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가지 부족 (막10:17-22)
본문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란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실제적인 공감을 주는 글이기에 한번 소개를 합니다. 믿음의 낙오자들의 특징이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아래와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1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성경말씀 읽는 것을 잊어 버린다.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하루 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과였으나, 이제는 바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2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기도하는 생활을 중단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 또 앞으로 계속하여 인도해 주기를 더 이상 간구하지 않는다. 3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낙심한 사람 을 권고하며,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일에 무관심하다. 그런 일 들은 마치 돈을 낭비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또한 낙심한 자를 찾아가 권고하는 것도 싫어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일들을 대신 맡아 감당하라고 목사를 고용 했으며 월급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모든 일에 항상 비판적이다. 목사와 교회 직원들의 잘못을 찾아 내어 비난하는 것으로 기분을 풀며 시간 을 보낸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 교회를 잘하게 봉사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5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 목사의 설교는 별로 들을 것이 없고, 성가대의 찬양은 시시하기 짝이 없으 며, 예배가 너무 단조롭고 지루하기 때문에 예배에 참여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고 생각한다. 6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더 이상 헌금하지 않는다. 시간도 바쁘고, 지불해야 할 돈들도 많이 밀려 있을 뿐 아니라, 교회가 하는 일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헌금할 수 있겠는가 고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를 한번 이 물음에 대치시켜 6문제중 3문제 이상 해당한다면 벌써 시험 에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하고, 4문제 이상 해당된다면 믿음의 낙오자 반렬에 들 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 환자들에게서 가장 큰 불행은 자신의 병이 얼마나 깊어진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라고 합니다. 일찍 자각 증세를 느끼고 진 찰을 받았으면 넉넉히 고칠 병을 무감각하게 지내다가 회복 불능으로 떨어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음을 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 가지일 것입니다.
1. 본문에 보면 좀 특이한 문제로 예수님께 나아왔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영생(永生)에 관하여 그것을 주님께 문의하려고 나아왔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을 부를 때 '선한 선생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주님도 이 호칭이 못마땅하여 '네가 어찌 나를 보고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니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아마 이 청년은 예수님을 도덕적인 면에서만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편 자기의 도덕적인 의의를 은근히 들어 내려고 자랑 하려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사람을 청년 관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요즘 고시를 파 스한 엘리트였던 것 같습니다.(눅18:18) 아마 이 청년은 법관으로서 도덕적으 로 결함이 없이 계명을 잘 지켜온 줄로 압니다. 그래서 내가 또 부족 한 면이 무엇일까 하여 주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 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때 주님은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 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 라" 청년의 말이 "그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자신 있게 대답하였 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청년이었다고 봅니다. 계명을 어려부터 다 지켰다고 자 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주님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것 보면, 조금도 양 심에 가책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이러한 사람이라면 제일 모범적인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님께서도 마음을 통찰하시는 그분이 그를 사랑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거짓 없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훌륭한 청년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자랑속에 한 가지 부족한점을 발견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 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청년에게서 한가지 부족한 점은 재물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온갖 계명 을 다 지켰다는 것은 좋았는데, 그 계명이란게 대부분 <하지 말라>는 것뿐, 무 언가 <하라!>는 것에는 모자랐다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등등.이렇게 말라는것만 잘 지켰지, <주라!>, <사랑하라!> <베풀라!> 등의 <하라!>라는 적극적인 행위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청년에게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 나아왔다가 근심하며 되돌아간 이 청년처럼 중도에 낙 오자들이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왔던 사람들이 왜 되돌아서 갑니 까 이 청년에 물었던 우리 주님의 질문을 내게서도 적용시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2. 우리 믿는 사람에게도 한가지씩 부족한 점들이 다 있다고 봅니다.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 한 자들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어른 보면, 이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 있는 것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면 그러면 예수 믿으려면 재물은 하나도 없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다 면 난 예수 믿지 못하겠다고 지레 질겁을 하고 돌아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던것도 바로 그런 청년의 심리상태를 꿰뚫어 보셨던것입니다. 이 청년에게서 한 가지 부족한 약점이 있다 면 바로 그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었습니다. 유별하게 이 청년은 가진 재물을 지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재물이 우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읽어보면, 우리 주님이 무책임하게 이 청년에게 네 재산 다 팔아 가난한 자 들에게 나누어 주라고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네 삶을 책임 져 주겠다고 했습니다.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 허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고 하였습니다. '나를 좇으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렇게 하고 나에게 오면 내가 너를 책임져 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재물에 대한 개념을 바로 이해 하여야 하겠습니다.
