장으로서 메소포타미아 4개국 동맹군을 쳤으니, 마치 좋 은 일을 하고도 보복범죄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증인들의 심정이 아브 람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니 노쇠한 팔다리에 의지 할 자식조차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형편을 생각하니 점점 절망과 두려움, 의 심과 피해의식에 빠져들었습니다. "아,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시느지. 지금 내 형편과 처지를 알고나 계신지." 그는 장막이 날라갈 정도로 한숨을 내쉬며 외롭고 처량한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습니다. 1절을 보십시요.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 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아브람이 세상과 자기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믿는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모든 위험으로 부터 보호해 주 시고 원수의 공격으로 부터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방패되신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아무도 손해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절실한 인생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 라는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 피해의식 에 시달리게 됩니다. "믿음으로, 성경대로 고지식하게만 살다가 깡통차게 되는 것 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기고 자기 나름대로의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자기 아 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 라볼 때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3절을 보십시요. "아브람이 가로 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 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그는 입이 부르터서 하나님께 따 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하나님. 도대체 제게 주신 것이 뭡니까 아 뭐냐구요 제 형편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시잖아요. 정말 이러시면 저도 다 생각이 있다구요 생각이." 아니, 아브람도 이럴 때가 있었다니 우리에게 참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은 문제에 빠진 아브람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요. 하나님은 먼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 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좁고 어두운 장막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는 밤하늘을 바라보 도록 하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의 좁아진 마음을 넓혀 주시고 비젼을 심어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심각한 인생문제인 후사 문제에만 집착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에게 믿음을 심으시고 그가 하나님의 원대하신 뜻을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장에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보다 비젼을 보여 주심으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아브람이 두려움과 의심과 손해의식에 시달리는 것은 늙도록 자식을 두지 못한 것에도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높은 세계, 깊은 세계, 원대한 세계로 인고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무수 한 별들의 집합체인 은하계가 있습니다. 지구가 속해있는 은하계에는 약
1,000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이러한 은하계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광대무변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를 바라보노라면 우리의 답답한 심령도 트이고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카운셀링을 받고 문제에서 일어나 별들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별을 세는 중에 그의 좁아진 마음은 점점 넓어져 뭇별을 지으신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니 이는 현실성 없는 허황된 약속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놀랍게도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절망 중에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뭇별을 통해 그의 심령에 비춰오는 한 줄기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은 생명 의 빛이요 소망의 빛이었습니다. 그는 이 빛을 통하여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신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그에게 비젼을 주신 하나님 의 부정할 수 없는 능력과 범할 수 없는 신성을 의지하여 지금 자기에게 주신 언 약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뿌리 깊은 인생 문제인 아들 문제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자기 불의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가 하나님 을 믿었을 때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모든 두 려움과 피해의식이 사라지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6) 하나님은 이 믿음을 귀히 여기시고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의롭지 못한 자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받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 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 람의 믿음을 크게 인정하시고 그의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기초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많은 일을 하거나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허물과 실수가 많았고 우리처럼 연약하여 두려움과 피해 의식에도 자주 시달렸던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행위로 말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서 아무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 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하였으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절망의 때에 믿음의 비밀을 깨닫고 믿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절망의 때가 하나님 편에서는 믿음을 배울 수 있는 희망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믿음을 심는 것을 끝나지 않으시고 그에게 두신 역 사적이고 세계적인 뜻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요. "또 그에게 이르시 되 나는 이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표증을 요구하는 아브람에게 고 대 계약의 형식을 빌어 확증하셨습니다.(8-11) 12-21절은 구체적인 계약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향후 600여년 동안에 되어질 일들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원대하시 고 스케일이 웅장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회전하는 그림자와도 같은 현실 문제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줄기차게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II.