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자는 이러하니라 (마9:14-17)
본문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말하기를 우리와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라고 질문을 하였다. 본문 의 말씀은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시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내심으로 '나의 제자는 너희들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와 같지 아니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의 제자는 어떠한 자들인지 그 제자 된 사람들의 신앙 사상과 주님의 제자 훈련의 목표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상고함으로 피차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의혹 본문에는 요한의 제자와 바리새인의 제자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이렇게 세 부류의 제자가 나옵니다. 그러나 실은 예수님의 제자와 다른 제자, 이렇게 두 부류의 그룹으 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예수님의 제자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요한의 제자들이 볼 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금식 기간인데도 금식을 하 지 않고 안식일인데도 안식일을 저희들처럼 지키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많은 의혹을 싸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이 질문은 그 많은 의혹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질문 이상으로 어쩌면 정죄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때 가 유대사람들의 금식 기간이었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학자 들의 말대로 이 때가 금식기간이라고 한다면 금식기간에 또한 지금 있는 곳이 마태의 잔치집이든지 아니면 그 이후 또 다른 어떤 집에서의 연회이든지 간에 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금식이라는 의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그야말로 먹고 마시는 사람들 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 주님의 답변 그러나 주님은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답변하신 것입니다.
1). 내 제자들도 금식할 때가 되면 금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금식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2). 생베 조각을 헌옷에 붙이는 자가 없으며,
3).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하며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져 둘 다 버리게 된다는 말씀으로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 대 답들 중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말은 오늘날 격언으로도 널리 알려져 믿지 않는 사람들도 즐겨 사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믿는 우리는 이 말씀을 단 순한 비유의 말씀으로만 생각하고 더 이상 깊은 뜻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잘못 된 점도 있었습니다. 이 시간 이 말씀 하나 하나를 자세히 살피면서 그 속에는 주님의 의지에 찬 깊은 뜻을 깨닫고, 이들 뿐만 아니라 오늘 주님의 제자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으로 듣고 이 말씀을 우리 모두의 신앙의 초석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3.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기대 그 세 가지를 상고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기대가 어 느 정도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에 대한 기대가 대단히 크신 분이십니다. 제자는 스승의 뒤를 이어 스승의 가시던 길을 이어받아 그 도의 길을 계승 발전 시 켜야할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책임이 더욱 큽니다. 만약 이 제자들이 예수님 승천 후에 다 흩어져 다시는 이 복음을 위해서 살지 않고 어부는 어부의 길로 세리는 세관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고 하면 이 세상은 다 시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신앙관과 외식의 신앙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예수님의 도성인신과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물 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며, 이 부활의 도는 한낱 사이비한 몇몇 사람들의 허공을 치는 말에 지나지 않는 허무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이 열두 제자만큼 귀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 또한 어떤 능력을 행하시고 세계 가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하신다고 해도 제자 잃으면 어쩌면 전부를 잃는 것과도 같 기 때문에 세상의 무엇을 준다고 해도 이 제자들과는 바꾸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은 앞으로 귀신을 물리치며 병자들을 낫게하며 가는 곳마다 천국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며 많은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고 이 일을 하는데는 많은 수고와 고난을 이겨야하며 나중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 의 제물까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신앙의 사람, 순교의 사람으로 키워야할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 훈련의 방법과 그 목표는 비장하리 만큼 크고 대단할 것 입니다.
4. 주님이 강조한 세 가지 제자 모범 이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주님의 비장한 제자 훈련의 목표를 밝힌 말씀으로 보아도 잘못됨이 없을 것으로 깨달아 집니다. 이런 제자로 양육하시는 주님이 첫 번째로 그 들이 질문한 내용에 따라 주님의 제자를 기도하는 제자로 키울 것입니다.