원문에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단지 물질적 재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 그것 이 명예일수도 있고, 지식일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일수도 있고, 내가 가진 탈 런트일수도 있고, 나의 전문직의 기능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애착이 너 무 지나쳐 주님을 바로 따르지 못하고 근심하며 떠나가는 낙오자들이 될 수 있 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탈되는 것들 중에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것들 때문에, 그것을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그 말씀 때문에 도리어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중도에 낙오하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 이 청년처럼 가진 것이 너무 많기에, 근심하며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가지 고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요즘 무엇이던지 많이 가진 사람들 잠 못이루고 있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청년은 주님께서도 흠을 잡을 수 없으리만큼 깨끗하고 모범적으로 살았다 고 봅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한 것만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청년처럼만큼 우리가 계명을 지키면서 살았다면, 오늘과 같은 사회에서 표장감입니다.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정직이 판을 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 청년은 도덕적으로 흠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이 젊은이에게 부족한 점은 율법을 다 지켰다고 자부한, 그것이 바로 부족한 점이었다는 것입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 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보화'는 영생을 바라는 모든 자들이 사모해야할 몫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하늘에 있는 보화 보다 땅위에 재물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오늘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 국의 돈의 절반이 서울 중앙에서 거래되고, 그것의 3/4 이 크리스천들의 손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라 경제의 틀을 짜고 다루는 핵심의 자리 에 크리스천들이 있는가 하면, 모든 권력의 핵심분야에 크리스천들이 들어있고, 복지문화정책의 중요자리에도 크리스천들이 다 들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 면, 오늘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점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아니 내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언제나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이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한국사회의 크리스천들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영생을 구하면서도 내면에서는 한가지 부족한 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위에서의 재물이라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재물이라는 것 때문에 영혼을 거슬러 살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의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 라고 했는데도, 이 세상의 온갖것을 가지려고 거기에만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께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아 니었습니다. 그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지만, 실은첫째 계명을 벌써 범한 것 을 주님은 지적하였습니다. 즉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으나, 이 청 년은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우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이 가난하게 살아야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청년에게는 재물이 우상이 되어 버렸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 보다 더 그것을 추구하는 그 것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즉 이미 가지고 있는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라는 권고였습니다. "그리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이것은 청년 자신 과 하나님의 뜻 사이의 바른 관계를 파괴하고 있는 그 소유물을 제거하도록 권 면한 말씀이었습니다.