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16-17장) 문제에 빠졌던 아브람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믿음의 비밀을 깨닫고 심령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동역자 사래가 문제에 빠졌습니다. 사래는 여인으로서 남편에게 행할 의무를 다 못한 것이 늘 부담스럽고 괴로왔습니다. 참다 못한 사래는 그 당시 풍속을 좇아 아브람에게 자신의 여종을 주어 아들 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도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사래의 말을 들었습니다.(1-3) 이들은 믿음으로 시작했으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해 야 했습니니다. 그러나 불신이 생기자 참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하갈이 잉태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하 갈이 잉태를 하자 마음이 방자해져서 여주인을 멸시하고 안방마님 행세를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라는 설겆이나 빨래는 하지 않고 뱃속의 아기를 위한답시고 맛있는 음식만 골라먹고, 태교를 한답시고 그늘 아래 누워 "바하 음악"만 들었니다. 그러다가 사래가 눈치를 주면 모른체 하고 보란듯이 나오는 배를 더 내밀었 습니다. 이를 본 사래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습니다. 격분한 사래는 낮잠자던 아브람을 깨워 박아지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사래는 그렇지 않아도 서러운데 여종에 게 조차 멸시를 받으니 분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가정의 질서가 파괴되고 평온하던 가정에 풍파가 일기 시작했습니다.(4-5) 이에 아브람은 "그대 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6a)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하지 않았을 때 영적 리더쉽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였고 견디다 못한 하갈은 무단 가출하고 말았습니다.(6b) 그들이 믿음으로 참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쓴 결과 사랑과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던 가정이 멸시와 학대, 투기와 미움, 원망과 분쟁으로 가득차게 되 었습니다.
오늘날 중동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의 가정문제를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하나님 은 아브람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뒤에서 그의 허물과 실수를 다 감당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허다한 허물을 덮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갈이 교만 하여 질서를 깨뜨린 것을 회개하고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복종하도록 카운셀링하 셨습니다.(7-9)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갈이 낳은 아들로 크게 번성케 할 것과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고 또 그가 장차 어떤 생활을 할 것인가도 말씀해 주셨습니다.(10-12)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사래, 하갈의 모든 허물과 실수를 만회해 주시고 그의 가정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3)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은 비록 자신의 허물과 실수로 어 려운 문제에 빠졌을지라도 고통당하는 자들의 고통을 들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실로 은혜의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갈은 하나님께서 주신 방향에 순종하여 집으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15) 이때 아 브람의 나이 86세였습니다.(16) 그로 부터 17장이 시작되기까지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 안 아브람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17장 1절과 17,18절 말씀을 볼 때 아브람의 영적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 라가 그에게 아들을 낳아줄 것을 말씀하시자 아브람은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 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17) 그리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8) 하며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아브람은 그동안 후 사문제로 많은 마음 고생을 하다가 이스마엘을 얻으니 아들에게 폭 빠져버렸습니다. 손자같은 아들과 장막에서 노닥거리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일 이스마엘과 만화도 보고 씨름도 하며 고상한 아비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 기만족에 빠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두신 크신 뜻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이룩한 세 계 속에서 안주하는 소시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를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1절을 보십시요. "아브람 의 구십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은 이때까지 아브람을 책망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믿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그의 내면 깊은 곳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심으로 그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불신의 돌을 제거하 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마른 길을 내시고 광야 반석에서 샘물을 내 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불치의 병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 사래의 마른 태를 열고 아들을 허락치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를 믿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100%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한가지씩 해도 안된다는 불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 어, 하나님도 이것에는 관심이 없을꺼야."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놓고 반신반의하는 아비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 라"(막9:23)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와 언약을 세우시고 그로 심히 번성케 하고자 하셨 습니다.(2,3)