1). 금식하는 주의 제자 그래서 그 첫 번째로 나의 제자들도 혼인집 신랑을 잃을 때가 되면 금식할 것이란 말씀으로 비유하셨는데, 이 말씀은 주님의 제자들도 금식할 때가 되면 금식을 할 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식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으로 도리어 금식한다 고 하는 요한의 제자들의 잘못된 금식관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금식의 예를 성경에서 몇 곳 찾아보면, 사사기 20:26절에 이스라엘이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패전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금식했고, 사무엘의 미스바 회개 운동 때 온 이스라엘이 금식했고, 아합이 엘리야의 저주와 같 은 예언을 들었을 때 그는 금식을 하였고, 니느웨성민들이 요나의 음성을 듣고 나서 왕으로부터 신하까지 사람으로부터 짐승까지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못하게 하는 대 금식령이 내려지게 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것이 기록 되어있습니다. 이 금식은 모두 그 원인이 있었고 그 이유에 걸맞게 그들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6:16절에 이미 주님이 언급하신 바와 같이 바리새인들의 금식은 이미 외식의 금식으로 판명이 났고 주님은 그러한 외식적 금식 은 할 필요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제자들은 금식할 때가 있으리니 곧 신랑을 뺏길 날이 올 때 그때가 되면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금식할 날은 신랑을 뺏긴 날이 될 것 입니다. 여기 신랑은 주님 자신을 의미하며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되면 제자 들도 금식하면서 부르짖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오순절 성령님 강림 이전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와 간구에 전념할 때 금식을 하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들은 전 혀 기도에 힘썼다는 기록으로 보아 금식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때의 기도가 금식이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보다는 그들은 금식보다 더한 '간절한 마음으 로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의 제자 바리 새인의 제자들처럼 외식적 금식이 아니라 전혀 기도에 힘쓴 것은 그들이 당신의 제자 들은 어찌하여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된 기도요 참으로 하나님이 들으신 표적이 후에 나타나게 된 응답받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는 기도할 때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전혀 기도와 간구에 힘섰으며, 주님의 제자들은 사생결단의 자세로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 으신 표적의 역사도 오순절과 감옥 등에서 많이 나타난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기도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기도 해야 할 때는 또 언제 입니까 신랑을 뺏긴 날입니다. 신 랑은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십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뺏길리는 없으나 우리에게 빛이 어두워지고 성령님의 충만이 없어지고 점점 어두움의 세력이 나를 덮을 때는 바로 신랑을 뺏긴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때는 우리 성도들이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엘리야는 왕상 18:22절에 여호와의 선지자는 다 죽고 나만 홀로 남 았다고 할 때 그때가 어두움의 때요, 아가서 4:6절에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라"고 하신 말씀처럼 빛보다 어두움의 세력이 강하여 빛은 힘을 잃고 쓰러지고 어두움의 세력이 활개를 칠 때가 바로 날이 기울고 그림자 가 갈 때인 것입니다. 이때는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야 합니다. 이는 그들과 같이 부패하지 말고 유향(기도)의 산으로 들어가라는 지혜의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기도를 해야합니다. 더욱이 우리에게 진리와 영감이 빛을 잃을 때,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깨어 금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식하는 성도와 교회가 됩시다.
2.)둘째로 나의 제자는 생베이리라 주님의 제자는 생베와 같은 신자입니다. 생베를 낡은 옷에 붙여 기우면 낡은 것이 더욱 헤어져 쓰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생 베를 낡은 옷에 붙이지 않겠다는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여기의 생베는 당연히 주님의 제자를 가르치고 낡은 옷은 옛사람들의 유전을 가르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키는 유전은 낡은 것으로 이제 떨어져 누더기가 되었으므로 주님의 제자를 그 낡은 옷에 붙이지 않겠다는 말씀인데, 여기서 주님은 '나의 제자는 생베니라'라는 뜻의 말씀인 것입니다. 생베란, 1빳빳한 새 천을 말합니다. 새 천이면서도 빳빳하여 구겨지지도 않고 두꺼운 천, 비유하자면 빳빳한 청바지 천 이나 풀먹인 광목과도 같은 천을 가리킵니다. 빳빳하다는 말은 지조 있는 신앙을 말 합니다. 내 제자는 생베이다. 생베는 빳빳하다. 즉 지조가 있다.고 주님은 힘주어 말씀 하신 것입니다. 엷은 천을 바로 세우려고 하면 옆으로 곧잘 쓰러지고 구겨지지만 이 생베는 잘 쓰러지지 않는 특징이 있듯이 나의 제자는 신앙의 지조가 있어 그 어떤 유 혹과 협박에도 넘어지지 않는 자들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엔 낡은 베 운동이 강하여 모두를 자기들과 같이 낡은 신앙의 사람이 되도록 유 혹하고 협박하지만, 나의 제자들은 어떤 낡은 베가 끌어당기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낡은 베가 헤어지면 헤어졌지 내 제자는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일제시 대 신사참배운동을 하던 목사들은 낡은 옷인 것입니다. 