3. 그러면 내게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오는 이유들이 다 있습니다. 모두가 기쁨과 희망 속에서 주님께 나아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주님의 말씀에서 도전을 받습니다. 잘 살게 해 달라고 나아갔더니 오히려 가난해 지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권력을 얻게 해 달라고 나아갔더니 오히려 낮은 자리에 처하라고 합니다. 돈 좀 벌게 해 달라고 나아갔더니 오히려 십일조를 바치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으뜸이 되려고 나아갔더니 도리어 섬기는 자가 되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이러한 도전을 받고 사람들은 다시금 세상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주님께 왔다가 다시 되돌아간 이 청년처럼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청년은 자기의 재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왔다가 다시 그 재 물로 되돌아갔습니다. 오늘도 이러한 경우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재물로 인하여 교회를 떠난 사람들, 재물 때문에 실족하여 신앙도 버리고 예수께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영생은 질문이 아니라 순종의 삶에서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늘에 보화를 쌓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기도하는 생활을 중단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 또 앞으로 계속하여 인도해 주기를 더 이상 간구하지 않는다. 3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낙심한 사람 을 권고하며,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일에 무관심하다. 그런 일 들은 마치 돈을 낭비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또한 낙심한 자를 찾아가 권고하는 것도 싫어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일들을 대신 맡아 감당하라고 목사를 고용 했으며 월급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모든 일에 항상 비판적이다. 목사와 교회 직원들의 잘못을 찾아 내어 비난하는 것으로 기분을 풀며 시간 을 보낸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 교회를 잘하게 봉사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5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 목사의 설교는 별로 들을 것이 없고, 성가대의 찬양은 시시하기 짝이 없으 며, 예배가 너무 단조롭고 지루하기 때문에 예배에 참여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고 생각한다. 6 그리스도를 떠난 믿음의 낙오자는 더 이상 헌금하지 않는다. 시간도 바쁘고, 지불해야 할 돈들도 많이 밀려 있을 뿐 아니라, 교회가 하는 일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헌금할 수 있겠는가 고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를 한번 이 물음에 대치시켜 6문제중 3문제 이상 해당한다면 벌써 시험 에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하고, 4문제 이상 해당된다면 믿음의 낙오자 반렬에 들 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 환자들에게서 가장 큰 불행은 자신의 병이 얼마나 깊어진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라고 합니다. 일찍 자각 증세를 느끼고 진 찰을 받았으면 넉넉히 고칠 병을 무감각하게 지내다가 회복 불능으로 떨어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음을 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 가지일 것입니다.
1. 본문에 보면 좀 특이한 문제로 예수님께 나아왔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영생(永生)에 관하여 그것을 주님께 문의하려고 나아왔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을 부를 때 '선한 선생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주님도 이 호칭이 못마땅하여 '네가 어찌 나를 보고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니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아마 이 청년은 예수님을 도덕적인 면에서만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편 자기의 도덕적인 의의를 은근히 들어 내려고 자랑 하려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사람을 청년 관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요즘 고시를 파 스한 엘리트였던 것 같습니다.(눅18:18) 아마 이 청년은 법관으로서 도덕적으 로 결함이 없이 계명을 잘 지켜온 줄로 압니다. 그래서 내가 또 부족 한 면이 무엇일까 하여 주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 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때 주님은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 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 라" 청년의 말이 "그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자신 있게 대답하였 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청년이었다고 봅니다. 계명을 어려부터 다 지켰다고 자 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주님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것 보면, 조금도 양 심에 가책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이러한 사람이라면 제일 모범적인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님께서도 마음을 통찰하시는 그분이 그를 사랑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거짓 없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훌륭한 청년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자랑속에 한 가지 부족한점을 발견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 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청년에게서 한가지 부족한 점은 재물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온갖 계명 을 다 지켰다는 것은 좋았는데, 그 계명이란게 대부분 <하지 말라>는 것뿐, 무 언가 <하라!>는 것에는 모자랐다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등등.이렇게 말라는것만 잘 지켰지, <주라!>, <사랑하라!> <베풀라!> 등의 <하라!>라는 적극적인 행위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청년에게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 나아왔다가 근심하며 되돌아간 이 청년처럼 중도에 낙 오자들이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왔던 사람들이 왜 되돌아서 갑니 까 이 청년에 물었던 우리 주님의 질문을 내게서도 적용시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2. 우리 믿는 사람에게도 한가지씩 부족한 점들이 다 있다고 봅니다.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 한 자들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어른 보면, 이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 있는 것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면 그러면 예수 믿으려면 재물은 하나도 없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다 면 난 예수 믿지 못하겠다고 지레 질겁을 하고 돌아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던것도 바로 그런 청년의 심리상태를 꿰뚫어 보셨던것입니다. 이 청년에게서 한 가지 부족한 약점이 있다 면 바로 그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었습니다. 유별하게 이 청년은 가진 재물을 지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재물이 우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읽어보면, 우리 주님이 무책임하게 이 청년에게 네 재산 다 팔아 가난한 자 들에게 나누어 주라고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네 삶을 책임 져 주겠다고 했습니다.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 허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고 하였습니다. '나를 좇으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렇게 하고 나에게 오면 내가 너를 책임져 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재물에 대한 개념을 바로 이해 하여야 하겠습니다.
