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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창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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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학교 마지막날에 오신 신입생여러분들은 특히 지난 2틀동안 왔었던 새내기보다 더 복이 많은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시간 인생의 엄청난 비밀에대해 이야기하고자 하기때문입니다. 이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살아갑니다. 행복해 질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돈을 벌고 공부하고 연애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을 볼때 만족해 하지 못하고 여전히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것을 봅니다. 우리 새내기 여러분들은 요즘 매우 바쁠것 같습니다. 축하해준다는 모임이 한둘이 아닐것입니다. 그래서 이모임 저모임 찾아다니며 선배들을 익히고 대학에 대해 실제적을 배우고 또,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줏대없이 그냥 왔다갔다 하면 이제 1주일이 지났던것처럼 1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게 됩니다. 그러게 되면 나중에 가선 결국 닭쫗던개 뭐만 쳐다본다고 지붕만 쳐다보고 허탈해지게됩니다. 그래서 신입생에게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깊이 사색하는 것이 시간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실존에 대해 알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는어떤 존재인가/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에서는 나의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이야기하는지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1.생기를 불어 넣으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는 어제 1강에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해 날짜별로 배웠습니다. 2장말씀은 여기에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신때에는 땅에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경작할 사람도 없었고 들에는 초목도 없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개만이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흙과 하나님의 생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한번 잘 들어보십시오! 흙은 인간의 육체를 가리키고 생기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가리킵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육체를 흙으로 표현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시편103편에서는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질흙임을 기억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고 전도서에는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니다 흙으로 돌아리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육체는 14가지의 중요한 화학원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모든 요소는 흙의 성분과 같다고 합니다. 육체는 흙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육체의 존재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단지 인간이 흙과 같은 존재라면 허망하겠지만, 인간은 ‘흙으로 된 살아 숨쉬는 영혼의 존재’입니다. 얼마나 신비하고 묘한 일입니가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은 영혼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고. 동뮬은 육적인 존재이지만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함께 소유한 존재입니다.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옷을 입고 잠도 자지만 , 또한 영혼의 존재로서 영적 기쁨, 영적 만족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생명의 참 주인이시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자신 또는 부모님이 생명의 주인인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땅에있는 부모를 통해서 나왔지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도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2.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8-17)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을 위하여 특별히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에덴이란 delight 즉‘희락 유쾌함 기쁨’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인간이 희락의 동산, 에덴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도 놀라운가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 에덴동산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첫째, 보기에 좋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의식주문제는 인간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먹는문제는 우리들에게 가끔씩 즐거움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대건목자님은 식사할때 말리지 않으면 3그릇이고 4그릇이고 행복하다고 계속먹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먹는문제를 제일 먼저 해결해주셨습니다. 즉, 경제문제가 해결해 주신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공부도 안되고 말씀도 눈에 안들어 옵니다. 이때 돈마저 없으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져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온갖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한쪽손을 살며시 들기만 하면 손에는 이만-한 파인애플, 과 바나나가 잡혔습니다. 그맛또한 그가막힐 정도입니다. 이 정도가 아닙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탈이 안나고 모두 저칼로리이기때문에 걱정없이 먹어도 됩니다. 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먹는문제! 전혀 걱정없습니다.그러나 요즘 세상은 어떠합니까 먹는 문제때문에 평생일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에도 몇백명씩 죽어가는데 미국에서는 남아돌아서 바다에 버리는 실정입니다.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대학생들의 주된 관심은 취직입니다. 어떤 토목과 신입생에게 장래 포부가 뭐냐고 물어보았더니 한국도로공사에 취직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님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젊은이여! 비젼을 보리라!’ 외쳐보라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도로공사를 꿈꿉니다. 인생의 기본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기본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먹는문제로 하루종일 일할필요없이 자연을 잘관리하고 1:1 성경공부만 하면 됩니다.