그때에 주기철 주남선 이기선 백영희 목사님등은 그들의 어떤 탄압과 협박에도 그 신앙의 절개를 지키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참으로 생베와 같은 주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성경의 예로 보면 요셉이 생베라면 보디발의 아내는 낡은 베요 다니엘과 그의 세 친 구가 생베라면 그 방백은 낡은 베요, 또한 스데반이 생베라면 바리새인들이 낡은 베 인 것입니다. 이들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기지 아니한 지조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2생베는 참신성이 있습니다. 생베는 새것입니다. 참신합니다.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 좀더 자세히 상고하겠지만 주의 제자들은 주님이 나를 따르라 하실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은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많은 설교와 능력을 보고도 아직 까지 주를 믿지 못하고 반대하고 의심하는 신앙의 참신성이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는 이 참신성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어제에 머무르지 말고 오늘날 성령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마치 옹달샘에서 새물이 계속 솟아 나오듯 또는 성전 문지방에서 스미어 나오는 그 새물을 날마다 받아 마시듯 늘 새 은혜와 새 말씀에 충족한 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몇 십 년 전에 목사님들이 설교 한 그 설교 붙들고 더 이상의 전진이 없는 것은 참신성이 없는 낡은 옷인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이 참신성이 있어서 날마다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에 놀라고 그 새 은혜 에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세 번째로 내제자는. 새포도주요 새부대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포도주와 부대의 원리를 가지고 자신의 제자들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1계속 발효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팽창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잘 늘어나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묵은 포도주는 더 이상 의 발효가 없어 팽창하지 않으므로 이것은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다 해도 아무런 문제 가 없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제자는 새 포도주 이다. 그래서 발효한다.는 뜻의 말씀인 것입니다. 발효한다는 것은 변화를 상징합니다. 즉 주님의 제자는 진리와 성령님의 역사로 날마다 자라가고 변화해 가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아무리 주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대한 변화는커녕 반대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변화란 전혀 기대 할 수 없었 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듣는 대로 변하고 자기 개혁을 단행하는 사람들이었 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바로 믿는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 그 마음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여 날마다 새 사람이 되어 거룩하고 흠 없는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줄로 압니다. 이 변화가 없는 자는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2주님의 제자는 자꾸 팽창하는 자입니다.-자라가고 많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는 신앙이 자라가고 행위(점점 깨끗해짐)가 전보다 자라가고 그 능력(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힘)이 자라가며, 열매가 자라가야 합니다. 자라가지 않고 정지 된 사람은 주님의 옳은 제자가 아닙니다. 어디까지 자라 가느냐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장성하여야 합니다. 3새 맛을 낼 것입니다. 이것은 그 맛을 보는 자가 새 기분과 새 힘을 얻게 되는 것 을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 힘을 줍니다. 신앙이 없던 사람은 새 신앙이 생기고 병들었던 사람은 고침을 받고 소망이 없던 사람은 새 소망이 넘쳐 소망 가운데 생활하도록 날마다 새 맛을 내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의 제자들은 만나는 사람을 다 병들게 하고 그리스도를 원수로 생각하게 하며 같이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에 동참을 시키는 결과를 맺게 됩니다. 마치면서. 이상의 여러 가지가 구비 된 자로 주님은 자기 제자를 만드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인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제자들이 능히 이 일들을 해 줄 줄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생베와 같은 사람이었고 새 포도주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이 제자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도 이 세 가지였습니다. 우리 성도의 자랑도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도록 이 셋으로 자신을 다시 점검해 보고 내 제자는 이러한 자 가 되어라고 주님이 부탁하셨는데 우리는 기도하지 아니했고 생베 같지 못하였고 새 포도주 같지 못하였다면 주님 앞에 부끄럽게 서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귀한 주님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니 주의 제자로서 부끄럼이 없는 제자들이 되도록 기도할 때는 기도합시다. 그리고 생베가 됩시다. 발효하고 변화하고 자 라가며 새 맛을 내는 새 포도주가 됩시다. 이것이 없으면서 주의 제자라고 말하지 맙 시다. 또한 이것이 없이는 이 악한 세대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이 셋 을 다 갖추는 칭찬 받는 주님의 제자들이 됩시다.