그러면 그 언약의 내용과 목적이 무엇입니까 4-6절을 보십시요.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 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 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이 언약의 내용을 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두신 소원이 얼마나 웅장하고 원대한가 보게 됩니다. 아브람 은 고상한 아비로써 그의 소원은 자기 중심적이고 현실적이고 소시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신 소원은 그가 열국의 아비가 되어 세계 만민을 품고 섬기며 나라와 열왕들을 배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고상한 아비, 아브람"에서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 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역사적이고 범세게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이들은 이 시대가 주는 영향으로 인해 생각하는 스타 일이 작고 왜소합니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장에서 주말에 근 교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스쿠프 승용차를 사고 나만의 보금자리를 틀 수 있는 작은 집에서 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자매님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사는 것을 소망합니다. 사랑받는 남편, 존경받는 아빠면 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집 안에서 사랑이나 받으며 해주는 밥이나 먹고 쥐나 잡는 고양이처럼 살다가 의미없 이 사라지는 인생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좀 고생스럽지만 웅장한 스케일을 가지고 역사를 창조하는 위대한 사명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 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인의 인생을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버리고 육신적인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 고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는 시대의 등불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들이 캠퍼스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젊은이들이 비젼없이 살 아갑니다. 각박한 현실과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초라한 형편만 바라보고 자학하 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인간조건이나 능력에 따라 사람을 보시 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믿음의 사람을 부르셔서 위대한 역사 창조의 주역으 로 키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역사하십니다. 우주를 지으시고 섭리하시고 운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의 근원, 열국의 아비로서의 소원을 두 셨듯이 나에게도 이 시대의 복의 근원이요 열국의 아비로서의 소원을 두고 역사하 십니다. 노예 백성 이스라엘을 바로의 권세에서 구속하사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쓰신 것 같이 나를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구속하사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쓰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이 시대 죄로 멸망해가고 있는 수 많은 영혼들을 구원코자 하십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위 대한 일을 바라보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요.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이제 후로는" 이 말씀은 과거야 어떤 삶을 살았던 간에 지금부터는 열국의 아비 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실 때 아브람의 인간조건 이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존재의미와 신분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소원을 영접하고 그 소원을 좇아갈 때 좁고 편협한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넓 고 원대한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할 수 없을지라 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십니다. 그러면 이러한 은혜는 형제님들에게만 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15,16 절을 보십시요.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 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 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은 사래에게도 아브라함에게 두신 동일한 소원 을 두시고 그 이름을 "나의 공주, 사래"에서 "열국의 어미, 사라"로 바꾸어 주셨 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7,8절을 보십시요.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는 목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 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은 아브라함 한 사람만 구원받 게 하고자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해 열국의 백성을 구원코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아브람함을 통해 이 땅에 인간의 타락으로 무너진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죄로 잃어버린 세상을 회복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자의 심정이요 거룩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아브라함 100세에 이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이스라엘 12지파를 허락 하시고 그의 후손 가운데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 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마다 모든 저주와 심판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참 생 명을 주십니다. 아브람은 연약하여서 자주 두려움에 시달렸고 불신에도 빠졌지만 그가 믿음의 중심을 굳게 지켰을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그를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축복의 근원으로써 모든 이가 사모하는 이름이 되 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어두운 세상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코자 하시는 변함없 고 간절한 소망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소망 때문에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보여 도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 가운데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아브라함과 같이 부 르사 복의 근원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이 소망을 영접하고 믿음의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나를 열국의 아비로 세우시고 하늘의 별떼와 같은 믿음의 후손들을 허락 하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식 문제롤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있던 아브람 을 심방오셔서 비젼과 언약을 견고케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쓰다가 문제만 일으킨 그의 허물을 다 감당해 주시고 오직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도 불확실성의 시대 가운데 살다보면 때로는 마음이 좁아져 두려움과 피해의식 으로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땅의 것에 눈을 내리깔고 소극적으로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돈도 명예도 사랑도 부귀영화도 이 세상을 떠날 때 다 사라질 것들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름받고 하나님의 구속역사 가운데 쓰임받는 것은 진정 가치있고 위대하며 영원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좁아지고 두려워 질 때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과 비젼을 다시 굳게 붙잡고 믿음의 길을 가야하겠습니다. 고상한 아비보다는 열국의 아비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 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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