둘째,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9b를 보십시오. ‘동산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생명나무는 영생하게 해주는 나무입니다. 죽음 문제 또한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있어 매우 심각한 이야기 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왠지 슬퍼지고 허무해 집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죽음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낭떠러지 입니다. 이 죽움이라는 것에 대해 일찌기도를 터득한 진시황은 불노초를 찾기 위해 많은 신하들은 전세계로 보냇습니다. 그러나 그도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요즘도 군에 가면 사고로 죽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죽음’ 죽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명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이 열매를 따먹으면 10년씩 생명이 연장되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또 늙지도 않아서 모두 28청춘입니다. 생명나무외에 선악과 나무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나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인지는 나와았지 않습니다. 저는 조그마할때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사고나무로 배운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이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질서를 세워주며 에덴의 행복을 약속해 주는 나무입니다.
셋째, 아름다운 환경이 있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에덴동산에는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라는 4개의 강이 있었습니다. 강은 문명의 젖줄기라고 합니다. 고대 4대문명이 강주변에서 일어났기때문입니다. 에덴은 이 4개의 강으로 인해 축복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강들은 에덴동산을 굽이굽이 돌며 강주위의 식물들에게 신선한 생수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또 그주위에는 베텔리엄과 호모노와 같은 보석과 정금들이 모래사장같이 널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반짝하면 저-기서 반짝,반짝거렸습니다. 물도 얼마나 깨끗한지 속이 다보이고 그속에는 금붕어,,은붕어, 노랑붕어 빨강붕어 등 온갖 종류의 고기들이 헤엄치고 다녔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곳에서 마음껏 헤임치며 고기들과 놀았을 것입니다. 놀다가 갈증이 나면 물을 한모금 마셨습니다. ‘캬-물맛좋-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곳에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없었습니다. 사자와 어린양이 뛰놀고 고양이가 쥐와 함께 강강수월래를 추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뱀의 꼬리를 밟아도 뱀은 화를 전혀 화내지않고 인내함으로 어린아이의 실수를 감싸주었습니다. 모두들 은혜스럽게 지냈습니다. 반면 요즘세상은어떻습니까 곰을 잡아 쓸개를 빼먹지 않나, 개를 잡아 보신탕해먹지 않나!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지 않나!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지 않나! 연일 뉴스에는 전쟁과 다툼과 살인사건이 그치질 않습니다. 그러나 에덴에는 오직 평화와 사랑만이 있습니다. 기쁨과 행복만이 있습니다.
네째, 사명이 있는곳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번에 인간에게 사명을 주셧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그러면 인간에게 왜 사명을 주셨을까요 우리는 낙원하면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곳으로만 생각하기쉽습니다. 그래서 report도 없고 시험도 없고 매일 party만 있으면 정말 행복할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먹고 잠만자게 되면 무기력하게 되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행복해 지기위한 내적인 조건으로는 무엇보다 할일,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1년동안 편하기는 하지만 나중에가면 보람이 없습니다. 사명인의 삶은 힘이 들긴하지만 보람이 있는삶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으로 부터 한평생동안 해야 할일, 사명을 받고 태어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명을 발견하고 뜻깊은 인생을 살수 있길 기도합니다. 다섯째, 계명의 말씀이 있는곳이었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네가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죽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이 대목에대해 오해를 하고 의문점을 재시합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 나무를 만들어서 인간이 죄에 빠지게 했는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줄 아시지 않았는가 인간을 속박하시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런질문들은 이 계명이 주는 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여기에는 큰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영적 질서입니다 16절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계명을 주시기전에 먼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음을 볼수 있습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임의로 라는것은 제한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 자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매우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즉 인간이 자유의지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판단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고 거역하는것마저, 오늘같이 성경학교에 오는것도 인간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17절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날에는 정녕죽으리라’ 이말씀의 의미를 잘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고 나서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될때는 정녕죽으리라고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절대성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책임성을 강조하신것입니다. 아무리 자유의지속에서 산다고 할찌라도 피조물이 창조주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질서파괴는 곧 죽음입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것은 인간과의 질서를 지키고 인간이 참자유를 가지고 영원한 평화를 누리도록 하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상 에덴동산을 볼때 참으로 아름다운 곳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런 에덴동산에서 하루만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동산은 현재 지구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가지도 못할 에덴동산에 대해 왜 배웁니까 topic을 한번 보십시오.‘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몰래 딴곳에다 숨겨놓으셧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의 에덴동산을 예수님안에 남겨 두셨습니다. 이 예수님안에는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많은 열매들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이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단번에 사하셨기 때문에 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나 태초의 에덴동산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안에는 시기와 미움없이 오직 사랑과 화평과 진리와 행복이 가득합니다. 어떤 불행한 사람일지라도 이 예수님안에만 오면 저기 앉아 계시는 이성옥목자님보다 더 크게 웃으며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예수님안에 와서 에덴의 행복을 누리게된 사람중의 한 사람입니다.