1.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의혹 본문에는 요한의 제자와 바리새인의 제자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이렇게 세 부류의 제자가 나옵니다. 그러나 실은 예수님의 제자와 다른 제자, 이렇게 두 부류의 그룹으 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예수님의 제자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요한의 제자들이 볼 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금식 기간인데도 금식을 하 지 않고 안식일인데도 안식일을 저희들처럼 지키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많은 의혹을 싸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이 질문은 그 많은 의혹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질문 이상으로 어쩌면 정죄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때 가 유대사람들의 금식 기간이었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학자 들의 말대로 이 때가 금식기간이라고 한다면 금식기간에 또한 지금 있는 곳이 마태의 잔치집이든지 아니면 그 이후 또 다른 어떤 집에서의 연회이든지 간에 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금식이라는 의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그야말로 먹고 마시는 사람들 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 주님의 답변 그러나 주님은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답변하신 것입니다.
1). 내 제자들도 금식할 때가 되면 금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금식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2). 생베 조각을 헌옷에 붙이는 자가 없으며,
3).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하며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져 둘 다 버리게 된다는 말씀으로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 대 답들 중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말은 오늘날 격언으로도 널리 알려져 믿지 않는 사람들도 즐겨 사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믿는 우리는 이 말씀을 단 순한 비유의 말씀으로만 생각하고 더 이상 깊은 뜻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잘못 된 점도 있었습니다. 이 시간 이 말씀 하나 하나를 자세히 살피면서 그 속에는 주님의 의지에 찬 깊은 뜻을 깨닫고, 이들 뿐만 아니라 오늘 주님의 제자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으로 듣고 이 말씀을 우리 모두의 신앙의 초석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3.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기대 그 세 가지를 상고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기대가 어 느 정도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에 대한 기대가 대단히 크신 분이십니다. 제자는 스승의 뒤를 이어 스승의 가시던 길을 이어받아 그 도의 길을 계승 발전 시 켜야할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책임이 더욱 큽니다. 만약 이 제자들이 예수님 승천 후에 다 흩어져 다시는 이 복음을 위해서 살지 않고 어부는 어부의 길로 세리는 세관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고 하면 이 세상은 다 시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신앙관과 외식의 신앙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예수님의 도성인신과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물 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며, 이 부활의 도는 한낱 사이비한 몇몇 사람들의 허공을 치는 말에 지나지 않는 허무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이 열두 제자만큼 귀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 또한 어떤 능력을 행하시고 세계 가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하신다고 해도 제자 잃으면 어쩌면 전부를 잃는 것과도 같 기 때문에 세상의 무엇을 준다고 해도 이 제자들과는 바꾸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은 앞으로 귀신을 물리치며 병자들을 낫게하며 가는 곳마다 천국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며 많은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고 이 일을 하는데는 많은 수고와 고난을 이겨야하며 나중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 의 제물까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신앙의 사람, 순교의 사람으로 키워야할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 훈련의 방법과 그 목표는 비장하리 만큼 크고 대단할 것 입니다.
4. 주님이 강조한 세 가지 제자 모범 이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주님의 비장한 제자 훈련의 목표를 밝힌 말씀으로 보아도 잘못됨이 없을 것으로 깨달아 집니다. 이런 제자로 양육하시는 주님이 첫 번째로 그 들이 질문한 내용에 따라 주님의 제자를 기도하는 제자로 키울 것입니다.