원문에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단지 물질적 재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 그것 이 명예일수도 있고, 지식일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일수도 있고, 내가 가진 탈 런트일수도 있고, 나의 전문직의 기능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애착이 너 무 지나쳐 주님을 바로 따르지 못하고 근심하며 떠나가는 낙오자들이 될 수 있 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탈되는 것들 중에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것들 때문에, 그것을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그 말씀 때문에 도리어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중도에 낙오하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 이 청년처럼 가진 것이 너무 많기에, 근심하며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가지 고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요즘 무엇이던지 많이 가진 사람들 잠 못이루고 있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청년은 주님께서도 흠을 잡을 수 없으리만큼 깨끗하고 모범적으로 살았다 고 봅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한 것만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청년처럼만큼 우리가 계명을 지키면서 살았다면, 오늘과 같은 사회에서 표장감입니다.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정직이 판을 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 청년은 도덕적으로 흠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이 젊은이에게 부족한 점은 율법을 다 지켰다고 자부한, 그것이 바로 부족한 점이었다는 것입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 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보화'는 영생을 바라는 모든 자들이 사모해야할 몫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하늘에 있는 보화 보다 땅위에 재물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오늘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 국의 돈의 절반이 서울 중앙에서 거래되고, 그것의 3/4 이 크리스천들의 손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라 경제의 틀을 짜고 다루는 핵심의 자리 에 크리스천들이 있는가 하면, 모든 권력의 핵심분야에 크리스천들이 들어있고, 복지문화정책의 중요자리에도 크리스천들이 다 들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 면, 오늘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점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아니 내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언제나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이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한국사회의 크리스천들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영생을 구하면서도 내면에서는 한가지 부족한 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위에서의 재물이라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재물이라는 것 때문에 영혼을 거슬러 살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의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 라고 했는데도, 이 세상의 온갖것을 가지려고 거기에만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께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아 니었습니다. 그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지만, 실은첫째 계명을 벌써 범한 것 을 주님은 지적하였습니다. 즉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으나, 이 청 년은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우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이 가난하게 살아야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청년에게는 재물이 우상이 되어 버렸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 보다 더 그것을 추구하는 그 것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즉 이미 가지고 있는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라는 권고였습니다. "그리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이것은 청년 자신 과 하나님의 뜻 사이의 바른 관계를 파괴하고 있는 그 소유물을 제거하도록 권 면한 말씀이었습니다.
3. 그러면 내게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오는 이유들이 다 있습니다. 모두가 기쁨과 희망 속에서 주님께 나아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주님의 말씀에서 도전을 받습니다. 잘 살게 해 달라고 나아갔더니 오히려 가난해 지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권력을 얻게 해 달라고 나아갔더니 오히려 낮은 자리에 처하라고 합니다. 돈 좀 벌게 해 달라고 나아갔더니 오히려 십일조를 바치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으뜸이 되려고 나아갔더니 도리어 섬기는 자가 되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이러한 도전을 받고 사람들은 다시금 세상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주님께 왔다가 다시 되돌아간 이 청년처럼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청년은 자기의 재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왔다가 다시 그 재 물로 되돌아갔습니다. 오늘도 이러한 경우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재물로 인하여 교회를 떠난 사람들, 재물 때문에 실족하여 신앙도 버리고 예수께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영생은 질문이 아니라 순종의 삶에서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늘에 보화를 쌓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