저는 1974년 산좋고 물맑은 양양, 본문에 나오는 에덴과 같은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봄이면 소를 몰고 들로 나갔고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아 날로 먹으면 점심을 때웠습니다. 겨울이면 친구들과 비료푸대를 가지고 산으로가 신나게 썰매를 타고 놀았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밑에서 착하고 씩씩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죽음은 어린저에겐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치암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시고 어느날 저를 불러 손을 꼭 잡으시더니 잠시후 창고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하셨습니다. 저는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다시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것때문에 며칠동안을 울었습니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부터는 할머니를 떠나 부모님과 함께 살앗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저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술을 드셨고 그러면 어김없이 어머니와 싸우셨습니다. 저는 그럴때 마다 건넌방 책방밑에 들어가 서러워서 울어야 했습니다. 한번은 얼마나 심하게 싸우셨는지 어머니가 가출까지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불쌍해 눈물을 흘리며 우리집은 왜 이모양인가 옆동네 누구네 집은 부모님이 그렇게 화목하시던데 하며 우리집을 저주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쌍한 우리 엄마을 호강시켜드리고 효도해드려야 겠다고 결심하엿습니다. 고등학교때는 학교가 멀어서 2학년때부터 하숙을 하엿습니다. 농사짓는 집에서 하숙을 시키자니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맛살공장에서 하루 10시간, 12시간씩 일을 하셔야 햇습니다. 또 그것도 모잘라서 제가 집에 갈때마다 동네에서 돈을 꿔 오셨습니다. 저는 나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할때마다 자신을 귀하게 여길수 없었습니다. 공부도 못하면서 돈만 축내어 어머니만 고생시키는 불효자로 여겼습니다. 부모님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심지어는 상스러운 욕까지 오고갔습니다. 또 이때마다 한쪽구석에서 우시는분은 항상 어머니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만 없으면 어머니가 고생하지 않아도 될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밤 12시에 속초 바닷가에 나가 여러번 죽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서 죽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용기없는 자신에 대해 더욱 자학하며 점점고여들어가는 내 인생에 대해 슬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도 그나만 공부를 조금하여 92년에 강원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합격의 기쁨에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대학생활에 충실하였습니다. 개강파티, 신입생환영회, 동문회, MT등 모든모임에 100%참석하였습니다. 선배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젊은 저의 피를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낭만을 즐겼습니다. 또 외성적인 저는 여러모임에서 튀어서 선배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제가 노래를 부를때면 선배들은 비명과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저는 영웅심리에 더욱더 남들앞에서 광대노릇을 하였습니다. 이때 선배들은 저에게 ‘너와 같이 대학생활하면 후회하지 않을꺼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면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몇달을 지내고 나자 저의 마음에는 허탈감과 허무감만이 들었습니다. 의미있고 낭만있는 삶을 살고자 여기저기 쫗아다니고, 또 인정도 받았지만 남는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허탈감을 달랠길이 없이 기숙사 베렌다에서 5월의 달빛을 보면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나의 허전한 마음과 행복을 채워줄 곳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나의 인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죽음 권세에 시달려 자살하고자 하엿습니다. 그러나 차마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학기초부터 성경공부를 하던 저에게 목자님이 MT수양회에 초청하였습니다. 저는 기분도 전환할꼄 가벼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수님은 말슴하셨습니다. 눅2:17절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러왔노라’ 저는 이 말씀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허무감과 자살로 병든 자신을 깊이 발견하였습니다. ‘아! 내가 병든자구나!’ 이때 저의 마음에는 의사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감동되어 뜨거운 눈물이 저의 마음을 적시었습니다. 저느 더이상 허무해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머니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에덴동산의 그 아름다움이 저의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후 저는 말씀공부도 꾸준히 하고 소감도 잘 발표하여서 잘나가는 양이요 목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근본문제가 치료되고 에덴동산이 마음에 그려지니 학과에서도 여러번 장학금을 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만나주시사 나의 행복이 어디있는지 발견하게 해주신 하나님을 높이 찬양합니다. 우리 신입생 여러분들이 이 예수님안에서 행복을 찾아 승리하는 대학생활, 기쁨이 넘치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3.