1). 금식하는 주의 제자 그래서 그 첫 번째로 나의 제자들도 혼인집 신랑을 잃을 때가 되면 금식할 것이란 말씀으로 비유하셨는데, 이 말씀은 주님의 제자들도 금식할 때가 되면 금식을 할 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식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으로 도리어 금식한다 고 하는 요한의 제자들의 잘못된 금식관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금식의 예를 성경에서 몇 곳 찾아보면, 사사기 20:26절에 이스라엘이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패전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금식했고, 사무엘의 미스바 회개 운동 때 온 이스라엘이 금식했고, 아합이 엘리야의 저주와 같 은 예언을 들었을 때 그는 금식을 하였고, 니느웨성민들이 요나의 음성을 듣고 나서 왕으로부터 신하까지 사람으로부터 짐승까지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못하게 하는 대 금식령이 내려지게 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것이 기록 되어있습니다. 이 금식은 모두 그 원인이 있었고 그 이유에 걸맞게 그들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6:16절에 이미 주님이 언급하신 바와 같이 바리새인들의 금식은 이미 외식의 금식으로 판명이 났고 주님은 그러한 외식적 금식 은 할 필요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제자들은 금식할 때가 있으리니 곧 신랑을 뺏길 날이 올 때 그때가 되면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금식할 날은 신랑을 뺏긴 날이 될 것 입니다. 여기 신랑은 주님 자신을 의미하며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되면 제자 들도 금식하면서 부르짖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오순절 성령님 강림 이전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와 간구에 전념할 때 금식을 하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들은 전 혀 기도에 힘썼다는 기록으로 보아 금식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때의 기도가 금식이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보다는 그들은 금식보다 더한 '간절한 마음으 로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의 제자 바리 새인의 제자들처럼 외식적 금식이 아니라 전혀 기도에 힘쓴 것은 그들이 당신의 제자 들은 어찌하여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된 기도요 참으로 하나님이 들으신 표적이 후에 나타나게 된 응답받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는 기도할 때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전혀 기도와 간구에 힘섰으며, 주님의 제자들은 사생결단의 자세로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 으신 표적의 역사도 오순절과 감옥 등에서 많이 나타난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기도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기도 해야 할 때는 또 언제 입니까 신랑을 뺏긴 날입니다. 신 랑은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십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뺏길리는 없으나 우리에게 빛이 어두워지고 성령님의 충만이 없어지고 점점 어두움의 세력이 나를 덮을 때는 바로 신랑을 뺏긴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때는 우리 성도들이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엘리야는 왕상 18:22절에 여호와의 선지자는 다 죽고 나만 홀로 남 았다고 할 때 그때가 어두움의 때요, 아가서 4:6절에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라"고 하신 말씀처럼 빛보다 어두움의 세력이 강하여 빛은 힘을 잃고 쓰러지고 어두움의 세력이 활개를 칠 때가 바로 날이 기울고 그림자 가 갈 때인 것입니다. 이때는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야 합니다. 이는 그들과 같이 부패하지 말고 유향(기도)의 산으로 들어가라는 지혜의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기도를 해야합니다. 더욱이 우리에게 진리와 영감이 빛을 잃을 때,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깨어 금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식하는 성도와 교회가 됩시다.
2.)둘째로 나의 제자는 생베이리라 주님의 제자는 생베와 같은 신자입니다. 생베를 낡은 옷에 붙여 기우면 낡은 것이 더욱 헤어져 쓰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생 베를 낡은 옷에 붙이지 않겠다는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여기의 생베는 당연히 주님의 제자를 가르치고 낡은 옷은 옛사람들의 유전을 가르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키는 유전은 낡은 것으로 이제 떨어져 누더기가 되었으므로 주님의 제자를 그 낡은 옷에 붙이지 않겠다는 말씀인데, 여기서 주님은 '나의 제자는 생베니라'라는 뜻의 말씀인 것입니다. 생베란, 1빳빳한 새 천을 말합니다. 새 천이면서도 빳빳하여 구겨지지도 않고 두꺼운 천, 비유하자면 빳빳한 청바지 천 이나 풀먹인 광목과도 같은 천을 가리킵니다. 빳빳하다는 말은 지조 있는 신앙을 말 합니다. 내 제자는 생베이다. 생베는 빳빳하다. 즉 지조가 있다.고 주님은 힘주어 말씀 하신 것입니다. 엷은 천을 바로 세우려고 하면 옆으로 곧잘 쓰러지고 구겨지지만 이 생베는 잘 쓰러지지 않는 특징이 있듯이 나의 제자는 신앙의 지조가 있어 그 어떤 유 혹과 협박에도 넘어지지 않는 자들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엔 낡은 베 운동이 강하여 모두를 자기들과 같이 낡은 신앙의 사람이 되도록 유 혹하고 협박하지만, 나의 제자들은 어떤 낡은 베가 끌어당기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낡은 베가 헤어지면 헤어졌지 내 제자는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일제시 대 신사참배운동을 하던 목사들은 낡은 옷인 것입니다. 