돕는 베필을 주신 하나님(18-25) 하나님은 지으신 모든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다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독처하는 것은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셨습니다. 즉 아담에게 장가를 보내주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결혼의 의미에대해 배울 수 잇엇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아담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혼자서 밥을 해먹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19절을 보면 아담은 각종새들과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돕는 베필을 주신동기는 하나님의 사명을 더욱 잘 감당하도록 하게 하기 위함임을 볼 수 있습니다. 성서적 의미에서 베필은 돕는자(helper)함께 일하는자)coworker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베필의 의미를 잘 모르고 여자는 마치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사람, 자식을 낳아 가문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욕에따라 마음에 들면 결혼하고 아닌것같으면 이혼합니다.그래서 자녀들에게 상처를많이 줍니다. 가정에서 여자의 돕는 역할을 매우 중요합니다. 또 여자가 형제를 돕기 위해서는 더 성숙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인간적으로 매일 바가지만 긁는다면 돕기는커녕 힘만 빼놓게 됩니다. 그러나 여자가 잘 감당해줄때 형제가 부족하더라도 잘 동역할수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은 돕는 베필을 만드실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취하여 그것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빗대로 여자를 만드신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담의 발가락으로 여자를 만들었다면 여자는 평생 남자의 발밑에서 지배당하면 살아야 할것입니다. 또, 아담의 머리뼈로 만드셨다면 남자위에 굴림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을 보호하는 갈빗대로 여자를 만듦으로 서로 보호해주면 감싸주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남자는 강하고 듬직합니다. 그래서 여자를 보호하고 감당할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속이 빈존재입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자는 갈빗대처럼 연약합니다. 보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남자에게 필요한 섬세함과 어머니의 사랑과 품어주는 넓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강한 남자를 움직이고 키울 수 있는 힘이됩니다. 왜 이런말이 있지 않습니까 ‘천하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다 그러나 남자를 움직이는것은 여자다’ 아주적절한 표현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여자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남자라고 빨래 못하냐’이렇게 되면 곤란하게 됩니다. 진정한 남녀평등이 하나님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또 이때 남편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아내도 남편을 잘돕게 됩니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례사였고 에덴동산의 모든 생물이 방청객이었습니다. ‘딴딴따다 딴딴따다’ 신랑인 아담이 입장하였습니다. 그뒤로 신부인 하와가 입장하엿습니다. 아담은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부를 맞이하는 아담의 첫말이 무엇입니까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곧이어 하나님이 주례말씀으로 ‘연합’이라는 message를 전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 이때 두 사람이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비밀이나 감추임없이 없이 하나님 사랑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볼때 에덴동산은 아름답고 부족함이 없는곳입니다. 경제문제가 해결되고 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이 있고 사명도 있고 동역할 동역자도 있습니다. 이 에덴은 믿는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요 장차 하늘나라의 모형입니다.
이 에덴동산은 하나님을 알고 따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이야기만 하면 속으로 웃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이나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강하기때문에 하나님같은 분은 필요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에덴동산이 없습니다. 마음에 교만과 시기와 질투와 정욕과 염려가 가득합니다. 기쁨이 있다손 치더라도 잠시뿐입니다. 술먹을때는 기뻣다가도 아침이 되어 술이깨고 나면 속만 쓰려옵니다. 돈을 쓸때는 기뻣다가도 다 쓰고나면 허탈합니다. 여자친구와 미팅할때는 기뻣다가도 헤어지고나면 아쉽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4학년들은 1학년때를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는데’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어디 추억치고 아름답지 않은 추억잇습니까 중요한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하나님을 알때 그 마음에 기쁨이 지하수처럼 콸콸콸 솟아납니다. 세상에 이런 기쁨과 행복이 어디있단 말입니까 우리 새내기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 기쁨과 행복에서 나오는 내적인 힘으로 승리하는 대학 생활을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한마디:‘ 행복이 하나님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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