그때에 주기철 주남선 이기선 백영희 목사님등은 그들의 어떤 탄압과 협박에도 그 신앙의 절개를 지키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참으로 생베와 같은 주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성경의 예로 보면 요셉이 생베라면 보디발의 아내는 낡은 베요 다니엘과 그의 세 친 구가 생베라면 그 방백은 낡은 베요, 또한 스데반이 생베라면 바리새인들이 낡은 베 인 것입니다. 이들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기지 아니한 지조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2생베는 참신성이 있습니다. 생베는 새것입니다. 참신합니다.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 좀더 자세히 상고하겠지만 주의 제자들은 주님이 나를 따르라 하실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은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많은 설교와 능력을 보고도 아직 까지 주를 믿지 못하고 반대하고 의심하는 신앙의 참신성이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는 이 참신성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어제에 머무르지 말고 오늘날 성령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마치 옹달샘에서 새물이 계속 솟아 나오듯 또는 성전 문지방에서 스미어 나오는 그 새물을 날마다 받아 마시듯 늘 새 은혜와 새 말씀에 충족한 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몇 십 년 전에 목사님들이 설교 한 그 설교 붙들고 더 이상의 전진이 없는 것은 참신성이 없는 낡은 옷인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이 참신성이 있어서 날마다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에 놀라고 그 새 은혜 에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세 번째로 내제자는. 새포도주요 새부대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포도주와 부대의 원리를 가지고 자신의 제자들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1계속 발효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팽창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잘 늘어나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묵은 포도주는 더 이상 의 발효가 없어 팽창하지 않으므로 이것은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다 해도 아무런 문제 가 없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제자는 새 포도주 이다. 그래서 발효한다.는 뜻의 말씀인 것입니다. 발효한다는 것은 변화를 상징합니다. 즉 주님의 제자는 진리와 성령님의 역사로 날마다 자라가고 변화해 가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아무리 주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대한 변화는커녕 반대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변화란 전혀 기대 할 수 없었 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듣는 대로 변하고 자기 개혁을 단행하는 사람들이었 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바로 믿는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 그 마음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여 날마다 새 사람이 되어 거룩하고 흠 없는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줄로 압니다. 이 변화가 없는 자는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2주님의 제자는 자꾸 팽창하는 자입니다.-자라가고 많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는 신앙이 자라가고 행위(점점 깨끗해짐)가 전보다 자라가고 그 능력(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힘)이 자라가며, 열매가 자라가야 합니다. 자라가지 않고 정지 된 사람은 주님의 옳은 제자가 아닙니다. 어디까지 자라 가느냐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장성하여야 합니다. 3새 맛을 낼 것입니다. 이것은 그 맛을 보는 자가 새 기분과 새 힘을 얻게 되는 것 을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 힘을 줍니다. 신앙이 없던 사람은 새 신앙이 생기고 병들었던 사람은 고침을 받고 소망이 없던 사람은 새 소망이 넘쳐 소망 가운데 생활하도록 날마다 새 맛을 내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의 제자들은 만나는 사람을 다 병들게 하고 그리스도를 원수로 생각하게 하며 같이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에 동참을 시키는 결과를 맺게 됩니다. 마치면서. 이상의 여러 가지가 구비 된 자로 주님은 자기 제자를 만드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인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제자들이 능히 이 일들을 해 줄 줄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생베와 같은 사람이었고 새 포도주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이 제자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도 이 세 가지였습니다. 우리 성도의 자랑도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도록 이 셋으로 자신을 다시 점검해 보고 내 제자는 이러한 자 가 되어라고 주님이 부탁하셨는데 우리는 기도하지 아니했고 생베 같지 못하였고 새 포도주 같지 못하였다면 주님 앞에 부끄럽게 서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귀한 주님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니 주의 제자로서 부끄럼이 없는 제자들이 되도록 기도할 때는 기도합시다. 그리고 생베가 됩시다. 발효하고 변화하고 자 라가며 새 맛을 내는 새 포도주가 됩시다. 이것이 없으면서 주의 제자라고 말하지 맙 시다. 또한 이것이 없이는 이 악한 세대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이 셋 을 다 갖추는 칭찬 받는 주님의 제자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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